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lease stop our Pope RAW novel - Chapter (315)
315화
3.
“햐, 그때 그 무지막지한 창이 내 배를 꿰뚫었는데, 딱 창자를 꿰뚫더라니까?”
“그래서 어떻게 하셨습니까?”
“어떻게 했기는. 그냥 창 뺀 다음에 붕대 대충 감고 싸웠지. 원래 그 정도 상처는 금방 회복할 수 있어. 저쪽 세계에 비하면 별거 아닌 상처였다고.”
“애들 듣는 곳에서 그런 말을 하고 싶어요?”
우리 집에서 파티가 열렸다.
왁자지껄한 분위기.
할머니랑 시연이가 함께 만든 음식들과 에이든이 챙겨 온 술.
우리가 초대할 수 있는 손님들은 다 초대했다.
우리 집이 작진 않지만, 그렇다고 해서 열 명을 가뿐히 넘는 이 인원을 수용할 만큼 넓지는 않았다.
하지만 지금, 우리 집의 공간은 전혀 부족함이 없어 보였다.
기분 탓이 아니다.
실제로 자리가 널널하다.
이 보고도 믿기 힘든 현상은.
“이렇게 신의 권능을 남발해도 되는 걸까?”
“뭐 어때, 시우. 지구를 지켜 줬는데 이 정도는 눈감아 주겠지. 이것 가지고 뭐라 그러면 진짜 혐과율이야.”
옆에서 기분 좋게 술을 마시고 있는 리멘이 만들어 내는 현상이었다.
간단한 공간 왜곡이랄까?
리멘은 자신의 권능을 통해서 우리 집을 일시적으로 지구와 분리시켜 두었다.
소음 문제도 해결하고, 공간 문제도 해결하고.
그야말로 일석이조.
“여자 친구가 신격인 덕 좀 봐야지, 시우.”
“우리는 이걸 권력 남용이라고 불러.”
“남용하면 뭐 어때? 죽다 살아났는데 무서울 거 없어.”
리멘은 피식 웃으면서 술을 계속 들이켠다.
이 세계로 돌아온 이후, 리멘의 성격이 살짝 바뀐 것 같기도 하다.
원래는 굉장히 얌전하고 조심조심하는 성격이었는데, 요새는 가끔 화끈하게 들이받는 느낌이 생겼다.
……원래 이런 성격이었던 건 아닐까?
지금까지 일부러 내숭을?
“다들 보기 좋아.”
리멘은 웃으면서 주위를 둘러보았다.
서로의 무용담을 자랑하며 술을 퍼마시고 있는 에이든과 최 대표. 그리고 그 옆에서 열심히 재롱을 부리는 자현이랑 주원이.
나와 리멘을 힐끔힐끔 쳐다보는 루나와 설화, 민수 씨.
사람들이 얼마나 있건 말건 서로 알콩달콩 음식을 먹여 주고 있는 그레이스와 인욱이.
방금 막 지구에 도착한 바예르 총대주교는 할머니와 엠마 여사, 그리고 라파르트 대주교와 함께 즐겁게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아무르는 당연히 시연이와 승우가 데리고 놀고 있었고.
아무튼 남녀노소 삼삼오오 모여 즐겁게 파티를 즐기고 있었다.
“흐뭇하지?”
리멘이 나를 바라보면서 넌지시 물었다.
그 질문에 나는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당연히 흐뭇하지.”
“라파엘이 있었으면 더 좋았을 텐데.”
“언젠가 돌아올 사람이야, 리멘. 크게 걱정하지 말자고. 무소식이 희소식이라잖아?”
리멘 역시 라파엘이 우리가 다시 만나는 데 큰 공헌을 했다는 걸 알고 있었다.
라파엘은 아마 지금쯤 자신의 세계로 돌아갔을 것이다.
그 세계에는 그의 가족들과 그가 복수를 해야 하는 대상이 남아 있다고 했었으니까.
나는 언젠가 라파엘이 돌아올 것이라 믿는다.
지구로 돌아오면 그때 반갑게 맞이해 주면 되는 거다.
“이 정도면 해피 엔딩 아닐까?”
와인을 한 모금 마시며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내 말을 들은 리멘이 나를 째려보면서 답했다.
“이제 시작인데 뭐? 해피 엔딩?”
“아니…… 일단 큰일은 다 끝난 거 맞잖아.”
“그럼, 지금 우리는 뭐야?”
“……외전?”
“왜 외전인데?”
“외전은 보통 행복한 이야기들로 가득하잖아.”
어떻게든 변명을 쥐어짰다.
이런 내 노력을 가상하게 여긴 걸까?
리멘이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는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우리 교황님은 가만 보면 참 긍정적이셔. 고대 신들 다 해치웠다고 모든 일이 끝난 것 같아?”
“그럼 뭐가 또 남았나?”
“시우도 잘 알잖아. 평화란 게 원래 그래. 눈앞에 있다가도 갑자기 막 사라진다니까?”
에덴을 오랫동안 지켜보았던 리멘의 경험이 담긴 말이었다.
