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lease stop our Pope RAW novel - Chapter (44)
44화
14. 뉴 페이스
1.
다사다난했던 밤이 지나가고 아침이 밝았다.
이능관리부에서는 나에게 장담했던 대로 아침이 밝자마자 대대적인 언론 보도를 시작했다.
속보)전국구 폭력조직 연백파를 전신으로 하는 연백 길드, 마약 유통 혐의로 전원 입건. 마약 제조 및 유통 과정에서 인신매매를 비롯한 각종 불법 행위 혐의점 발견.>
이능관리부의 유선호 장관 ‘군경과의 긴밀한 공조를 통해 사건을 명명백백하게 밝힐 것.’>
청와대 수석대변인, ‘빌런과의 전쟁을 선포한다.’>
이능관리부에서 공식 성명을 발표할 것은 예상했지만, 청와대까지 나설 줄은 몰랐다.
총력을 다해서 나서겠다는 말이 마냥 거짓말은 아니었던 모양이다.
뭐, 거기서부터는 그 사람들이 해야 할 몫인 거고.
나 역시 내가 할 일을 위해서 곧장 그라운드 제로의 신전으로 돌아왔다.
레오에게 맡겨 둔 심문의 결과를 확인할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다.
심문의 결론부터 말하자면.
“결국 다시 원점이네.”
밝혀진 건 아무것도 없었다.
내 기대와는 달리 에키드나의 계약자, 그러니까 신예나는 알고 있는 게 딱히 없었기 때문이다.
우리가 알아낼 수 있었던 건 그저 ‘각성의 비약’이란 걸 어떻게 만들었으며, 그녀가 어떤 과정을 통해서 마족의 계약자가 되었는지 정도였다.
신예나는 원래 3년 전에 각성했던 마법 계열 플레이어라고 했다.
한때는 각성자 아카데미의 유망주라고 평가받았던 그녀가 에키드나의 마기를 받아들이게 된 과정은 어떻게 보면 아주 클리셰에 가깝다고 할 수 있었다.
기대만큼 성장하지 못했던 유망주가 악마와의 거래를 통해서 한계를 뛰어넘는, 에덴에서도 아주 흔한 레퍼토리에 속하는 이야기.
성장의 한계에 맞부딪힌 유망주에게 큰 힘을 선사해 주겠다는 이야기는 그 무엇보다 달콤한 유혹으로 들렸겠지.
누군가는 그녀 역시 피해자라고 생각할 순 있겠다만, 글쎄?
이 모든 것은 어디까지나 그녀의 잘못된 선택부터 시작된 비극이었다.
애초에 그녀가 에키드나와 계약을 맺지 않았다면 벌어지지 않았을 비극이었다는 소리다.
나는 고개를 작게 끄덕인 다음, 내 앞에서 조용히 나를 바라보고 있던 김 팀장에게 말했다.
“이 여자, 형량은 얼마나 나옵니까?”
“특수살인, 납치, 마약 유통 등 총 14개의 죄목으로 구속될 겁니다. 최소 무기징역, 최대 사형입니다. 저희 이능관리부의 명예를 걸고 약속드릴 수 있습니다.”
심문 과정에서 이미 레오가 그녀가 지니고 있던 모든 마기를 소멸시켰고, 더 나아가 신성력으로 모든 가능성을 봉인시켜 버렸다.
즉, 이제 신예나는 더 이상 플레이어가 아니다.
앞으로 다시는 플레이어가 될 수도 없고.
그건 우리 교단에서 악마의 계약자에게 내리는 일종의 심판이기도 했다.
하지만 나는 그것만으로는 좀 부족하다 싶었기에, 내 앞에서 고개를 숙이고 있던 그녀의 귓가에 조용히 속삭였다.
“신예나 씨. 그거 알아요? 마기라는 게 있잖아요, 사실 당신에게 없던 힘을 주는 게 아니에요.”
“……갑자기 무슨.”
“영혼을 대가로 당신의 미래를 미리 땡겨 오는 힘이랍니다. 일종의 가불이라고 해야 하나?”
마기는 필멸자에게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 주는 힘이 아니다.
필멸자의 영혼을 대가로, 필멸자의 가능성을 미리 끌어다 쓰는 힘일 뿐이다.
즉.
“당신이 악마와 계약을 맺지 않고 열심히 노력했다면, 아주 뛰어난 마법사가 되었을 거란 이야기지.”
그녀는 스스로의 선택으로 그 미래를 부서 트린 것이다.
