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lease stop our Pope RAW novel - Chapter (66)
66화
5.
‘좋지 않아.’
테이블에 좌측에 앉아서 상황을 지켜보고 있던 일본 각성자들의 대표, 니시무라 류노스케는 두 이레귤러의 첫인사를 바라보면서 주먹을 꽉 움켜쥐었다.
이미 자신들의 발언권은 없었다.
만약 대한민국 측의 이레귤러가 바바리안에게 일방적으로 압도당했다면 상황은 달랐을 것이다.
바바리안 측, 그러니까 미국 측에 붙어서 조금의 이권이라도 더 챙겨 갈 수 있었겠지.
그러나 돌아가는 상황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바바리안은 영어를, 김시우는 한국어를 내뱉고 있었음에도 둘은 무언가 의사소통을 이어 나가고 있었다.
거기에 바바리안이 내뿜는 흉폭한 기운은 일본에서 최상위권의 각성자라고 할 수 있는 자신조차도 견디기 힘든 기운이었다.
하지만 방금 전에 들어온 저 사제복의 한국인만큼은 달랐다. 그의 표정은 여유가 넘쳤고, 도리어 이 상황이 재밌다는 듯이 웃음을 짓고 있었다.
‘저 한국인은 진짜 이레귤러다. 중국의 가짜 놈들과는 비교할 대상이 아니야.’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
이레귤러, 일본에서는 투신이라고도 불리우는 바바리안 앞에서 제정신을 유지할 수 있는 존재는 오로지 같은 이레귤러뿐이다.
그렇기 때문에 류노스케는 입술을 꽉 깨물 수밖에 없었다.
내심 바바리안이 김시우를 단번에 제압해 주길 원했으나 돌아가는 상황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통역들은 뭐 하나? 당장 통역을 진행하라.”
“류노스케 님. 통역들은 이미 기절했습니다.”
“도움 안 되는 것들.”
원활한 협상을 위해서 통역들도 불러 두었지만, 하등 의미가 없어진 상황.
류노스케는 미간을 잔뜩 찌푸리면서 말했다.
“그 한국 놈을 불러와라.”
“류진영, 그자 말입니까?”
“저들의 기세에 버티면서 영어와 일본어를 동시에 통역할 수 있는 건 그놈뿐이야. 지금 당장 데려오도록.”
“예!”
류노스케의 명령에 부하는 즉시 몸을 움직였고, 류노스케는 답답한 표정으로 이레귤러들을 바라보았다.
‘야마타노오로치가 문제가 아니다.’
바바리안은 무패의 사나이다. 그런 사나이가 이곳에 파견된 순간부터 야마타노오로치는 큰 문제가 아니었다.
애초에 일본은 이레귤러 파견을 요청하지 않았다. 그들이 원했던 것은 적정 수준의 지원 병력이었을 뿐이다.
그런데도 미국에서 순순히 이레귤러를 파견해 주기로 했을 때부터 그들의 속내를 알아차렸어야만 했다.
이레귤러는 이 시대의 국가들이 보유할 수 있는 최대 전력이자 전략 병기였다. 그리고 그런 존재가 움직였다는 건, 또 다른 목적이 있다는 뜻이었다.
‘이렇게 된 이상 바바리안이 김시우를 죽여 주기를 기대하는 수밖에 없나.’
불과 몇 달 전까지만 하더라도 대한민국은 동북아시아에서 가장 약한 전력을 지닌 국가였다.
3년 전, 디재스터급 중에서도 높은 평가를 받고 있던 류진영이 일본으로 넘어온 순간부터 일본과 대한민국의 격차는 현저하게 벌어지기 시작했다.
조금만 시간이 더 있었다면 대한민국의 각성자 사회를 일본 쪽에 편입시킨다는, 그들이 세운 대계가 성공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저 김시우라는 놈이 나타나고부터는 모든 것이 어그러졌다.
‘기회가 있을까?’
류노스케는 빠르게 머리를 굴려 보았지만, 마땅한 대안이 없었다.
아까 그가 기대했던 것처럼 바바리안이 김시우를 제거해 주는 방법뿐.
실제로 바바리안은 이미 몇몇 이레귤러의 피를 손에 묻혔으니까.
그중에는 이레귤러를 사칭하는 자들도 포함되어 있겠지만, 한 가지 확실한 건 바바리안은 손속에 사정을 두지 않는다는 것.
그렇게 류노스케가 여러 궁리를 하고 있을 무렵, 신경전을 끝낸 모양인지 두 이레귤러는 각자 배정받은 자리에 앉았다.
