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lease stop our Pope RAW novel - Chapter (4)
4화
5.
지구가 분명 이상한 방향으로 바뀌긴 했지만, 그래도 내가 그토록 기대했던 귀환이었고, 그토록 원했던 재회였다.
앞으로 어떻게 할지 대충 방향성만 잡아 둔 다음에는 아무 생각 없이 가족들과 시간을 보냈다.
낮잠에서 일어나서 다시 울먹이던 시연이를 달랬으며, 할머니한테 전화를 걸어 손자가 돌아왔다고 말씀드렸다.
할머니 이야기가 나와서 말인데, 나는 어제 일어났던 일들 중에서 할머니의 반응이 가장 당황스러웠다.
-썩을 놈. 돌아왔으면 돌아오자마자 할미한테 연락했어야지.
마치 내가 죽은 게 아니라 잠시 멀리 다녀온 것처럼 여기시는 말투였다.
그게 너무 의아해서 인욱이에게 물어봤는데, 인욱이 말로는 할머니가 종종 내 꿈을 꾸셨다고 했다.
꿈속에서 언젠가는 끝을 알 수 없는 지평선을 묵묵히 걸어가는 나를 목격하셨다고 했고, 또 가끔은 내가 날개 달린 괴물들이랑 싸우는 꿈도 꾸셨다고 했다.
그래서 내가 분명히 살아서 돌아올 거라고 믿으셨다고 한다.
다른 사람이었다면 그저 꿈으로 치부했겠지만, 우리 할머니가 그런 쪽으로는 꽤 예민하신 편이다.
소위 말하는 신기라고 해야 하나?
아무래도 나중에 리멘이랑 연락이 닿으면 한번 물어보긴 해야겠다.
할머니가 말씀해 주신 꿈 이야기들은 전부 내가 에덴에서 겪었던 일이라서 말이다.
아무튼.
할머니는 돌아올 놈이 돌아왔을 뿐이라면서, 여행을 마저 한 다음 귀국하신다고 하셨다.
그 뒤로 나는 시연이랑 인욱이와 함께 야식으로 치킨까지 시켜 먹은 다음, 귀환 첫날을 아주 행복하게 마무리 지을 수 있었다.
그리고 다음 날 아침인 지금.
“오빠! 오늘은 이따가 떡볶이 시켜 먹자. 알았지?”
“약속.”
“좋아! 내가 떡볶이 엄청 잘하는 집 알고 있으니까 이따가 나가서 먹는 거다? 그럼 나 다녀올게!”
“다녀와.”
나는 등교하는 시연이의 뒷모습을 보면서 미소를 지었다.
하루 종일 울먹거렸던 시연이는 어제보다는 확실히 나아졌다.
귀여운 우리 막둥이.
원래는 오늘 학교까지 데려다주려고 그랬는데, 본인이 한사코 거부했다.
학교 정도는 혼자 갈 수 있다나 뭐라나. 그래서 일단 이따가 학원까지 다녀온 다음, 맛있는 걸 사 주기로 약속했다.
물론 인욱이 돈으로 말이지.
“교육이 오늘부터라고 그랬나?”
내 옆에서 시연이의 등교를 지켜보고 있던 인욱이가 물었다.
“그렇다던데? 이따가 10시에 나 데리러 온대.”
“형이 어제 말했던 계획을 위해서라면…… 분류부터 다시 받아야 할 것 같은데…… 형 근데 진짜 시스템은 있어?”
“진짜 있다니까.”
진짜 억울해 죽겠네.
나는 그렇게 말하며 슬쩍 눈앞에 내가 10년 동안이나 함께했던 시스템의 인터페이스를 띄웠다.
『김시우』
●소속 종교: 리멘교
●칭호: 검은 교황 외 32개
-세부 능력 일람-
*현재 동기화 진행 중
*차원계: 에덴>에서의 데이터가 1차 동기화 중입니다. 예상 소요 시간: 알 수 없음
*동기화 시간은 예상 못 한 변수를 통해 단축될 수 있습니다.
원래는 내가 보유한 스킬부터 시작해서 이런저런 특성들도 표기되어 있는데, 어쩐 이유에서인지 아직까지 제대로 표기는 안 되고 있다.
하지만 이렇게 눈앞에 메시지 창이 떠오르고 있다는 것 자체로도 내 시스템은 구동되고 있다는 뜻이다.
이걸 인욱이 녀석에게 보여 줄 수도 없는 노릇이고.
내가 꽤 억울한 표정처럼 느껴졌던 걸까?
나를 바라보고 있던 인욱이가 멋쩍다는 듯이 머리를 긁으면서 말을 이어 갔다.
