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lease stop our Pope RAW novel - Chapter (54)
54화
7.
마왕의 화신체.
마왕의 편린이 스며든 존재를 지칭하는 단어다. 특이 사항으로는 동족을 먹는 것을 즐기며, 끔찍한 수준의 마성을 지니고 있다는 것 정도.
여기서 말하는 마성은 마기와는 사뭇 다른 개념이다.
마기는 단순히 에너지에 그치지만, 마성은 말 그대로 악마로서의 성질을 의미한다.
마왕의 편린을 보유한 존재답게, 필멸자의 몸임에도 불구하고 그 누구보다 순수한 악마에 가깝다.
마치 저 녀석처럼.
“아직 제대로 각성은 못 한 것 같고.”
나는 오른손으로 잡아 뜯었던 녀석의 오른팔을 바닥에 던지면서 헛웃음을 쳤다.
방금 전에 뜯어냈음에도 불구하고 그 짐승 같은 놈의 오른팔은 재생되어 있었다.
그야말로 경악에 가까운 재생력이었다.
아마 방금 전에 동족을 포식한 덕분에 생겨난 재생력일 것이다.
에덴에서도 몇 번 상대해 본 적 있는 존재들이다.
녀석이 입은 죄수복 비스무리한 옷을 보았을 때, 아마도 다른 놈들은 구금된 이 녀석을 데려가기 위해 테러를 감행한 것으로 보였다.
이렇게나 위험한 녀석이 어째서 이능관리부 건물에 구금되어 있었는지는 모르겠다만, 차라리 다행스럽기도 했다.
만약 우리가 이 자리에 없었다면 녀석들은 이 화신체를 데리고 탈출에 성공했을 것이다.
그랬다면 표현하기 힘든 참담한 일이 벌어졌겠지.
최악의 경우에는 화신체를 통해 마왕이 모습을 드러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화신체는 마왕이 현신할 수 있는 신체기도 했으니까.
“그나마 다행이네.”
물론 마왕의 화신체라고 해서 모든 화신체에 마왕이 현신할 수 있는 건 아니었다.
마왕의 화신체에 마왕이 강림하기 위해서는 화신체의 마성이 극에 다다라야만 한다.
즉, 화신체가 수많은 영혼을 타락시켜야만 현신할 수 있다는 소리다.
다행스럽게도 눈앞의 이 소년은 아직까지 그 정도로 마성이 짙어지진 않았다.
다만.
[패시브 스킬 멸악의 의지>가 상대방을 악인으로 규정합니다!] [플레이어 박수호>의 악행을 나열합니다.] [폭행>, 살인>, 집단 따돌림>, 식인> 등 17건]마왕의 화신체답게, 싹수부터 노랗다는 것 정도는 파악할 수 있었다.
15살쯤 되어 보이는 녀석이 기록한 악행들치고는 하나같이 살벌했기 때문이다.
거기에 집단 따돌림>이라는 카테고리가 생성되어 있는 걸 보면, 대충 어떤 놈인지도 파악할 수 있었다.
크르르르르륵-!
“통제가 안 되나 보네. 너, 식인은 처음인 모양이다?”
눈앞의 그 짐승은 검은색의 마기를 뿜어내면서 이빨을 드러내고 있을 뿐, 쉽사리 나에게 달려들지 못했다.
내 눈에는 보인다.
녀석의 몸에서 마기들이 폭주하고 있었다. 식인>이라는 행위를 통해 마기를 흡수했지만, 통제가 쉽지 않은 모양이다.
짐승에 가까운 상태도 그것을 증명해 준다.
식인>에 익숙했다면, 식인> 직후에도 이성을 유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녀석에게는 오로지 흉악한 본능만이 남아 있었다.
“할머니가 예전에 해 주신 말씀이 있어. 물지도 못할 거면, 이빨도 드러내지 마라, 그리고 미친개는 몽둥이가 답이다. 뭐, 이런 거.”
크르르르륵!
녀석은 입가에 피를 잔뜩 묻힌 채로 나를 경계했다. 녀석에게 오히려 짐승 같은 본능만이 남아 있기 때문에 더더욱 경계가 심했다.
신성력은 마기의 극상성.
