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lease stop our Pope RAW novel - Chapter (61)
61화
19. 만나서 반가워요
1.
대통령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대한민국 권력의 정점, 선출직 중 단연 최고의 자리.
일반인이라면 평생 동안 독대하기 힘든 위치의 사람인 건 틀림없다.
나 역시 TV나 인터넷을 통해서나 몇 번 봤다 뿐이지, 실제로 본 적은 단 한 번도 없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방금 전, 그 ‘단 한 번’은 깨지고 말았다.
“이렇게 헌앙하신 분인 줄을 알았으면 진즉에 찾아뵐 것을 그랬습니다.”
나는 내 눈앞에서 여유롭게 대화를 주도해 나가고 있는 서신우 대통령을 바라보면서 난감하게 웃음을 지었다.
할머니를 모시러 가는 날인데 이게 무슨 일이란 말인가?
진짜 단 한 치도 예상할 수 없었던 전개였다. 대통령이라는 자리가 시간이 남아도는 자리도 아니고, 고작 나를 공항에 데려다주려고 왔을 리는 없잖아.
“경계하실 것 없습니다. 마침 저도 공항으로 갈 일이 생겨서, 일종의 카풀이라고 생각해 주셨으면 좋겠군요.”
“제가 공항으로 간다는 이야기를 들으셨습니까?”
“이레귤러의 일정에 대해서 보고받는 것 역시 대통령의 업무 중 하나지요. 불쾌하셨다면 사과드리겠습니다.”
“아, 불쾌한 건 아니고…… 그냥.”
내 일거수일투족이 대통령이나 되는 사람에게까지 보고된다는 게 느낌이 이상해서 그렇지.
그나저나 내가 생각했던 이미지와는 많이 다른 사람이다.
대통령이라면 으레 가지고 있을 법한 권위 의식이라든가, 카리스마라든가. 이런 게 딱히 안 느껴지거든.
보통 이런 경우는 두 가지다.
정말 그런 게 없거나, 아니면 일부러 숨기고 있거나.
뭐, 어느 쪽이든 결론은 같다.
‘조심해야 할 사람.’
속을 들여다볼 수 없는 사람이란 뜻이다. 대통령이라는 자리가 제비뽑기로 당첨되는 자리는 아니었으니, 어찌 보면 당연할지도 모른다.
“김시우 각성자께서 지금껏 대한민국을 위해 수많은 일을 해 주셨는데, 제가 못 해 드릴 게 뭐가 있습니까? 말씀만 해 보십시오. 제가 할 수 있는 무엇이라도 들어드리겠습니다.”
대통령의 말에 때아닌 짓궂은 장난기가 발동한다.
나는 한껏 진지해진 표정으로 말했다.
“리멘 교단을 국교로 삼아 주시는 건 어떻습니까?”
“하하, 벌써부터 귓가에 탄핵 소추안이 발의되는 소리가 들리는군요. 김시우 각성자께서 그토록 원하신다면야 안 될 것 없죠. 비서실장에게 탈당신고서부터 가져오라고 해야겠군요. 제 정치 인생에 있어서 가장 극적인 순간이 되어 줄 겁니다.”
“농담입니다, 대통령님. 반쯤은 진심이었지만요.”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저 역시 반쯤은 진심이었습니다.”
도대체 어떤 부분이 진심이었던 걸까?
언젠가 인욱이로부터 대통령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 본 적이 있는 것 같다.
유머러스한 면모 덕분에 젊은 층에서도 높은 지지율을 이끌어 낸다고 들었다. 물론 재밌기만 해서는 지지율을 끌어낼 순 없겠지만, 탁월한 유머 감각은 지도자가 지닐 수 있는 강점 중에 하나다.
내가 보기에도 서 대통령은 그 점에서 있어서만큼은 확실히 뛰어났다.
말을 몇 번 주고받는 것만으로 기분이 편해지고 있었으니까.
나는 슬며시 웃음을 지었고, 그 역시 나를 따라 웃으면서 이야기를 시작했다.
“원래 한 집단의 수장이 하는 일이란 게, 이렇게 비공식적인 장소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대부분입니다. 공식 행사들은 요식 행위에 불과하죠. 시우 님께서도 에덴이라는 세계에서 교황의 위치에 있으셨으니, 얼추 알고 계실 거라 생각하고 있습니다.”
