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lease stop our Pope RAW novel - Chapter (311)
311화
5.
미국에 조용히 방문하겠다는 내 계획은 시작부터 무너져 내렸다.
“미국 지부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교황님께서 미국에 방문하시는 것을 기념하여, 부흥회를 열겠다고 합니다.”
“아니, 그냥 가볍게 병문안을 가는건데…….”
“미국 정부에서 흔쾌히 신도들의 요청을 받아들였다고 합니다. 교황님께서 미국을 방문하시는 일은 아주 성대한 행사가 될 것 같습니다.”
집무실에서 라파르트 대주교의 보고를 들었다.
……머리가 지끈거린다.
진짜 엠마 여사만 딱 보고 귀국하려던 내 계획은 도대체 어디에서 새어 나갔는지 모를 정보 때문에 망가져 버렸다.
범인이 도대체 누굴까?
“높은 확률로 미국에서 흘린 정보인 것 같습니다.”
“미국에서?”
“미국의 대통령 선거도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아마도 현 미국 대통령이 교황님과의 친분을 과시하기 위해서 벌인 일 같군요.”
“후우.”
미국과의 사이는 아주 좋은 편이었다.
마정석도 많이 지원해 줬었고, 무기 기술도 제공해 주지 않았는가?
게다가 사실상 나 때문에 이레귤러가 둘이나 빠져 버린 상황.
우리 교단이 딱히 해 준 것도 없었으니, 이 정도는 그냥 넘어가 주도록 하자.
나는 손으로 얼굴을 쓸어내리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체류 기간은 길지 않을 겁니다. 엠마 여사만 딱 만나고, 곧장 돌아올 거예요.”
“이왕 가신 김에 신도들에게 한 말씀 해 주고 오시면 더 좋을 듯합니다. 최근 미국에서 교단의 확장세가 아주 가파르게 치솟고 있습니다.”
“음?”
“교단의 재정부에서 LA에 신전을 짓기 위한 예산 편성이 진행 중입니다.”
시스템이 정지한 이후로 DLC – 교황>의 사용도 불가능해졌다.
예전이었다면 신성 점수나 성유물을 들고 가서 신전을 소환하면 되었지만, 이제는 그게 불가능하다.
직접 건축하는 방법만 가능할 뿐.
그래서 요새 교단의 재정이 좀 빡빡하게 돌아가고 있다고 한다.
“재정 상황은 좀 어떤가요? 전쟁이 끝났으니 판매량도 줄어들었을 것 같은데요.”
내 질문에 라파르트 대주교는 손에 들고 있던 보고서 한 장을 건네주면서 설명했다.
“국내로만 말씀드리자면, 성수 판매량은 줄어들었습니다. 대신 대장간의 매출이 가파르게 상승 중입니다.”
“나쁘지 않네요.”
“생산되고 있는 성수 대부분을 정부에서 구매 중이며, 의료 기관들 역시 구매 의사를 타진하고 있습니다.”
의료 기관이라면 사람을 살리는 것에 중점을 둔 사람들이다.
그들이 성수를 필요로 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할 수 있다.
아직까지 지구의 의학이 도달하지 못한 영역을 성수가 일부 담당해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최상급 성수 같은 경우에는 양이 적긴 하다만, 이 세상에는 건강할 수만 있다면 아무리 비싼 값을 치르더라도 구매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많다.
전쟁이 끝났어도 여전히 축성소랑 대장간은 효자 역할을 톡톡하게 해 주는구만.
“또한 중국을 비롯한 해외에서도 성물을 구매하기 위해 의견을 타진해 오고 있습니다. 박지원 고문이 전담하여 수출 협상을 진행하는 중에 있습니다. 재정 걱정은 안 하셔도 좋습니다.”
라파르트 대주교의 설명을 들으면서 천천히 보고서를 살폈다.
축성소야 원자재 가격이 거의 안 들어가는 편이고.
대장간은 재료 비용을 꽤 쓰긴 하는데, 전쟁을 통해서 리멘 교단의 방어구랑 무기 들은 높은 평가를 받게 되었다.