“플레이어 전용 컨텐츠를 송출하려면 국가 공인이 필요해서 그러는 거야. 형 말을 못 믿는다는 게 아니라, 일단 그 마력 검출기가 형한테서 마력을 검출하지 못했잖아?”
“마력이 그렇게나 중요해?”
“당연히 중요하지. 플레이어를 플레이어답게 만들어 주는 게 딱 두 가지거든. 마력과 시스템. 대부분의 귀환자들도 마찬가지라고 들었어.”
“누가 그랬냐.”
“나랑 친한 플레이어들한테 들었지. 이래 보여도 나 그쪽으로 꽤 인맥 넓다? 어제 형이 봤던 영상 주인공이랑도 꽤 친해. 형은 잘 모르겠지만 그 형이 대한민국 플레이어 100위 권 안쪽으로 드는 사람이거든. S급을 넘보는 A급 헌터기도 하고.”
어제 인욱이가 편집하고 있던 영상 속 주인공을 얘기하는 모양이다.
화면 속에서 오크 같은 몬스터들을 잡는 법을 설명해 주던 남자 말이다.
나는 인욱이의 말을 가만히 듣다가.
“X밥이던…….”
“뭐?”
“아, 실수.”
본의 아니게 진심을 말해 버렸다.
아니, 내가 봤을 땐 진짜 아무것도 아니었다니까? 우리 교단의 말단 성기사보다 검술이 구린 것 같더라.
하지만 내 말에 인욱이의 표정이 빠르게 굳는 걸 보니 생각보다 꽤 친한 사이인 것 같긴 하다.
이럴 때는 대화 화제를 빠르게 바꾸는 게 정답이지.
“어제 보니까 그분 구독자 되게 많으시던데, 형 나중에 시간 되면 소개해 줄 수 있을까?”
“어제 했던 이야기가 농담이 아니라 진짜 진담이었던 거야?”
“정확히 89일 남았다.”
“뭐가?”
“제로부터 시작하는 지구 생활.”
내가 어젯밤에 인욱이랑 나눴던 이야기는 바로 포교에 관한 거였다.
지구에서 신도를 확보하는 방식은 분명 에덴이랑 다를 수밖에 없다.
게다가 시스템이 규정하는 신도>의 범위가 어디까지인지도 모르겠고 말이다.
하지만 딱 한 가지만큼은 확신할 수 있다.
교세를 늘리기 위해서는 가장 먼저 유명세가 필요하다.
종교 자체가 유명해지든지, 아니면 그 종교에 속한 누군가가 유명해지든지.
에덴에서의 리멘 교단은 실제로 그 후자의 방식으로 유명해졌다.
리멘의 이름을 앞세워서 마족들이랑 마수들을 싸그리 죽이고 다니니까 알아서 교세가 늘더라.
그리고 그건 이 지구에서도 크게 다를 것 같지는 않다.
게다가 교세 확장에 유리한 대중매체라고는 포교꾼 정도가 전부였던 에덴과는 달리, 지구에는 아주 다양한 대중매체들이 존재한다.
방송, 신문 등등.
그 수많은 대중매체 가운데서 내가 관심을 가진 건 바로.
“형 믿고 소개 한번 시켜 줘라. 그 사람도 손해 보는 거 아니라니까?”
“……진짜 미튜브하게?”
“어허. 미튜브를 하는 게 아니라, 온라인 예배를 미튜브로 드리겠다는 거 아니야.”
미튜브였다.
때마침 인욱이도 미튜브 편집자로 일하고 있다. 거기에 능력까지 인정받는다고 한다.
그런 마당에 쉬운 길 놔두고 굳이 먼 길 돌아갈 필요 있겠어?
나는 씨익 웃으면서 인욱이를 쳐다보았고, 인욱이는 그런 나를 바라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더니 곧 고개를 작게 끄덕이며 말했다.
“……일단, 형 플레이어 인증부터 받고 하자. 내가 귀환자 등급은 잘 모르겠는데, 확실한 건 형 등급으로는 자격 발급 안 될 것…….”
“내가 등급 다시 분류받으면 되냐?”
“어떻게?”
“어떻게긴.”
화끈하게 재분류받으면 되지 뭐.
안 그래?
6.
“현재 이곳은 작전 지역이므로 교육생들은 현 위치에서 잠시 대기해 주시길 바랍니다.”
“현장 책임자가 오기 전까지 아직 여유가 있으니, 교육생들끼리 인사를 나누어도 좋습니다. 1주일 동안 함께할 동료들이라고 생각하시면 편할 것 같습니다.”