대통령이 아침부터 나랑 농담을 주고받기 위해서 왔을 거란 생각은 애초부터 없었다.
이쪽이야말로 본론이었다.
“혹시 오늘 아침에 언론들이 일제히 보도했던 뉴스들을 보셨습니까?”
“일본에 마수가 나타났고, 도움을 요청했다는 것까지는 알고 있습니다.”
“좋습니다. 대강 알고 계시니 단도직입적으로 말하겠습니다. 미국 측에서 김시우 각성자를 파견단에 포함시켜 달라고 요청해 왔습니다. 그리고 저희 정부는 답변을 보류한 상태입니다.”
“흐음. 정부에서 동원 명령을 내린다면, 저도 어쩔 수 없이 따를 수밖에 없지 않습니까?”
이레귤러 계약서를 쓸 때 얼추 봤었기도 했고, 지난번에 몬스터 웨이브 때도 그런 식으로 불려 나갔다.
하지만 서 대통령은 고개를 가로저으면서 말했다.
“이능특별법 9조 12항에 의하면 이레귤러를 동원할 수 있는 구역은 대한민국의 주권이 미치는 곳으로 제한한다. 즉, 김시우 각성자가 일본을 도와줄 의무는 없다는 뜻입니다.”
그런 법 조항을 알면서도 대통령이 이곳에 왔다는 것은 하나를 의미한다.
나는 서 대통령을 바라보면서 말했다.
“대통령꼐서는 제가 일본에 다녀오기를 원하시나 봅니다.”
“이번에 미국에서 일본에 파견하기로 한 이레귤러, 에이든 하워드는 이레귤러 판독기라고도 불리우는 인간입니다. 그렇다는 말은 그를 꺾으면 세계가 공인하는 이레귤러가 될 수 있다, 이 말이기도 합니다.”
서 대통령의 눈빛이 처음으로 빛났다.
“야마타노인가 하는 마수는 처음부터 계산에 없으셨군요.”
“각성자 시대의 핵무기라고 불리우는 이레귤러 둘이 동원되는 작전이 실패할 리는 없습니다. 일본 측도 전력을 다할 것이고, 미국도 마찬가지입니다. 때문에 그 뒤에 벌어질 일을 생각할 수밖에 없습니다.”
어느새 차는 영종대교를 지나고 있다.
밖으로 펼쳐진 푸르른 바다의 풍경. 그것을 배경으로 서 대통령이 말을 이어 갔다.
“만약 친선 대련이 펼쳐진다면, 김시우 각성자께서 바바리안을 아작 내 주셨으면 합니다.”
“……아작, 이요.”
“개박살도 좋구요, 묵사발도 좋습니다. 김시우 각성자께서 바바리안을 깨 주신다면, 대한민국은 세계 공인 이레귤러 보유국이 됩니다. 그렇게만 된다면 떼놈이든 왜놈이든…… 아, 이거 실례했군요.”
열변을 토해 낸 서 대통령이 활짝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다소 복잡한 게 얽혀 있었지만, 결론은 그 바바리안이라는 미국의 이레귤러를 박살 내 달라는 뜻이었다.
“대한민국을 위해서 그리해 달라, 이렇게 말씀하시는 겁니까?”
나는 나지막한 목소리로 물었고, 서 대통령은 단호하게 대답했다.
“대한민국을 위해서가 아니라, 우리를 위해서입니다. 종교와 정치는 아주 오랜 시간 동안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였지요. 그것은 결국 그 둘의 힘이 민중으로부터 나오기 때문이었을 겁니다.”
“유착 관계를 형성하자는 말씀으로 들립니다.”
“하하, 그럴 수도 있겠군요. 하지만 오해하지 않아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제가 바라는 건 상생입니다. 함께, 더불어 사는 것. 그리고 그 관계를 기반 삼아 더 나아가는 것.”
대통령들은 모두 이렇게 달변가인 걸까, 아니면 이 사람이 유독 달변가인 걸까.
에덴에서 마주했던 국왕이나 황제들과는 사뭇 다른 느낌.
그의 말에는 그가 일평생 지켜 온 철학이 담겨 있었다.