내 말을 들은 그녀가 흐느끼면서 대답했다.
“그딴 게, 그딴 게 지금 무슨 의미가 있어요.”
“왜 의미가 없어요? 내가 해 준 말 때문에 당신이 이제 평생 후회하면서 살아갈 텐데, 당연히 의미가 있지.”
평생을 괴로워하라고 해 주는 말이거든.
나는 그렇게 말을 맺은 후, 천천히 몸을 들어 올리면서 말했다.
“김 팀장님?
“예.”
“이제 데려가셔도 좋습니다. 교단의 일은 끝입니다.”
그러자 김 팀장은 정중하게 허리를 숙이면서 대답했다.
“저희를 믿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약속했으니까요.”
“그럼, 이만 물러나 보겠습니다.”
그 말을 끝으로 이능관리부 요원들은 신예나를 데리고 신전에서 물러섰다.
“성하께서 지난번과 같은 선택을 하실 줄 알았습니다.”
레오는 신전에서 멀어지는 이능관리부 요원들을 바라보면서 조용히 말했다.
아마 그라운드 제로에서 불구로 만들어 버렸던 유세혁과 다른 빌런들에 관한 이야기인 듯했다.
나는 레오의 질문에 가볍게 기지개를 켜며 대답했다.
“그때 그놈들은 순순한 자의로 일을 저질렀던 놈들인 거고, 신예나는 뱀 새끼의 혀에 놀아났던 거고.”
“그들에게 내리셨던 형벌보다는 자비롭지 않았나, 그런 생각이 듭니다.”
“너 연백 길드인가 뭔가 하는 놈들 상태 보면 그런 말 못 한다?”
내가 따로 말을 안 해서 그렇지, 사실 연백 길드 놈들도 손을 좀 봐주고 왔다.
인신매매에 마약 유통까지 하고 있던 놈들을 가만히 두고 왔을 리가 있나?
모두 공평하게 척추를 접어 준 다음, 대충 목숨만 붙여 둔 상태로 이능관리부에게 넘겼다.
아마 녀석들은 모두 남은 여생을 감방에서 하반신이 마비된 채로 살아갈 것이다.
그리고 신예나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순간의 욕심 때문에 본인의 미래를 팔아넘겼다는 걸 깨달았는데, 본인 스스로가 얼마나 혐오스러울까.”
그녀는 죽기 직전까지 스스로를 용서할 수 없을 것이다. 그리고 그 자기 혐오는 죽기 전까지 끊임없이 그녀의 몸을 불태울 테고.
그것이 그녀에게 내리는, 내 나름대로의 심판이었다.
“애초에 유세혁과는 이야기가 다르잖아? 그 새끼는 악마가 속삭이지도 않았는데 그딴 짓을 벌였던 거라고. 어떻게 보면 유세혁 그 새끼가 진짜 대단한 새끼야.”
“……이해했습니다.”
“이해 못 하겠다는 표정인데?”
“아닙니다. 저는 단지…… 성하께서 이단심문관이셨으면 엄청난 악명을 얻으시지 않았을까,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을 뿐입니다.”
“에이, 나만큼 자비로운 사람이 또 어디에 있다고 그래?”
“……흠.”
“얼굴 안 펴? 확 그냥.”
2.
우리가 이능관리부 요원들을 배웅하고 신전 안으로 들어서자 곧 소년 한 명이 해맑게 웃으면서 우리에게 다가왔다.
“교황님!”
소년의 정체는 우리 교단의 첫 성자, 승우였다.
나는 승우의 부드러운 머리를 쓰다듬어 주면서 미소를 지었다.
“잘 놀고 있었어?”
오늘 아침에 서울로 올라오면서 승우도 데리고 올라왔다. 승우가 교단에 입교하기로 한 이상, 굳이 승우를 수원에 둘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네! 이유는 모르겠는데, 엄청 기분이 좋아요!”
“좋아해서 다행이네.”
역시 애들은 우는 것보단 웃는 게 훨씬 이쁘다.
승우는 해맑게 웃음을 짓더니, 곧 내 옆에 있던 레오에게도 공손하게 허리를 숙이면서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레오 대주교님!”
그러자 레오는 어색하게 입꼬리를 올리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리멘의 품으로 들어오신 걸 축하합니다, 승우 형제님. 앞으로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레오가 저렇게 어색하게 웃을 때는 딱 한 가지밖에 없다.
좋을 때.