그리고 잠시 후 통역을 대신해 줄 류진영이 막사 안으로 들어섰다.
류노스케는 손을 들어 류진영을 자신에게로 불렀고, 류진영은 조용히 그에게로 다가왔다.
“류진영. 네가 이곳의 통역을 대신한다. 네 녀석도 엄연히 일본의 각성자이니, 대한민국에 유리한 통변을 할 거라 생각하지 않는다.”
“……알겠습니다.”
“그럼 회의를 시작하도록.”
앞선 신경전의 여파로 막사 내부의 분위기는 더할 나위 없이 살벌했다.
‘야마타노오로치 토벌에서만큼은 우리가 최대한 많은 지분을 확보해야만 한다.’
아무것도 기여하지 못한 채로 전투가 끝나게 된다면 일본의 국격은 바닥까지 떨어질 수밖에 없다.
따라서 유의미한 역할은 수행해야 한다는 것이 상부에서 내린 결론.
이를 대비하여 류진영을 포함한 세 명의 디재스터급 귀환자와 욱일회까지 동원했으니, 자신들의 안방에서 손님으로 전락하는 경우만큼은 막아야만 했다.
‘아무리 이레귤러가 둘이라고 한들, 야마타노오로치 같은 대형 마수를 둘이서 해결하려 들 리가 없…….’
그가 머릿속으로 적절한 타협안을 구상하고 있던 찰나, 바바리안이 일본 각성자들을 바라보면서 비웃음 가득 담긴 목소리로 무어라 말했다.
그러자 곧 그의 말을 알아들은 일본 측 각성자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했고, 류노스케는 눈살을 찌푸리면서 류진영에게 말했다.
“뭐라고 한 거지?”
류노스케의 질문에 류진영은 무미건조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야마타노오로치를 제거하는 임무는 본인과 김시우만으로도 충분하며, 일본을 포함한 나머지 전력들은 시민 대피 작업에 집중할 것을 지시했습니다.”
그 말에 류노스케는 주먹으로 책상을 내려치면서 소리쳤다.
“그게 지금 말이나 되는 소리야? 여기는 우리 일본의 땅이다. 자국의 영토를 자국의 각성자들이 수호하는 건 당연한 거라고!”
바바리안은 화를 내는 류노스케를 바라보며 이빨을 드러내면서 웃음을 터뜨렸다. 그리고 일전보다 더 큰 목소리로 무어라 말했고, 류진영은 빠르게 통역을 이어 나갔다.
“동맹국의 각성자가 의미 없이 죽는 걸 원하지 않는다. 또한 먼저 도움을 요청한 것도 당신들이다. 약자가 강자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 아니니, 당신들은 그저 토벌이 끝나고 감사의 인사만 건네면 될 뿐이다.”
“이, 이 무례한…….”
“덧붙여서 방금 전의 무례는 봐주겠지만, 다시 한번 무례를 저지를 경우 봐주지 않겠다, 그는 이리 말했습니다. 류노스케 님. 바바리안을 자극하는 행위는 일본의 국익에 어긋납니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인가.
아무리 국가위기급 마수라고 하더라도, 현재 일본의 국력이었다면 큰 피해를 입었을지언정 토벌은 가능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 피해가 두려웠기에 동맹 관계인 미국에게 손을 벌렸을 뿐이고, 그 결과가 바로 지금이었다.
‘정치적으로 해결해야 할 문제다. 내 손을 떠났어,’
정치인들이라면 빠르게 묘수를 궁리해 낼 것이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류노스케는 뒤이어진 류진영의 통역에 더 이상 할 말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작전 개시 시간은 지금으로부터 2시간 뒤라고 합니다.”
그들에게는 애초부터 기회 따위란 주어지지 않았다.
6.
“바바리안이 충동적인 인물이라고는 들었습니다만, 그런 선택을 내릴 줄은 몰랐습니다. 내일 아침 뉴스 헤드라인도 벌써부터 보이는군요. 재팬 패싱. 파급력이 꽤 어마어마할 겁니다.”
“김 팀장님은 저랑 저 미국산 야만인 단둘이서만 현장에 들어간다는데, 걱정되지도 않습니까?”
“그만큼 시우 님을 믿습니다.”
에이든 하워드는 내가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미친놈이었다.
일단, 녀석은 일본의 홈그라운드에서 대놓고 일본을 무시했다. 똥개도 홈그라운드에서 반은 먹고 들어간다는데, 그 똥개를 처음부터 배제해 버린 것이다.