“슬프게도 대한민국 정부에게는 이렇다 할 힘이 없습니다. 그에 비해 리멘 교단은 갈수록 융성해질 테지요. 그 차이가 벌어진다면, 그건 더 이상 상생이 아닌 기생에 불과하게 될 것입니다.”
서 대통령은 지그시 나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한껏 진중해진 표정으로 말했다.
“그리고 그 모습은 김시우 각성자께서도 원치 않는 모습일 거라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그건 더 이상…….”
“교단의 모습이 아닐 테니까요.”
교단의 지위가 정부보다 높아진다면, 그것은 교단이 아니라 국가권력에 가까운 모습일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리멘이 가장 원하지 않는 모습이기도 했다.
나는 서 대통령의 말에 고개를 천천히 끄덕였다.
“상생을 위해서 대한민국의 국제 지위를 높여 달라?”
“제가 이래 보여도 꽤 괜찮은 수완가입니다. 그리고 이레귤러 보유국이라는 타이틀은 아주 귀한 값어치를 지니고 있습니다. 아주 다양한 곳에서 쓸모가 있을 겁니다.”
어느새 차는 공항에 도착했고, 밖을 확인한 서 대통령이 웃음을 지었다.
“이리도 좋은 날에 너무 지루하고 재미없는 이야기를 한 것 같군요. 결정은 천천히 내리셔도 좋습니다. 그리고 그 결정이 무엇이 되었든, 저희들은 전적으로 김시우 각성자의 결정에 따르겠습니다.”
마지막 순간까지도 서 대통령은 나를 적극적으로 설득하려 들지 않았다. 그저 자신의 셈법을 보여 주고, 그것을 토대로 나에게 제안했을 뿐.
“조만간 리멘 교단의 신전에 공식적으로 방문해 볼까 합니다.”
“언제든 환영입니다.”
“만나서 반가웠습니다. 김시우 각성자. 다음에 또 이야기 나누도록 합시다.”
그렇게 나는 차에서 내렸고, 내가 내리자마자 대통령의 차는 곧바로 자리를 떠났다.
사람은 모름지기 첫인상이 중요한 법이다.
서신우 대통령이라.
“재밌는 사람이네.”
저 사람이랑 얽히면 재밌는 일이 많이 생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멀어지는 차를 바라보며 슬쩍 미소를 지은 다음, 곧바로 입국장으로 향했다.
구름 한 점 없는 것이 그의 말대로 날씨가 참 좋았다.
누군가 귀국하기에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날이었다.
2.
우리 할머니의 프로필을 나열하자면 다음과 같다.
[이름: 고은영출생: 1963년 11월 11일(73세)
출생지역: 서울특별시 용산
자주 하시는 말씀: ‘우리 집안은 사고 치는 게 이력이다. 그렇기 때문에 시우 네놈이라도 꼭 피임을 잘해야 한다. 알겠지?’]
자주 하시는 말씀을 보면 알 수 있듯이 상당히 특이하신 분이다. 세상이 이렇게 뒤집어졌는데도 미국 여행을 가신 걸 보면, 할머니의 인생관을 엿볼 수 있다.
어차피 한 번 사는 세상, 즐기면서 살자.
할머니가 항상 입에 달고 사셨던 말씀이기도 하다. 젊어서는 우리 아버지를 기르시랴, 또 아버지가 일찍 사고 쳐서 낳은 나를 기르시랴, 내가 봐도 정신없이 살아오시긴 했지.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이래로 해외를 돌아다니시다가, 부모님의 부고 소식을 듣자마자 돌아와 우리를 쭉 길러 주신, 아주 고마우신 분이다.
아무튼.
나는 마스크를 쓴 채로 입국장에서 가만히 기다렸다.
옛날에 비하면 공항 이용객들이 적은 편이었는데, 아마도 그건 일부 항공 노선들이 폐지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비행형 마물들에 의해 빼앗긴 하늘이 꽤 많다고 한다.
초기에는 더 심했다고 하는데, 각국에서 힘을 합쳐서 토벌에 나선 덕분에 상당수 문제가 해결되었다던가.
물론 일부 지역은 여전히 운항 불가지만 말이다.
그렇게 얼마나 기다렸을까? 입국장의 문이 열리더니, 곧 그 안에서 까만색 선글라스에 베이지색 트렌치코트를 입은 노년의 여성이 걸어 나왔다.
당당하고 힘이 넘치는 발걸음.
