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lease stop our Pope RAW novel - Chapter (47)
47화
15. 스러진 믿음의 성지
1.
현재, 대한민국에는 총 세 곳의 그라운드 제로가 존재한다고 했다.
하나는 우리 교단에서 정화하고 있는 서울 그라운드 제로, 또 다른 하나는 대전.
그리고 마지막으로 부산.
마력 오염의 정도로 따지면 서울 쪽이 압도적이었고, 나머지 두 지역은 일반인들도 보호구 없이 3시간 정도 활동할 수 있는 정도의 오염 수치라고 했다.
따라서 나머지 두 곳의 그라운드 제로는 각종 연구나 실습이 이루어지는 장소기도 했는데, 그 두 곳 중 부산의 그라운드 제로에 문제가 발생한 것은 지금으로부터 2일 전이라고 한다.
“이계와 연결되어 있는 것으로 판단되는 어비스 던전이 등장하였고, 관련 협약에 따라 저희들은 도깨비 길드에게 우선탐험권을 부여하였습니다.”
“협약?”
“3년 전, 부산에서 돌발 게이트가 생성되었다는 것을 아실 겁니다. 부산 그라운드 제로는 그 돌발 게이트의 잔재입니다. 그리고 그 돌발 게이트에서 가장 돋보이는 활약을 펼쳤던 것이 도깨비 길드였습니다.”
한마디로 게이트를 토벌한 대가로 일종의 보상을 받아 간 셈인 거다.
우리 교단이 서울 그라운드 제로를 정화하는 대가로 그 땅의 소유권을 받아 갔듯이, 그들 역시 비스무리한 권리를 챙겨 간 모양이다.
나는 고개를 가볍게 끄덕인 다음, 의자에 잠시 몸을 기대면서 말했다.
“도깨비 길드가 나선 일이면 도움이 필요 없는 거 아닙니까?”
도깨비 길드는 나에게 유난히 호의적이었던 최서진 대표가 이끄는 길드다.
그리고 최서진 대표는 레오와도 몇 번 공방을 주고받았을 정도로 강한 사람이다.
대한민국의 S급 헌터 중에서 최상위에 속한 사람이라는 평가가 과언이 아닐 정도였으니까.
하지만 김 팀장으로부터 돌아온 대답은 예상외였다.
“이번 요청은 최서진 대표로부터 직접 들어온 요청입니다.”
“예?”
“최서진 대표는 2시간 전, 어비스 던전을 탐험하던 도중에 연락이 두절되었다고 합니다. 연락이 끊기기 전, 시우님께 도움을 요청하라고 했다더군요.”
그가 다른 대형 길드의 대표들과는 사이가 안 좋다는 건 대충 눈치채고 있었다.
그런데 왜 하필이면 나였을까?
던전을 탐험하는 일 같은 건 내가 아니라 다른 길드들이 훨씬 잘할 텐데 말이다.
“도착했습니다.”
그러거나 말거나, 나와 김 팀장이 타고 있던 차는 현장에 도착했다.
부산광역시 해운대구.
그중에서도 한때 센텀시티로 불렸던 곳.
예전에 부산에 살던 군대 동기가 ‘부산 풀코스’라며 데리고 다녔던 장소 중에 하나였는데, 다시 와 보니 감회가 새로웠다.
아니, 생각해 보면 감회가 새로운 게 당연했다.
“몰라볼 뻔했네.”
멀쩡한 건물들이 없었거든.
그래도 서울 그라운드 제로의 첫인상에 비해서 꽤 상태가 양호해 보이긴 한다.
고층 아파트 몇 개는 형체가 멀쩡했으니 말이다.
마력 오염도 서울 그라운드 제로에 비해서 진짜 양호한 편이었다.
신성석을 이용하면 꽤 빠른 속도로 정화가 가능한 수준.
대전도 이곳과 상황이 마찬가지라면 정화는 크게 어렵지 않을지도 모른다.
“지구인들은 꽤 신기한 마차를 타고 다니네요? 마법으로 움직이는 건 아닌 것 같은데. 나중에 한번 몰아 보고 싶다.”
