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lease stop our Pope RAW novel - Chapter (62)
62화
3.
할머니를 모시고 가장 먼저 간 곳은 리멘 교단의 신전이었다.
시연이가 아직 학교이기도 했고, 할머니가 데려왔다는 친구분과 이곳에서 만나기로 했기 때문이다.
승우와 승우네 아버님은 신전 주위에서 살 집을 알아보러 돌아다니고 있었기에, 신전에 잔류하고 있던 인원은 레오와 루나뿐이었다.
“우리 손자가 신세 많이 졌다고 들었어요. 다들 고마워요.”
“저희야말로 성하에게 신세를 졌습니다. 은혜를 갚는 건 당연한 일입니다.”
레오는 우리 할머니에게 깍듯하게 인사를 건넸다.
늘 그렇듯 레오의 첫인사는 무난하고 흠잡을 구석이 없는 인사였다.
그야말로 사제의 표본.
하지만 루나의 첫인사는 달랐다.
“어머, 저는 사실 성하의 이모쯤 되시는 줄 알았는데! 너무 동안이세요, 할머니.”
“얼굴도 이쁜 처자가 말도 참 이쁘게 하네. 반가워요.”
“루나 레벤톤이라고 합니다. 성하가 가장 아끼는 부하랍니다. 저희에게도 말 편하게 하세요, 할머니. 성하의 할머니시면 저희들에게도 마찬가지인걸요.”
“음, 그럴까? 호호. 듬직한 손자랑 손녀가 하나씩 늘었네.”
루나는 특유의 붙임성으로 할머니의 호감을 얻었다. 생각해 보면 둘 다 성격이 호쾌한 편인 것이, 합이 잘 맞을 것 같다.
앞으로의 케미가 괜찮을 것 같은 느낌.
그렇게 두 사람과 인사를 나눈 할머니는 곧장 신전의 본당으로 향했다.
본당에는 추모객들이나 신도들이 와서 기도를 드릴 수 있도록 의자가 마련되어 있었고, 그 앞에는 두 손을 모은 채로 고개를 숙이고 있는 리멘의 신상이 있었다.
리멘 교단을 대표하는 얼굴 없는 신상.
얼굴이 없다기보다는 천으로 얼굴이 가려져 있다는 표현이 더 적절하겠지만, 에덴에서도 얼굴 없는 신상이라고 불렸었다.
언젠가 한 번 저 신상을 보고 리멘에게 물어본 적이 있었다.
이토록 아름다운 얼굴인데 왜 신상에 담지 않냐고.
그 말에 리멘은 이렇게 답했다.
-때로는 보이지 않기에 더 의미 있는 것이 있어. 누군가는 나에게 기도하며 본인의 어머니를 투영하고, 또 누군가는 아버지를 투영할지도 모르지. 각자마다 소중히 여기는 얼굴들은 전부 다르잖아? 나는 그저 그들의 마음을 배려해 주고 싶었을 뿐이야.
그녀는 그렇게 말하며 나에게 ‘내가 그렇게 이뻐?’라고 물었더랬다.
하여간 그러한 이유로 리멘의 신상에는 그녀의 얼굴이 나타나 있지 않다.
우리 교단의 개성이라면 개성이라고 해야 하나.
“기도를 드려도 되는 거니?”
할머니는 그 신상 앞에 서서 나에게 넌지시 물었다. 나는 할머니의 말에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이죠. 리멘께서는 모두를 사랑하시니까요.”
“후후. 내 손자가 그럴듯한 종교인이 되어 돌아왔구나. 어렸을 때 그렇게 교회를 가기 싫어하더니, 세상일이란 게 참 모를 일이지.”
나를 바라보며 왼쪽 눈을 찡긋한 할머니가 신상 앞에 무릎을 꿇으며 손을 모았다. 그리고 여전히 편안하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기도를 드렸다.
“우리 손자를 무사히 돌려보내 주셔서 정말로 감사합니다. 여전히 부족한 것 많은 우리 손자가, 이 혼란스러운 세상 속에서 잘 살아갈 수 있게, 부디 잘 이끌어 주시옵소서.”
할머니의 기도는 그리 길지 않았다.
그 짧다면 짧다고 할 수 있는 기도가 끝나자 내 뒤에 서 있던 레오가 조용히 속삭였다.