나는 내 앞에서 열심히 정보를 전달하고 있는 이능관리부의 직원들을 바라보면서 심드렁하게 고개를 끄덕거렸다.
오전 10시에 맞춰서 나를 데리러 온 이능관리부 직원의 차를 타고 도착한 이곳.
귀환자 적응 프로그램이라고 해서 솔직히 학교 같은 곳에서 따분하게 교육을 받을 줄 알았다.
그러나 내가 도착한 곳은 다름이 아닌 와이번이 날아다니고 있는 여의도 한강공원이었다.
내가 어제 에덴에서 막 건너와서 마주했던 첫 장소 말이다.
물론 상황은 어제만큼 혼란스럽지는 않은 듯했다.
군복을 입고 있는 군인들이 분주하게 돌아다니고 있었으며, 또 검이나 창 등의 무기를 들고 다니는 사람들도 눈에 들어왔다.
나에게 있어서 여전히 어색한 풍경이긴 했지만, 적어도 어제와는 다르게 이 상황이 통제되고 있다는 느낌은 들었다.
사람들이 당황하지 않고 움직이는 모습들을 보아하니, 확실히 그들이 이런 상황에 익숙해져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서울 한복판에 와이번이 나타나는 게 당연한 세상이라…….
세상 참 요지경이다.
“커흠. 반갑소.”
내가 아무 말 없이 사람 구경을 하고 있을 때, 한 남자가 쭈뼛거리면서 나에게 말을 걸어왔다.
나는 그 말에 슬쩍 고개를 돌려서 인사의 주인공을 바라보았다.
그러자 그곳에는 무협 드라마에서나 튀어나올 법한 검객 한 명이 서 있었다.
무협 드라마 속 엑스트라를 연상시키는, 진짜 검객 말이다.
“그쪽 분께서도 혹 다른 세계에서 귀환하신 거요? 이렇게 인연이 닿게 되니 정말 반갑소. 통성명이나 합시다. 본인은 남궁가의 속가제자 오현택이오. 앞으로 1주 동안 잘 부탁드리겠소.”
나는 지끈거리기 시작한 머리를 손가락으로 짓누르면서 애써 미소를 지었다.
……그래, 꼭 판타지 세계 귀환자만 있으리란 법은 없지.
판타지 세계관을 차용한 세계도 있는 마당에 무협 세계관이라고는 왜 없겠어?
이미 충분히 맛이 가 버린 지구다.
여기서 다른 맛을 섞는다고 해서 정상으로 되돌아갈 순 없는 법이다. 그냥 겸허히 이 상황을 받아들이자.
“반갑습니다, 김시우라고 합니다.”
“김 대협이라고 불러도 되겠소?”
“편하신 대로.”
“감사하오. 김 대협!”
그는 그렇게 말하면서 포권 자세와 함께 다시 한번 고개를 숙였다.
미쳐 버리겠다.
이걸 도대체 어떻게 반응해 줘야 할까?
“무려 20년을 저쪽 세계에서 있던 바람에 지구에 적응하기가 여간 쉽지 않구려. 내가 지냈던 세계는…….”
“무림?”
“오, 바로 맞혔소. 무림에 대해서 아시오? 하하! 중원이라고 불렸던 세계였는데…….”
그 뒤로 그는 한참 동안이나 이야기를 주절거린다.
무림에서 위명이 어쨌느니, 인정받는 협객이었다느니.
참고로 그 역시 레귤러 등급으로 분류 받았다고 한다. 차원이동 과정에서 내공이 아예 소멸되었다는 이유에서였다.
그렇게 본인의 이야기를 모두 끝낸 오현택 씨는 가슴을 두드리면서 나에게 말했다.
“하하! 하지만 내공이 무인의 전부는 아닌 법이지. 김 대협! 걱정하지 마시오. 비록 내공은 전부 소멸했으나, 내 외공은 아주 굳건하게 단련해 왔으니 말이오. 지구에 나타난 괴물쯤이야 손쉽게 베어 낼 수 있을 거요.”
“그러시군요.”
“그런데 혹시 김 대협은 귀환하기 전에 어떤 일을…….”
“아 저요? 교황이었습니다.”
나는 그의 말에 건성으로 대답하면서 다시 한번 주위를 둘러보았다.
귀환자로 보이는 사람은 나와 이 오현택 씨까지 포함해서 총 다섯 명.
힘을 잃은 귀환자들만 일부러 모아 둔 모양인지, 위협적으로 보이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확실히 이능관리부가 본인들의 마력 검출기에 자신감을 가질 만하다.
나 빼고 나머지는 제대로 걸러낸 것 같으니 말이다.
“자자, 집중해 주세요.”
