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lease stop our Pope RAW novel - Chapter (40)
40화
13. 작은 구원
1.
처음에는 내가 리멘으로부터 능력을 부여받자마자 우연히 기도가 들렸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나는 그것이 우연이 아니었다는 것을 금세 깨달을 수 있었다.
【제발 우리 아빠를 살려 주세요. 차라리 저 같은 놈을 대신 데려가시고……】
눈을 감으면 한 소년의 모습이 흐릿하게 보인다.
병원의 응급실로 보이는 곳, 병상에 누워 있는 한 남자의 손을 부여잡고 간절히 기도하는 소년.
우리 시연이의 또래쯤 되어 보이는 그 소년은, 그저 내가 직분을 부여받는 타이밍에 맞춰 ‘우연히’ 기도를 했던 게 아니다.
【우리 아빠…… 우리 아빠에게도 기적을……】
소년은 훨씬 전부터 기도를 해 왔던 것이다.
그리고 소년의 그 간절한 기도가 이제야 내 귀에 들어온 것이고.
나는 눈살을 찌푸린 다음, 조용히 창문 밖을 바라보았다.
투둑-.
옅은 빗줄기가 창문을 두드리는 중이었다.
“원래는 레오랑 둘이 뛰어갈 생각이었는데, 덕분에 편하게 갑니다. 고맙습니다, 김 팀장님.”
“하마터면 내일 아침 ‘서울의 밤을 위협하는 괴생물체 출현?’ 같은 자극적인 헤드라인의 기사가 나올 뻔했습니다.”
“그것도 그것대로 재밌지 않을까요?”
“……요새 제가 머리가 빠져서 병원에 가 보니, 스트레스성 탈모라고 하더군요. 하하…….”
사실상 이제 내 전담 비서처럼 느껴지는 우리 김동식 팀장님은 내가 집에 들어가야지만 퇴근을 한다고 했다.
당연히 내가 늦게까지 신전에 있었기 때문에 퇴근을 못 했고, 밤길을 나서려던 우리를 목적지까지 데려다주기로 한 것이다.
만약 김 팀장이 없었어도 우리는 목적지까지 뛰어갈 계획이었다.
목적지는 수원에 위치한 어느 대학병원의 응급실.
소년의 간절한 기도가 들린 순간, 소년이 어디에 있는지 단박에 알겠더라.
리멘으로부터 부여받는 권능의 효과는 굉장하다고밖에 할 수 없었다.
“앞으로 일찍 일찍 집에 들어가야겠네요. 김 팀장님 부인분께서 저를 되게 싫어하시겠어요.”
“자랑스러워합니다.”
“예?”
“제가 시우 님을 돕는 걸 굉장히 자랑스러워합니다. 제 와이프도 이능관리부 출신이라서 그럴지도 모르겠습니다.”
그 말에 기분이 묘해지는 건 왜일까?
나는 뭐라고 말할지 머뭇거리다가, 등받이에 몸을 기대면서 말했다.
“시간 나면 제가 식사라도 대접해 드리겠습니다.”
“말씀만으로도 감사합니다. 시우 님. 목적지에 도착했습니다.”
“……금방 왔네요.”
“시급한 일인 듯하여 좀 밟았습니다. 저는 주차하고 뒤따라 들어갈 테니, 먼저 들어가시지요.”
“퇴근하셔도 되는데.”
“걱정하지 마십시오. 추가 근무 수당이 제법 짭짤합니다.”
김 팀장의 말에 나는 고개를 살짝 끄덕인 다음, 레오와 함께 차에서 내렸다.
그러자 곧 대학병원의 현관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들어가자.”
“예, 성하.”
병원 내부로 들어서자 병원 특유의 소독약 냄새가 느껴졌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병원과는 원체 친하지 않아서 어색한 기분.
레오는 처음 와 보는 병원이 사뭇 신기한 듯 힐끔힐끔 주위를 둘러보았지만, 크게 내색은 하지 않았다.
그렇게 우리는 조용히 응급실로 향했다.
그러나 잠시 후.
“보호자가 아니시면 들어가실 수 없습니다.”