“성하.”
“아, 그래. 지금은 내가 담당 사제지.”
사제는 기도를 드린 이에게, 리멘을 대신하여 가호를 내려 줘야 한다.
나는 할머니를 바라보면서 부드럽게 말했다.
“당신에게 리멘의 가호가 있기를.”
할머니가 나를 바라보면서 활짝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그녀는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까 보아하니 요 앞 정원들이 정말 아름답던데, 할미가 좀 돌아다녀도 되겠니?”
“내가 안내해 줄게, 할머니.”
“나는 우리 루나 양과 레오 군과 함께 산책하고 싶단다. 둘에게 물어보고 싶은 것이 참 많아.”
“나한테 물어보면 되는 걸 굳이?”
“네가 훌륭한 상사가 되고 싶다면, 밑 사람들에게 마음껏 너를 욕할 시간을 보장해 주려무나.”
한마디도 안 지신다, 한마디도.
할머니는 양쪽에 레오와 루나를 대동한 다음, 나를 향해 말했다.
“새로 사귄 내 친구가 널 참 만나고 싶어 하더구나. 늙은이 말동무해 준다 생각하고 이야기 나누렴. 너한테 해가 되는 이야기는 아닐 거야.”
그렇게 말을 맺은 할머니는 둘을 데리고 신전 밖으로 향했다.
친구분이 도대체 언제 올 줄 알고 저렇게 훌쩍 나가 버리시는 걸까?
내가 툴툴거리면서 집무실로 향할 때쯤이었다.
저 멀리서부터 무언가 느껴지기 시작했다. 마력은 마력인데, 신비롭다 느껴질 정도로 정순한 마력.
나는 그 마력을 느끼면서 피식 웃음을 지었다.
“신기 있으신 거 맞다니까.”
아무래도 할머니의 친구분이 도착한 모양이다.
4.
할머니의 친구분은 대통령의 경호원들에게 직접 경호를 받으면서 신전에 도착했다.
예상했던 대로였다.
서 대통령이 공항에 일이 있다고 말했던 건 전혀 빈말이 아니었다.
서 대통령은 정말로 귀빈을 직접 맞이하기 위해서 공항으로 향했던 것이다.
문제는 대통령까지 직접 맞이할 정도의 ‘귀인’이, 왜 할머니와 함께 전세기를 타고 왔냐는 이 말이다.
“만나서 반가워요, 시우. 할머니를 부쩍이나 닮았군요. 은영이 그토록 자랑했던 이유가 있었네요.”
“반갑습니다, 엠마 밀러 여사님. 한국말이 굉장히 능하시네요.”
“은영을 통해 배웠어요. 반칙을 쓰긴 했지만요.”
할머니의 이름을 저렇게 편하게 부르는 모습을 보니 뭔가 기분이 묘하다.
할머니 친구분들을 뵌 적이 없어서 말이다.
엠마 밀러 여사는 인자하게 웃으면서 본인의 앞에 놓인 녹차를 한 모금 목을 넘겼다.
사실, 이렇게 그녀와 독대하기 전에 대통령의 경호원으로부터 그녀에 대한 정보를 듣기는 했다.
-그녀의 별명은 오라클입니다. 가까운 미래를 보는 예지가로 유명합니다. 동시에 미국에서 가장 애지중지하는 각성자이기도 합니다. 대통령께서 김시우 각성자에게 부디 엠마 밀러 여사를 잘 부탁한다고 전하셨습니다.
경호원은 덧붙여서 엠마 밀러 여사의 몸에 작은 상처라도 난 순간, 미국이 전쟁을 일으킬 수도 있다는 말을 전했다.
덧붙인 말만 아니었다면 긴장이 덜 되었을 것을, 윗분들은 꼭 사족을 덧붙인단 말이지.
참고로 현재 그라운드 제로의 밖에는 미국의 특수 요원들이 배치되어 있다고 한다.
여기서 한 가지 의문점이 든다.
솔직히 엠마 밀러 여사의 전투력은 그다지 높아 보이지 않는다. 미국에서는 여기보다 더 엄청난 경호 병력이 배치되어 있었을 텐데, 도대체 어떻게 그들을 따돌리고 할머니의 전세기에 탑승한 걸까?
