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lease stop our Pope RAW novel - Chapter (39)
39화
5.
RPG 게임을 접해 봤던 사람이라면 ‘경험치 증가’라는 효과가 얼마나 희대의 사기 효과인지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일단 기본적으로 시스템에는 플레이어 레벨 같은 개념은 존재하지 않는다.
대신 능력치와 스킬에 각각 경험치가 존재하며, 레벨이 존재하는 개념이다.
나 역시 에덴에서 시스템을 통해 빠르게 성장할 수 있었던 덕에 시스템에 대한 이해도는 높다고 자부한다.
지구에 돌아와서 다른 플레이어들의 시스템도 나와 근본적으로 다르지 않다는 것도 확인했으니, 아마 이 효과를 확인한 다른 플레이어들의 반응도 나와 비슷할 것이다.
기본적으로 능력치와 스킬 레벨은 관련된 행위를 했을 때 경험치가 축적되는 형식이다.
이를테면 힘>이라는 능력치는 말 그대로 힘을 쓰는 일을 반복할수록 경험치가 축적되며, 그 경험치가 일정량을 달성하면 레벨이 오르는 개념.
다른 능력치나 스킬도 마찬가지다.
경험치 1에 해당하는 행위를 했으면 정직하게 1이 오르는 것이 정상인 것인데.
“경험치가 복사가 된다?”
저 계몽>이라는 교단 특성만 있다면 1이 1.3으로 둔갑하는 마술이 펼쳐진다.
비록 입교자에 한해 180일만 적용되는 특성이라고 할지라도, 막 각성한 플레이어들에게는 진짜 말도 안 되는 특전인 것이다.
대부분의 레벨이 시스템의 한계에 도달해 있는 나에게는 별로 도움이 되지는 않는 특성이지만, 앞으로 우리 교단에서 성장해 나갈 플레이어들에게는 정말 기적에 가까운 특성이었다.
한마디로 어떻게든 손에 넣어야 하는 특성.
“……문제는 가격인데.”
에덴에서 레오를 데려오면서 지불했던 신성 점수가 2,500점이다.
그에 비해 이 계몽> 특성은 무려 4배의 가격인 1만 신성 점수나 요구하고 있었다.
아까 전에 확인한 내 잔여 점수는 고작 1,700점.
저 머스트 해브 특성을 구매하기 위해서는 무려 8,300점이나 부족한 상황이었다.
“성하. 혹, 금전적인 고민을 하고 계시는 겁니까. 그런 것이라면 괜찮은 방법을 알고 있습니다.”
머릿속에 있는 말이 무의식적으로 흘러나온 것 같은데, 그 말을 들은 레오가 눈을 빛내면서 나에게 말했다.
나는 대충 손을 내저으려다가 곧 레오의 말에서 위화감을 느꼈다.
지구에 온지 1달도 안 된 녀석이 어떻게 돈을 벌 방법을 알고 있다는 걸까.
“괜찮은 방법?”
“그렇습니다.”
자신있게 말한 레오는 다시 한번 나에게 스마트폰을 건네주며 말을 이어 갔다.
“이 영상입니다. 제가 가만히 영상을 보니, 거래소라는 곳에서 헌터 코인이라는 화폐를 구매하면 돈이 복사가 된다고 하더군요. 참 신기하지 않습니까? 숨만 쉬어도 부자가 될 수 있다니, 지구는 정말 굉장한 곳인 것 같습니다.”
레오의 스마트폰에는 아주 자극적인 제목의 영상이 재생되는 중이었다.
100만 원으로 10억 만들기, 헌터 코인? 이거 존버하면 무조건 떡상합니다. 지금이 저점입니다.>
“레오야.”
“예, 성하.”
“그냥 보던 거 계속 혼자 보세요. 아시겠죠?”
“예, 알겠습니다.”
괜히 관심을 가져 준 내 잘못이지.
나는 다시 스마트폰에 시선을 집중하는 레오를 바라보며 한숨을 내쉰 다음, 오른손으로 이마를 짚으면서 다시 눈앞의 메시지 창으로 시선을 돌렸다.
[신성 점수 보유량: 1,700점] [교세 확장 – 대비> 퀘스트를 완료하기 전까지 신성 점수 획득량이 줄어듭니다.]신도가 늘어나면서 신성 점수도 폭발적으로 증가할 줄 알았는데, 막상 까 보니 그게 아니었다.
신도 수가 10만을 돌파하기 전까지는 빠르게 쌓이던 신성 점수가 정체 현상을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메시지를 확인해 보면 메인 퀘스트를 완료하기 전까지는 계속 이런 식일 것 같은데……
도대체 8,300점을 어디서 모으냔 말이지.
차라리 몰랐더라면 지금처럼 아쉽지도 않았을 텐데, 막상 저 말도 안 되는 특성을 보니까 욕심이 생긴다.
그렇게 내가 메시지 창을 한참 동안 들여다보면서 고민을 하고 있을 때였다.
