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lease stop our Pope RAW novel - Chapter (51)
51화
16. 불협화음
1.
이교도.
말 그대로 우리와 다른 종교를 지니고 있는 사람들 되시겠다.
우리 리멘 교단은 이교도들에게 배타적인 성향을 지닌 교단은 아니었다.
애초에 에덴에는 여러 신격들이 있었고, 그들을 따르는 몇몇 교단과는 동맹을 맺기도 했었다.
그건 어찌 보면 당연한 결과기도 했다.
마왕이라는 공동의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일부 광신도들은 이교를 배척하며, 이교도들을 강제로 개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그들 중 일부는 실제로 행동에 나서기도 했고.
하지만 그런 이들은 곧 교황청의 이단심문관들에 의해 소리소문없이 사라졌다.
그것은 어디까지나 리멘의 의지였다.
-강압과 공포로부터 피어오르는 것은 믿음이 아니야. 오로지 복종일 뿐이지. 나는 내 아이들에게 복종을 바라지 않아.
그녀가 언젠가 나에게 해 줬던 말.
그 말에서 알 수 있다시피, 우리 교단은 오히려 이교도들을 배려해 주는 편이었다.
그러니까 내가 지금 왜 이 이야기를 하고 있느냐면.
“그 이교도 새끼들 본거지만 딱 알려 주시라니까요? 나랑 레오가 쳐들어가서 싸그리 지워 버리고 온다니까?”
“레벤톤 경. 그것은 교리에 맞지 않습니다. 리멘께서는 존중을 받고 싶으면 다른 이를 먼저 존중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교도들을 막무가내로 배척해서는…….”
“그 이교도 놈들이 최 대표님이랑 교황 성하 담그려고 했는데?”
“이런 씹어먹을 놈들. 성하. 성전을 선포해 주시겠습니까? 대주교 레오 루멘, 기꺼이 성전의 최전선에서 사악한 이교도들을 말살하겠습니다!”
교황의 집무실에서 한창 논의가 진행 중이었기 때문이다.
나는 당장에라도 집무실을 뛰쳐나가려는 레오와 루나를 바라보면서 이마를 짚었다. 그리고 눈을 슬며시 감으면서 말했다.
“……민수 씨랑 최 대표님 얼굴 보기 부끄러우니까 좀 가만히 있어 봐.”
“흐하하하! 아주 시원시원들 하셔서 저는 좋습니다! 성전에 저희들도 끼워 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이참에 종교쟁이 놈들 싹 다 밀어 버립시다!”
“저, 최 대표님. 저희 리멘 교단도 종교 단체입니다.”
“아, 그렇습니까 민수 군? 이거 그럼 리멘 교단 빼고 나머지 종교쟁이, 로 정정하지요.”
“좋군요. 감사합니다. 아, 그리고 조만간 도깨비 길드를 주인공으로 한 미튜브 컨텐츠를 하나 하고 싶습니다. 혹시 가능하겠습니까?”
아무래도 회의는 글러 먹은 듯한 분위기.
한쪽에선 성전을 부르짖고 있고, 한쪽에서는 비즈니스가 진행 중이고.
개판도 이런 개판이 없다.
나는 그 개판을 잠시 주시하면서 부드럽게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고개를 작게 끄덕인 다음.
콰아아아앙!
집무실의 책상을 주먹으로 내리쳤다.
효과는 확실했다.
방금 전까지만 하더라도 시장 바닥 같았던 집무실의 분위기가 빠르게 내려앉는다.
그들은 내 눈치를 슬쩍 살폈고, 루나가 배시시 웃으면서 조심스럽게 말했다.
“헤헤, 성하. 갑자기 왜 그러실까.”
“다들 꼴리는 대로 하는 것 같아서, 나도 그냥 책상 한번 두드려 보고 싶었어. 왜, 불만 있냐? 불만 있으면 네가 교황 하든가.”
“그럴…… 리가요. 헤헤.”
내 눈치를 살피던 루나가 재빠르게 목소리를 낮춘다.
나머지 인원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들은 저마다 목소리를 가다듬으면서 의자에 바로 앉았고, 나는 그런 그들을 바라보면서 말을 이어 갔다.
“아무튼, 백명교를 적으로 규정할 생각입니다. 혹시 질문 있으신 분?”
그 말에 민수 씨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백명교가 저희 교단과 경쟁하는 관계에 놓여 있다는 건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성하께서 말씀하시는 ‘적’이라는 것은 단순한 경쟁의 관계가 아니지 않습니까?”
“교류를 포함한 모든 것을 제한합니다. 리멘 교단은 백명교와 공존할 수 없습니다.”
“제가 느끼기에는 살짝 섣부른 결정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저희가 오해를 하고 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신중하게 생각해야 한다는 입장. 어쩌면 저쪽이 정론일 수도 있다.
그리고 나 역시 민수 씨의 입장을 이해할 수 없는 건 아니었다.
현재까지 백명교가 보여 준 모습은 굉장히 단편적이다. 즉, 상대방을 판단할 수 있는 근거가 부족한 것이다.