“숙녀의 비밀이 궁금하신 모양이네요. 알고 보면 별거 없답니다.”
“제 생각을 읽으셨군요.”
“음, 읽는다기보다는…… 늙은이의 직감, 그 정도로 설명하면 되겠네요.”
이 할머니도 속을 알 수 없는 사람이다. 서 대통령도 그렇고, 이 엠마 밀러라는 할머니도 그렇고, 오늘 만나는 사람들은 왜 하나같이 이 모양일까.
나는 손가락으로 뺨을 긁었다.
“저를 그렇게 보고 싶어 하셨다고 들었습니다. 혹시, 저 때문에 할머니에게 접근하신 겁니까?”
그녀에게 예지력이 있다는 건 의심하지 않는다.
에덴에서도 예지력을 지닌 자들이 있었기도 했고, 우리 교단의 역대 선지자 중에서도 리멘으로부터 예지의 능력을 하사받은 사람들이 있었으니까.
그녀의 예지력이 진짜라는 것은 미국이 그녀를 소중히 여기는 것만 보더라도 알 수 있다.
그렇기에 내가 의심하는 것은 다른 부분이었다.
목적을 위해서 우리 할머니에게 접근했냐는 것.
하지만 돌아온 대답은 다소 엉뚱한 대답이었다.
“시우가 리멘의 대리자이듯이, 저는 현재의 지구를 주관하고 있는 시스템의 대리자입니다. 제 예지 능력은 제가 시스템의 대리자이기 때문에 동반되는 능력입니다.”
엠마 밀러의 눈이 기묘하게 빛났다.
푸른 빛을 머금은 그녀의 눈이 나를 주시한다.
그러자 내 눈앞에 경고를 알리는 빨간색 테두리의 메시지 창이 떠올랐다.
[당신의 시스템이 허가되지 않은 힘을 차단합니다.]“또한 제 예지 능력은 어디까지나 시스템에 속한 자들에게만 한정되어 있는 반쪽짜리죠. 경계 밖에 있는 존재들에겐 사용할 수 없습니다. 이를테면 일반인이라든가, 시우 같은 다른 규격의 존재들 말입니다.”
“규격 외 존재라면, 이레귤러를 말씀하시는 건지요.”
“사람들은 그렇게들 부르더군요.”
“그럼 할머니를 만난 건 단순한 우연입니까.”
“저는 그저 은영을 만났고, 흥미가 일어 이곳까지 왔을 뿐입니다.”
엠마 밀러 여사는 알 수 없는 웃음을 머금은 채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사실 저는 예지가처럼 거창한 존재가 아니라 관찰자에 가까운 존재랍니다. 이곳에 와서 시우를 직접 보니 마음이 놓이네요. 적어도 당신만큼은 이 세상을 사랑하고 있군요.”
“여사님은 제가 지구로 돌아온 이래로 만난 각성자들 중 가장 특이하신 것 같습니다.”
호감도, 그렇다고 적의도 느껴지지 않는 사람.
나에게 위협으로 다가오는 존재는 아니었다. 한 가지 확실한 건, 그녀는 내가 모르는 것들을 아주 많이 알고 있다는 것.
나는 잠시 묵묵히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
“정말로 저를 보기만 하려고 오셨군요.”
그녀는 나에게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그녀의 말대로 그녀는 내 얼굴을 보기만 할 작정이었던 것이다.
내 말에 엠마 밀러 여사는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늙은이의 작은 취미 생활입니다.”
“그럼 곧바로 미국으로 돌아가시는 겁니까?”
“음, 한국에 왔으니 관광을 좀 하다가 가야지요. 은영과 약속했습니다.”
“이능관리부나 청와대 사람들이 들으면 발작을 할지도 몰라요.”
“후후, 한국 음식이 입에 잘 맞으면 그냥 이곳에 내려앉을까, 하는 생각도 하고 있습니다.”
아니, 할머니.
그러다가 진짜 미국이랑 전쟁 나요.
“말동무가 되어 주어서 고맙습니다, 시우. 차 맛이 아주 좋았습니다.”
“벌써 가십니까.”
“바쁜 손자 잡아 두었다고 은영이 화를 낼지도 모릅니다. 은영, 화나면 상당히 무섭습니다.”
