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lease stop our Pope RAW novel - Chapter (314)
314화
Epilogue. 우리 교황님 좀 말려 주세요
1.
서울 성지는 그 어느 때보다 활력이 넘친다.
“조금 더 화려한 조각상은 배치하기 힘든가?”
“신전에서 올리는 결혼인데, 너무 화려한 것도 문제가 되지 않겠습니까?”
“어허! 대한민국 정부랑 일본 정부에서 지원을 해 준다는데, 좀 팍팍 쓰라고! 대장간에 꿍쳐 둔 조각상 많잖아! 그리고 거기! 페어리 친구들! 꽃 좀 더 많이 장식해 줄 수 있겠어?”
“응!”
“열심히 하고 있으니까 잔소리 좀 하지 마!”
결혼식 준비 때문에 다들 정신이 없다.
페어리들은 부지런히 꽃을 장식하고 있고, 토비는 자신의 제자들을 이끌고 열심히 상황을 점검하고 있다.
나는 팔짱을 낀 채로 그 모든 과정을 지켜보는 중이었다. 그런 내게 옆에 서 있던 루나가 넌지시 묻는다.
“부하 직원들은 저렇게 열심히 일하고 있는데…….”
“원래 대표가 할 일이 이거야. 부하들이 열심히 하고 있는지를 체크하는 거지.”
“누가 봐도 그냥 놀고먹겠다는 심본데요?”
“꼬우면 네가 대표하든가.”
“어휴, 신성한 교단을 이끄는 사람이 스스로를 대표라고 부르면 어떻게 해요?”
“교황이란 게 원래 교단 대표란 뜻이잖아? 뭐가 달라. 이제 웨딩 업체까지 도맡고 있잖아.”
오늘은 결혼식 날이다.
아, 그러니까 내 결혼식은 아니고 진영이 형과 채아 씨의 결혼식 당일이란 뜻이다.
참고로 그 둘의 결혼식이 서울 성지에서 치러진다는 뉴스가 보도된 후, 세계 각지에서 결혼식 문의가 쏟아져 내렸다.
각국의 내로라하는 부호들이 얼마면 이곳에서 결혼할 수 있냐고 문의를 하더라.
빌보드 차트 1위를 밥 먹듯이 하는 슈퍼스타부터 시작해서, 세계 부호 순위 6위의 아들까지.
그 문의들을 본 뒤부터 나는 아주 진지하게 웨딩 사업에 대한 고민을 하고 있는 중이다.
돈은 원래 땡길 수 있을 때 확실하게 땡기는 게 좋다.
돈이 많을수록 우리 교단은 좋은 일을 더 많이 할 수 있게 된다.
그 사람들은 성지에서 결혼식을 올려서 좋고, 우리는 돈을 벌어서 좋고.
이거야말로 누이 좋고 매부 좋고, 도랑 치다 가재 잡는 게 아니겠어?
하여간에 라파르트 대주교에게 웨딩 사업에 관해서 박지원 고문이랑 논의를 해 보라는 지시를 내렸다.
그 둘은 돈 냄새 하나는 기가 막히게 맡는 사람들이니까 알아서 방법을 찾아낼 거다.
“그리고 에덴에서도 마찬가지던데?”
“뭐가요?”
“저번에 내가 에덴 갔을 때, 교황청에서 직접 결혼식을 주관하더라. 왕가끼리의 결혼이었는데, 아주 그냥 기둥을 뽑아 오더라고.”
“지구나 에덴이나.”
“어느 세계나 돈이 남아도는 사람들은 있는 거지. 돈이 많다고 나쁜 놈은 아니잖아? 우리는 그 돈을 받아서 좋은 일을 더 많이 하면 되는 거야.”
내 말에 루나는 손가락으로 볼을 긁적이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더니 은근한 목소리로 물었다.
“그런데 허락은 받으셨어요?”
“허락? 무슨 허락?”
“성하께서 그렇게 마음대로 하실 수는 없는 거잖아요. 엄연히 성지의 주인분이 계시는…….”
그때였다.
와락.
누군가 내 뒤에서 갑자기 나를 껴안았다. 분명히 엄청난 강자인 게 틀림없었다.
내가 아무런 기척도 느끼지 못하고 뒤를 내줄 정도라면 아마도…….
“리멘?”
“뭐야, 일부러 아무 말도 안 했는데?”
“언제 왔어? 들어가서 좀 쉬고 있지.”
