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lease stop our Pope RAW novel - Chapter (50)
50화
7.
임시 천막에서 한 100m쯤 떨어져 있는 곳.
경계를 서고 있던 도깨비 길드의 플레이어들과 하얀색 코트를 입고 있는 인원들이 대치를 하는 중이었다.
지난번에 구로구 게이트에서 본 적이 있었던 백명교도들의 하얀색 코트.
숫자는 대략 삼십 정도였다.
전투는 벌어지지 않았지만 묘한 긴장감까지 느껴지는 현장이었다.
도깨비 길드에서 설치한 조명이 아니었다면 서로 분간할 수도 없을 만큼 깜깜한 밤이었다.
이렇게 늦은 시각에 저들이 이곳에 올 이유가 몇이나 있을까?
“이거, 이리도 야심한 시각에 귀하신 분들이 어쩐 일로 오셨습니까?”
최서진 대표는 특유의 넉살 좋은 말투와 함께 천천히 앞으로 나아갔다.
그러자 곧 백색의 코트를 입은 자들 사이에서 한 남자가 조용히 걸어 나왔다.
그는 나와 최서진 대표를 번갈아 가면서 쳐다본다. 그리고 정중하게 허리를 숙이면서 인사말을 건넸다.
“처음 뵙겠습니다, 최서진 대표님. 백명의 부산 교구를 책임지는 교구장, 심진규라고 합니다. 늦은 시간에 갑자기 찾아와서 죄송합니다. 나쁜 뜻으로 온 건 아니니, 적대를 거둬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남의 작전 구역에 무단으로 침범해 놓고서 나쁜 뜻이 아니라니…… 말에 어폐가 있지 않습니까?”
“혹시나 모를 재앙을 막기 위해서 이리 무례를 범했습니다. 그 부분은 저희가 깊은 사과의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모든 문제가 말로 해결될 수 있으면 전쟁이 왜 있겠소? 안 그렇습니까, 김 교황님?”
“그러게나 말입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조용히 그 남자와 뒤의 백명교도들을 주시했다.
지난번에는 은은한 마력이 느껴지던 집단이었는데, 어느새 그들로부터 분명한 신성력이 느껴지고 있었다.
그것도 삼십 명 모두 말이다.
게다가 개개인의 수준도 어중이떠중이 수준이 아니었다. 신성력이 개방된 지 얼마 안 된 것을 고려한다면, 개개인이 꽤 독실한 신앙심을 지니고 있다고 해도 무방했다.
이런 내 시선을 의식한 걸까?
심진규는 나를 바라보면서 부드럽게 웃음을 지었다.
“리멘 교단의 교주께서 재앙을 해결하신 듯하니, 참으로 다행입니다.”
“이분은 교주가 아니라 교황이시다. 언사에 유의하라, 이교도. 네가 함부로 말을 섞을 분이 아니다.”
“루나.”
“아시잖아요? 저 원래 저렇게 허여멀건하게 생긴 놈들 별로 안 좋아해요.”
루나는 어느새 다시 판금 갑옷을 입고 있었다.
당장에라도 전투를 벌일 기세. 그만큼 그녀도 백명교도들을 의식하고 있다는 뜻이었다.
나는 그런 루나의 등을 몇 번 두드려 준 다음, 나지막한 목소리로 심진규에게 말했다.
“혹시나 모를 재앙이란 게 무슨 뜻입니까?”
“교황께서도 이미 인지를 하셨으리라 봅니다. 저희 예지자 중 하나가 사이한 이계의 신격이 지구로 침범하려는 것을 감지하였습니다. 따라서 대교구장께서는 급히 저희를 이곳에 파견하신 겁니다.”
그 말에 최 대표가 비릿하게 웃으면서 말했다.
“돌발 게이트도 예지하고, 이계의 신격도 예지하고. 듣던 대로 백명교 분들의 신통력이 영 대단한 것 같습니다.”
“신통력이 아니라 신성력입니다 최서진 대표님. 저희들이 모시는 분은 무고한 인류가 고통받는 걸 원치 않으십니다. 그렇기에 저희들에게 이러한 예지력을 내려 주셨습니다.”