그리고 내 신성력은 그중에서도 파마의 힘을 유독 강하게 타고난 기운이었으니, 본능적으로 두려워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겁이 나면 도망쳐야지. 이 짐승 새끼야.”
길게 잴 필요도 없었다.
나는 곧바로 녀석에게 달려들어 녀석의 가슴팍에 주먹을 꽂아 넣었다.
내 몸이 녀석의 몸에 접촉한 순간, 통제에서 벗어난 사악한 마기들이 사방에서 나를 덮쳐 왔다.
마기는 나를 단번에 집어삼키기라도 할 듯, 아가리를 쩍 벌린 채로 나를 뒤덮었다.
그 속에서 마왕의 화신체는 본능적으로 몸을 움직였다.
파아아아앗-!
내 주먹에 뒤로 밀려 나간 녀석이 빠르게 몸을 뒤집었다. 그리고 허공에 마기 덩어리를 생성시키더니, 그 덩어리를 받침대 삼아 나를 향해 쇄도했다.
녀석의 손에서 돋아난 검은색 손톱이 묵빛으로 빛났다.
끼기기기긱!
손톱이 내 몸에 둘려 있던 신성 보호를 거칠게 긁었다. 쇠를 긁는 듯한 찢어지는 소리가 귀를 잠시 괴롭힌다.
그러나 녀석의 손톱은 그 두터운 보호를 뚫어 내지 못했다.
마력으로 이루어진 보호막이었다면 갈기갈기 찢고도 남았을 테지만, 신성 보호에는 흠집조차 남기지 못했다.
나는 그 틈을 놓치지 않았다. 손톱을 휘두르고 잠시 몸이 열려 있던 녀석의 목을 오른손으로 강하게 움켜쥐었다.
“케에에에엑.”
화신체는 어떻게든 벗어나려고 발버둥을 친다.
평범한 인간이었다면 목뼈가 부러지고도 남을 수준의 악력이었지만, 녀석은 개의치 않고 몸을 비튼다. 그래도 몸을 움직일 수 없자, 곧 고개를 돌려 나를 노려보았다. 나를 바라보는 녀석의 붉은 눈동자는 악의로 가득 차 있었다.
[상대방의 강력한 저주가 무효화됩니다!]붉은색 눈동자 너머에 자리 잡은 건 오로지 나를 향한 맹목적인 증오뿐이었다.
까드드득- 까드드득-!
어느새 녀석의 몸에서 흘러나간 마기가 사방을 마구잡이로 침식하기 시작했다.
바닥부터 시작해서 벽, 구금실의 철창까지 녀석의 마기에 침식되어 검은색으로 흐물거리더니, 그 침식으로부터 수십 개의 촉수가 뻗어져 나왔다.
촉수가 노린 것은 내가 아니라 마왕의 화신체였다.
마기에 침식된 바닥은 내 손에 붙잡힌 화신체를 어떻게든 회수하려는 듯, 화신체의 몸을 휘감고 강하게 끌어당겼다.
하지만 나는 녀석들이 화신체를 회수해 가는 것을 지켜볼 생각이 없었다.
“깔끔하게 여기서 끝내자.”
[신성력이 집중됨에 따라 패시브 스킬 성화>가 발동합니다.]내 발밑에서 발동한 성화는 침식을 잡아먹으며 빠르게 뻗어 나갔다.
눈을 몇 번이나 깜박였을까, 어느새 성화는 층 전체를 가득 메웠다.
마기를 태워 없애는 성스러운 불길 속, 나는 오른손에 쥐고 있던 소년의 몸 위에 또 다른 성화를 피워올리며 말했다.
“악한 자는 자기의 악으로 말미암아 멸하리라.”
성화의 불길이 거세게 불타올랐다.
8.
38층을 집어삼켰던 성화의 불길은 마기의 침식이 모두 제거되자 알아서 사그라들었다.
한낮에 이능관리부의 제2청사에 가해진 초유의 테러 사태는 그렇게 마무리되었고, 나는 마왕의 화신체를 불태웠던 그곳에 가만히 앉아서 일행을 기다렸다.
내 앞에는 한때 마왕의 화신체였던 회색 재가 소복하게 쌓여 있었다.
“성하. 옥상으로 향하던 자들을 제압하였습니다. 또한 옥상에서 흑마법진을 발견하여, 흑마법진 역시 철저하게 무력화시켜 두었습니다.”