이걸 어떻게 설명해 줘야 하나 잠시 고민하려던 찰나, 가만히 있던 루나가 나를 지그시 바라보았다.
본인이 대신 설명하고 싶다는 제스처였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허락했고, 루나는 민수 씨를 바라보면서 다소 부드러워진 목소리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저희가 다짜고짜 백명교를 적으로 규정하는 건 아니에요. 이미 저쪽에서는 저희를 적으로 규정했으니, 저희들도 그에 맞춰서 대응하는 거죠. 어젯밤에 성하랑 제가 상태가 안 좋았다면, 분명 사고가 났을 겁니다.”
심진규라는 놈이 데려왔던 30명 전원은 상당한 실력자들이었다.
그들에게 다른 마음이 없었다면, 백명교 놈들이 굳이 도깨비 길드와 대치를 할 필요가 있었을까?
녀석들은 여차하면 도깨비 길드를 처리하고 목적을 달성할 생각이었을 것이다.
이계의 신격에 대한 정보를 알고 있었다는 것이 그 증거였다.
다만, 나와 루나가 떡하니 버티고 있었기 때문에 포기했었던 것일 뿐.
루나는 그렇게 말한 다음 조용히 손을 책상 위에 올렸고, 곧 한껏 진지해진 표정으로 민수 씨에게 말했다.
“성하께서 그들을 적으로 인식하고 계신다면, 그것은 교단의 뜻이 되는 겁니다. 성하께서는 리멘님의 첫 번째 사도이시자, 유일한 대리자시니까요. 성하의 뜻을 헤아리는 것은 좋지만, 함부로 의심하셔서는 안 됩니다.”
저렇게 보여도 루나는 선지자다. 우리 교단 내에서 서열도 높고, 그만큼이나 교리에 빠삭하기도 했다.
그런 루나가 저렇게 말하니 좀 성직자 같은 느낌이 든다.
루나의 말에 민수 씨는 고개를 숙이면서 대답했다.
“죄송합니다.”
“죄송하실 것까지야. 민수 형제님의 신중함은 언젠가 교단의 큰 힘이 되어 줄 거랍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녀는 말하다가 말고 갑자기 민수 씨의 손을 살짝 잡으면서 입꼬리를 올렸다.
“민수 형제님은 잘생겼으니까, 그걸로 된 겁니다. 교리 같은 거야 당장 모를 수 있지! 앞으로 우리가 잘 가르쳐 주면 되니까. 그렇죠, 성하?”
“잘 가다가 갑자기 왜 그러냐?”
“민수 씨, 아니 민수 형제님 능력도 좋으시다면서? 잘생겼지, 능력 좋지. 어? 이만한 새신자가 또 어디에 있다고.”
……그래, 성직자는 무슨.
잠깐이라도 루나에게서 경건함을 기대했던 내가 바보지.
나는 루나를 바라보면서 크게 한숨을 내쉰 다음,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었다.
“회의 끝.”
다시는, 다시는 이 조합으로 회의 안 해야지.
2.
“이쪽입니다.”
회의를 끝낸 우리는 곧바로 자리를 옮겼다.
자리를 옮겼다고 해 봤자 그렇게 멀리 옮긴 것도 아니다. 신전 내부에 있던 교황의 집무실에서, 신전 외부에 위치한 축성소로.
축성소에는 레오가 밤새 축성한 신성석 팔찌들이 자리 잡고 있었는데, 벌써부터 그 개수가 500에 다다른다.
아마 레오가 틈틈이 축성을 해 왔던 듯싶다.
만들어진 신성석 팔찌의 효능은 내가 생각했던 것 이상이었다.
최상급 마정석을 신성석으로 변환하여 만든 덕분일까, 기대 이상의 결과물이 나왔다.
[신성석 팔찌]●아이템 종류: 장신구 – 팔찌
●제작자: 레오 루멘
●설명: 최상급 신성석의 조각을 사용하여 제작된 팔찌. 리멘 교단의 대주교, 레오 루멘이 직접 축성하여 탁월한 효능을 자랑한다. 사용자의 자연 회복력을 대폭 상승시켜 주며, 신성력을 보유한 플레이어에게는 신성력 능력치 레벨을 1 높여 준다.
시스템으로 확인되는 효과는 두루뭉술한 편이었다.
하지만 나는 대강 이 팔찌의 효능을 짐작할 수 있었다.
자잘한 상처쯤은 반나절 만에 흔적조차 없어질 것이며, 만성적인 질환에도 차도가 있을 것이다.
심지어.
“교황님. 정말로 이 팔찌가 그…….”
“맞습니다. 탈모에도 효과가 있는 수준으로 잘 나와 줬네요.”
오랜 시간 인류를 괴롭혀 온 불치병, 탈모에조차도 분명한 효능을 지니고 있으리라.
그것은 이미 에덴에서의 수많은 사례를 통해 검증된 효능이기도 했다.
손톱보다 작은 양의 신성석이 박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역시 최상급 신성석은 최상급 신성석이었다.
“김 교황님. 제가 한번 착용해 봐도 되겠습니까?”
흥미롭게 팔찌를 지켜보고 있던 최 대표가 말했다.