“그렇게나 대의를 위하신다는 분들이 병력을 끌고 와서 무력 시위를 한답니까?”
“최악의 경우를 가정했을 뿐입니다.”
“교구장 양반. 당신이 잘 모르나 본데, 우리 길드의 작전 현장에 들어올 수 있는 건 어디까지나 우리 길드의 손님뿐이다. 그리고 당신네들은 우리 길드의 손님이 아니고. 무슨 뜻인지는 아나?”
콰아아아아-!
최서진 대표의 몸에서 붉은색의 마력이 폭발하듯 뿜어 나왔다.
도저히 부상자라고 볼 수 없을 정도로 거칠고 포악한 마력이었다.
아무리 내가 치유를 좀 해 줬다고 한들, 참으로 괴물 같은 회복력이었다.
“너희들의 그 예지자란 놈들은 내가 화를 낼 것도 예지했겠군.”
존칭은 금세 사라졌고, 그 자리를 적의가 대체했다.
그것은 흡사 영역을 침범당한 맹수의 표정과 비슷했다.
최 대표는 주먹을 당장에라도 뻗을 기세로 마력들을 끌어모은다.
평범한 사람이었다면 잔뜩 질렸을 테지만, 저 심진규란 놈도 여간내기는 아닌 것 같았다.
“최서진 대표님의 상태를 보아하니 리멘 교단의 교황께서 제때 도착하지 않으셨다면 좋지 않은 일을 겪으셨으리라 사료됩니다만.”
“그래서?”
“어비스 던전의 폭주를 대비하여 미리 병력을 파견한 것인데, 이것은 오히려 칭찬받아 마땅한 일 아닙니까?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이능관리부의 김동식 팀장님.”
그러자 살짝 떨어진 곳에서 대기하고 있던 김 팀장이 난처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법적으론 문제없습니다. 어비스 던전으로 지정된 장소기도 하고, 무엇보다 저들은 던전에 입장하지 않았습니다.”
그 말을 들은 최서진 대표가 거칠게 으르렁거리더니, 심진규를 노려보면서 말했다.
“어비스 던전이 소멸된 걸 확인했으면 닥치고 돌아가면 되는 거 아닌가?”
“저희는 그저 여러분과 대화를 하고 싶었을 뿐입니다.”
“지랄도 풍년이군. 우리 애들과 대치까지 하면서 도대체 어떤 대단한 말을 지껄이시려나? 김 교황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나는 최 대표의 말에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면서 대답했다.
“들어 보고 생각하시죠?”
“크흐흐. 터무니없는 소리면 저 기생오라비 같은 놈의 대가리를 바닥에 심어 버릴 겁니다.”
“그, 저희는 책임에서 빼 주실 거죠?”
“좋은 건 나눠야 하는 법. 리멘 교단과 도깨비 길드는 사실상 운명 공동체 아니겠습니까!”
“그……렇죠.”
“좋습니다. 아무래도 저놈들의 용무는 김 교황께 있는 것 같으니, 잠시 빠져 드리지요. 이상한 낌새가 보이면 싸그리 곤죽으로 만들어 버릴 겁니다.”
역시, 최 대표도 저들의 용무가 나에게 있다는 걸 눈치채고 있었던 모양이다.
그럼에도 이렇게까지 해 준다는 건 그만큼 우리들에게 힘을 실어 주고 싶은 마음이겠지.
최 대표는 주먹을 가볍게 쥐었다 펴면서 잠시 뒤로 물러섰고, 나는 루나를 대동한 채 천천히 심진규에게로 다가갔다.
심진규는 여전히 부드러운 목소리로 나에게 말을 건넸다.
“대교구장께서 교황님께 관심이 참 많으십니다.”
“혹시 대교구장이시라는 분, 젊은 미녀분이신가?”
“그렇진 않습니다만, 그 누구보다 신실하시며 현명하신…….”
“음, 저희 교단이 이교도에 호의적인 편은 아니라, 관심은 사양하겠습니다.”
“그렇군요. 아쉽습니다.”
“제가 이틀째 제대로 잠을 못 자서 예민합니다.”
