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lease stop our Pope RAW novel - Chapter (45)
45화
3.
루나 레벤톤.
루나는 우리 교단의 세 번째 성기사단인 팔마 기사단의 기사단장이자, 교황청을 대표하는 전력 중 하나였다.
레오가 교황청의 광견이라는 별칭을 지녔듯, 루나 역시 별칭을 지니고 있었다.
핏빛 성녀.
전장의 최전선에서 적들의 피를 뒤집어쓴 채로 철퇴를 휘둘렀던 그녀에게는 꽤 잘 어울리는 별칭이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루나는 모든 무기를 잘 다뤘지만, 유독 철퇴란 무기를 좋아했다. 그래서 이유를 물어봤는데.
‘대가리를 박살 내는 맛이 있거든요. 성하께서도 한번 맛보시면 제 느낌 이해하실걸요? 그나저나 혹시 오늘 저녁에 시간 있으세요? 괜찮으시면 저랑 교황청 앞에서 한잔…….’
……라고 대답했다.
그녀는 보유한 전투력과는 별개로 교단 내에서 상당한 영향력을 지녔던 인물이다.
성녀 출신이라는 정통성과 누구라도 한 번쯤은 돌아보게 만들 법한 외모.
거기에 털털한 성격까지 더해지니 남녀를 가릴 것 없이 그녀를 흠모했던 사람들이 많았다.
지구의 표현을 빌리자면 그야말로 아이돌 같았달까.
교세를 넓혀야 하는 지금 같은 시기에 루나 같은 인재가 넘어와 준다면 쌍수를 들고 환영할 일이다.
하지만 지난번에 레오도 그랬고, 이번에 루나도 그렇고, 왜 하필이면 게이트로 넘어오자마자 싸움을 벌이냔 말이지.
물론 두 경우 다 상대 쪽에서 먼저 선공을 가한 거지만, 레오나 루나의 실력이라면 충분히 요령 좋게 회피할 순 있었을 거다.
그게 하도 속상해서 현장으로 가는 도중에 레오에게 이유를 물었다.
그러자 레오는 아주 당연하다는 듯이 대답했다.
“저와 레벤톤 경은 그저 가르침을 받은 대로 했을 뿐입니다.”
“도대체 어떤 새끼가 성직자에게 저딴 가르침을 내렸냐?”
내 반문에 레오는 아무런 대답 없이 그저 나를 뻔히 쳐다볼 뿐이었다.
……난가?
아무튼.
그렇게 우리는 사건이 발생한 지 20분 만에 인천 월미도 게이트의 현장에 도착할 수 있었는데, 현장의 상황은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심각했다.
콰아아아아아앙!
폭탄이 터지는 듯한 굉음이 울려 퍼지는 것은 물론이었으며.
“기자들 통제 제대로 하라고!”
“현재 이곳은 게이트 토벌 작전이 진행 중입니다! 허가받지 않은 인원들 말고는 입장하실 수 없습니다!”
“리멘 교단과 전투를 벌이고 있다는 이야기가 사실입니까?”
“사실 관계를 명확하게 해 주십시오!”
게이트로 향하는 임시 결계의 입구에는 수많은 기자가 몰려들어 소란스러운 상태였다.
게다가 저 멀리서 하이브 길드의 플레이어들이 탑승한 차량들이 계속 오고 있는 거로 봐서는 하이브 길드 측에서도 쉽사리 물러날 생각이 없어 보였다.
“저희 교단과 전쟁이라도 불사를 듯한 분위기로군요.”
“자존심이 걸린 문제잖아.”
하이브 길드는 대한민국 2위 길드다.
S급 헌터를 무려 네 명이나 보유했으며, 수많은 재벌 기업들을 스폰서로 둔, 명실상부한 거대 길드.
그런 길드가 라이브 스트리밍에서 일방적인 굴욕을 당했고, 자존심에 상처를 입었다.