“어떤 흑마법진이었는데?”
“인간의 피와 살을 이용하여 거대한 폭발을 일으키는 성질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마법진의 수준과 규모로 보았을 때, 건물이 통째로 무너졌을지도 모릅니다.”
“잘했네. 네가 많은 사람들을 구했다, 레오.”
레오는 내 칭찬에 겸손하게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내 앞에 쌓여 있던 재를 조용히 바라보았다.
“저는 성하의 명을 따랐을 뿐입니다. 하온데 성하. 이 재는 무엇입니까.”
“마왕의 화신체. 놈들이 노렸던 게 이거였던 모양이야.”
마왕의 화신체라는 말에 레오의 표정이 크게 일그러졌다.
“아까부터 느껴졌던 마성의 정체가 이것이었나 보군요. 성하. 마왕의 화신체가 나타났다는 것은…….”
“마왕들이 꽤 많은 추종자들을 모았다는 뜻이겠지. 이 녀석은 분노의 마왕 쪽이었어.”
마왕의 화신체는 교단의 선지자들과 비슷한 개념이다.
선지자가 하나가 아니듯, 마왕의 화신체들도 여럿이다. 그중에서 마성이 극에 다다른 존재들만이 비로소 마왕의 그릇이 되어 줄 수 있는 것이다.
게다가 각 교단들이 각각 선지자를 보유하고 있듯, 마왕들 역시 마찬가지다.
마왕이 일곱이니만큼, 각 진영에 걸맞는 화신체들이 존재한다.
방금 전에 내가 소멸시켰던 이 녀석은 분노의 화신체 중 하나였다.
“자세한 건 직접 확인해 보면 될 문제긴 하지. 레오야. 솔직히 답해라. 얼마나 살려 뒀냐?”
“7할은 살려 뒀습니다. 나머지 3할은 몸이 원체 약한 탓에 절명해 버리더군요.”
“반으로 접었어?”
“악마에게 영혼을 팔아넘긴 자들입니다. 그들에게 합당한 대가를 요구했을 뿐입니다.”
“……그래, 7할이나 살려 둔 게 어디야? 그나저나 루나는 지금…….”
“성하아아아아!”
“호랑이도 제 말 하면 온다더니.”
때마침 루나가 등장했다.
루나의 오른손에는 누군가의 머리채가 잡혀 있었는데, 자세히 보니 루나가 한 여자를 질질 끌고 오고 있었다.
그녀의 힘이라면 가볍게 들 수도 있었겠지만, 루나는 유독 흑마법사들을 증오하는 편이다.
루나가 어렸을 적, 흑마법사에게 부모님을 잃었던 기억 때문일 것이다.
그녀 딴에는 저렇게 쓰레기 취급을 해 주는 것만으로도 꽤 봐준 걸 거다.
원래는 쓰레기보다 못한 취급을 해 버리거든.
“필요한 정보를 뽑아내는 건 저보다 레오가 잘하니까, 일부러 살려는 뒀어요.”
“너 다친 곳은 없어?”
“당연하죠! 저 걱정해 주시는 거예요? 부끄러워라.”
“그런 말은 보통 얼굴을 붉히면서 해야 신빙성이 있단다.”
“후후, 솔직하지 못하시긴. 인터넷에서 봤는데, 성하 같은 분을 츤데레라고…….”
“그런 것 좀 제발 보지 마.”
리멘 교단, 이렇게 가도 괜찮은가?
도대체 인터넷에서 자꾸 뭘 보고 다니는 거야. 배움이 빠른 편이라지만, 이건 빨라도 너무 빠른걸.
나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리고 루나의 옆에 뻘쭘하게 서 있던 김동식 팀장을 바라보았다.
“팀장님. 다치신 곳은 없으십니까?”
“아, 예. 아까 이세희가 저를 공격하긴 했는데, 어찌 된 영문인지 멀쩡합니다.”
“다행이네요. 리멘께서는 우리 김 팀장님을 참 예뻐하십니다.”
“……아! 아까 그게 설마?”
“제가 예전에 축복을 하나 걸어 드렸거든요.”
“정말, 정말 감사합니다!”
