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lease stop our Pope RAW novel - Chapter (49)
49화
5.
녀석은 허공에서 버둥거린다.
기껏해야 1M쯤 되어 보이는 형체.
수십 개의 팔다리를 단, 끔찍한 괴물에게서는 분명한 신성력이 느껴지고 있었다.
게다가 녀석은 지금 이 순간에도 본인의 목을 휘어잡고 있는 내 팔에다가 자신의 신성력을 흘러 넣는다.
【나를 섬겨라. 나를 섬겨라. 나를 섬겨라. 나를 섬겨라. 나를 섬겨라.】
그것은 사람들끼리 주고받는 대화 같은 것이 아니었다.
머릿속을 파고드는 신탁이었으며, 동시에 사악한 집념이었다.
【나야말로 진정한 신. 너희들이 숭배해야 할 대상. 너희들의 구원자. 나를 숭배하라.】
검은색으로 덧칠해져 있는 녀석의 얼굴 한가운데서 초록색의 안광이 번뜩인다.
나는 살며시 웃으면서 그 안광을 마주했다. 그리고 조롱을 가득 담아서 말했다.
“뭐라는 거야, 사이비 새끼가.”
방금 전의 그 목소리들은 의심할 여지 없는, 신성력을 통해 내려진 신탁이었다.
다만, 리멘의 신탁과는 비교조차 할 수 없이 다르다.
리멘의 신탁은 단순히 본인의 의지를 전달할 뿐이지만, 이 녀석의 신탁은 대상에게 의지를 ‘심는다’.
최 대표를 제외한 도깨비 길드의 플레이어들이 저 모양이 된 것도 전부 그 때문이었을 것이다.
비록 잊혀지기 직전의 신격이라고 하나, 신격은 신격이다.
신성력을 경험해 보지 못한 지구의 플레이어들에게는 치명적으로 작용할 수밖에 없었다.
“김 교황께서도 그 목소리가 들리시나 보군. 참 좆 같은 목소리지 않습니까? 평생을 무신론자로 살아왔습니다. 고작 이딴 사이비 새끼한테 넘어갈 제가 아니지요. 흐하하하핫!”
물론 어디까지나 최 대표를 제외하고서 말이다.
성지에서 신격의 의지에 대항하는 것만으로도 대단한데, 그것도 모자라 본인의 마력으로 수하들을 속박하고 있지 않은가?
하여튼 괴물 같은 인간이다.
나는 너털웃음을 터뜨리는 최 대표를 향해 장난스럽게 말했다.
“종교인 앞에서 하실 말씀은 아닌 것 같은데”
“흐흐. 신이라는 새끼가 참 좆같이 생겼습니다. 어떻게, 저희 애들을 되돌릴 방법은 있겠습니까?”
최 대표는 그렇게 말하면서 내 손에 붙잡혀 있는 괴물을 노려보았다.
하긴, 의지에 대항할 정도의 실력자가 신격의 존재를 모르고 있었을 리가 없다.
나는 최 대표의 말에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면서 대답했다.
“당연하죠.”
이 괴물은 성지에 퍼져 있는 신성력을 통해서 도깨비 길드원들이 강제로 자신을 숭배하게 만들었다.
숭배를 멈추게 만드는 방법은 간단하다.
까드드드드득-!
【꺄아아아아아악-!】
“지워 버리면 됩니다.”
숭배의 대상이 되는 놈을 소멸시키면 된다.
나는 놀고 있던 왼손을 곧장 괴물의 배 속으로 집어넣었고, 그러자 녀석은 발악하기 시작했다.
우우우우우웅-.
녀석은 대지에 깃들어 있던 자신의 신성력을 나에게로 집중시켰다.
성지를 지탱하고 있던 신성력의 힘이 오로지 나를 향해 투사된다.
폐허뿐인 성지라고 하나 이곳은 결국 녀석의 성지.
신격은 본인의 성지에서만큼은 절대적인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다.
【사라져라. 사라져라. 사라져라.】
당장에라도 내 몸을 쥐어짜 낼 듯한 압력이 사방에서 몰려든다.
녀석의 신성력이 내 주위를 점거한 순간, 내 시야 전체가 신기루처럼 일렁거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신기루 사이로 새까맣게 물들어 있는 어떤 공간이 드러났다.
끝을 알 수 없는 깊은 무저갱.
나는 그 무저갱이야말로 이 녀석이 지금껏 몸을 숨겼던 장소라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사르르르르륵-.
무저갱에서 흘러나온 어둠이 나를 향해 손을 뻗는다. 정확히는 내 손에 붙잡혀 있는 괴물을 향해.
그러나 나는 아랑곳하지 않고 왼손을 움켜쥐었다. 그러자 손끝에서 이질적인 감촉이 전해져 왔다.
“찾았다.”
그 이질적인 물건을 움켜쥔 채, 곧바로 녀석의 배 속에서 왼손을 꺼냈다.
녀석의 배 속에서 나온 물건은 다름 아닌 회색빛의 작은 돌이었다.