그녀가 무엇을 걱정하는지 안다.
언젠가는 이 평화를 무너뜨리려는 존재들이 다시 세상에 나타날 것이다.
하지만 나는 사실 크게 걱정하지 않는다.
“나타나는 족족 전부 박살 내 버리면 되지. 이제는 여신님도 옆에 계시는데 뭐가 걱정이야?”
“든든해.”
“내가 좀 국밥 같긴 해.”
“맞다. 국밥이나 한번 먹으러 가자.”
“안 그래도 우리 부모님 납골당 주변에 국밥 잘하는 집 있어. 부모님한테 인사드릴 겸 해서 다녀올까?”
“좋아!”
가볍게 잔을 들어 리멘과 맞부딪혔다.
째앵.
기분 좋은 소리가 울려 퍼졌고, 다시 한번 와인을 들이켰다.
그렇게 나와 리멘이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있을 때, 할머니가 우리에게 다가왔다.
리멘은 입가에 묻은 와인을 빠르게 닦아 낸 뒤, 할머니에게 고개를 숙였다.
“저, 뭐라고 불러 드려야…….”
그러자 할머니가 손을 내저으면서 답했다.
“아유, 저희 못난 손자 사람 만들어 주신 분이신데, 어렵게 생각하지 말아요. 그냥 동네 할머니처럼 편하게 생각해요.”
“아…….”
“그리고 이제 같은 가족인데 굳이 어렵게 대할 필요 있겠어요?”
“할머니, 리멘 괴롭히지 마.”
“손자며느리가 이뻐서 말이라도 붙이러 왔다, 이놈아.”
“부담도 주지 말고.”
하지만 부담스러워하는 건 오직 나뿐이었다.
손자며느리라는 말에 리멘이 해맑게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네, 할머니.”
“그래요. 그렇게 부르니까 얼마나 편하고 좋아? 그래도 이 늙은이가 죽기 전에 손자며느리 얼굴은 보게 되어서 참 기뻐요. 이참에 그냥 집에 들어와서 같이 살아요, 방도 넓은데. 아니면 시우랑 같은 방 쓰든가.”
“그래도 되나요?”
“아니, 두 사람은 왜 내 의견은…….”
리멘은 현재 신전에서 지내고 있다.
정확히는 신전의 일부를 자신의 방으로 개조해서 지내는 중.
리멘의 신전이었으니 리멘이 개조하는 것 가지고 뭐라 할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할머니는 리멘의 손을 부드럽게 잡으면서 미소를 지었다.
할머니가 저렇게 웃는 건 진짜 오랜만에 보는 것 같다.
“앞으로 우리 못난 손자 잘 부탁해요. 저놈이 보는 것처럼 철도 아직 덜 들었고, 맨날 쌈박질만 하러 다니고…… 이래저래 손이 많이 가요.”
“그 쌈박질을 가르쳐 준 게 리멘이라니까?”
“떽, 어른들 말씀하시는데 끼어드는 거 아니야.”
가만 보니 할머니도 얼큰하게 취기가 올라오셨다.
우리 집안 자체가 술은 잘 마시는 집안이라 취하기가 쉽지 않은데, 도대체 얼마나 마신 거야?
내가 할머니가 있던 자리를 슬쩍 쳐다보니 소주가 족히 열 병은 넘게 쌓여 있었다.
그 자리에 있던 라파르트 대주교는 애써 내 시선을 회피했다.
하여간에 못 말리는 사람들이라니까.
“시우 저놈, 어렸을 때 이야기 좀 해 줄까요?”
“듣고 싶어요, 할머니.”
“저놈이 글쎄, 어렸을 때 쫓아다니던 동네 여자아이가 있었는데…….”
“아, 할머니. 진짜 그런 이야기는 왜…….”
“생각해 보니 네가 고등학교 때도 좋아하지 않았니?”
“더 자세하게 듣고 싶어요.”
정신없고 소란스럽지만, 또 그만큼 행복한 시간이다.
이 시간 속에서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하고 있다는 것에 감사했다.
4.
파티가 끝난 후.
모두가 함께 집을 청소하니 뒷정리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우리 산책이나 좀 할까?
나는 뒷정리가 끝나자마자 이어진 리멘의 제안을 흔쾌히 받아들였다.
집에서 그리 멀지 않은 성지의 정원.
그중에서도 신목이 자리 잡고 있는 언덕을, 리멘의 손을 잡은 채로 천천히 걸어갔다.
결혼식 정리는 이미 모두 끝난 상태였다.
페어리들은 나무에 지어진 자신들의 집에 들어가 자고 있는지 조용했고, 신전에서 은은하게 흘러나오는 빛과 하늘의 달빛이 한데 어우러져 편안한 안식을 선사한다.
그 아름다움 속을 걷는다.
리멘과 함께.
“너무 예쁘다. 솔직히 에덴의 교황청보다 이곳이 더 예쁜 것 같아.”
리멘은 내 손을 꼭 잡은 채로 앞으로 나아갔다.