응급실 앞을 지키고 있던 병원 직원이 우리를 막아 세웠다.
……전혀 예상치도 못했던 장애물이었다.
나는 난감한 미소를 지으면서 직원에게 말했다.
“안에 환자를 좀 보러 왔습니다.”
“환자의 이름이 어떻게 됩니까?”
외통수였다.
내가 이름을 알 리가 있나. 그저 목소리랑 생김새 정도만 알 뿐이지.
“그러니까…….”
대답을 머뭇거리자 직원이 나를 의심스럽게 쳐다본다.
허리춤에 있는 무전기에 손을 가져다 대는 걸 보면 여차하면 경비를 부를 모양이다.
일단 뭐라고 말이라도 해 보자.
“저희 나쁜 사람 아닙니다. 단지 그냥 응급실에 계시다는 형제님들 보러…….”
“그러니까, 그 환자분의 이름이 어떻게 됩니까?”
“글쎄요. 이름이…… 중요할까요?”
내 위트에도 불구하고 직원은 가차 없이 무전기를 입으로 가져갔다.
“……응급실 쪽으로 경비 인력 좀 보내 주십시오. 이상한 외부인들이 응급실 진입을 시도 중입니다.”
정말이지 직업의식이 투철한 직원이 아닐 수 없었다.
그렇게 우리가 꼼짝없이 경비 인력들에게 잡혀가려던 찰나.
“이능관리부에서 나왔습니다.”
순식간에 주차를 끝낸 김 팀장이 나타나서 상황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김 팀장은 품속에서 능숙하게 공무원증을 꺼내면서 말했다.
“저희 측에서 이분들의 신분을 보증해 드릴 테니, 출입을 허가해 주셨으면 합니다. 급한 용무입니다.”
“혹시, 아까 전에 피를 흘리며 들어온 환자가 문제라도 저지른 겁니까?”
“그것은 기밀이라 말씀해 드릴 수 없습니다. 협조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이능관리부가 끗발이 밀린다고 하지만, 일반인들에게는 꽤나 무서운 조직인 모양이다.
방금 전까지만 하더라도 우리를 의심하고 있던 직원이 서둘러 몸을 비켰다.
직원의 겁먹은 표정에 나는 김 팀장의 귓가에 조용히 속삭였다.
“이거 권력 남용으로 민원 들어오는 거 아닙니까?”
“시우 님께서 사고만 안 치시면 됩니다.”
“……아, 예.”
그래도 김 팀장이랑 오기를 잘했다.
나랑 레오만 왔다면 응급실 무단침입으로 경찰서에 끌려갈 뻔했다.
나는 고개를 살짝 끄덕인 다음, 천천히 응급실 안으로 들어섰다.
“저기 보이네.”
“참으로 순수하고, 참으로 아름다운 씨앗입니다.”
기도의 주인공은 그리 먼 곳에 있지 않았다.
응급실에 들어서자마자 보이는 병상 하나.
한 남성이 병상 위에서 눈을 감은 채 누워 있었고, 자그마한 남자아이 하나가 옆에서 남자의 손을 잡은 채로 눈을 감고 있었다.
나는 조용히 그 아이를 향해 다가섰다.
그리고 부드럽게 아이의 머리 위에 손을 올리면서 말했다.
“안녕?”
그러자 소년이 슬며시 눈을 떴다.
계속 울었는지 눈두덩이는 부어 있었고, 눈 역시 충혈되어 있었다.
그 모습이 얼마나 안쓰럽던지.
“……어?”
소년은 한참 동안 눈을 껌뻑이면서 나를 쳐다보았고, 나는 그런 소년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면서 말했다.
“기도를 듣고 왔어. 늦게 와서 미안해.”
2.
진승우.
계속해서 기도를 하고 있던 그 소년의 이름은 진승우였다.
승우가 손을 꼭 잡고 있던 남자는 승우의 아버지였고.
승우의 아버지는 상태가 좋지 않았다.
그의 몸 곳곳에 칼에 베인 자상들과 마력에 의해 손상되었다는 것을 증명하는 마력흔이 남아 있는 상태였다.