엠마 밀러 여사는 그렇게 말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나를 바라보면서 부드럽게 말했다.
“규격 밖의 존재들은 앞으로 짙은 어둠을 불러올 겁니다. 시우. 당신과 당신이 모시는 분의 빛이 그 짙은 어둠을 밝힐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 말을 끝으로 그녀는 천천히 신전 밖으로 향했다.
나는 여사의 뒷모습을 바라보면서 씁쓸하게 중얼거렸다.
“리멘에게 물어볼 게 하나 더 생겼네.”
물어보고 싶은 건 이렇게 나날이 쌓여만 가는데, 우리의 여신님께서는 도대체 무엇을 하고 계시는 걸까.
5.
할머니는 집에 들러서 인욱이와 시연이에게 가볍게 인사만 하고 다시 나가셨다.
먼 길을 온 친구에게 한국을 제대로 보여 줘야 한다면서 말이다.
뭐, 사실 그렇게 놀라운 전개도 아니었다.
“원래 쿨하신 분이잖아.”
“그렇지.”
“게다가 미국에서 신세 졌다는 친구분이 한국까지 오셨다는데, 풀코스로 대접해 드려야지. 그래서 내 카드도 드렸어.”
인욱이는 다 마른 빨래를 접으면서 말했다.
시연이는 백설이랑 논다고 방에 들어가 있고, 거실엔 우리 둘뿐이다.
“인욱아. 너 그런데 할머니 친구분이 누군지 아냐?”
“내가 그걸 어떻게 알아.”
“그러면 미국의 오라클이 누군지는 알고?”
“그걸 모르는 사람이 어디 있어. 미국의 현자, 위대한 예지가, 엠마 밀러 여사 아니야?”
“그분이 바로 한국까지 왔다는 할머니의 친구분이셔.”
내 말에 인욱이는 빨래 접는 걸 잠시 멈췄다. 그리고 한심하다는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형. 교황이라는 사람이 그렇게 거짓말하면 안 되지. 우리 할머니가 어떻게 그런 사람이랑 친구가 돼? 좀 말이 되는 소리를 해.”
“그렇지? 네가 생각해도 그렇지?”
“오라클을 만나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데. 세계적인 부자들이 돈 들고 찾아가도 쉽게 안 만나 주는 사람이라고.”
우리 할머니가 그 어려운 일을 해내신 분이시란다, 인욱아.
나는 옆에 있던 사과를 한 입 베어 문 다음, 소파에 몸을 눕혔다.
그리고 천장을 바라보면서 인욱이에게 말했다.
“인욱아. 형이 오늘 대통령이랑 카풀을 했는데 말이야.”
“그만해 형. 왜 자꾸 재미없는 농담을 해.”
“이 새끼야, 좀 끝까지 들어. 아무튼 형이 대통령한테 부탁을 받아서 일본에 다녀올까 하는데, 네 생각은 어떠냐.”
일본이라는 단어가 나오자마자 인욱이가 나를 바라보았다.
“야마타노오로치. 그거 잡으러?”
“알고 있네?”
“당연하지. 뉴스랑 인터넷에서 하루 종일 테러랑 야마타노오로치 이야기뿐인데 모를 리가 없잖아.”
“알고 있다고 하니까 편하네. 넌 형이 어떻게 했으면 좋겠냐?”
내 질문에 인욱이는 나를 빤히 바라보았다.
그러더니 미간을 살짝 찌푸리면서 말했다.
“형은 항상 이미 답을 정해 두고 물어보더라. 난 그냥 일본이 불쌍해.”
“왜?”
“왜기는.”
인욱이는 개어 둔 빨래를 품에 안은 채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으면서 말했다.
“마수 하나 잡자고 형이라는 핵폭탄을 끌어들이는 거잖아.”
실제로 이레귤러들이 핵폭탄 같은 전략 병기로 평가되니까 영 틀린 말은 아니긴 하다만.
“정확히는 미국이 먼저 우리 쪽에 요청했어.”
“그럼 미국은 일본에 세 번째 핵폭탄을 떨어트리는 셈이네. 이런 잔인한 놈들.”
생각지도 못했던 인욱이의 말에 나는 한참 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우리 교황님 좀 말려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