“신전 안에만 있는 건 심심하단 말야.”
리멘일 수밖에 없다.
코끝에 리멘의 향기가 느껴진다.
꽃을 닮은 향기. 이 향기를 지닌 존재는 이 세상에서 오로지 리멘뿐이다.
리멘은 내 앞으로 쏙 나오더니, 곧 나를 껴안으면서 품속에 얼굴을 비볐다.
그러자 옆에 서 있던 루나가 헛기침을 내뱉으면서 다른 곳을 쳐다보았다.
“커흠, 오늘따라 날이 덥네요.”
“루나, 시우한테 내가 허락해 줬어.”
“아, 리멘님께서…….”
“성지에서 결혼식을 올리는 건 아주 기쁜 일이잖아. 가족의 탄생을 우리가 직접 축복해 줄 수도 있는 거구…… 누군가에게는 이 성지가 특별한 기억으로 남게 될 거야.”
“리멘님의 뜻이 그러하다면, 저 역시 적극적으로 지지합니다.”
“역시, 우리 루나는 내 말을 참 잘 듣는다니까?”
리멘은 환하게 웃으면서 루나에게 말했고, 루나는 얼굴을 붉히면서 고개를 숙였다.
항상 망나니 같은 루나지만 리멘과의 대면은 여전히 적응이 안 되는 것 같다.
생각해 보니 그렇다.
감정 표현이 없기로 유명한 라파르트 대주교와 레오조차도 리멘 앞에서는 안절부절못하더라.
자신들이 평생을 걸쳐서 섬겼던 여신이 바로 옆에 있으니 머리가 안 돌아갈 만도 하다.
나는 리멘을 품속에 안은 채로 루나를 슬쩍 쳐다보았다.
“일하러 안 가냐?”
“……저 할 일 없는데요.”
“남자라도 좀 만나든가. 지난번에 소개팅은 어떻게 된 건데?”
“남자가 도망갔어요.”
“왜?”
“아니 글쎄, 같이 등산을 하는데 길이 돌로 막혀 있더라구요. 그래서 그냥 주먹으로 박살 냈거든요? 그거 보자마자 남자가 새하얗게 질려서…….”
“잘한다, 잘해.”
“하, 이럴 줄 알았으면 인욱이라도 진작에 작업 칠걸. 아니, 인욱이랑 그레이스 그러다가 결혼하는 거 아니에요?”
에덴에서나 여기서나, 남자복은 드럽게도 없는 루나였다.
나는 루나의 말에 시큰둥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결혼하면 결혼하는 거고. 남의 연애사에 관심 가질 시간 있으면 네 연애나 좀 하렴.”
“후, 남자 소개 좀.”
“에이든?”
“차라리 혀를 깨물죠.”
소개팅을 산에서 하는 게 제정신은 아니지.
내가 루나를 잔뜩 놀리고 있을 때, 리멘이 루나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면서 말했다.
“곧 생길 거야.”
“……정말요?”
“응.”
“감사합니다, 리멘님!”
좋댄다.
루나는 리멘을 향해 몇 번이고 허리를 숙인 다음, 열심히 일하고 있던 페어리들에게로 달려갔다.
나는 멀어지는 루나의 뒷모습을 바라보면서 한숨을 푹 내쉬었다.
“정말 생길까?”
그러자 리멘이 흐뭇하게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예쁜 아이잖아? 인연이 있겠지. 어쩌면 본인이 아직까지 발견하지 못한 걸 수도 있고.”
서울 성지 내부에서 리멘을 알아보는 건 우리 교단의 간부들이나 내 가족들을 제외하곤 없다.
다른 사람들은 그저 내 여자 친구로만 알고 있다.
하긴.
이 세계를 구한 여신이 사람처럼 돌아다니고 있다고 어떻게 생각하겠어?
나 같아도 못 믿겠다.
“오늘 결혼식은 어떻게 할래?”
“나도 하객으로 참석할 생각이야. 신전 첫 결혼식인데, 당연히 내가 직접 가서 축복을 내려 줘야지. 그리고…… 부케도 내가 받을 건데?”
“부케?”
“부케는 내 거야.”
예상하지도 못했던 곳에서 의지를 불태우는 리멘.
주먹을 꽉 쥐면서 고개를 끄덕이는 모습이 어찌나 귀엽던지.
나도 모르게 그녀의 이마에 입을 맞출 수밖에 없었다.