외교관계라든지, 상대방의 체면 같은 것들을 생각하는 사람이었다면 절대 내리지 못했을 결정이다.
그러나 에이든 하워드는 노골적으로 일본 각성자들을 조롱하면서 그들을 작전에서 제외시켜 버린 것이다.
물론 그 과정에서 나를 호위하기 위해 함께 파견된 강채아를 비롯한 인원들도 배제되었지만, 그건 크게 신경 쓸 만한 요소가 아니었다.
나 역시 우리 쪽 각성자들을 위험한 곳에 집어넣을 생각 없었거든.
하여간에 미친놈인 건 틀림없다.
최 대표는 적어도 생각이라도 길게 했지, 이 야만인 놈은 생각조차 길게 하지 않는다. 그냥 꼴리는 대로, 자기 하고싶은 대로. 짐승 같다는 표현이 딱 걸맞는 놈이다.
“단둘이 야마타노오로치를 잡으러 가자는 이유도 뻔해요. 마수를 처리한 다음, 나랑 그대로 붙어 보고 싶다는 뜻이겠죠.”
“……죄송합니다, 사실 아까 기절을 하는 바람에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습니다. 혹시, 그를 죽이실 생각입니까?”
“멀쩡하게 제압할 수 있는 놈은 아니에요.”
녀석은 나에게 신을 죽였다고 했다.
그 야만인 놈이 도대체 어떤 세계에서 살아 돌아왔는지는 모르겠지만, 그 녀석이 허세를 부릴 이유는 없을 것이다.
신격에 오른 존재를 죽이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특히, 리멘처럼 주신좌에 오른 존재를 살해하는 것은 필멸자로서는 불가능에 가깝다.
하지만 지난번에 이계의 신격처럼, 소멸하기 직전의 신격을 살해하는 건 얼마든지 가능한 일이기도 하다. 어쩌면 바바리안 그 녀석은 잡신 몇을 죽였던 것일지도 모른다.
“팔다리 하나씩은 뜯어야 끝날 겁니다.”
“아…… 그렇습니까.”
“크게 걱정하진 마세요. 그쯤 되는 놈이라면 아마 뜯어 둔 팔다리 다시 가져다 붙여도 금방 잘 붙을 거예요. 뭐, 아님 말고요.”
그리고 그 정도는 해야 굴복할 것 같은 놈이기도 하고.
목만 안 뽑으면 될 거다.
김 팀장은 나를 멍하니 쳐다보더니, 애써 고개를 끄덕였다.
“야마타노오로치에 대한 설명은 더 필요 없으십니까?”
“아까 브리핑하면서 다 들었으니까 괜찮습니다.”
야마타노오로치는 국가위기급 마수들이 으레 그렇듯 자연발생했고, 기존의 데이터베이스에는 없는 마수이며, 그 이름으로 불리는 이유도 일본의 전설에 나오는 동명의 요괴와 비슷하게 생겼기 때문이라고 한다.
여덟 개의 대가리를 보유한 이무기.
지금까지 밝혀진 바로는 인간을 보이는 족족 잡아먹으며, 와이번을 비롯한 각종 비행형 몬스터들을 부린단다.
5시간 전부터 갑자기 움직임을 멈췄다고 하는데, 정보원에 따르면 잠을 자고는 것으로 추정된다고 한다.
한마디로 인간을 배 터지게 잡아먹고 나서 낮잠을 자고 있는 셈이다.
덕분에 민간인들이 피난할 수 있는 시간을 벌었으나, 센다이 시 내부에는 미처 대피하지 못한 시민들도 상당수인 상황이다.
출현한 지 아직 48시간도 안 된 상황이라, 모두가 피난하는 건 사실상 불가능했겠지.
나는 혀를 찬 다음, 내 옆에 조용히 서 있던 강채아를 향해서 말했다.
“채아 씨도 민간인 구조 작업에 힘을 써 주세요. 우리 레오 대주교를 붙여 드리겠습니다. 레오 대주교가 겉보기에 무서운 사람이라 그렇지, 치유 능력도 출중하거든요.”
“바바리안은 극도로 위험한 인물입니다. 괜찮겠습니까?”
그녀의 우려에 나는 그저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여 주었을 뿐이다.
그렇게 대강 파견단의 임무를 조정해 두었고, 마침내 움직일 시간이 찾아왔다.
알람을 따로 설정할 필요도 없었다.
“준비는 되었소?”
야만인 놈이 직접 우리의 막사 앞까지 찾아왔기 때문이다.
