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lease stop our Pope RAW novel - Chapter (33)
33화
11. 몬스터 웨이브
1.
신성력이란 무엇인가.
말 그대로 신의 성스러운 힘이자 기적을 일구어 내는 힘이다.
얼핏 들으면 신이 내려 주는 축복 같은 느낌이긴 하지만(실제로 내 경우에는 리멘으로부터 직접 부여받았다), 리멘의 설명에 따르면 신성력은 신이 아닌 신도들에게 근원을 둔다고 하였다.
-정확히는 생명에 근원을 두는 힘이라고 생각하면 돼. 생명이란 무척이나 경이롭고 존귀한 것이라서, 셀 수 없이 많은 가능성을 지니고 있거든. 마력이 생명의 의지>라는 가능성에 맞닿아 있다면, 신성력은 생명의 믿음>이라는 가능성에 맞닿아 있는 힘이야.
처음 리멘으로부터 그 이야기를 들었을 때는 잘 이해가 가지 않았지만, 시간이 지나감에 따라 결국 그것이 무슨 뜻이었는지 깨달을 수 있었다.
언젠가 수행 사제들의 인도에 따라 교황청에 도착한 청년을 본 적이 있다.
북방 야만 부족 출신의 24살 청년.
사제들로부터 세례를 받은 적도 없고, 그렇다고 어려서부터 신앙 교육을 받은 적이 없던 청년이었다.
리멘이 어떤 신인지, 리멘이 추구하는 가치가 무엇인지, 또 교단의 교리가 어떤 것인지, 청년은 아무것도 알지 못했었다.
그러나 청년에게는 나조차도 감탄사를 내뱉을 정도의 순수한 신성력이 자리 잡고 있었다.
청년이 소년이었던 시절, 그는 리멘 교단의 수행 사제의 희생 덕으로 살아남을 수 있었다고 한다.
그리고 청년은 부족과 아무런 인연도 없던 이방인이 리멘에게 기도를 드리며 기꺼이 희생하는 모습을 본 순간부터 리멘이라는, 이름밖에 모르는 신을 가슴에 품었다고 한다.
살아남은 부족민들과 함께 북부를 떠도는 와중에도 청년은 그저 그 리멘이라는 신에게 부족의 안녕과 행복을 빌었다던가.
그것이 기도라는 것인지도 모르고 말이다.
그렇게 청년은 부족민들과 함께 북방을 유랑하다가, 또 다른 리멘 교단 수행 사제의 눈에 발견되어 교황청에 도착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것은 북방의 성인(聖人)이라고 불렸던 ‘레오 루멘’의 이야기기도 했다.
물론 그랬던 레오조차 지금은 본인의 방에서 정신없이 성서를 번역하는 신세지만 말이다.
“레오, 그 아이가 아주 특별한 경우였기도 해. 신성력의 가능성을 아주 강하게 타고난 아이였거든.”
“다시 한번 말하지만, 레오한테 ‘아이’라는 지칭은 나에게 너무 버거워.”
“시우. 지금 질투하는 거야?”
“그럴 리가.”
나는 내 앞 책상에 가볍게 걸터앉은 리멘을 바라보면서 한숨을 내쉬었다.
이곳은 리멘의 신전이기도 했고, 지난밤 사이에 리멘의 신도가 빠르게 증가해 준 덕분에 그녀가 다시 한번 현신할 수 있었다.
내가 급히 그녀에게 대화를 요청한 까닭은 당연히 어젯밤에 있었던 거대한 사건 때문이었다.
지구의 플레이어들에게 신성력이 해금된 사건.
현재 전 세계가 그것 때문에 시끄러운 상황이었다. 기독교, 이슬람교 등을 포함한 기존의 종교부터 시작해서, 생전 처음 듣는 이상한 신흥 종교 집단들까지.
곳곳에서 신성력을 개화했다는 플레이어들이 나오고 있는 상황이었다. 물론 그들이 정말로 신성력을 개화했는지는 모르겠지만.
리멘은 내 머리에 손을 부드럽게 올리면서 말했다.
