Please stop our Pope RAW novel - Chapter (307)
307화
3.
이번 에덴 일정의 마지막이라고 할 수 있는 평화 회의까지 꽤 넉넉히 시간이 남아 있었다.
그래서 나는 성도 곳곳에 배치되어 있는 유물들도 조사를 할 겸, 부지런히 이곳저곳을 다녔다.
가장 먼저 들른 곳은 교황청의 전투력을 담당하는 신전기사단과 전투사제단의 훈련장.
“사악한 이들과의 협상은 없다. 우리가 사악한 이들을 보고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은 첫째도 힘, 둘째도 힘이다. 사악한 이들은 무력을 동원해서라도 분쇄해야만 한다. 그대들이 활약할수록, 더욱 많은 생명들이 구원받는다. 김시우 교황님께서 여러분들에게 내린 유일한 당부 사항이기도 하다.”
“예!”
“리멘을 위하여!”
“리멘을 위하여!”
때마침 신입들을 교육하고 있는 모양이다.
신전기사단 신입과 전투사제단 신입들이 한자리에 모여 정신교육을 받는 모습.
힘을 강조하는 정신교육의 흐름이 아주 흡족했다.
“신앙심과 신앙심을 지켜 낼 수 있는 힘. 그것이야말로 성전사들의 본질이지.”
에덴에서는 신전기사단과 전투사제단을 통틀어 성전사라고 부른다.
생각해 보면 아주 괜찮은 표현인 것 같다.
나는 흡족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중얼거렸고, 내 말을 들었는지 바예르 총대주교가 미소를 지었다.
“여전히 에덴에는 마기를 추종하는 자들이 남아 있습니다. 그리고 사이한 신앙을 지닌 이단자들도 있었지요.”
“이단자들이요?”
“본디 리멘을 따르던 이들이었으나, 이계의 신을 받아들인 자들이었습니다. 리멘님께서 직접 강림하셔서 계시를 내려 주셨지요.”
에덴에도 지구의 고대 신들의 사악한 마수가 뻗어 왔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우리 리멘 교단은 원래 다른 종교를 배척하는 편은 아니다.
하지만 그놈들은 배척을 할 수밖에 없는 놈들.
아마도 강제로 세뇌하면서 세를 불려 나갔었겠지.
“그놈들도 결국 상대가 안 좋았네요.”
“그렇습니다. 리멘님께서 직접 강림하시여 계시를 내리셨던 만큼, 교단 내의 모든 성전사들이 동원되어 그들을 몰아냈습니다. 교단의 역사에 있어서도 극히 이례적인 일이었지요.”
길게 이어진 전투에서 살아남은 정예들이 드글거렸던 에덴이다.
고대 신 놈들이 마수를 뻗었다 한들, 에덴은 리멘의 홈그라운드.
최정예 병력에다가 주신이 된 리멘을 상대로 승산이 있었을 리가 없지.
뭐, 애초에 고대 신들의 목표도 세계 정복이 아니었다.
리멘의 발을 묶기 위해서였으니까.
나는 웃으면서 슬쩍 아무르를 쳐다보았다. 그리고 은근한 목소리로 물었다.
“아무르, 만약 같은 일이 벌어지면, 너는 어떻게 선택할 거야?”
고작 여덟 살짜리 꼬마 애에게 너무 어려운 질문을 한 게 아닐까?
하지만 돌아온 대답은 내가 기대했던 것 이상이다.
“지키기 위해서 싸울게요.”
“오.”
우리 대주교들이 애를 아주 잘 가르친 것 같다.
평화를 사랑하는 입에서 싸우겠다는 말이 저렇게 당연하다는 듯이 나올 줄이야.
역시, 그릇은 그릇인 건가?
이대로만 잘 커 준다면 우리 교단의 미래를 믿고 맡겨도 될 것 같았다.
나는 기특한 마음에 아무르의 등을 부드럽게 쓰다듬어 주었다.
“바로 그거야. 지키기 위해서라면 언제든지 싸울 수 있어야 해.”
“명심하겠습니다.”
“바예르 총대주교랑 다른 대주교들께서 신경을 써 주세요. 교황이라고 해서 전투와 무관하지 않습니다.”
교황은 언제든지 위협에 노출될 수 있는 자리다.
내가 있을 때야 엄두도 못 내겠지만, 내가 다시 이곳을 떠나면 언제든지 교단을 위협해 올 수 있다.
그런 최악의 상황에 대비해 교황은 강해야만 한다.
지켜야 하니까.
리멘을 따르는 모든 이들을, 악의 위협으로부터 지켜야만 하니까.
“아무르는 매일 6시간씩 전투 훈련에 매진하고 있습니다.”
“전투 적성은 어떤 것 같아요?”