“김 팀장님 부인분에게 식사를 대접해 드리겠다고 약속했는데, 정작 김 팀장님이 빠져서야 되겠습니까? 부인분께 미움받기 싫습니다.”
나는 그렇게 말하며 싱긋 미소를 지었다.
보호의 축복은 2주 전에 걸어 두었다. 우리 교단의 일을 많이 도와주고 있는 김 팀장에게 뭐라도 보답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2주라는 시간이 지났음에도 흑마법사의 공격을 몇 번이나 방어해 줬을 정도면, 아마 김 팀장 마음속에도 리멘을 향한 믿음이 어렴풋이 자리 잡고 있는 모양이다.
축복이란 게 원래 그렇다.
리멘을 모시는 사람이 내려 준 축복은, 당연히 리멘을 향한 믿음을 지닌 자들에게 더욱 뛰어난 효과를 발휘하는 법이니까.
어찌 되었든 그의 신앙심은 나중에 차차 확인하도록 하고, 그것보다 중요한 걸 물어봐야겠다.
“전투 과정에서 이능관리부가 구금하고 있던 인원 하나를 제거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김 팀장은 내 말에 미간을 작게 찌푸리며 되물었다.
“박수호, 그 녀석이겠군요. 38층에 구금되어 있던 인원은 박수호뿐이었을 테니까요.”
“알고 계셨군요.”
“당연합니다. 박수호, 나이는 16세. 플레이어 각성 시기는 작년 3월. 각성자 아카데미의 동급생 둘을 폭행 후 살인. 그 밖에도 여러 범죄 혐의에 연루되어 있었죠. 혐의가 밝혀져서 이곳에 구금된 건 2일 전입니다.”
한마디로 원래부터 개새끼였단 소리다.
이쯤 되니 의문이 하나 생긴다.
“그 정도면 당장 소년 교도소에 처박아야 하는 거 아닙니까?”
내 질문에 김 팀장은 부끄럽다는 듯 고개를 숙였다.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알 것 같네요.”
그의 태도만 보더라도 어떻게 된 일인지는 쉽게 예상할 수 있었다.
함부로 건드리기 힘든 놈이었다는 뜻이다.
“유력인의 자제, 대충 그런 놈이었군요. 제가 아는 유선호 장관 성격이라면 그런 건 안 가렸을 것 같습니다만.”
“안타깝게도 이능관리부조차 계파가 나뉘어 있습니다. 정말, 정말 죄송합니다.”
“예전에도 말씀드렸는데, 그런 건 김 팀장님이 사과할 일이 아니라니까요? 다른 놈 문제지. 그럼 그 박수호라는 새끼가 유력인의 자제라면 좀 곤란한 상황 아닙니까?”
그러자 김 팀장은 기다렸다는 듯이 대답했다.
“테러의 희생자 중 하나다, 이것이 저희 이능관리부의 입장입니다.”
“거기에 그놈이 벌였던 범죄 행위들도 싸그리 공표하시죠. 죽어도 싼 놈이 죽은 걸로 되게. 어차피 이젠 죽은 놈 아닙니까.”
내 스타일대로라면 살아도 산 게 아닌 상태로 만드는 게 맞지만, 이미 마성에 오염된 녀석은 존재 자체만으로도 수많은 악을 불러들인다.
따라서 부관참시야말로 합당한 대안이 아닐까?
내 말의 뜻을 이해한 김 팀장이 다시 한번 고개를 끄덕였다.
“시우 님께서 원하신다면 그리하도록 하겠습니다.”
“아, 그리고 지난번처럼 이세희에 대한 심문도 저희 교단에서 먼저 진행해 볼까 하는데, 괜찮겠습니까?”
“그것은 제 권한 밖입니다. 유선호 장관님께 직접 결재를 받아야 할 사안일 것 같습니다. 이세희는 최악의 범죄자로서, 국제수배된 인물입니다.”
그렇다면 어쩔 수 없지.
“안 그래도 유선호 장관님께 드릴 말씀이 있었는데, 안내해 주실 수 있겠습니까?”
“……테러범들과 관련되어 있는 이야기로군요.”
“그렇습니다.”
나는 한숨을 푹 내쉰 다음, 고개를 가로저으면서 말을 맺었다.
“아무래도 교단 차원에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서요.”
우리 교황님 좀 말려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