진심으로 좋을 때 저런 표정을 짓는다. 지난번에 시연이 앞에서도 저렇게 웃었던 것만 보더라도 쉽게 알아차릴 수 있다.
“레오 네가 성자 선배잖아? 선배로서 잘 좀 챙겨 줘.”
“최선을 다하도록 하겠습니다. 혹시 그럼 승우 아버님은…….”
“같이 올라왔지.”
진서준 씨는 그라운드 제로와 가장 가까운 곳에 위치한 대학병원에 입원했다.
내 신성력으로 인해 대부분의 부상은 치료되었지만, 이능관리부 측에서 종합검사를 해 주겠다는 걸 굳이 거절할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5년이라는 시간 동안 쉴 새 없이 일해 온 사람이다.
아들의 몸을 돌보느라 정작 제 몸을 돌보지 못했던 사람이었으니 이번 기회에 마음껏 챙겼으면 하는, 그런 마음이었다.
그런 걸 의료 관광이라고 부르던가?
“위험하지 않겠습니까?”
“너 진서준 씨 병원에 이능관리부 요원들이 얼마나 배치되었는지 모르지? 그리고 내가 축복도 걸어 두고 왔으니까, 아마 지금 거기가 세상에서 두 번째로 안전한 곳일걸?”
내 말에 조용히 이야기를 듣고 있던 승우가 눈을 빛내면서 말했다.
“가장 안전한 장소는 교황님 옆이구요.”
……이 녀석, 어쩌면 인생 초회차가 아닐지도 모른다.
이것이 정녕 12살짜리의 사회생활이란 말인가?
“바로 그거지.”
나는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이면서 녀석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얼굴도 잘생겼고, 다른 사람 듣기 좋은 소리도 잘하고.
우리 교단의 첫 선지자가 이렇게 귀여운 꼬맹이라서 참 다행이다.
내가 그렇게 만족스럽게 웃고 있을 때쯤, 승우는 여전히 눈을 빛내면서 말했다.
“어제 교황님께서 제 또래의 여동생이 있다고 하셨죠?”
“맞아. 우리 시연이. 안 그래도 어제 외박했다고 혼났어.”
“제가 어렸을 때부터 여동생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거든요. 꼭 한번 보고 싶…….”
“……10점 감점.”
“네?”
“그런 줄 알아.”
위험한 녀석이다.
벌써부터 우리 시연이한테 관심을 보이다니, 이 여우 같은 녀석.
내 눈에 흙이 들어가기 전까진 어림도 없지.
아무튼.
우리 셋이서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고 있을 즈음이었다.
우우우웅-
[당신의 주신이 신탁(神託)>을 내리고자 합니다.]갑작스럽게 떠오른 메시지에 나는 잠시 자리에서 일어난 다음, 교황의 집무실에 들어섰다.
그러자 곧 귓가에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좋은 아침! 승우를 무사히 데려올 줄 알았어. 어때, 직접 보니 되게 예쁜 아이지? 앞으로 잘 부탁해!』
“리멘. 에키드나의 계약자를…….”
『나도 알고 있으니까 말 안 해 줘도 괜찮아! 안 그래도 알아보려던 참이었어. 에덴에도 꽤 미심쩍은 부분들이 있어서, 다른 아이들을 시켜서 추격 중이거든? 단서가 나오면 곧바로 시우에게도 알려 줄게.』
잠시 잊고 있었다.
그녀는 본인의 힘이 닿는 모든 것을 보고 들을 수 있다.
심문을 진행한 건 레오였으므로 그 과정에서 드러난 정보 역시 전부 파악했으리라.
그것이 그녀가 지닌 전지전능함의 원천이 되는 힘이기도 했으니까.
『잠도 제대로 못 잤을 테니까, 빨리 용건만 말할게! 지난번에 말했던 대로 성기사단장 한 명을 보내 줄까 하는데, 방식은 지난번이랑 같아.』
“지난번?”
『응! 시우가 시스템에 대가를 지불하면, 내가 지난번처럼 게이트를 통해서 보내 주는 방식이야. 아마 지금쯤이면 눈앞에 보일 텐데…… 안 보여?』
그녀가 그렇게 말하자마자 눈앞에 새로운 메시지 창이 떠올랐다.
[DLC 상점의 품목이 갱신됩니다.] [특수 직분 성기사단장(★★)>을 구매할 수 있습니다.]“……가격 실화냐.”
확인된 성기사단장>의 가격은 무려 5,000점.
신전에다가 축성소급의 시설을 하나 더 만들 수 있을 정도로 큰 점수였다.