“탁월합니다. 성하처럼 근접 격투에 특화되어 있습니다.”
“더욱 듣기 좋네요. 자고로 대가리는 주먹으로 부숴야 제맛이지. 앞으로 훌륭한 격투가가 되렴, 아무르. 그래야 무기가 없을 때도 나쁜 놈들을 마음껏 혼내 줄 수 있단다.”
레오를 개인 교사로 붙여 주면 참 좋을 텐데.
……시간 나면 그냥 지구로 데려가서 유학을 시키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기도 하네.
근데 그건 어디까지나 아주 나중의 문제다.
리멘도 찾지 못한 상황에서 차원 간 유학이 말이나 되는 소리겠어?
“무럭무럭 자라렴.”
8세치고는 아직 키가 좀 작다.
하지만 한창 클 때니까, 키는 더 크겠지 뭐.
내 후계자를 막상 이렇게 마주하고 있으니 기분이 시원섭섭하다.
그렇게 내가 아무르, 바예르 총대주교와 함께 천천히 훈련장을 거닐고 있을 때였다.
“교황 성하.”
아무르가 갑자기 멈춰서 나를 바라보았다.
“응?”
“교황 성하께 드리고 싶은 게 있어요.”
“선물이야?”
“네.”
어린아이의 선물은 받아 주는 게 인지상정.
아무르는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품속에서 조심스럽게 작은 돌 하나를 꺼냈다.
아주 미세하게 신성력을 품은 돌.
“제가 처음 교황청에 도착한 날 주웠던 작은 돌이에요.”
“그래?”
“꿈속에서 리멘님을 뵌 적이 있었거든요. 와 줘서 고맙다고 껴안아 주셨어요.”
그 꿈과 이 돌이 무슨 상관이 있을까?
나는 웃으면서 그 자그마한 돌을 살펴보았다.
아주 흔한 돌.
길거리에 돌아다닐 때마다 발에 치일 것 같은, 그런 흔한 돌이었다.
하지만 아무르는 그 돌을 아주 소중하게 대하고 있었다.
“꿈속에서 리멘님을 뵈었던 장소가 본청 건물 앞의 신상이었거든요. 그래서 일어나자마자 그곳으로 달려갔어요.”
“기적의 신상.”
본청 앞에 위치한 얼굴 없는 신상은 리멘의 신상 중 가장 거대한 신상이다.
누군가는 그 신상 앞에서 기도를 드리면 리멘이 반드시 소원을 이뤄 준다는 말을 하곤 한다.
문득 언젠가 리멘이 나에게 해 줬던 말이 떠올랐다.
-시우, 그거 알아? 나에게 간절히 기도를 올렸던 이들이 꿈을 이루는 거, 사실 모두 내가 한 일은 아니야. 그들이 지녔던 간절한 소망이 그들의 운명을 바꾸었을 뿐이야. 신기하지? 원래 간절함이란 게 그래. 신조차도 예측하지 못한 방향으로 운명을 바꾸어 나가거든.
지금 이 순간 그 말이 떠오르는 건 왜일까?
“이 돌은 그 신상 앞에서 발견했던 돌이에요.”
“신기하네.”
“원래 기적의 신상 앞은 매일 아침 사제님들이 청소를 하거든요. 근데 제가 딱 갔었을 때 이 돌이 덩그러니 놓여 있었어요. 그래서 저에게는 이 돌이 리멘님께서 제게 주신 선물이에요.”
소중한 선물인 것 같다.
저 생생한 말만 들어도, 지금까지 아무르가 이 돌을 얼마나 아꼈는지를 알 수 있었다.
그러나 지금 이 순간, 아무르는 내 손 위에 자신이 가장 아끼는 돌을 내려놓는다.
“아직 제가 성하께 드릴 수 있는 게 많이 없어요. 그래서 제가 가장 아끼는 것을 드리기로 했어요.”
“네가 가장 소중하게 여기는 것만큼 과분한 선물이 어디에 있겠어. 그런데 아무르.”
“네!”
“왜 어제 안 주고 오늘 주는 거야?”
내 장난기 섞인 질문에 아무르는 고개를 푹 숙이면서 답했다.
“저도 결심할 시간이 필요해서…….”
“장난이야, 장난. 정말 고마워.”
나는 그 돌을 부드럽게 움켜쥐었다.
에덴으로 넘어와서 받은 선물 중 가장 기분 좋은 선물이 아닐까 싶다.
겉으로 보기에는 신성석과 비슷하게 생긴 돌일 뿐이지…….
……음?
그때였다.
우우우우우우웅.
그 이름 없는 돌은 내 손에 닿자마자 묘한 공명음을 내기 시작했다.
돌을 쥔 손을 통해서 신성력의 파장이 느껴졌다.