“이곳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호전되기 힘든 상황이었습니다. 지혈 등의 외과적 응급조치는 취했지만, 마력으로 인한 손상이 극심한 탓에 추가적인 조치는 취하지 못했습니다.”
이능관리부에서 나왔다는 소식을 들었는지, 의사가 우리 앞에서 환자의 상태를 브리핑하고 있었다.
“뭐 하나만 물어보겠습니다.”
의사의 브리핑을 가만히 듣고 있던 김 팀장이 눈살을 찌푸리면서 의사에게 물었다.
“종합병원급 이상의 의료 기관에서는 반드시 마력 해독에 필요한 장비들을 보유해야만 하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왜 조치를 취하지 않은 겁니까?”
김 팀장의 질문에 의사는 난처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저희 병원에도 당연히 있습니다. 하지만…….”
“치료비 때문이군요.”
“……죄송합니다. 아시다시피 마력 해독에 소비되는 엘릭서들의 가격이 어마어마한 편이라, 상부의 허가나 치료비 선결제 없이는 조치를 취할 수가 없습니다.”
“허.”
나는 그 말에 헛웃음을 내뱉을 수밖에 없었다.
어쩌면 내가 귀환하고 나서 사회의 겉면만 보아 왔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치료할 수 있음에도 치료하지 않는 상황.
그러나 무작정 병원 측을 탓할 수만도 없었다.
“게다가 진서준 환자는 아직까지 납부하지 못한 치료비도 상당한 탓에 저희로서는 어쩔 수 없었습니다.”
“납부하지 못한 치료비요?”
“저 때문이에요.”
의사의 말을 받은 건 다름 아닌 승우였다.
승우는 고개를 푹 숙인 채로 힘겹게 말을 이어 갔다.
“제가 아파서, 아빠가 쉬지 않고 일하셨거든요. 다 저 때문이에요. 아빠는…….”
물기에 젖은 목소리.
그 목소리에 나는 그저 씁쓸하게 웃으면서 녀석의 머리를 다시 한번 쓰다듬었다.
“다 괜찮을 거야.”
“시우 님. 저희 쪽에서 비용을 처리해 드릴 테니, 지금 당장 수술에 들어가시는 게 어떻겠습니까?”
김 팀장의 말에 나는 손을 내저으면서 말했다.
“그렇게까지 민폐를 끼칠 수는 없죠.”
“하지만 지금 조치하지 않는다면 이 환자는…….”
김 팀장은 승우를 보면서 말끝을 흐렸다.
나도 안다.
마력이 내장까지 퍼지게 되면 승우의 아버지는 죽을 수밖에 없다.
“이능관리부에서 원하신다면 상부에 보고 후, 곧바로 조치를 취해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우리의 대화를 듣고 있던 의사가 말했다.
나는 그런 그를 향해 피식 웃으면서 대답했다.
“이게 그렇게 간단하게 해결된 문제였던 겁니까?”
“시우 님. 지구에서는 마력 손상을 치료하는 게 쉽지가 않은 일입니다.”
김 팀장의 말에 나는 힘없이 입꼬리를 올리면서 말했다.
“이런 걸 볼 때마다 이곳이 지구란 게 실감이 납니다.”
그저 사회를 포장하는 겉모습만 바뀌었을 뿐, 본질은 바뀌지 않은 것 같다.
솔직히 나는 사회 구조니, 복지니, 이런 데에 큰 관심은 없다.
에덴으로 건너가기 전에도 먹고살기에 바빴으니까.
다만.
“그냥, 제 눈에 거슬려서 그렇습니다. 입맛이 쓰네요.”
이런 식으로 적지 않은 사람들이 죽어 나갔을 거라는 생각에 기분이 좋지 않았을 뿐이다.
내 말을 들은 의사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치료를 곧바로 시작하겠습니다.”
“그쪽 분들은 그냥 지금까지 그랬던 것처럼 가만히 계세요. 어차피 당신들이 나섰어도 완쾌는 못 시켰을 테니까.”
자존심이 상했는지, 의사는 표정을 찌푸리면서 말했다.
“저희 병원의 마력 중독 치료는 대한민국에서도 알아주는 수준입니다.”