손 너머로 그녀의 따스한 체온이 느껴진다.
그도 그럴 것이 지금 내 옆에 있는 건 리멘의 본체였으니까.
단순히 형체를 빌려 이곳에 있는 게 아니라, 그녀가 직접 이 땅에 강림해 있는 거다.
원래라면 인과율이 난리를 칠 게 뻔했지만…… 인과율은 우리를 터치하지 않고 있다.
……사실, 당연하다.
왜냐고?
지금 내 옆에 있는 리멘이 그 인과율의 관리자 역할을 겸하고 있었으니까.
테라가 우리에게 선물을 주면서 같이 짐도 넘겨 버린 셈이다.
뭐, 그래도 좋다.
리멘과 함께할 수 있다면, 어찌 되어도 좋다.
“시우.”
열심히 걷고 있던 리멘은 내 앞을 막아 세우면서 미간을 좁혔다.
“무슨 생각을 그렇게 열심히 해? 할머니가 말씀해 주셨던 그 여자애 생각?”
“진짜 오해라니까.”
“흐으음, 수상한데.”
이런 경우 정공법이 있지.
나는 리멘의 양쪽 어깨를 부드럽게 잡은 후, 리멘의 눈을 마주하면서 말했다.
“리멘, 잘 들어.”
“응?”
“내 머릿속에는 지금 온통 네 생각뿐이야. 알겠어? 죽을 때까지 네 생각만 할 거야.”
이렇게 부끄러운 멘트를 날려 주면?
분명히 리멘은 부끄러워하면서 말을…….
“맹세해.”
“……응?”
“빨리. 아니다, 기다려 봐.”
리멘은 예상과 달리 기다렸다는 듯이 허공에서 종이 한 장을 소환했다.
그러더니 곧 그 종이를 나에게 건네주었다.
“이게 뭐야?”
“잘 읽어 봐.”
“을은 죽는 순간까지 갑을 사랑해야 하며, 수명이 다하고 나서도 갑과 함께 세상을 열심히 지켜야만 한다. 이 계약은 갑이 소멸하기 전까지 지속되며, 갑의 동의 없이는……. 아니, 이거 그냥 노예 계약 아니야?”
온갖 독소 조항으로 가득한 계약서.
사인을 하는 순간 평생, 아니 그냥 영원히 리멘에게 결속되는 계약서였다.
예전에 에덴으로 건너갔을 때나 지구로 돌아왔을 때 맺었던 계약과는 차원이 달랐다.
그때는 적어도 내가 받을 수 있는 게 있었는데…… 이 계약서는 일방적인 종속 계약인 것이다.
“안 되겠네. 문제가 참 많아 보이는 계약서야. 이런 계약서는…….”
“……싫어?”
“이런 계약서는 당장 사인을 해 버려야지. 어? 마지막 조항 마음에 드네.”
마지막 조항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을’이 모든 계약 조건을 수용하는 대신, ‘갑’은 ‘을’에게 변함없는 사랑을 약속한다.」
만족스럽군.
변함없는 사랑을 이렇게 문서화하니 아주 보기가 좋다.
나는 리멘이 건네주는 펜으로 곧장 계약서에 사인을 했고, 리멘은 기다렸다는 듯이 종이를 복사하여 나에게 건네주었다.
“시우.”
“응?”
“시연이한테 조카는 언제 만들어 줄까? 시연이가 엄청 기대하는 것 같더라구.”
“아니, 이야기가 왜 갑자기 거기로 가? 그리고…… 조카 만들어 줄 수 있는 거 맞아?”
“왜?”
“나는 아직 인간이고, 리멘은 신격이잖아. 그러니까…… 음, 그러니까.”
내 말에 리멘은 조심스럽게 나와 팔짱을 끼었다. 그리고 작게 소리를 내어 웃었다.
“그리스 로마 신화에서는 인간이랑 신도 잘만 결혼했잖아.”
“그건 어디까지나 신화…….”
“정말 신화에 불과할까?”
잠시 후, 리멘은 내 귓가에 대고 작게 속삭였다.
“그렇게 의심스러우면 오늘 한번 확인해 볼까? 난 이미 마음의 준비 끝났어.”
“마음의…… 준비?”
“지금이라도 집무실로 가서…….”
“어허, 신성한 성지에서 지금 무슨 생각 하는 거야?”
“여기 주인이 나라니까?”
정원 곳곳에 배치되어 있던 신성석에 슬그머니 달빛이 내려앉았다.
빛은 마치 별빛처럼, 우리가 걷는 이 길을 은하수처럼 장식한다.
나와 리멘은 서로의 손을 꼭 잡은 채로 그 은하수 위를 걸어갔다.
우리가 여태껏 함께 걸어왔던 길과, 앞으로 함께 걸을 길을 생각하며.
그 길 위에는 아름다운 꽃들이 만개해 있었다.
달콤한 꽃향기가 우리를 부드럽게 쓰다듬는다.
숨 막힐 정도로 아름다운
우리들의 길이었다.
우리 교황님 좀 말려 주세요 마칩니다
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