잠시 주변의 황량한 스카이라인을 감상하고 있는 사이, 우리 뒷차에서 한 여자가 기지개를 피면서 내렸다.
그녀는 당연히 루나였다.
루나는 지구에 입고 왔던 순백색의 갑옷이 아니라 청바지에 검은색 라이더 재킷을 입고 있었다.
참고로 저 옷들은 전부 신성력으로 구현해 낸 것들이다.
창조보다는 모방에 가까운 능력이긴 한데, 루나가 지닌 고유한 능력 중 하나다.
여러모로 편리한 능력이라 나조차도 부러워했던 능력이기도 했다.
“잘 어울리네.”
확실히 루나의 하드웨어가 사기적이라서 그런지, 뭘 입어도 비주얼이 빛난다.
내 칭찬에 루나는 웃으면서 대답했다.
“성하의 관심이라면 언제나 좋아요. 저 여기까지 오면서 폰으로 옷 여러 가지 봤거든요? 나중에 성하랑 단둘이 있을 때 다른 거 더 보여 드릴게요.”
“다른 거?”
“돌핀 팬츠, 비키니, 지구 남자들은 그런 거 되게 좋아한다던데, 성하 취향은 어느 쪽? 아 혹시 검은 스타킹?”
“그래, 칭찬해 준 내가 잘못이지.”
가끔 루나가 정말 성녀가 맞는지 진지하게 궁금할 때가 있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내 주위에 있는 선지자라는 놈들은 하나같이 이상한 놈들 뿐이다.
설마, 승우도 나중에 크면 저렇게 되려나?
녀석에게 시연이를 보여 주지 말아야 할 이유가 하나 더 늘었다.
그렇게 내가 루나와 가볍게 이야기를 주고받고 있는 사이, 저 앞에 설치되어 있던 군용 천막에서 사람들이 걸어 나왔다.
그들은 지체 없이 우리에게 다가왔고, 현장의 책임자로 보이는 남자가 곧 정중하게 고개를 숙이면서 말했다.
“다시 뵙습니다, 김시우 교황님. 갑작스러운 요청에 응해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도깨비 길드의 한시현이라고 합니다.”
“저희 구면인가요?”
“지난번 안양시에 생성되었던 C-51 게이트에서 뵌 적이 있습니다.”
C-51 게이트라면 내가 도깨비 길드와 처음 연을 맺었던 장소다.
내가 에덴에서 넘어온 레오를 픽업했던 곳이기도 하고.
나는 그를 향해서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다시 만나서 반갑습니다, 시현 씨. 자세한 이야기는 오면서 우리 김동식 팀장님으로부터 전해 들었어요. 최 대표님께서 직접 부탁하셨다구요?”
“예, 그렇습니다. 오직 김시우 교……황님만이 해결할 수 있다는…….”
교황이라는 호칭이 입에 잘 안 달라붙는 모양이다.
“교황이라는 호칭은 빼셔도 됩니다.”
“그럴 수 없습니다. 교황님께 예의를 갖추라는 대표님의 명령이 있었습니다.”
지난번에도 느꼈지만 이 도깨비 길드라는 집단은 회사보다는 차라리 군 조직에 가까운 느낌을 준다.
상관에 명령에 절대복종하는 집단이라고 해야 하나.
그런 점이 싫다는 건 아니다.
오히려 마음에 든다. 내 경험상 이런 부류의 사람들은 배신하는 경우가 드물기 때문이다.
“다들 피곤하실 텐데 일부터 끝냅시다.”
“알겠습니다. 그럼 곧바로 현장으로 모시겠습니다.”
그러자 시현 씨는 나와 루나를 이끌고 천막 뒤쪽으로 향했다.
그곳에는 이질적으로 생긴 구덩이가 하나 있었는데, 구덩이의 중심에 이상한 문양이 각인되어 있는 문 하나가 자리 잡고 있었다.
“저곳이 어비스 던전의 입구입니다.”
그와 동시에 느껴지는, 익숙하면서도 낯선 기운.