나는 직접 나를 데리러 온 에이든 하워드를 향해 말했다.
“성격도 급하셔라.”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 무고한 일본의 시민들이 걱정되어서 편히 쉴 수가 없었소.”
싸움에 미친 야만전사가 할 소리는 아닌 것 같다.
뭐, 어찌 되었든 좋다.
때마침 나도 지구로 돌아와서 마땅히 스트레스를 풀 만한 샌드백이 없어서 아쉽던 차였다.
분수를 모르고 날뛰는 짐승에게는 몽둥이가 약인 법.
“갑시다.”
나는 능글맞게 웃으면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7.
원래의 작전 계획은 육로를 통해서 야마타노오로치에게 접근하는 것이었다고 한다.
비행형 몬스터들이 자리 잡은 곳에서는 제공권을 쉽게 확보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가 있는 이상 굳이 그렇게 할 필요는 없었다.
지난번 휴전선에서 그랬던 것처럼, 헬기에 축성을 하면 끝이었으니까.
이동 수단을 헬기로 변경하면서 나는 미국 측에 추가적인 조건을 내걸었다. 그리고 미국 측은 흔쾌히 내 조건을 받아들였다.
사실, 그리 거창한 조건도 아닌 것이.
“보통 이레귤러들은 자신의 전투를 공개하는 걸 원하지 않소. 그런 점에서 볼 때 그쪽 역시 별종이야.”
“당신이 할 말은 아니야, 야만인.”
“흠. 아까에 비해 말투가 건방져진 것 같은데.”
“보는 사람도 없는데 존댓말을 해 줄 필요는 없잖아?”
“좋아. 말을 편하게 하도록 하지.”
헬기에 기자 몇몇을 태우는 조건이었다. 대통령의 부탁을 받아서 온 것이기도 하지만, 전 세계적으로 유명세를 떨칠 수 있는 기회를 놓쳐서야 쓰나.
리멘 교단의 이름을 더 널리 알릴 수 있는 좋은 기회이거늘.
이럴 줄 알았으면 유경험자인 세명 씨를 데려왔어도 좋았겠지만, 베이스캠프에도 기자들이 꽤 많았다.
토벌 현장을 찍을 수 있게 해 주겠다니 앞다투어 달려들더라.
제비뽑기를 통해서 일본 방송사의 기자 한 명이 뽑혔고, 그는 생중계를 위해 카메라맨과 함께 헬기에 탑승했다.
그들은 탑승하기 전까지만 하더라도 패기가 넘쳤지만, 막상 비행 몬스터들의 영역에 들어오니 기자와 카메라맨의 얼굴에서 핏기가 사라졌다.
“저래 가지고 초점이나 제대로 맞출 수 있을지 모르겠군.”
“당신이야말로 전투 장면을 보여 줘도 되겠어? 이레귤러들은 최대한 정보를 숨기는 것이 불문율이라던데.”
“상관없지. 다른 놈들이 내 전투를 본다고 해서 달라지는 건 없거든.”
곧 나한테 뒈지게 얻어터질 놈이 입은 살아 있다.
에이든 하워드는 악인이라고 하기에는 굉장히 애매모호한 놈이었다.
호승심에 미쳐 있을 뿐.
“저기 보이는군.”
확실히 헬기가 빠르긴 빨랐다. 에이든 하워드의 말대로 저 멀리서 거대한 괴물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브리핑 시간에 보았던 그대로였다.
여덟 개의 대가리를 지니고 있는 거대한 용.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순수한 의문 하나가 떠올랐다.
“대가리 하나를 뜯어 버리면 다른 일곱 개의 대가리도 함께 아파할까?”
그 말에 에이든 하워드가 어이없다는 듯 웃으면서 말했다.
“이거 교황이 아니라 순전히 미친놈이었네.”
“니가 할 말은 아니라니까, 이 미친 야만인.”
“좋아, 미친 교황. 나랑 내기 하나 하지. 더 많은 대가리를 해치운 쪽이 친선 대련에서 선공을 가져가는 거야. 어때?”
내가 그 말에 뭐라고 쏘아붙이려던 찰나.
“수락한 걸로 알겠다!”
에이든 하워드는 성인 남성의 몸만 한 도끼를 양손에 한 자루씩 쥔 채로 헬기에서 뛰어내렸다.
저딴 놈이 미국의 이레귤러라니.
세상 참 말세다.
“질 수는 없지.”
나는 한숨을 내쉰 다음, 곧바로 녀석을 따라 강하했다.
우리 교황님 좀 말려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