나는 목을 가볍게 풀어 준 다음, 심진규의 눈을 마주하면서 입꼬리를 올렸다.
“그러니까 빨리 본론만 이야기하고 꺼져. 이교도들.”
이 녀석들이 정말로 다른 사람들을 위해서 이곳에 왔으리라곤 생각하지 않는다.
녀석들은 이곳 어비스 던전에 이계의 신격이 있었다는 걸 알고 있었다.
즉, 백명교는 애초에 이계의 신격을 노리고 이곳에 온 셈이다.
지난번에 구로구 게이트 때도 그랬고, 이 녀석들과는 항상 좋지 않은 장소에서만 마주하게 된다.
그러니 내가 녀석들에게 호감을 가지려야 가질 수가 있나.
내 뚜렷한 적의에도 불구하고 심진규는 부드럽게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다시 한번 정중하게 고개를 숙이면서 말했다.
“대교구장께서 가까운 시일 내에 만나 뵙기를 원하십니다.”
“나를? 왜?”
“대교구장께서는 리멘 교단을 포함하여 개신교, 불교, 가톨릭, 원불교. 즉, 4대 종단의 종교인들과도 자리를 마련해 보고자 하십니다.”
백명교 이 새끼들.
그동안 조용하다 했더니, 도대체 무슨 일을 벌이고 있는 거야?
8.
길었던 밤이 지나간 후의 아침.
아침이 되자마자 꽤 큼지막한 뉴스들이 일제히 보도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뉴스들은 하나같이 백명교에 관한 것들이었다.
-전국 각성자 연합, 신흥 종교 백명교>와 업무 협약 체결!
-백명교>를 신앙으로 채택한 신성 계열 플레이어들에게 전각련 소속 대형 길드 지원 시 가산점을 비롯한 다양한 혜택이 주어질 예정.
백명교는 전각련과 아주 완벽하게 붙어먹었다.
근래에 좀 조용한 것 같아서 잠시 잊고 있었지만, 녀석들은 가만히 있었던 게 아니다.
물밑에서 계속 전각련 쪽과 접촉을 한 모양이다.
솔직히 말해서 둘이 이런 식으로 대놓고 붙어먹을 줄은 몰랐다.
적의 적은 동료다, 뭐 이런 논리 아니었을까?
“날로 먹는 건 글러 먹었다.”
나는 한숨을 내쉬면서 고개를 가로저었다.
지금 이곳은 리멘 교단 신전의 교황 집무실.
어젯밤에 심진규라는 놈이 했던 이야기도 그렇고, 오늘 아침에 보도된 백명교와 전각련의 이야기도 그렇고.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 이야기를 나눌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다.
이곳에 모인 인원은 나를 포함해서 총 다섯.
나, 레오, 루나, 민수 씨, 마지막으로.
“한배를 탔으니 이런 일도 함께 헤쳐 나가는 것이 맞지요. 흐흐흐.”
“부상도 입으셨는데 좀 쉬시지.”
“밥 든든하게 먹으면 금방 낫습니다. 그리고 앞으로 신전의 경비견이 되기로 마음먹었는데, 미리 눈에 익혀 둬야 합니다.”
신전의 경비견을 자처하는 남자, 최서진 대표도 함께였다.
“경비견을 해 달라 말씀드린 적은 없는데…….”
“그럼 정말 애완견 해 드립니까?”
“아니 글쎄, 왜 자꾸 개냐구요.”
“개는 충직한 동물입니다. 주인을 배신하지 않지요.”
“……어지럽네 정말. 그냥 개 말고, 친구. 친구로 합시다.”
“친구라! 최고의 표현입니다. 저희 도깨비 길드는 앞으로 리멘 교단에게 부끄럽지 않은 친구가 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안 그래도 심란한데, 최 대표 때문에 더 심란하다.
원래는 도깨비 길드와의 동맹도 상황을 좀 두고 볼 생각이었다.
그래서 다른 인원들이 반대한다는 명분으로 뒤로 미뤄 둘 생각이었는데, 레오와 루나, 거기에 민수 씨마저도 도깨비 길드와의 동맹에 적극적으로 찬성해 버린 것이다.