그렇게 내가 오현택 씨와 잠시 이야기하며 탐색하고 있는 사이, 어제 나를 조사했던 이능관리부의 동식 씨가 우리 앞에 나타났다.
그는 빠르게 우리를 한곳으로 모으더니 곧 은은한 미소와 함께 이야기를 시작했다.
“1주일 동안 여러분들의 적응 프로그램을 담당하게 된 이능관리부의 김동식이라고 합니다. 원래대로라면 이능관리부의 건물에서 교육이 진행되지만, 흔치 않은 기회가 생겨서 말이죠.”
동식 씨는 그렇게 말하며 손가락으로 한강 쪽을 가리켰다.
반투명한 막 뒤로 보라색의 아지랑이가 피어오르고 있었으며, 하늘에는 어제 내가 목격했었던 검은색의 구멍이 자리 잡은 상태였다.
물론 어제에 비하면 그 구멍이 작아진 것 같긴 하다.
“여러분께서 현재 보고 계시는 현상은 카오스게이트>라고 불리는 이상 현상입니다. 마수종으로 분류되는 몬스터들이 주로 출현하며, 게이트의 크기에 따라서 초대형, 대형, 중형, 소형으로 구분합니다. 현재 여러분들이 보고 계시는 이 C-42 게이트의 경우에는 중형으로 분류된 게이트며, 현재는 소강상태에 접어든…….”
귀환자들이 동식 씨의 친절한 설명을 가만히 듣고 있을 때였다.
우우우우우웅!
“……게 아니었나?”
동식 씨의 당황하는 표정과 함께, 곧 눈앞에 갑작스럽게 새로운 메시지 창들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차원계: 지구>의 인과율이 당신이 지닌 힘을 제대로 파악하기를 원합니다.] [돌발 퀘스트가 발생합니다!] [측정]종류: 돌발
설명: 본 시스템은 당신의 힘을 수치화할 만한 단서가 부족하다고 판단하였습니다. 따라서 본 시스템은 인과율에 의거하여 데이터 수집을 진행합니다. 카오스게이트의 폭주를 막아 내십시오.
완료 조건: 눈앞의 카오스게이트를 봉쇄할 것
보상: ???
그리고 잠시 후.
콰우우우우우우!
끼에에에엑-!
잠잠했던 하늘에 와이번들의 괴성이 울려 퍼지기 시작했고.
에에에에에에엥!
요란한 사이렌 소리와 함께 군인들을 비롯한 전투 병력이 빠른 속도로 전열을 가다듬기 시작했다.
“대공망 구성!”
“원거리 공격이 가능한 플레이어들은 결계를 벗어나려는 와이번을 최우선으로 요격해 주십시오!”
극도로 혼란스러운 상황.
끼에에에에엑-!
방어 병력이 재빠르게 대공망을 형성했음에도 불구하고 와이번 한 마리가 대공망을 뚫어 버렸고, 곧 그 와이번은 일체의 고민도 없이 우리 쪽을 향해 날아오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본 동식 씨가 몸을 돌리면서 우리를 향해 소리쳤다.
“도망…….”
나는 일체의 고민도 없이 도망가려는 동식 씨의 앞을 가로막으며 물었다.
“동식 씨. 뭐 하나만 물어봐도 될까요?”
“이, 이 상황에요?”
“혹시 제가 등급이 잘못 분류된 것 같은데, 재분류 심사를 받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그걸 도대체 왜 지금 물어보려는…….”
동식 씨가 얼빠진 표정을 짓고 있는 사이, 어느새 와이번이 아가리를 벌린 채로 날아들었고, 나는 그 와이번의 대가리를 오른손 주먹으로 가볍게 후려쳤다.
그러자.
끼에에에-!
콰아아아아앙!
와이번의 단말마 비명 소리와 함께 녀석의 대가리가 아스팔트 바닥을 뚫고 들어갔고, 그와 동시에 녀석의 거대한 몸이 축 늘어졌다.
“흐음.”
나는 미동조차 하지 않는 와이번의 목에 슬쩍 걸터앉으면서 동식 씨에게 말했다.
“그러니까, 제가 재분류 심사를 받고 싶어서요. 아무래도 등급이 잘못 판정된 것 같거든요?”
“……규정상 재분류 심사는…… 아주 특별한 케이스가…… 아니면…….”
“좋습니다.”
“……예?”
특별한 케이스라.
뭐, 그렇게 어려운 거 아니지.
나는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지금부터 제가 아낌없이 보여 드릴 테니까, 특별한 케이스인지 아닌지는 알아서 판단하십쇼.”
우리 교황님 좀 말려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