어린아이의 손에 딱 맞을 듯한 작디작은 돌.
얼핏 보면 평범한 돌처럼 보였지만, 그 작은 돌이야말로 이 끔찍한 성지의 근원이었다.
“……성유물.”
[탄생의 돌]●아이템 종류: 성유물 – ???
●출신 차원계: ???
●설명: 누군가의 탄생이 담긴 돌. 한때는 간절한 소망이 담겨 있었으나, 지금은 그 모습을 찾아볼 수 없다. 알 수 없는 힘에 의해 잠식되어 있다.
[이계의 성유물 탄생의 돌>이 시스템에 동기화됩니다.] [어비스 던전 스러진 믿음의 성지>의 코어를 발견하셨습니다.]길게 끌 것도 없었다.
나는 신성력을 끌어올리면서 손아귀에 힘을 주었고.
파스스스-
곧바로 손가락 마디마디 사이로 회색 가루가 흘러내렸다.
그 순간이었다.
[코어를 파괴함으로써 던전 스러진 믿음의 성지>를 완료하셨습니다! 해당 던전 퀘스트를 완료합니다.] [보상 ???>의 정체가 밝혀집니다. 교황 DLC – 성유물>이 업데이트됩니다!] [지금부터 성유물 점수>를 사용할 수 있습니다. 이계의 성유물을 수집할 때마다 점수를 획득하며, 해당 점수로 리멘 교단>의 성유물을 소환할 수 있습니다.]수없이 내려가는 메시지 창.
그러나 그것도 잠시, 곧 눈앞에 어떤 환영이 투영되기 시작했다.
한 소녀가 제 몸보다 큰 돌탑 앞에 서 있다. 소녀는 동물의 가죽을 조악하게나마 이어 붙인 옷을 입고 있었다.
소녀는 고사리 같은 손으로 돌탑 앞에 작은 돌 하나를 내려놓는다.
그리고 작게 속삭이는 목소리로 말한다.
「모두가 행복하게 해 주세요.」
두 손을 모아 기도한 소녀는 천천히 돌탑에서 멀어졌고, 소녀가 사라지고 나서야 돌에서 은은한 흰색 빛이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당신은 이계의 성유물 탄생의 돌>에 각인된 신화>를 확인했습니다.] [해당 성유물의 신화>를 흡수하여 성유물 점수> 1점을 획득하였습니다!] [성유물 점수> 1점을 사용하여 교단의 성유물 하나를 소환할 수 있습니다! 다음 성유물을 해금하기 위해서는 5점이 필요합니다.]신기루처럼 일렁였던 환영은, 새로운 메시지 창이 떠오름과 동시에 눈앞에서 흩어졌다.
아마도 그건 신격이 최초로 탄생했던 순간이 아니었을까.
【끼…….】
그것으로 끝이었다.
사르르륵-.
내 손에 잡혀서 버둥거리던 괴물도, 신성력을 품고 있던 폐허도, 이곳을 이루던 모든 것이 신기루와 함께 흩어져 갔다.
그러자 비틀려 있던 것들이 제자리로 되돌아오기 시작했다.
“대표니이이이임!”
“내가…… 내가 왜 대표님을?”
도깨비 길드의 플레이어들이 세뇌로부터 풀려났고.
“대표님! 괜찮으십니까? 다들 빠르게 움직여! 부상자 확인부터!”
결계 밖에서 대기하고 있던 시현 씨의 팀도 빠르게 합류했다.
그리고 저 멀리서 우렁찬 하이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성하아아아아아! 몸은 괜찮으셔요오오오?”
나는 루나의 목소리를 들으면서 피식 웃었다. 그리고 장갑에 묻어 있던 회색 가루를 털어 냈다.
그런 내 눈앞에 빨간색 테두리의 메시지 창이 떠올랐다.
[경고! 본 던전은 1시간 뒤에 소멸합니다. 서둘러 탈출하십시오!]“보채기는.”
한때는 수많은 이들의 믿음과 소망이 담겨 있었을 성지의, 지독히도 허무한 결말이었다.
6.
던전에서 빠져나오는 건 그리 어렵지 않았다.
아이러니하게도 도깨비 길드의 플레이어들이 신격에게 세뇌되었던 것이 도움이 되었다.
성지의 주인이었던 신격이 그들을 자신의 광신도로 만들려 했을 뿐이지, 죽일 생각은 없었을 거거든.
덕분에 사망자는 없었고, 세뇌당한 이들로부터 일방적으로 공격당한 최 대표를 제외하고선 중상자조차 없었다.
대부분이 정신적인 피로감만 호소했을 뿐.
아무튼.
이곳은 어비스 던전의 입구에 설치되어 있던 도깨비 길드의 임시 천막.
“크으으으. 한잔하시겠습니까? 피 흘리고 마시는 술맛은 세상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법입죠.”
“암요 암요. 최 대표님이 뭘 좀 아시네. 술이 입에 참 쫙쫙 달라붙네요. 지구의 술도 꽤 괜찮은데요?”