나는 즉시 고개를 끄덕였다.
“얼마든지요.”
“그럼.”
최 대표는 큼지막한 손으로 팔찌를 오른쪽 손목에 착용했다.
그리고 잠시 후.
우우우웅-.
팔찌에서 슬며시 흘러나온 신성력이 빠르게 최 대표의 몸속으로 파고든다.
원래는 저렇게까지 극적으로 반응하진 않는 놈인데, 최 대표의 방대한 마력량에 반응하는 모양이었다.
“허.”
최 대표는 작게 감탄사를 내뱉었다. 그러더니 대뜸 마력을 끌어올려서 본인의 왼손에다가 작은 상처를 새겼다.
당연한 말이겠지만, 상처는 눈 깜짝할 사이에 사라졌다.
“이거, 엉터리 연금술사들이 만드는 포션 따위와는 차원이 다릅니다. 굉장하군요.”
“최 대표님의 회복력이 원체 어마어마한 편이라서 더욱 그렇습니다. 사용자의 회복력을 극대화시켜 준다고 보시면 됩니다.”
“일반인들에게도 효과가 있습니까?”
“예. 하지만 최 대표님만큼의 효과를 기대할 수는 없을 겁니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굉장한 아이템입니다. 아니지, 성물이라고 부른다고 하셨지요? 유명한 마이스터들도 이런 건 못 만들어 낼 겁니다.”
“효과가 영구적이지는 않습니다. 신성석에 담겨 있는 신성력이 소진되면 평범한 팔찌가 되어 버릴 거거든요. 게다가 치유 능력이 발휘되면 발휘될수록 빠르게 소진됩니다. 목숨이 위험할 정도의 중상에는 악화를 잠시 지연시켜 줄 정도밖에 안 되구요.”
“그것만으로도 이미 획기적입니다.”
최 대표는 깨끗해진 본인의 왼손을 보면서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생각이 바뀌었습니다.”
“예?”
“아무래도 이 물건의 유통을 도와드리는 건 힘들 것 같습니다.”
갑작스러운 선언에 당혹감을 표하려던 찰나, 최 대표가 덥석 내 손을 잡으면서 눈을 빛냈다.
“판매처를 따로 두신 게 아니라면 만들어진 전량, 저희가 구매하겠습니다.”
“전부 다요?”
“플레이어들의 생존률을 높일 수 있는 장비입니다. 그것만으로 가치는 충분합니다.”
치유 계열 플레이어들이 부족하다는 건 익히 들어 알고 있었다.
신성 계열 플레이어들의 등장으로 치유 능력자들의 품귀 현상은 해소될 거라 생각하지만, 최 대표가 보기에는 아니었던 모양이다.
“신성 계열 플레이어들이 등장한 지 아직 1주일이 채 안 되었습니다. 모두가 김 교황님 수준의 치유 능력을 보유한 건 아니잖습니까?”
“그렇긴 하죠.”
“따라서 신성 계열 플레이어들의 수준이 올라오기 전까지는 치유 능력은 여전히 귀할 겁니다.”
“협력 관계니까 어느 정도는 저희가 그냥 드릴 수 있는데.”
내 말에 최 대표는 어림도 없다는 듯이 강하게 고개를 가로저었다.
“가까운 관계일수록 금전 관계는 확실히 하는 법입니다. 게다가 이렇게나 귀한 것을 무상으로 받을 수는 없습니다.”
최상급 신성석이야 마정석 광산에서 채굴한 거고, 팔찌 역시 마이스터 길드에서 저렴한 재료를 통해 만든 것이다.
덕분에 생산 원가는 엄청 저렴한 편이라서, 그리 비싸게 팔 생각은 없…….
“하나당 1억. 어떻습니까?”
……다가 생겨 버렸다.
방금 잘못 들었나?
“팔찌 하나당 1억. 전량 매수하도록 하겠습니다. 대신 추후 생산되는 팔찌 역시 저희 쪽에 납품해 주셨으면 합니다.”
“전량은 500개입니다만.”
“500억이군요. 좋습니다. 계약서를 쓰는 즉시, 리멘 교단의 계좌로 입금해 드리겠습니다.”
500억.
태어나면서부터 단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했던 금액.
대형 길드의 대표에게는 큰 문제가 없는 금액인 듯했지만, 나에게는 살짝 아득한 수준의 금액이었다.
“아.”
눈이 탁 트인다.
왜 여태까지 일반인들에게만 물건을 팔 생각을 했었던 걸까?
애초에 그 전략부터가 틀려먹었다.
노다지가 이리도 가까운 곳에 있었거늘, 왜 굳이 다른 곳에서 찾으려 했던가.
“최 대표님.”
“예, 김 교황님.”
“리멘 교단과 함께하게 된 것을 다시 한번 축하드립니다. 자, 그럼 어디 한번 본격적으로 계산기를…… 아니, 친목을 다지도록 해 볼까요?”
신앙만으로는 교단을 운영할 수 없는 법.
아무래도 우리 교단에 귀하신 분이 오신 모양이다.
우리 교황님 좀 말려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