눈이 안 돌아가는 게 더 이상한 상황.
이런 상황에서 내가 저 입구로 당당하게 걸어 들어가면 진짜 유혈사태가 벌어질지도 모른다.
루나가 리멘 교단 이야기만 안 꺼냈어도 이런 상황까진 안 왔겠다만, 뭐 어쩌겠어? 이미 엎질러진 물인걸.
지금으로서는 루나가 더 큰 사고를 안 치도록 하는 것이 우선이었다.
하이브 길드에서 추가 병력을 투입하고, 그들과 전투를 벌이게 되면 그때는 진짜 파국이다.
“일단 결계 내로 진입해서 루나와 만나는 게 우선이다.”
“레벤톤 경의 성격이라면 물러서지 않을 테지요. 한데 결계의 입구가 저렇게 막혀 있는데, 어떻게 들어가시려는 겁니까?”
“어떻게긴.”
파지지지지직!
[패시브 스킬 신성 보호 Lv. Max>에 의해 마력 간섭이 무효화됩니다.] [생성된 마력 결계에 심각한 충격이 누적됩니다! 결계의 내구도가 현저히 낮아졌습니다.]당연히 그냥 결계를 뚫고 들어가는 거지.
레오는 그런 내 모습을 바라보면서 조용히 한숨을 내쉬더니, 내 뒤를 따라서 결계 내부로 진입했다.
“사자성어 중에 내로남불이라는 단어가 있더군요.”
“그게 뭐.”
“……그냥, 그렇다는 겁니다. 가시지요.”
어차피 결계 밖으로 빠져나올 몬스터는 없다.
루나와 하이브 길드 소속 플레이어들이 싸그리 정리했을 뿐만 아니라, 게이트 자체도 이미 소멸한 상태였기 때문이다.
이런 마당에 결계의 내구도쯤이야 뭐, 별일 있겠나?
“바로 앞이네.”
결계 내부로 들어선 우리는 얼마 가지 않아 루나를 발견할 수 있었다.
바다를 등진 상태로 서 있는 순백의 성기사.
그녀의 붉은 머릿결이 바닷바람에 아름답게 휘날렸고, 햇빛이 그녀의 흰 피부와 갑옷을 밝게 비춘다.
루나의 비주얼만 따로 놓고 봤을 땐 참 아름다운 장면이지싶다.
“하아.”
바닥에 널브러져 있는 하이브 길드 소속의 헌터들을 제외한다면 말이다.
나는 눈앞에 펼쳐진 참혹한 현장을 보면서 손으로 이마를 짚었다.
대략 40명쯤은 되어 보이는 플레이어들이 이곳저곳에 볼품없이 쓰러져 있었다.
그래도 그나마 다행인 점은.
콰아아아아앙!
하이브 길드 소속의 헌터 한 명이 아직까지 버티고 있었다는 점이다.
즉, 마지막 자존심까지는 꺾이지 않은 셈이다.
딱 보니 하이브 길드가 보유한 4명의 S급 헌터 중 한 명인 것 같았다.
물론 그의 상태도 썩 좋아 보이진 않았다.
“레벤톤 경이 일부러 상대를 시험하고 있는 듯합니다.”
“레오야.”
“예, 성하.”
“보통 저런 걸 보면 상대를 농락하고 있다고 말한단다.”
얼핏 보면 호각을 이루면서 공방을 주고받고 있는 듯하지만, 실상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하이브 길드의 S급 헌터는 단 한 번도 반격에 나서지 못하고 있었다.
그는 그저 루나의 움직임을 따라가기도 바빴을 뿐.
승부를 결정지을 수 있는 틈이 곳곳에서 보임에도 승부가 결정 나지 않는다는 것은, 루나가 일부러 상대를 가지고 논다고밖에 볼 수 없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였다.
“성하!”
나를 발견한 루나가 환하게 웃음을 짓더니, 곧 기세를 올린다.