“진영이 형이랑 채아 씨는 좋겠네. 여신님께서 직접 축복도 내려 주시고.”
“시우한테는 축복 대신 다른 거 줄게.”
“뭐?”
리멘은 장난스럽게 웃더니 곧 내 입에 입을 맞추었다. 그리고 나지막하게 속삭였다.
“사랑.”
……요새 낯간지러운 말 참 잘한다니까?
2.
결혼식은 아주 성대하고 완벽하게 치러졌다.
세계 각지에서 도착한 귀빈들이 자리를 빛내 주었고, 특별히 내가 직접 사회도 봐 줬다.
사회는 처음이라서 떨렸지만…… 역시, 똥개도 홈그라운드에서는 반은 먹고 들어간다는 말이 맞는 것 같다.
처음에만 살짝 긴장했지 그렇게 어렵진 않더라.
아, 그리고 대망의 부케 잡기도…….
-내가 잡았다!
리멘이 당당하게 부케를 잡았다.
이건 비밀인데, 채아 씨가 뒤로 날린 부케를 리멘이 신성력을 살짝 사용하면서 끌어당기더라.
그녀가 부정행위(?)를 사용했다는 것은 그냥 비밀로 하기로 했다.
리멘이 부케를 든 채로 환하게 웃으면 된 거지 뭐.
그렇게 결혼식이 끝나고, 성지의 정원에서 연회가 열렸다.
“성지에서 이렇게 술을 마셔도 될는지 모르겠네.”
“괜찮아. 내가 허락했어!”
“진짜 괜찮아?”
“응. 이거 맛있다.”
리멘은 샴페인을 열심히 마시면서 환하게 미소를 지었다.
……원래 성지에서 허가 없이 술을 마시는 건 불경죄에 해당하거늘.
하지만 그녀 본인이 허락해 주겠다고 하니 안 될 게 뭐가 있겠어?
“천천히 마셔. 이따가 손님 오잖아.”
“아, 맞다. 깜빡했어. 아무르가 오기로 했지? 기대되네. 거의 갓난아기였을 때 이후로는 직접 본 적 없는데.”
리멘이 돌아온 이후 가장 먼저 한 건 에덴과 지구의 시간선을 다시 바로잡는 일이었다.
어떤 이유에서인지 모르지만, 리멘은 돌아오자마자 많은 힘을 회복했다.
아마도 그건 테라가 우리를 위해 준비해 둔 안배였을 거다.
어찌 되었든 리멘은 시간선을 바로 잡은 후, 서울 성지의 지하에 에덴으로 이동할 수 있는 통로를 만들었다.
물론 리멘 교단의 신도만 사용할 수 있는 통로였다.
그 통로를 통해 오늘 바예르 총대주교가 아무르와 함께 지구에 방문할 예정이다.
“그 아이들한텐 내가 리멘인 거 말해 주면 안 돼. 알겠지, 시우?”
“그걸 숨긴다고 숨길 수 있을까?”
“라파르트는 모르는 것 같던데?”
“정말 그렇게 생각해?”
가만 보면 참 순진하다니까.
라파르트 대주교가 리멘의 정체를 몰랐다면 왜 그녀 앞에서만 석상처럼 변해 버리겠냐고.
그렇게 내가 리멘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있을 때, 오늘의 주인공들이 우리 앞에 나타났다.
“시우야.”
“시우 님.”
바로 신랑 진영이 형과 신부 채아 씨였다.
나는 그 둘을 향해 가볍게 손을 흔들어 주며 말했다.
“결혼 축하드려요.”
그러자 리멘 역시 나를 따라서 그들에게 인사를 건넸다.
“결혼 축하드려요.”
“두 분 다 감사합니다.”
진영이 형과 채아 씨는 정중하게 허리를 숙이면서 인사에 화답했다.
“감사합니다.”
진영이 형은 웃으면서 리멘에게 말했다.
“오늘 저희의 결혼식에 와 주셔서 정말 기쁩니다. 앞으로 서로 예쁘게 사랑하면서 살아가겠습니다. 아까 부케도 잡으셨죠?”
“네, 운이 좋았던 것 같아요.”
“두 분이 결혼식을 올리신다고 하면, 어디에 있든 달려오겠습니다.”
……진영이 형한테는 리멘의 정체에 대해서 말해 준 기억이 없는 것 같은데.
진영이 형은 이미 리멘의 정체에 대해서 아는 눈치였다.