덕분에 대장간의 마진률은 엄청난 편이었다.
진짜 돈 걱정은 할 필요 없을 것 같다.
“헌금 없이도 충분히 운영이 가능하겠네요. 사회사업도 계속 확장해 주세요. 보훈 사업도 확실하게 해 주시구요.”
이번 전쟁에서 희생된 우리 교단의 전투원들에 대한 보훈도 꾸준하게 해 줘야만 한다.
그게 전사자에 대한 예의이자 우리가 해 줄 수 있는 전부였다.
“교단에 기부를 하고 싶다는 기업들이 꽤 많습니다.”
“꿈도 꾸지 말라고 해요. 그런 돈 받으면 탈 납니다. 우리 스스로 돈을 벌 수 있는데, 굳이 기부를 받을 필요까지 있을까요? 명심하세요, 라파르트 대주교. 우리 교단이 떳떳할 수 있는 데에는 재정 자립이 가능하다는 이유가 있다는 걸요.”
남의 돈은 받으면 탈 난다.
특히, 종교 집단은 더더욱 그렇다.
우리는 언제나 깨끗해야만 한다. 우리 교단에 더러운 게 조금이라도 묻는 순간, 우리를 물어뜯으려는 사람들이 셀 수 없이 많을 것이다.
“리멘님의 이름에 부끄럽지 않도록 노력하겠습니다.”
“항상 고생만 시키는 것 같아서 죄송합니다.”
“아닙니다. 언제나 기쁜 마음으로 교황 성하의 명을 따르고 있습니다.”
듣기 좋은 소리다.
라파르트 대주교는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였고, 이번에는 다른 서류를 나에게 건네주었다.
“그리고 이건 2주 뒤에 신전에서 열릴 결혼식에 관한 서류입니다.”
“아,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되었네요?”
“예, 그렇습니다.”
류진영 각성자와 강채아 각성자의 결혼식.
우리 교단의 신전에서 결혼식을 열어 주겠다는 약속을 한 적이 있었는데, 벌써 결혼식이 다가온 모양이다.
나는 서류의 밑에 서명을 하면서 슬쩍 미소를 지었다.
“결혼식 당일에는 시민들에게 양해를 구해야겠죠?”
“그렇습니다.”
“간단하게 연회를 열어 주는 건 어때요?”
“좋은 생각인 것 같습니다. 제가 업체를 잘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그래도 신전에서 처음 열리는 결혼식인데, 그 정도 선물은 해 줘야죠. 고마운 사람들이기도 하고.”
나와 인연을 맺은 사람들이 서로 결혼하는 날이다.
감회가 새로웠다.
전쟁을 준비하기 위해 쉴 새 없이 돌아갔던 서울 성지가, 이제는 미래를 기약하는 성스러운 의식의 장소가 되었다.
리멘이 이 사실을 알면 정말 뛸 듯이 기뻐할 것 같다.
“부족함 없이 준비합시다.”
“예, 성하.”
진영이 형이랑 채아 씨 둘 다 돈은 많은 사람들이니 비용이야 지불하겠지.
그래도 좋은 게 좋은 거라고, 인생의 하나뿐인 이벤트가 기억에 오래 남았으면 좋겠다.
그렇게 일단 밀려 있던 업무들은 모두 처리했고, 나는 가볍게 기지개를 켜면서 말했다.
“일 다 처리했으니까 가족들이랑 같이 미국에 다녀오겠습니다.”
“전세기로 이동하십니까?”
“그렇게 되었네요.”
내가 가겠다고 하니 미국 정부에서 곧바로 전세기를 내주었다.
할머니도 엠마 여사를 보고 싶다고 해서, 이참에 그냥 가족끼리 미국에 다녀올까 한다.
시연이도 데리고, 인욱이도 데리고.
거기에 에이든까지.
에이든은 왜 그런 곳에 가냐고 짜증을 내긴 했다만, 여사님이 부른다고 하니 가겠다고 하더라.