보는 것만으로도 박력이 느껴지는 그 할머니는 당연히.
“할머니.”
우리 할머니였다.
비교적 최근에 염색을 하셨는지 머리가 검으셨다.
할머니는 내 목소리를 듣자마자 나를 향해 다가왔다. 그리고 내 앞에 도착하자마자 쓰고 있던 선글라스를 벗으셨다.
그러자 곧 선글라스 뒤에 숨어 있던 할머니의 눈빛이 드러났다.
그리고 나는 그런 할머니의 시선을 마주하면서 말했다.
“할머니. 보통 이런 순간에는 감격의 해후를 나누는 게 정상 아닐까?”
“우리 손주. 이세계에 다녀왔다더니 아주 간덩이가 부었구나. 예전에는 할미가 이렇게 쳐다보면 도망가기 바빴는데, 이 할미는 아주 뿌듯해요. 우리 손주 다 컸네, 다 컸어.”
“그…… 일단 손부터 치우면 안 될까?”
“감격의 해후를 나누자꾸나.”
할머니는 그렇게 말하며 오른손으로 내 등짝을 냅다 후려치셨다.
짜아아아아악.
그와 동시에 찰지게 울려 퍼지는 타격음.
등 쪽에서 따끔함이 순식간에 퍼져 나가는 것이, 에덴에서는 맛보지 못한 매콤함이었다.
이래서 원조 맛집, 원조 맛집 하는구나.
예전보다 훨씬 단련되고 맷집이 좋아졌는데도 왜 이리 아픈지 모르겠다.
“팔다리 멀쩡하게 돌아왔으니 그걸로 되었다. 배은망덕한 손주 놈아.”
“여전하네, 할머니.”
“사람은 변하면 죽는단다. 이 할미는 오래 살 생각이니 그런 건 걱정 안 해도 좋다.”
“말도 여전히 잘하시고.”
할머니와의 재회는 인욱이나 시연이와의 재회와는 사뭇 달랐다.
인욱이나 시연이는 나를 정말 죽었다 살아온 사람처럼 보았지만, 할머니의 표정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마치 먼 여행을 떠났다가 돌아온 사람을 맞이하는 듯한 표정.
그래서일까?
기분이 정말 편안했다.
“그래, 이세계 여행은 어떻든.”
“나는 뭐…… 좋았어.”
“새로운 곳으로의 여행은 사람을 성장시켜 주는 법이지. 그래도 우리 손주가 훌쩍 커 온 것 같아서 기분은 좋네. 5년 동안 할미 속 썩인 건 방금 등짝으로 값을 치른 셈 치마.”
할머니는 그렇게 말하며 캐리어의 손잡이를 놓으셨다. 그리고 나를 부드럽게 껴안아 주셨다.
“돌아와 줘서 고맙다, 우리 똥강아지.”
나는 웃으면서 할머니를 껴안았다.
“내가 돌아왔다는 소식 들어도 귀국 안 하시길래, 내 얼굴도 보기 싫은 줄 알았지.”
“패키지여행인데 아깝잖니? 돌아올 놈이 돌아왔을 뿐인데, 그게 뭐라고.”
“전세기는 편했어?”
“손주 놈 덕에 난생처음 호강 좀 했다 이 녀석아.”
“다행이네.”
할머니가 씨익 웃으셨고, 나도 할머니를 따라 씨익 웃었다.
“미국에서 새로운 친구 하나를 사귀어서 같이 왔거든? 아니 글쎄 아까 입국하자마자 웬 양복 입은 남자들이 와서 데려갔단다.”
“친구?”
“내 친구가 너를 꼭 보고 싶어 했어. 나쁜 할멈은 아니니 걱정하지 말거라.”
그 순간, 아까 서 대통령으로부터 들었던 말이 떠올랐다.
-마침 저도 공항으로 갈 일이 생겨서, 일종의 카풀이라고 생각해 주셨으면 좋겠군요.
대한민국의 공항에서 검은색 양복을 입은 사람들(아마도 대통령 경호원)이 직접 모셔 갈 정도의 사람이라…….
“……할머니.”
“왜 인석아.”
“도대체 누구를 데려온 거야.”
어째 오늘 하루도 쉽게 끝날 것 같지 않다.
우리 교황님 좀 말려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