이번에 내가 서브 퀘스트 두 개를 연달아 깨면서 얻은 점수가 5,000점이었으니, 벌어들인 점수를 그대로 헌납하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하지만 어쩌겠어?
“구매한다.”
[신성 점수 5,000점을 사용하여 특수 직분 성기사단장(★★)을 구매하였습니다.] [당신이 합당한 대가를 지불하였기에 인과율이 차원계: 에덴>의 주신좌 리멘>이 개입하는 것을 묵인합니다.]알고도 당해 주는 수밖에.
이미 승우를 교단에 데려오면서 계몽>이라는 말도 안 되는 특성도 얻었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 우리에게 급한 건 첫째도 인재, 둘째도 인재였다.
인력난에 허덕이고 있단 말이다.
“된 건가.”
『응!』
“지난번처럼 보내 주는 거면 게이트 위치랑 날짜 좀 말해 줄래? 저번에 그것 때문에 꽤 고생했어.”
덕분에 도깨비 길드의 최 대표와 인연을 맺기는 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운이 좋았던 거고.
미리 위치를 알고 대비를 해야…….
『어? 바로 보냈는데?』
“……뭐?”
『아니이. 지난번에 너무 늦게 보내 준 것 같아서 미안했거든. 그래서 이번에는 그냥 바로 보냈어. 마침 연결되어 있던 통로도 하나 있더라구. 헤헤.』
그때였다.
우우우우우우웅-!
주머니에 넣어 두었던 핸드폰이 진동했다. 인욱이의 톡이었다.
-동생놈: 링크>
-동생놈: 하이브 길드 놈들 라이브 방송 중인데 갑자기 이상한 사람 등장했거든?
-동생놈: 빨리 확인해 봐 봐. 난리 났어 지금.
-동생놈: 지난번에 형 전각련 놈들이랑 싸웠다고 그랬잖아. 혹시 형이 보낸 건 아니지?
인욱이가 보내 준 링크를 타고 들어간 곳에서는.
-?
-왜 게이트에서 사람이 나옴?
-몬스터들을 죽이는 거 보면 플레이어 아니냐?
-뭐지
-하이브 길드에서 키우는 괴물 신인 뭐 그런 거냐?
익숙한 갑옷을 입은 성기사 한 명이 제 몸보다 거대한 철퇴를 휘두르면서 몬스터들의 대가리를 부수는 중이었다.
카메라는 곧 그녀의 얼굴에 초점을 당겼다.
그러자 철퇴와 함께 휘날리는 그녀의 붉은색 머릿결이 화면에 송출된다.
본인의 모습이 화면으로 나가고 있다는 걸 알고 있는지, 그녀는 카메라를 바라보면서 미소와 함께 윙크 세례를 퍼붓는다.
아니, 윙크하는 것까지 괜찮다고 치자.
그런데 도대체 왜.
-?
-방금 뭐임?
-저 사람 하이브 길드원 아닌가 본데? 방금 하이브 길드원들이 먼저 공격한 거 아니냐?
-근데 왜 먼저 공격한 놈들이 오히려 저러고 있냐고ㅋㅋㅋㅋ
-설명충 등판 좀
-설명충)나도 모름 ㅅㄱㅋㅋㅋ
윙크하면서 하이브 길드원들을 하늘로 쏘아 보내냐 이 말이야.
나는 그 아찔하고도 어지러운 장면을 바라보면서 이마를 짚었다.
그리고 급히 리멘에게 물어보려던 찰나.
『질문은 나중에! 배송 완료해 드렸으니 저는 이만 가 보도록 하겠습니다! 바쁘다 바빠.』
[신탁이 종료되었습니다.]리멘도 호다닥 도망가 버렸다.
그렇게 남겨진 나는 다시 핸드폰 속의 라이브 방송을 바라보았다.
도대체 이 상황을 어떻게 수습해야 할지 머리를 굴리려던 찰나, 화면 속의 그녀가 쩌렁쩌렁한 목소리로 소리쳤다.
「나는 리멘 교단의 세 번째 성기사단인 팔마 기사단을 이끄는 수장, 루나 레벤톤이라고 해. 자기들, 진짜 뒈지기 싫으면 그만 덤비는 게 어때?」
그야말로 핵폭탄이나 다름없는 발언에, 나는 손으로 얼굴을 쓸어내리며 중얼거렸다.
“……이번에도 X 됐다.”
이건 어디서부터 주워 담아야 하는 걸까.
우리 교황님 좀 말려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