“북방 민족의 주술사들이 신성력을 사용했다는 것 정도는 시우도 알고 있었잖아?”
“그래서 이해하기 힘들었던 거야.”
“믿음의 대상이 중요한 게 아니라, 대상을 믿는 그 믿음이 중요하다는 뜻이지. 시우는 잘 모르겠지만, 믿음을 얻지 못해서 소멸된 신격들도 꽤 많았다?”
“그 신격이라는 게 도대체 뭔데?”
“이미 시우가 두 눈으로 보고 있잖아!”
“그게 아니라…….”
“신격의 기원에 대해서는 말해 줄 수 없어.”
리멘이 저렇게 말한다는 것은 정말로 대답해 줄 수 없음을 의미한다.
어쩔 수 없지만 다음으로 넘어가야 할 듯싶다.
나는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끄덕인 다음, 다시 리멘을 바라보면서 물었다.
“그럼 여태까지 지구에 신성력이 없었던 이유는 뭐야?”
“그동안 지구의 인간들에게 마력이 허락되지 않았던 이유와 같아. 차원계가 생명이 지닌 가능성들 중 일부를 제한하고 있었으니까.”
“그럴 거면 5년 전에 마력이 나타나면서 같이 나타났어야 되는 거 아니야?”
내 질문에 리멘은 시무룩한 표정으로 미간을 곱게 찌푸리며 대답했다.
“그걸 알았으면 내가 진작에 시우한테 알려 주지 않았을까. 지구에서는 무능력한 신이라 미안.”
“……아니, 그렇게 말하면 내가 뭐가 돼.”
“그래도 어느 정도 예상은 할 수 있어. 원래 이렇게 되도록 예정되어 있었다거나, 아니면…….”
“아니면?”
“나와 시우 때문이거나.”
나는 리멘의 말에 다시 한번 크게 한숨을 뱉으며 말했다.
“또 인과율?”
“나는 시우에게 아낌없이 다 주고 싶지만…… 차원을 관장하는 인과율은 아무래도 그런 걸 싫어할 수밖에 없지?”
또 저 단어가 나올 줄은 예상은 했다만, 직접 그 가능성에 대해 이야기를 들으니 짜증이 치밀어 오르는 건 어쩔 수 없었다.
하지만 리멘은 그런 나를 가볍게 껴안아 주면서 말했다.
“그래도 이제 이 정도는 해 줄 수 있어.”
[당신의 여신이 축복을 내려 줍니다.] [90일 동안 교단이 보유한 모든 특성 레벨이 1레벨 증가합니다.]“꼭 이렇게 껴안으면서 축복해야 해?”
“나는 이게 좋아. 시우는 싫어?”
리멘의 질문에 대답 대신 그냥 가만히 있었다.
그렇게 꽤 한참 동안을 날 끌어안은 리멘은 곧 책상에서 내려오면서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나를 바라보면서 장난스럽게 물었다.
“이제 우리 교황님께서는 무엇을 하실 계획이신가요?”
“어쩌긴. 플레이어들 상대로도 열심히 전도해야지. 가만히 있다가는 인재들 다 뺏기게 생겼어. 안 그래도 지금 인력난이야.”
원래는 신성력이랑 세례 같은 것들을 통해서 여러 분야의 인재들을 끌어들여 볼 생각이었지만, 지금 그렇게 했다가는 늦는다.
이능관리부나 민수 씨를 통해서 들리는 소식에 의하면 이미 대형 길드 측에서 신성력에 잠재성을 지닌 플레이어들을 선점할 수 있는 방법을 구색 중이라고 한다.
그들이 신성력에 대한 정보를 가지고 있을 리가 없겠지만, 방심했다가는 다 빼앗길지도 모른다.
“맞다.”
안 그래도 리멘한테 요청하고 싶었던 게 있었는데, 이참에 해결해야겠다.
“혹시 에덴에서 추가로 인력을 충원할 수는 없을까?”
“음, 아직은?”
“그렇다면 어쩔 수 없지. 레오를 조금 더 갈아 넣으면 되니까, 뭐.”