도저히 작은 돌이 내뿜는 파장이라고 믿을 수 없을 정도로 강렬하고 짙은, 그런 파장 말이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내 몸속에서 큰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아.”
화르륵.
리멘의 소멸과 함께 내 몸속에서 자취를 감추었던 리멘의 새하얀 신성력이, 돌을 쥔 오른손 끝에서 피어오른다.
나는 다시 마주한 새하얀 성화를 바라보며 환하게 미소를 지었다.
리멘이 존재한다는 확실한 증거.
이것보다 더 확실한 증거가 어디에 있을까?
“바예르 총대주교.”
“네.”
“예, 성하.”
“기적의 신상 앞으로 다시 가 봐야겠어요.”
지금 이 상태로 기적의 신상으로 다가가면 뭔가 얻을지도 모른다는, 그런 강한 직감이 든다.
나는 그들을 데리고 곧장 기적의 신상 앞으로 향했다.
어째서일까?
가슴이 두근거리고 있었다.
4.
기적의 신상 앞에 도착했다.
아침에도 지나쳤던 이 거대한 신상.
얼굴이 보이지 않는 신상은 리멘 교단을 상징하는 신상이기도 했다.
그 앞에서는 두 명의 성기사들이 서서 신상을 지키고 있었다.
그 둘은 내가 등장하자마자 고개를 숙이며 인사했다.
“오셨습니까, 교황 성하!”
“잠시 자리를 비켜 줄래요?”
“예!”
성기사들은 아무런 것도 묻지 않고 경계 자세를 풀고 자리에서 떠났다.
나는 그들을 향해 가볍게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천천히 신상을 향해 다가갔다.
내 뒤에는 바예르 총대주교와 아무르가 조용히 서 있었고, 하늘에서는 따스한 햇볕이 내려앉는다.
나 역시 이곳 앞에서 간절한 기도를 올리던 신자들과 다를 바 없다.
지금의 나에게는 아주 간절한 소망이 있다.
리멘을 보고 싶다.
그녀가 나에게 지어 주던 그 따스한 웃음을, 나를 껴안아 주던 포옹을, 다시 한번 느끼고 싶다.
“후우.”
크게 숨을 들이쉬고 내쉬며 기적의 신상 바로 앞에 섰다.
그리고 신상에 천천히 손을 가져다 대었다.
햇빛을 받아서인지는 몰라도 포근한 따스함이 손끝으로 전해져 온다.
우우웅.
내 몸에서 흘러나간 새하얀 신성력이 신상에 깃들었고, 곧 신상 전체가 새하얗게 빛나기 시작했다.
“리멘이시여…….”
뒤에서 이 모든 걸 지켜보고 있던 바예르 총대주교가 나지막하게 중얼거린다.
나는 모든 감각을 신상에 집중했다.
신상은 내가 흘려보내는 신성력에 반응하고 있었다.
“……보여 줘.”
네가 이 세상에, 그리고 내 세상에 여전히 존재한다는 그 증거를, 그 확신을.
그녀가 나에게 보여 주었으면 한다.
나는 내 삶이 끝나는 순간까지 그녀를 찾아다닐 거다.
내 간절한 소망이다.
아니, 나에게 남은 유일한 소망이다.
자그마한 불씨라도 좋다. 그럼 나는 그 불씨를 길잡이 삼아 삶의 마지막 순간까지 그녀의 자취를 찾아갈 테니까.
우우우웅.
신상의 몸에서 그 어느 때보다 환한 빛이 뿜어져 나왔다.
그 빛은 리멘을 닮아 있었다.
주위의 모든 것을 밝히며, 모든 것에게 따스함을 나눠 주는 리멘을.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마침내…….
『나의 교황님.』
꿈에도 그리던 목소리가 들려왔다.
“리멘?”
다시 한번 그녀를 불렀다.
그러나 이번에는 한참 동안 기다려도 대답이 돌아오지를 않았다.
나는 신상에 손을 댄 채로 가만히 서 있었다.
의심할 것 없었다.
리멘의 목소리였다.
내 머릿속에만 울려 퍼진 듯했지만, 그것은 분명 리멘의 목소리였다.
“……리멘.”
어쩌면 그녀가 소멸하기 전에 미리 이곳에 남겨 둔 목소리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번에는 내가 원하는 대로 해석하기로 했다.
“이 정도면 충분해.”
그녀가 존재한다는 증거를 찾은 걸로 치기로 했다.
이 간절함에 기대기로 했다.
리멘이 말했던 것처럼, 간절한 소망은 운명까지 바꾼다고 했으니까.
“찾아낼게.”
신상을 앞에 두고 몇 번이고 다짐했다.
어딘가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을 나의 여신에게, 내가 곧 가겠노라, 그렇게 다짐했다.
우리 교황님 좀 말려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