그것을 확인한 순간 어째서 최 대표가 나에게 도움을 요청했는지 깨달을 수 있었다.
“성하. 이 느낌은 아무래도…….”
루나의 말에 나는 미간을 찌푸리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이교도의 성지인가.”
문 너머에서 느껴져 오는 기묘한 신성력.
그리고 그것을 확인한 순간, 눈앞에 새로운 메시지 창 하나가 떠올랐다.
[어비스 던전 스러진 믿음의 성지>를 발견하셨습니다.] [해당 던전의 폭주까지 남은 시간: 11시간 52분 12초]아무래도 오늘 밤도 길어질 모양이다.
2.
[스러진 믿음의 성지]●종류: 서브 – 어비스 던전
●설명: 당신은 어비스 던전에 입장하였습니다. 해당 던전에서 알 수 없는 신성력이 느껴지고 있습니다. 던전을 클리어하여 폭주를 막아 내십시오.
●완료 조건
-던전의 코어 파괴
●보상: ???>, 신성 점수 3,000점>
“나야 좋지.”
나는 눈앞에 떠오른 메시지 창을 닫으면서 어깨를 으쓱였다.
서브 퀘스트들은 대부분 이런 식이다.
내 선택에 따라서 생성되며, 강제되진 않는 형식.
어차피 클리어할 생각이었는데 보상까지 준다니 거절할 이유가 없다.
[서브 퀘스트를 수락하셨습니다.]던전의 내부는 내가 생각했던 것과는 분위기가 영 달랐다.
“여긴 아예 다른 세상 같네. 신기하다. 안 그래요 성하?”
지난번 여주의 던전은 산속에 생성된 동굴이었다면, 루나의 말대로 이곳은 아예 다른 세상 같았다.
잿빛의 하늘과, 그 하늘 아래 자리 잡은 넓은 신전의 폐허.
지구의 풍경이라고 보기에는 너무나도 이질적인 모습.
멸망이라는 단어로 세계를 만든다면 이런 느낌이지 않을까?
확실히 내가 아직까지도 지구에 일어난 현상들에 무지한 것 같긴 하다.
당황스러운 기색을 풍기는 나와 루나와는 달리, 우리와 함께 던전으로 들어온 도깨비 길드의 플레이어들은 침착함을 유지하고 있었다.
그건 그들로서는 이 던전의 구조가 익숙하다는 이야기였다.
“전문 용어로 개방형 던전이라고 부릅니다. 흔한 형태는 아니지만, 몇 번 경험해 본 적이 있는 형태입니다. 던전들 중 가장 넓은 크기를 지닌 것으로 유명합니다.”
길잡이가 필요할 것이라고 말했던 이유가 이거였나 보다.
나는 시현 씨의 설명에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넓기는 넓네요.”
이곳은 눈으로 인지하는 범위보다 훨씬 더 넓은 것이 틀림없었다.
그것은 이곳을 뒤덮고 있는 저 기묘한 신성력만 보더라도 쉽게 짐작할 수 있었다.
만약 이곳의 신성력이 리멘의 신성력이었다면 이곳 어딘가에 있을 최 대표를 찾는 건 일도 아니었겠다만.
“최악이네.”
이곳의 상황은 썩 좋지 않았다.
이곳이 차라리 마기나 마력에 의해 통제되고 있는 상황이었다면 훨씬 나았을 것이다.
그 두 가지 기운이라면 강제로 밀어 버릴 수라도 있었을 테지만, 이 신성력이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던전의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이곳은 한때 어떤 교단의 성지였던 것이 틀림없다.
내가 통제할 수 있는 신성력은 어디까지나 리멘>에 대한 믿음을 공유하는 자들의 신성력일 뿐.
당연하게도 이교도들의 신성력은 내 마음대로 할 수 없었다.
“에덴의 이교도들은 확실히 아닌데…… 혹시 성하는 짐작이 가시나요?”
“네가 모르는데 내가 알 리가 있겠니, 루나야.”
“혹시나 해서요. 지구의 신격일 수도 있으니까.”