다른 사람은 최 대표에게 호감이 있으니 그렇다고 쳐도, 민수 씨가 의외였다.
하지만 나는 곧 민수 씨가 적극적으로 동맹에 찬성했던 이유를 알아차릴 수 있었다.
“도깨비 길드의 도움만 있다면 조금 더 수월하게 신성석 팔찌를 유통할 수 있을 겁니다.”
“민수 형제님. 도깨비 길드와 유통이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도깨비 길드의 모기업은…….”
민수 씨가 유창하게 설명을 이어 나가려 할 때쯤, 최 대표가 조용히 손을 들면서 말했다.
“자기소개는 스스로 하는 법이지요. 민수 군. 제가 설명을 이어 나가겠습니다.”
“알겠습니다, 최 대표님.”
최 대표는 씨익 입꼬리를 올리면서 민수 씨의 말을 이어받았다.
“무엇을 유통하시려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마약 같은 불법적인 상품만 아니라면 저희 쪽에서 도움을 드릴 수 있습니다. 혹시 유선 그룹이라고 아십니까?”
“알죠. 전자제품으로 유명하잖아요.”
유선 그룹.
재계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재벌가로 기억한다.
“유선전자도 그룹의 계열사니까 그렇다고 볼 수 있죠. 아무튼, 유선 그룹은 유통 쪽으로도 꽤 알아줍니다. 제 친동생 놈 하나가 유선유통에 대표로 있으니, 한번 알아보겠습니다.”
“아, 친동생분이 대표로…… 잠깐만요. 유선 그룹, 재벌 아니었습니까?”
“그렇습니다.”
“……에이, 설마.”
“생각하시는 설마가 맞습니다. 하하! 좀 부끄럽네요.”
……그러니까, 이 근육질의 맹수가 재벌가의 자제라는, 그 뜻인가?
내가 혼란스러워하고 있던 찰나, 민수 씨가 내 귀에 조용히 속삭였다.
“최서진 대표는 재벌 4세입니다. 도깨비 길드가 전각련에 속하지 않았음에도 버틸 수 있는 이유지요. 포모스 선정, 세상에서 사람깨나 죽여 봤을 재벌 4세 1위로 선정을…….”
“그런 건 제발 선정하지 마!”
와, 근데 진짜 어지러워 죽겠네. 내가 여태까지 편견이 있었던 걸까? 재벌 4세라는 건 정말 의외다.
내가 혼란스러워하자 최 대표는 털털하게 웃으면서 말했다.
“부모님 덕을 보지 않았다곤 말할 수는 없겠지만, 도깨비 길드는 저와 제 새끼들이 직접 키운 겁니다. 그것만큼은 오해하지 말아 주십쇼.”
“아, 그런 오해는 안 합니다.”
원래부터 실력 하나만큼은 확실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그냥 뜻밖의 배경에 당황스러울 뿐이지.
천생 인간야차처럼 살아왔을 사람이 알고 보니 다이아 수저였다니, 이 얼마나 충격적인 반전인가?
뜻밖의 곳에서 도움을 얻게 될 것 같다.
새로운 신도도 새로운 신도인데, 교단을 운영하기 위해서 안정적인 자금원이 시급한 시점이거든.
장담컨대 신성석 팔찌는 대기업의 도움까지 더해진다면 진짜 메가 히트 상품이 되어 줄 것이다.
나는 목소리를 가다듬은 다음,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좋습니다. 자세한 건 나중에 제대로 논의를 해 보도록 하죠.”
“언제든 좋습니다.”
“그럼 슬슬 본격적으로 회의를 시작해 보도록 할까요?”
오늘 내가 이렇게 사람들을 모은 이유.
“백명교에서 우리에게 신성력과 관련된 협의체 구성을 제안해 왔습니다. 이에 관하여 여러분과 이야기를 나누고자 합니다.”
그것은 백명교에 관한 일을 논의하기 위해서였다.
정확히는.
“저는 백명교를 교단의 적으로 지정하고자 합니다.”
우리 교황님 좀 말려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