“……시우?”
“괜찮아. 사람은 잠 좀 덜 잔다고 안 죽어.”
2.
효과적인 영업, 아니 포교의 기회는 사실 그리 멀리 있지는 않았다.
신성력의 등장은 하룻밤 사이에 일어난 사건의 일부분에 불과했다.
속보)평양시 부근을 점령 중이던 오크 부족 중 일부가 남하하기 시작. 구 휴전선 일대에 몬스터 웨이브 경보 2단계 발령.>
부산광역시 사하구 일대에 초대형 게이트 감지. 예상 게이트 등급은 A급.>
광주광역시 서구에서 비이상적인 마력 활동……>
전 세계가 신성력이라는 새로운 에너지에 당황하고 있던 것도 잠시, 전 세계 곳곳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이상 현상이 발생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한국 역시 그 이상 현상들로부터 자유롭지는 못했다.
전국적으로 보고된 이상 현상은 9개.
그 중 가만히 두었다가는 국가에 심각한 타격을 입힐 수 있는 수준의 이상 현상만 하더라도 3개였다.
당연히 상황이 거기까지 이르니 대한민국 전체에 비상이 걸렸다.
1년에 한 번 있을까 말까 하다는 각성자 소집령이 내려졌다는 것만으로도 현 사태의 위중함을 알아차릴 수 있는 부분이었다.
물론 정부의 소집 대상에는 나도 포함되어 있었다.
“그 돼지 새끼들이 구제역이라도 걸린 건가, 갑자기 내려온다는 게 참 웃기지 않습니까? 김 교황님.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안 간단 말이지. 여태 그곳에 처박혀 있던 놈들이, 하필이면 이런 시기에 내려온다는 게 참 공교롭습니다.”
“최 대표님도 나름 대형 길드 대표신데, 저희 쪽이 아니라 저쪽에 붙어 있는 게 그림이 예쁘지 않습니까?”
“허허. 양아치 새끼들이랑 붙어먹는 건 자존심이 상해서 말입니다. 그때 말씀 안 드렸나? 저희 길드는 전각련 소속 길드가 아닙니다.”
“그렇군요.”
나는 내 옆에서 신나게 이야기를 늘어놓는 도깨비 길드의 최서진 대표를 바라보면서 한숨을 내쉬었다.
이곳은 지난번에 한 번 온 적이 있던 이능관리부의 최상층 회의실.
회의실에는 나를 포함하여 총 11명의 인원들이 자리에 앉아 있었다.
도깨비 길드의 최 대표 역시 그 11명 중에 한 명.
최 대표는 날씨가 추워졌음에도 불구하고 하와이안 반팔 티셔츠를 입고 있었는데, 그는 본인의 역동적인 근육을 꿈틀거리면서 나에게 말했다.
“회의 끝나면 저랑 커피라도 한잔하시겠습니까? 따로 물어볼 것도 있고, 겸사겸사해서.”
“따로 물어볼 거?”
“제가 개인적으로 신성력에 대해 궁금한 것들이 많이 생겨서요.”
최 대표는 잠시 후, 내 귀에 입을 가져다 대고 조용히 속삭였다.
“지난번에 저를 제압하셨던 그 힘도 신성력 아니었습니까? 구로구 게이트에서 보여 주셨던 힘도 신성력인 듯한데, 아무래도 신성력은 김 교황님이 1타 강사인 듯하여…….”
“최 대표님.”
“예.”
“다음부터는 귓가에 대고 속삭이는 것 좀 자제해 주십쇼. 한 번 더 그러시면 땅속 구경 한 번 더 시켜 드리는 수가 있습니다.”
“이런. 부끄러우셨습니까? 의외로 취향이…… 하하, 얼굴 힘 푸시지요 김 교황님.”
최 대표는 그때 이후로 처음 만나는 건데 사람 참 이상하다.
누가 보면 함께 수많은 전장을 헤쳐 나간 전우인 줄 알겠다.
“최 대표. 회의실에 둘만 있나? 목소리 좀 낮추지?”