“흐하하핫! 마음껏 드십쇼 루나 양! 얘들아! 내 차 가서 보드카 박스 좀 더 내와라!”
천막 안에선 술판이 벌어졌다.
최 대표는 온몸에 붕대를 두른 채로 간이 의자에 앉아 보드카를 벌컥벌컥 마시는 중이었고, 그 옆에서는 루나가 질세라 보드카 병나발을 불어 댄다.
나는 그 둘의 모습을 한심하다는 듯 쳐다보면서 말했다.
“중상 입고 그렇게 술 마시면 보통 뒈집니다.”
“전쟁터에선 독한 술로 상처를 소독하는 경우도 있지요.”
“그건 환부에다가 직접 뿌리는 거잖아 이 양반아.”
“내 새끼들에게 당한 상처는 당연히 마음에 남지 않겠습니까? 마음의 상처를 소독한다고 생각하십쇼! 흐하하하!”
“허허, 아주 그냥 지랄을…….”
“성하! 이쁜 말!”
“……진짜 지랄…….”
레오도 그렇고, 루나도 그렇고.
어째 에덴에서 넘어온 놈들은 최 대표와 쿵짝이 잘 맞는 것 같다.
나는 심드렁한 표정으로 물을 한 모금 목으로 넘겼다.
나 역시 술을 좋아하는 편이지만, 지금은 술을 마실 기분이 아니다.
기분이 심란했다.
아마도 그건.
[메인 퀘스트가 발생했습니다!] [도래]●종류: 메인 – 시나리오
●설명: 격의 시대가 도래했습니다. 앞으로 수많은 신격이 지구로 넘어올 것입니다. 그들 중에는 인류에게 호의적인 존재들도 있겠지만, 꼭 그들 모두가 인류에게 호의적이란 법은 없습니다.
그들이 지닌 신화의 힘은 당신의 교단을 강화시켜 주는 훌륭한 원동력이 될 것입니다. 그 힘을 흡수하여, 교단의 힘을 더 키워 나가십시오.
●완료 조건: 이계의 성유물> 3개 흡수
●보상: 특수 스킬 신화 추적>, 신성 점수 1만 점
눈앞에 떠오른 이 퀘스트 창 때문일 것이다.
던전을 클리어하고 밖으로 나서자마자 갱신되었던 새로운 퀘스트.
내용을 간단하게 요약하자면, 앞으로 계속해서 새로운 신격들이 지구에 나타날 것이란 소리였다.
“하아.”
여러모로 귀찮은 일이었지만, 어쩔 수는 없는 일이었다.
게다가 신격을 상대하는 일은 이미 에덴에서 몇 번 경험했다.
에덴의 신격들 중 일부가 마왕과 힘을 합쳤었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 신성력을 보유하고 있다는 것만으로 그들이 옳은 길을 걷고 있다고 말할 수는 없다.
악신>들을 추종하는 자들도 신성력을 보유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악신>이라는 것들의 정의는 간단하다.
필멸자들에게 해악을 끼치는 신격.
아까 전에 상대했던 그 녀석도 악신>이라고 부르기에 충분한 녀석이었다.
“문제는 앞으로 이런 놈들이 계속 나타날 거란 건데…….”
퀘스트 창의 내용을 통해 예상해 보면, 더더욱 많은 신격들이 지구에 모습을 드러낼 것이다.
그들 중에는 분명히 악신>들이 섞여 있겠지.
즉, 마왕을 추적하는 것 말고도 해야 할 일이 하나 늘어난 셈이다.
짜증이 날 수밖에 없는 상황.
하지만 내 짜증은 그리 길게 이어지지 못했다.
“대표님!”
술판이 벌어지고 있던 천막 안에, 도깨비 길드 소속의 플레이어 하나가 다급하게 들어왔다.
최 대표는 자신의 수하를 바라보면서 눈살을 찌푸렸다.
그리고 오른손에 보드카 병을 움켜쥔 채로 물었다.
“귀인분들이랑 좋은 자리 하고 있는 거 안 보이냐?”
“그게…… 일이 좀 생겼습니다.”
“일? 던전도 소멸했는데 무슨 일.?”
“급히 나와 보셔야 할 것 같습니다.”
남자는 잠시 숨을 돌린 다음, 나지막한 목소리로 보고를 이어 갔다.
“현재, 자신들을 ‘백명교’라고 밝힌 인원들과 대치 중입니다. 아무래도 쉽사리 물러날 생각이 없어 보입니다.”
“뭐? 그 종교쟁이 새끼들이? 걔네가 갑자기 왜!”
“그건 저희도 아직…….”
백명교.
그동안 잠시 잊고 있었던 놈들의 갑작스러운 등장.
“하아.”
나는 루나의 손에 들려 있던 보드카를 뺏어서 한 모금 목으로 넘겼다.
오늘 밤도 잠자기 글렀다.
언제쯤 편하게 집에서 잘 수 있을까?
우리 교황님 좀 말려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