단번에 승부를 결정지을 셈인 것이다.
나는 그 장면을 목격하자마자 곧장 둘의 사이로 끼어들었다.
쿠우우우웅-!
그리고 루나의 철퇴와 남자의 검을 동시에 튕겨 내면서 나지막하게 말했다.
“오해가 있는 것 같으니 여기까지만 합시다.”
엎질러진 물은 주워 담을 수 없다지만, 적어도 물이 더 흘러내리는 건 막아야 하지 않겠어?
4.
인생이란 언제나 계획대로 흘러가진 않는다.
하지만 때로는 계획대로 흘러가지 않은 것이 오히려 좋은 경우도 존재하는 법이다.
“오준우 팀장님. 지금 그게 무슨 소리입니까?”
“저희들에게도 책임이 있다고 말씀드리는 겁니다. 저쪽에서도 수 차례 경고를 했음에도 먼저 공격한 것은 저희입니다.”
마치 지금처럼 말이다.
나는 내 눈앞에서 펼쳐지는 기이한 상황에 당혹감을 감출 수가 없었다.
루나를 데리러 이 결계 안으로 들어설 때만 해도 하이브 길드와 정면으로 충돌할 것은 각오했다.
내가 봐도 저쪽에서 오해를 하기에 충분한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후의 상황은 내가 예상하지 못한 방향으로 흘러갔다.
내가 전투를 멈추게 하자마자 뒤에서 대기하고 있던 하이브 길드의 병력이 현장에 도착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당연히 저쪽에서 본격적인 항의를 할 것이라 예상했지만, 내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오준우 팀장님!”
“그리 말씀하셔도 아닌 건 아닌 겁니다. 오히려 저희들이 먼저 사과를 해야 할 상황이라 생각합니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루나와 싸우고 있던 하이브 길드의 S급 헌터, 오준우가 갑자기 적극적으로 우리를 옹호하기 시작한 것이다.
게다가 그가 우리를 막무가내로 옹호하는 것도 아니었다.
“팀장님은 이능특별법에 의거하여 게이트에서 나온 존재들을 적으로 규정, 합법적인 토벌에 들어갔을 뿐입니다. 그런데 왜 자꾸 책임이 우리들에게 있다고 주장하시는 겁니까?”
“게이트에서 나온 존재가 스스로 전투 의사가 없음을 밝혔습니다. 그것도 우리들이 알아들을 수 있는 한국어로 말입니다. 충분한 대화의 여지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전투 지시를 내린 것은 우리 쪽입니다.”
내가 준비해 왔던 대사들을 본인의 입으로 말하고 있던 것이다.
도무지 이해를 할 수 없는 상황.
그리고 그를 이해할 수 없던 건 비단 나뿐만은 아니었다.
“아니 진짜 왜 이러십니까 오 팀장님! 예? 팀장님의 부하들이 처참하게 깨졌잖습니까. 아무리 오 팀장님이 대표님께서 아끼시는 분이라 하셔도, 이러시면 징계를 피하실 수 없습니다.”
“징계는 달게 받겠습니다. 하지만 저분께 피해가 가는 건 좌시할 수 없군요.”
지원 병력을 이끌고 도착한 하이브 길드의 또 다른 책임자조차 답답하다는 듯이 언성을 높이기 시작한다.
나는 그 둘의 언쟁을 지켜보면서 루나에게 은근슬쩍 물었다.
“루나야. 네가 혹시 저 오준우라는 사람 세뇌한 건 아니지?”
“에이, 저한테 그런 능력이 있겠어요? 그리고 세뇌할 수 있는 능력 있었으면 성하부터 세뇌했겠다. 후후.”
“그럼 도대체 쟤는 왜 저러는 거야?”
“저도 잘 모르겠는데요. 성하께서 정 궁금하시면 싹 다 눕힌 다음에 물어봐도 되지 않을까요? 말씀만 하세요.”