이런 우리 둘의 커뮤니케이션이 꽤나 불만스러웠던 건지, 콧수염을 기른 한 중년 남성이 우리를 향해서 말했다.
그 남성의 지적에 최 대표는 새끼손가락으로 귀를 후비면서 답했다.
“새로 사귄 친우와 즐겁게 이야기 좀 나누겠다는데, 혹시 불만이라도?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는 거지.”
“당신은 그게 문제야. 남을 배려하는 마음이라고는 눈곱만큼도 없어. 그러니까 사사건건 다른 길드랑 충돌하지.”
“이 대표님 요새 콧수염 트리트먼트라도 받으십니까? 묘하게 콧수염 결이 좋아지셨네.”
“크흡.”
나는 최 대표의 멘트에 도저히 웃음을 참을 수가 없었다.
확실히 미친 사람이다.
나 같은 경우에는 이레귤러로서 이능관리부의 소집 요청을 받고 온 건데, 다른 10명은 전부 서울에 연고를 둔 대형 길드의 대표들이다.
힘의 균형이 길드 쪽으로 상당히 넘어간 상황에서 저 사람들이야말로 핵심적인 권력층이라는 소린데, 그런 그들에게 대놓고 시비를 걸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본인이 전각련 소속 길드들이랑 사이가 안 좋다는 건 사실인 듯하다.
그렇지 않고서야.
“그나저나 이 대표님은 포경수술을 입에다가 하셨나 봅니다? 어째 하는 말마다 다 X까는 소리실까.”
저렇게 말할 리가 없지.
“너, 너 이 새끼!”
“지난번에 현장에서 그쪽 길드원들이 담당하던 부분 뚫려서 내 새끼들이 고생했다던데, 거기에 대한 사과가 먼저 아닌가? X까는 소리할 시간에 새끼 관리나 잘하십쇼.”
“오.”
할 말은 한다, 최카콜라, 뭐 그런 건가?
정정한다.
미친 사람이 아니라 제대로 미친 사람인 것 같다.
최 대표의 폭언에 이 대표라는 사람은 당장에라도 날뛸 기세였지만, 그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왜냐하면 그가 화를 내려던 때에 딱 맞춰서 회의실의 문이 열리며 누군가 들어왔기 때문이다.
“우리 공사다망하신 대표님들께서 즐겁게 이야기를 나누고 계시는 중이셨나 봅니다. 이 늙은이가 혹시 방해라도 한 겁니까?”
이능관리부의 수장인 유선호 장관.
인자한 미소를 지닌 노인의 등장에 이 대표는 그저 인상을 가득 찌푸릴 뿐, 조용히 자리에 앉았다.
최 대표는 그런 이 대표를 향해 씨익 웃더니, 유선호 장관을 향해 말했다.
“못 뵌 사이에 기력이 더 좋아지신 것 같습니다, 장관님.”
“근래에 지어 먹은 보약이 효과가 좀 있나 봅니다. 최 대표님이 원하신다면 회의 끝나고 보약 지은 곳을 알려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허허.”
“좋지요.”
최 대표도 유선호 장관에게만큼은 호의적인 스탠스였다.
그렇게 파국으로 치닫던 회의실 분위기를 빠르게 정리한 유 장관은 여전히 인자하게 웃으면서 자리에 앉았다.
그리고 곧 본인의 비서에게 가볍게 손짓을 하며 말했다.
“시간이 금이신 분들이니 빠르게 본론으로 들어가도록 하겠습니다.”
잠시 후, 회의실 한쪽에 마련되어 있던 스크린에 대한민국의 지도가 떠올랐다.
눈에 익은 한반도.
그러나 그 한반도의 허리 부근에는 거대한 붉은 점이 자리 잡고 있었는데, 유선호 장관은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
“정찰조의 보고에 따르면 남하 중인 오크의 숫자는 최소 10만. 이에 따라 몬스터 웨이브 경계 태세를 2단계에서 1단계로 격상하였습니다.”
……뭐?
10만?
우리 교황님 좀 말려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