“그 알아주는 수준으로 사람 죽어 가는 걸 보고 있었다는 뜻으로 받아들여도 되겠습니까?”
“……그건.”
“레오. 바로 끝낼 거니까 사람들 접근 못 하게 막아.”
“예, 성하.”
레오는 고개를 작게 끄덕였고, 승우를 포함한 나머지 인원들이 병상에서 멀어지게 만들었다.
“지금 뭐 하시는 겁니까!”
“뭐 하고 있긴. 당신들이 못 하는 거.”
내 손에서 흘러나온 하얀빛의 신성력이 승우 아버지의 몸속으로 스며들었다.
마력 부상은 에덴에서 비교적 흔한 부상에 속했다.
외과적인 수술은 당연히 지구와 비교도 할 수 없이 열악한 수준이었지만, 마력 부상에 있어서 만큼은 지구보다 훨씬 뛰어났던 건 사실이다.
디멘션 오프닝 이후로 지구의 의학이 어떤 식으로 발전했는지는 잘 모르겠다만, 적어도 에덴에서는 승우 아버지가 입은 부상은 어렵지 않게 치유할 수 있는 수준이었다.
우우우우웅-!
신성력은 병상에 누워 있는 승우 아버지의 몸속을 빠르게 돌아다닌다.
외상은 이미 병원에서 적절한 조치를 취해 뒀기 때문에 자연 회복력만 높여 주면 끝날 문제다.
그리고 곳곳에 남아 있는 마력의 잔재들 역시 신성력에 의해 빠른 속도로 사그라들 것이다.
하지만 내가 찾는 건 따로 있었다.
아까 전부터 느껴졌던, 불쾌하면서도 음습한 기운.
“……찾았다.”
[사악한 마기가 감지됩니다.]그것은 분명한 마기였다.
검에 의한 자상들과 마력흔들 사이에서 존재감을 숨기고 있던 마기.
신성력을 감지한 마기가 상처에서 튀어나와 재빠르게 사방으로 확산하고자 했지만.
화르르륵-!
마기는 곧 내 신성력에 의해 흔적도 없이 불타올랐다.
“교황 성하. 이건…….”
“아무래도 마기 사용자들한테 당한 것 같다.”
인간의 몸에 타인의 마기가 침투하는 경우는 단 한 가지뿐이다.
마법이든, 검이든.
마기 사용자의 공격에 노출된 경우.
이 경우는 자상이 분명한 상처가 남아 있었으니, 검을 주 무기로 사용하는 플레이어에게 당한 상처일 것이다.
그러자 문득 아까 전에 승우가 빌었던 기도의 내용이 떠올랐다.
아빠를 이렇게 만든 사람들이 죗값을 치르게 해 달라고 했었다.
그것도 어린아이답지 않은, 악에 받친 목소리로.
“승우야.”
내 부름에 승우가 아버지의 손을 꽉 쥔 채로 대답했다.
“……네.”
“아버지는 이제 괜찮으실 거야. 그러니까 우리에게 네 이야기를 좀 들려줄래? 누군가가 죗값을 치르게 해 달라는 기도를 들었어.”
내 질문을 다르게 받아들인 걸까?
승우는 고개를 푹 숙이면서 말했다.
“사실…… 아빠만 괜찮으면, 용서……할 수 있어요.”
“우리 승우 되게 똑똑하네? 용서라는 말은 또 어디서 배웠어.”
“예전에, 엄마 따라서 교회에 나갔을 때 배웠어요. 죄인도 용서해야 한다고.”
“음, 우리 교단에서도 용서를 가르치기는 하지만, 그보다 먼저 배우는 교리가 있어.”
나는 의자를 끌어와 승우의 앞에 앉았다.
그리고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
“악을 보고서 지나치지 말라, 방관 역시 악으로의 길일지니.”
마기를 보고서 그냥 지나칠 수야 있나.
그리고 이렇게나 작고 착한 소년이, 그리도 처절하게 기도하는 것을 들은 순간, 이미 그냥 지나칠 생각은 없었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 나에게 말해 줄래?”
우리 교황님 좀 말려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