“……넌 그냥 가만히 있는 게 도와주는 거야. 그냥 닥치고 있으렴.”
루나는 어깨를 으쓱이더니 곧 시선을 돌려서 내 뒤에 서 있던 레오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곧 레오의 등짝을 시원하게 후려치면서 말했다.
“레오! 잘 지냈어? 누나가 보고 싶지는 않았고?”
“……레벤톤 경. 여기서 이러시면…….”
“남매끼리 재회의 기쁨을 누리겠다는데, 뭐 어때?”
당연히 저 둘은 친남매가 아니다.
하지만 ‘성자와 성녀 둘 다 리멘을 기원으로 하는 존재들이니, 당연히 남매 사이가 아니냐?’라는 것이 루나의 논리였다.
……뭐, 에덴에서도 자주 저랬으니 신경 쓰지 말자. 지금 당장 중요한 건 이곳을 빠져나가는 것이다.
나는 둘의 모습을 바라보면서 한숨을 내쉰 다음, 다시 시선을 앞으로 돌렸다.
어느새 하이브 길드 간의 언쟁은 막바지에 다다른 모양이었다.
뒤늦게 온 책임자가 얼굴을 잔뜩 붉힌 채로 입을 다물고 있었고, 오준우 헌터 역시 붉게 상기된 표정으로 우리 쪽을 바라보고 있는 중이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루나 쪽을.
나는 오준우의 그 표정을 보고 나서야 이게 어떻게 된 상황인지를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었다.
“리멘 교단 분들께서는 돌아가셔도 좋습니다.”
붉게 상기된 얼굴.
루나에게서 떨어지지 않는 시선.
거기에 쉴 새 없이 떨리는 목소리까지.
그 모든 것은 딱 한 가지 사실을 가리키고 있었다.
“저…… 루나 레벤톤 님이라고 하셨습니까?”
“어, 맞아.”
“루나 레벤톤 님 덕분에 큰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저 오준우라는 헌터, 루나에게 반했다.
그것도 아주 제대로.
루나는 오준우의 말에 털털하게 웃으면서 대답했다.
“너 생각보다 괜찮은 놈이었네? 네 검술도 나쁜 버릇 몇 개만 고치면 아주 괜찮아지겠더라.”
“그렇습니까?”
“당연하지. 나는 이런 걸로 거짓말 안 해.”
루나의 말에 오준우는 잠시 머뭇거리더니,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혹시 나중에 따로 찾아뵙고 더 가르침을 청해도 되겠습니까?”
“교황 성하께서 허락만 하신다면야 어려울 것 없지?”
루나는 그렇게 말하며 나에게 살짝 윙크했다.
가끔 보면 루나 이 녀석도 본인이 예쁘다는 걸 아주 잘 이용해 먹는다니까?
이런 요물 같으니라고.
나는 어깨를 으쓱인 다음, 오준우를 바라보면서 말했다.
“시간 괜찮으실 때 신전에 한번 들르세요. 오셔서 우리 레벤톤 경에게 검술을 사사하시고, 좋은 말씀도 나누고 가시면 될 것 같습니다.”
내가 봐도 진짜 사이비 종교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멘트였지만, 그딴 건 사랑에 빠진 남자에게는 딱히 중요하지 않은 듯했다.
내 대답에 오준우 헌터는 공손하게 허리를 숙이면서 파이팅 넘치게 대답했다.
“배려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에이, 저야말로 감사하죠.”
덕분에 골치 아픈 일이 해결되었는데, 당연히 내가 더 고맙지.
여차하면 확 우리 쪽으로 끌어당길 수도 있을지도 모른다.
실제로 에덴에서도 그런 경우가 몇 번 있었기도 했고 말이다.
“그럼 저희는 오준우 헌터만 믿고 돌아가 보겠습니다.”
“예!”
그때까지만 해도 몰랐다.
그 일이 가져올 파급효과를.
우리 교황님 좀 말려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