“지구의 신격은 아니야.”
지구에 신성력이 열린 지 한 달이 채 되지 않았다. 신격이 등장하기조차 빠듯한 시간.
따라서 나는 한 가지 결론에 도달할 수 있었다.
“이계의 신격이라.”
지구도, 에덴도 아닌 제3 세계의 신격.
이곳은 지금으로서는 이름조차 알 수 없는, 그 이계의 신격의 성지였던 것이 틀림없었다.
일이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귀찮게 흘러가게 생겼다.
나는 손으로 머리를 살짝 긁적거린 다음, 가만히 대기하고 있던 시현 씨를 바라보면서 말했다.
“최 대표의 흔적을 찾을 수 있겠습니까?”
“물론입니다. 저희 길드는 던전을 공략할 때 항상 후발대들이 찾아올 수 있도록 표식을 새겨 둡니다.”
“신세 좀 집시다.”
“아닙니다. 저희가 당연히 해야 할 일입니다.”
내 능력만 믿고 루나랑 단둘이 들어왔으면 훨씬 더 귀찮을 뻔했다.
그렇게 본격적인 탐색이 시작되었고, 나와 루나는 그들의 뒤를 조용히 따랐다.
폐허에는 수많은 기둥이 자리 잡고 있었다.
하늘 높은 줄 모르고 뻗어 있는 기둥들에선 한때 신전의 일부였다는 것을 증명하듯, 미약하게나마 신성력이 느껴지는 중이었다.
루나 역시 내 옆에 붙어서 나를 따라 그 기둥을 주시했다. 그리고 아까에 비해 다소 경직된 목소리로 말했다.
“말도 안 돼. 저희 교황청의 대신전보다 더 거대했겠는데요?”
나는 그녀의 말에 담담히 고개를 끄덕이면서 대답했다.
“대신전들은 그 교단의 교세를 판가름하기 좋은 건축물 중에 하나지. 모르긴 몰라도 이 정도 수준의 폐허라면…… 교세가 엄청났던 교단이었을 거야.”
남아 있는 흔적만 보더라도 알 수 있었다. 어쩌면 이곳은 한때 교황청에 있는 우리 교단의 대신전보다도 훨씬 거대했을 것이다.
그리고 그 거대함만큼이나 융성했으리라.
그러나 그때의 영광은 온데간데없었고, 이곳에 남은 건 오로지 폐허뿐.
폐허 사이에 스며들어 있는 미약한 신성력만이 이 이름 모를 신격의 존재를 증명……
“……잠깐만.”
나는 발걸음을 잠시 멈춰 세웠다.
아까 전부터 느꼈던 불쾌감의 원인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신성력은 자연히 발생하지 않는다. 지난번에 리멘이 말해 주었듯, 생명이 무언가를 간절하게 믿을 때 발생하는 힘.
다시 말해서 ‘생명’의 ‘믿음’ 없이는 존재할 수 없다는 뜻이다.
그 공식을 현 상황에 대입하면 다음과 같은 답이 도출된다.
“이계의 신격을 믿는 생명이 아직도 이곳에 살아 있다?”
안타깝게도 그것은 정답이었다.
카드드드득-!
폐허 틈 사이에서 셀 수 없이 많은 그림자가 몸을 일으키기 시작했고, 곧 얼굴이 기괴하게 비틀린 괴물들이 서서히 모습을 드러냈다.
녀석들의 등장에 루나는 입고 있던 옷을 갑옷으로 변형시키면서 한숨을 내쉬었다.
“성하.”
“어.”
“제가 말했죠. 성하는 항상 혀가 화근이라고.”
나는 그 말에 반박을 하려다가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자 루나가 철퇴를 소환하면서 능글맞게 이죽거렸다.
“그것도 어떻게 보면 매력일 수도 있어요. 같이 있으면 적어도 심심하진 않거든요. 항상 나를 짜릿하게 해 준달까.”
“루나야.”
“네에.”
“좀 닥쳐.”
나도 슬슬 화가 올라오려던 참이니까.
우리 교황님 좀 말려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