[서브 퀘스트가 발생합니다.] [작은 구원]●종류: 서브 – DLC
●설명: 당신의 교단은 지구에서 빠른 속도로 세를 확장하고 있습니다. 아직까지 온전한 신앙의 기틀을 마련하진 못했으나, 당신이 신의 뜻에 따라 행한 기적은 누군가에게는 간절한 소망으로 자라났을 겁니다. 그리고 그 소망을 품은 자들 중 누군가에게 선지자>로서의 가능성이 피어올랐습니다.
교황이시여. 신의 뜻을 전하는 선지자>는 신의 품으로 들어오기 전까지 불우한 운명 속에서 살아갑니다. 지구에 등장한 최초의 선지자를 찾아 교단에 귀의시킬지 말지를 결정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첫 번째 사도인 당신의 몫입니다.
●완료 조건
-최초의 선지자 ???>를 찾아 교단에 입교시키십시오.
●보상: 교단 특성 계몽 Lv. 1>, 신성 점수 3,000점
*본 퀘스트는 반드시 수행할 필요가 없는 퀘스트입니다.
**제한 시간: 3일
내가 잊고 있었다.
이 시스템이라는 놈이 어떤 방식으로 사용자를 조련하는지를 말이다.
나에게 필요한 것을 일부러 부족하게 만들고, 서브 퀘스트라는 명목으로 유도시키는 것.
안 하면 손해를 볼 수밖에 없는 구조를 만들어 둔 채로 그것을 서브 퀘스트>라고 말하는 악랄함.
수행하지 않는다고 해서 메인 퀘스트를 진행하지 못하는 건 아니지만, 분명히 지장이 간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그리 길게 고민하지는 않았다.
“수락한다.”
[서브 퀘스트 작은 구원>을 수락하셨습니다.]못 먹어도 고라고, 저 말도 안 되는 특성을 무료로 얻을 수 있는 기회를 놓칠 수야 있나.
6.
사실, 선지자>라는 단어는 나에게 있어서 그렇게 어색한 개념은 아니었다.
선지자(先知者).
말 그대로 먼저 깨우친 자, 이런 느낌인 건데 쉽게 표현하자면 신성력이라는 가능성을 아주 강하게 타고난 존재라고 생각하면 된다.
에덴에서는 선지자들을 주로 성녀>, 성자>라는 단어로 부르곤 했었다.
북방의 성자라고 불렸던 레오 역시 리멘의 선지자 중 한 명이었다.
그러니까 결국 이거다.
“지구에서 성녀나 성자를 찾아야 한다는 거잖아?”
『응, 그렇지.』
“어디에 있는지 알려 줘.”
『그게 안 될 거라는 건 누구보다 시우가 더 잘 알고 있을 거잖아.』
“……그냥 답답해서 해 본 말이야.”
나는 리멘의 목소리에 크게 한숨을 내쉴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런 나를 리멘이 사근사근한 목소리로 위로해 주었다.
『신은 그저 운명을 건네는 존재일 뿐, 운명을 결정하는 것은 선지자들의 몫이야. 내가 선지자들의 운명의 개입하는 순간, 그들은 더 이상 선지자가 아니게 돼. 섭섭해하거나 실망하지 않았으면 해, 시우.』
그런 이유에서 교황청에서는 숨어 있는 선지자들을 찾아내기 위해 일부러 사제들을 대륙의 각 지역으로 파견했었다.
리멘이 선지자들의 위치를 알려 주었다면 그럴 필요도 없었겠지만, 그러지 못한 데에는 전부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나 역시 그 사실을 알고 있었음에도 너무 아쉬워서 징징거려 본 거다.
선지자가 대한민국에 나타났으리라는 보장은 없었기 때문에 막막하기도 했고.
『시우. 실망 많이 했어?』
“아냐. 단지 좀 착잡하네.”
지구는 에덴과 비교했을 때 압도적인 인구를 자랑한다.
그뿐만이 아니다.
사제들을 대륙 곳곳에 파견했을 정도로 교세가 컸던 에덴에서와는 다르게, 현재로서는 사제를 파견할 여력조차 없다.
이건 마치 모래사장에서 바늘을 찾는 기분이었다.
하지만 언제나 그렇듯.
『하지만 방법이 없는 건 아니야.』
그녀는 나에게 친절을 베푼다.
[주신좌 리멘>이 당신에게 새로운 직분 청지기>를 부여합니다.] [인과율에 따라 해당 직분은 지구의 시간으로 3일 동안 유지됩니다. 해당 기간 동안 당신은 ‘최초의 선지자’의 기도를 들을 수 있게 됩니다.]『특별히 이번만이야.』
“운명에 개입하면 안 된다면서?”
『운명에 개입하는 건 내가 아니라 시우가 할 거잖아. 그러면 상관없지.』
“이럴 거면 에덴에서도…….”