위아래 없는 야만인 놈이 예의 하나만큼은 끔찍하게 지킨다니까?
“그럼, 저 이만 다녀오겠습니다. 시연이가 아침부터 엄청 기대를 하고 있어서요.”
“LA로 가시는 게지요?”
“예, 엠마 여사님이 입원하신 병원이 그곳이라 하셔서.”
“다녀오십시오.”
LA에 신전이 만들어지면 참 편할 것 같다.
미국 여행도 그냥 신전 지하를 통해서 다녀올 수 있게 되는 건데 말이지.
나는 라파르트 대주교에게 가볍게 고개를 끄덕인 다음, 곧바로 집무실 밖으로 나섰다.
엠마 여사의 선물을 수령할 시간이었다.
6.
그로부터 4시간 후.
미국 정부의 전세기를 타고 LA로 향하는 비행기 안, 시연이는 창문밖에 펼쳐진 푸르른 하늘을 바라보면서 감탄사를 내뱉었다.
“비행기다! 비행기!”
“시연이 비행기 타는 게 그렇게 좋아?”
“응! 그리고 이번에는 승우 오빠도 같이 가잖아? 그래서 더 좋아. 그치, 승우 오빠?”
“시연이가 좋아하니까 나도 기뻐.”
“헤헤.”
요새 들어 승우랑 시연이가 부쩍이나 친해진 것 같다.
예전에도 친하긴 했지만, 아무래도 훈련을 같이 받다 보니까 유대감이 더 깊어진 듯한 느낌?
시연이가 승우를 바라보고 있을 때면 아주 그냥 꿀이 뚝뚝 떨어진다.
보통 귀여운 아이라도 커 가면서 변하는 경우가 있는 법인데, 승우에게는 그런 게 없다.
승우는 성장하면 성장할수록 더 잘생겨지고 있다.
이제는 어엿한 개인 팬클럽까지 이끌고 있다던가?
시연이도 그렇고, 승우도 그렇고, 가장 최근에 합류한 주원이도 그렇고.
우리 교단의 선지자들은 아이돌을 방불케 하는 인기를 끄는 중이다.
“시연 님께서 좋아하시는 딸기 생크림 케이크입니다.”
우리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있을 때, 승무원이 우리 앞에 먹음직스러운 케이크를 가져다주었다.
“우와!”
시연이는 기뻐하면서 포크로 케이크를 입에 집어넣었다.
나도 시연이를 따라 한 입 집어넣었는데…… 넣자마자 케이크가 입에서 녹아내린다.
딱 봐도 느껴지는 자본의 맛.
시연이가 딸기 케이크를 좋아하는 건 또 어떻게 알아 가지고.
“크으, 역시 술은 하늘에서 마시는 게 최고지.”
우리가 한쪽에서 티타임을 가지고 있을 때, 에이든은 옆에서 위스키를 벌컥벌컥 들이켜면서 만족스러운 미소를 짓고 있었다.
아마 저놈이 시연이의 입맛을 일러바쳤을 거다.
에이든은 할 일 없으면 항상 시연이를 몰래 데리고 나가서 맛있는 걸 사 먹이거든.
무식하게 보여도 아이들은 이뻐하는 야만인이다.
“맞다.”
시연이는 생크림을 입에 잔뜩 묻힌 채로 에이든을 바라보았다.
“에이든 아저씨, 저 궁금한 거 있어요!”
“얼마든지 답해 주지.”
“생뚱맞을 수도 있는데…… 혹시 비행기에서 떨어져도 살아남을 수 있어요?”
“음, 갑자기?”
“혹시 이 비행기가 추락할 수도 있잖아요!”
“그렇지. 전사라면 모름지기 항상 최악의 상황을 염두에 둬야 하는 거야. 시연이가 아주 잘 배웠어. 오빠한테 배운 건가?”
“……도대체 세상 그 어느 오빠가 비행기 추락에 대비하라고 교육을 하겠냐?”
보통 비행기가 추락하면 다 죽지.