그리고 그뿐만이 아니라 채아 씨도 마찬가지였다.
채아 씨도 리멘에게 허리를 숙이면서 말했다.
“저희들의 결혼을 축복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쯤 되면 그냥 공공연한 비밀인 것 같은데?
루나가 따로 귀띔을 해 준 건가?
나는 어색하게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진영이 형을 향해 말했다.
“저희들은 적당히 있다가 먼저 자리를 뜨려구요.”
“왜? 조금 더 있다가 가지.”
“내가 이곳에 있으면 형한테 좀 미안해서.”
“전혀 아니…… 아.”
진영이 형은 주위를 둘러보더니 내 말에 담긴 의미를 깨달았다.
이미 우리 테이블 주위에는 나를 노리는 거물들이 참 많았다.
세계 각지의 유력 정치인들이 호시탐탐 나에게 말을 붙일 틈을 엿보고 있던 것이다.
오늘은 이 두 사람이 주인공이 되어야만 하는 날.
그래서 적당히 빠져 줄 생각이었다.
“다시 한번 결혼 축하드려요, 형.”
“고맙다.”
주인공들은 연신 감사를 표한 후, 천천히 우리 테이블에서 멀어졌다.
그리고 잠시 후, 다른 손님이 우리 테이블에 방문하셨다.
“큰오빠!”
바로 시연이었다.
시연이는 나에게 인사를 하더니만 갑자기 리멘에게 달려가서 리멘을 꼭 껴안는다.
“헤헤.”
“시연이도 오늘 드레스 입었네?”
“페어리들이 만들어 줬어요! 예쁘죠?”
“응, 시연이는 뭘 입어도 예뻐.”
리멘은 시연이의 등을 쓰다듬으면서 환하게 미소를 지었다.
귀여운 시연이 옆에 예쁜 리멘까지 있으니 절로 힐링이 된다.
이게 행복이지.
이 행복을 누리기 위해서 지금까지 쉴 새 없이 달려온 거다.
나는 흐뭇하게 웃으면서 샴페인을 목으로 넘겼다.
샴페인이 그 어느 때보다 달콤하고 청량하게 느껴졌다.
“큰오빠.”
“응?”
“할머니가 손자랑 손자며느리 데리고 오래!”
“……손자며느리?”
“응!”
손자는 누군지 알겠는데, 손자며느리는…… 음.
“아!”
그 말의 뜻을 이해한 리멘이 살짝 상기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손자며느리란 당연히 리멘이다.
“역시, 리멘님은 귀여워.”
시연이는 리멘을 바라보면서 흐뭇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시연아.”
“응, 큰오빠.”
“나도 그렇게 생각해.”
“으으, 오빠 느끼해.”
할머니가 부르면 가야지.
“오늘 우리 집에서 파티하는 거야!”
“파티?”
“다른 가족들도 다 초대했어! 다들 결혼식 끝나면 우리 집에서 모이기로 했어.”
시연이가 말한 ‘다른 가족’이라면 아마 에이든을 비롯하여 친구들을 의미하는 걸 거다.
나는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손님 데려가도 되지?”
“당연하지. 오늘은 내가 할머니 도와서 음식 준비했으니까 꼭 와야 해.”
“알았어, 시연아.”
파티라…….
생각해 보니 가족, 친구들 다 모여서 밥을 먹은 지 오래된 것 같긴 하네.
“같이 갈 거지?”
나는 옆에 있던 리멘의 손을 꼭 잡았다. 그리고 슬며시 미소를 지었다.
“초대해 주셨는데 당연히 가야지! 나 뭐 입고 가야 예뻐해 주실까?”
“그냥 지금 이렇게 가도 너무 이뻐.”
“그래도…….”
우리 둘의 대화를 가만히 듣고 있던 시연이가 은근한 목소리로 나에게 질문을 던졌다.
“큰오빠는 리멘님이랑 언제 결혼해?”
“응?”
“나도 조카 생겼으면 좋겠어! 조카 생기면 내가 열심히 돌봐 줄 거야.”
“음, 시연아, 그건…….”
리멘이 당황할까 봐 말을 돌리려던 찰나, 리멘이 시연이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면서 말했다.
“조카 몇 명이면 좋겠어?”
“두 명이요!”
“언니가 노력해 볼게!”
“약속!”
“약속!”
……리멘?
우리 교황님 좀 말려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