『거기에서는 그럴 이유가 없었잖아? 내가 굳이 알려 주지 않아도 알아서 잘 찾더라구. 그 모습이 얼마나 기특했는지! 음, 지구식 표현으로는 자연스러운 만남을 추구한다, 랄까?』
레오는 그렇다고 쳐도, 도대체 리멘은 저런 말투를 어디서 배워 오는 걸까?
인욱이가 저런 말투를 썼다면 당장 응징을 해 줬겠지만, 리멘은 봐주도록 하자.
나는 미간을 살짝 찌푸린 다음, 나지막한 목소리로 물었다.
“선지자의 기도는 어떤 식으로 들리는 건데?”
『그냥 귓가에 누군가 속삭이는 것처럼 들릴 거야. 만약에 선지자의 운명을 지닌 아이가 기도를 하지 않는다면, 들리지 않을 수도 있어. 시우도 다른 사람의 기도를 꽤 들어 봤지 않아?』
그렇긴 하다. 지난번에 구로구 게이트에서 민수 씨의 기도를 들었던 것처럼, 에덴에서도 누군가의 기도가 들렸던 적이 있기는 하다.
하지만 그 상황이란 지금 상황은 근본적으로 달랐다.
“그건 어디까지나 교단의 품에 들어온 사람들의 기도였고, 귀의하지 않은 선지자들의 기도는 처음이잖아. 그리고 만약에 선지자가 더 이상 기도를 안 한다면 어떻게 되는 거야?”
『어떻게 되기는. 그러면 못 듣는 거지!』
그걸 굳이 그렇게 해맑게 말할 필요가 있을까?
3일의 제한 시간, 그 안에 최초의 선지자가 기도를 해야만 내가 들을 수 있다라……
이거, 최악의 경우에는 퀘스트를 실패할 수도 있다고 생각해야 할 것 같다.
그렇게 내가 머릿속으로 이런저런 가능성을 따지고 있을 때쯤, 리멘이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시우와 이야기를 더 나누고 싶은데, 이쪽 세계에도 일이 좀 있어서 더는 힘들겠다.』
“무슨 일?”
『그렇게 큰일은 아니니까 걱정하지 마. 아, 맞다. 시우한테 이야기 안 해 준 게 있다.』
리멘은 잠시 뜸을 들이더니, 곧 한껏 차분해진 목소리로 말을 이어 갔다.
『선지자들은 신의 품으로 귀의하기 전까지 불행한 삶을 살아가야만 해. 그것은 그들이 지닌 고결한 영혼이 인과율을 무너뜨리기 때문이야.』
“가혹하네.”
단지 선지자로 태어났다는 것만으로도 불행 속에서 살아가야 한다니.
그건 축복이 아니라 차라리 저주에 가까운 운명일 것이다.
『그러니까 그 불쌍한 아이를 시우가 꼭 구해 줘. 알겠지?』
내가 그녀의 말에 뭐라고 대답하기도 전.
[신탁이 종료됩니다.]그녀와의 연결이 해제되었고, 어느새 신전 안에는 적막이 감돌았다.
“하아.”
나는 한숨을 내쉬면서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럼 이제부터 가만히 최초의 선지자가 기도해 주기를 기다리면 되는 건가.
만약 그 친구가 3일 내에 기도를 안 하면 어떻게 하지.
게다가 대한민국이 아니라 아프리카 같은 오지에 있다면, 그것도 그것대로 골치인데.
그렇게 내가 신전 밖으로 걸어 나가면서 고민에 잠겨 있을 때였다.
【……주세요.】
【제발…… 계시다면……】
갑자기 귓가에 난생처음 듣는 목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당황했지만 나는 곧 그것이 ‘최초의 선지자’의 기도라는 것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방금 전까지 했던 모든 고민이 한순간에 녹아내리는 기분이었다.
그러나 나는 곧 귓가에 들려오는 그 목소리가 어딘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저는 죽어도 좋으니까 제발.】
【……우리 불쌍한 아빠, 제발 아빠 좀 살려 주세요…… 제발요.】
【그리고……】
그건 단순한 기도>가 아니었다.
경건함이라고는 도저히 찾아볼 수 없는, 절규에 가까운 목소리.
변성기조차 지나지 않은 어린아이의 목소리가 자꾸만 내 머릿속을 파고든다.
【리멘님이 정말로 이 세상에 계시다면…… 저희 아빠를 이렇게 만든 사람들이 반드시 죗값을 치르게 해 주세요..】
차라리 저주에 가까운 그 목소리에 나는 주먹을 꽉 움켜쥐었다. 그리고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레오. 갈 곳이 있다.”
내 부름에 한쪽에서 대기하고 있던 레오가 조용히 대답한다.
“바로 모시겠습니다.”
시간은 밤 11시. 외출하기에는 다소 늦은 시간이었음에도 레오는 이유를 묻지 않았다.
내 얼굴을 잠시 살핀 다음, 그저 고개를 묵묵히 끄덕일 뿐.
나는 의자 위에 잠시 올려두었던 검은색 장갑을 손에 끼면서 말했다.
“성자를 데리러 간다.”
우리 교황님 좀 말려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