그런 상황을 교육하는 사람이 있다면 도대체 무엇을 가르치는 걸까?
……안 아프게 죽는 법?
“비행기가 땅에 닿기 직전에 타이밍을 잘 맞춰서 비행기를 차고 땅 위로 뛰면 될 것 같긴 하군. 아직 추락해 본 적이 없어서 말이야.”
어마어마한 중력을 거스르겠다는 말을 내뱉는 에이든.
나는 한숨을 푹 내쉰 다음, 시연이에게 말했다.
“우리는 저렇게 무식한 방법을 쓸 필요가 없어.”
“그럼 방법이 있는 거야?”
“신성력을 잘 이용해 봐야지. 타이밍에 맞춰서 밑 쪽으로 신성력을 뿜어내면 낙하 속도를 줄일 수 있을 거야.”
“우움, 어려워.”
“시연이도 언젠가는 이해하게 될 거야.”
여차하면 라파엘이 개조해 준 슈트를 이용해서 비행기를 들어 버리면 되지 뭐.
영화 속 그 강철 남자처럼 말이다.
“라파엘도 같이 왔으면 좋았을 것을. 라파엘도 엠마 여사님을 좋아했다.”
“바쁘다잖아? 집에 돌아가기 위해서 마지막 준비를 하고 있는데, 데리고 가기도 좀 뭐해.”
아직 라파엘은 지구에 있다.
기계에 살짝 문제가 발생했다던가?
설정된 좌표가 알 수 없는 이유로 증발했다고 한다.
그래도 다행이다. 라파엘에게 작별 인사를 할 시간은 충분히 있으니 말이다.
그렇게 우리들은 꽤 오랜 시간을 시시콜콜한 잡담을 나누면서 시간을 보냈다.
평화로운 시간이었다.
7.
시연이랑 놀아 주고.
에이든의 뒤통수를 몇 대 후려갈기고.
할머니의 잔소리를 듣고.
거기에 오랜만의 낮잠까지.
비행기 속에서의 시간은 아주 빠르게 흘러갔다.
“착륙합니다.”
승무원의 안내에 따라 벨트를 착용한 후, 얼마 안 있어서 우리가 탄 비행기는 공항에 도착했다.
꽤 오랜만에 밟는 미국 땅.
나는 비행기가 멈추자마자 곧바로 가족들과 함께 비행기에서 내렸다.
그래도 한번 와 봐서 그런지 공항이 눈에 익었다.
LA 공항.
예전 세계 각성자 포럼이 개최될 때 들렀던 곳이기도 해서 반갑기도 했다.
“큰오빠랑 두 번째 오는 미국이다, 헤헤.”
시연이의 기분은 무척 좋아 보였다.
나와 여행을 왔다는 생각 때문인지, 아까 전부터 내 손을 꼭 잡고 환하게 웃고 있었다.
시연이의 이런 웃음을 보는 것만으로도 데려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입국 수속은 모두 처리해 두었으니, 바로 목적지로 모시겠습니다.”
미국 정부에서 나온 직원들이 우리에게 예의를 표하면서 말했다.
“감사합니다.”
“환영 인파가 좀 많습니다. 원하신다면 다른 통로를 통해서 공항 밖으로 모시겠습니다. VIP들을 위한 전용 통로가 있습니다.”
“에이, 저 보러 오신 분들한테 인사는 해야죠.”
하지만 그로부터 5분 후.
나는 그 말을 후회할 수밖에 없었다.
“교황니이이이이이이임!”
“리멘이시여!”
“우와아아아아아아아!”
“김시우! 김시우! 김시우!”
공항을 가득 메운 환영 인파.
그 모습을 멍하니 지켜보고 있던 인욱이가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BTS, 봉준호, 손흥민, 김시우…… 렛츠 고.”
“……좀 닥치고 있어 봐.”
“미안. 갑자기 하고 싶었어.”
LA 공항 전체가 리멘 교단의 부흥회장으로 변해 버렸다.
우리 교황님 좀 말려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