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lease stop our Pope RAW novel - Chapter (68)
68화
3.
나는 심드렁한 표정으로 에이든을 쳐다보았다.
에이든의 상태는 썩 좋지 않았다. 방금 전에 내가 집어 던진 성창에 의해 오른쪽 어깨 부근에 깊은 자상을 입었다.
원래는 아예 오른쪽 어깨를 아작낼 생각으로 던졌었는데, 그 찰나의 순간에 에이든이 어깨를 비틀면서 공격을 피해 낸 것이다.
짐승 같은 반사신경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에이든은 본인의 어깨에서 흘러내리는 피를 슬쩍 쳐다보더니 곧 짙게 웃으면서 말했다.
“미국의 이레귤러에게 선제공격을 가할 수 있는 건 네놈뿐일 거다.”
“야만인인 척하더니, 급할 땐 미국의 힘인가?”
“더욱더 마음에 든다, 미친 교황.”
“내기에선 내가 이겼잖아? 네가 갑자기 그 투기라는 걸 끌어올리길레, 바로 친선 대련을 하고 싶은 줄 알았지. 그래서 선공한 거야.”
불과 몇 초 전까지만 하더라도 저 녀석은 나를 향해 거세게 투기를 내뿜었다.
그래서 그냥 성창을 하나 더 소환해서 던져 버렸다.
역시, 미친놈은 매가 약이었다. 성창에 의해 어깨가 갈라지니까 금세 투기를 가라앉히더라.
“오해하지 말고 들어라. 사실, 상부에서는 너와 싸우라는 명령을 내리진 않았다. 이레귤러인지 확인만 해 줄 것을 요구했을 뿐이다. 그리고 네가 이레귤러가 맞을 시, 친분을 쌓으라는 말도 덧붙였지.”
“그럼 친선 대련은 무슨 이야기였는데?”
“친분을 쌓기 위해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숭고한 결투다. 전사끼리의 친분은 결투를 통해서 완성되기에, 상부의 지시에 따라 너와 친분을 나누고자 했다.”
나는 에이든의 개소리를 끝까지 들어 준 다음, 고개를 끄덕거리면서 성창을 소환했다.
“친분을 나누려다가 뒈질 수도 있다는 생각은 한 번도 안 해 봤고? 너 이미 몇 명 보냈잖아.”
“오해하지 마라. 녀석들은 모두 이레귤러를 사칭하던 놈들이다. 전사의 긍지에 대고 맹세할 수 있다.”
“무슨 기준으로 이레귤러를 판단하는데?”
“나와 비슷하거나 강할 것. 미국에 있는 또 다른 이레귤러들은 전부 내가 인정한 자들이다!”
그 말은 반대로 말하자면 미국이 보유한 다른 이레귤러들은 이 야만인보다 강하다는 뜻이다.
“미리 말하지만 나는 미국이 보유한 네 명의 이레귤러 중…….”
“최약체겠지. 맞냐?”
“분하게도 그렇다.”
“그럴 줄 알았어.”
이렇게 보니 미국 놈들도 클리셰를 성실히 따르는 놈들인가 싶다.
하긴. 최약체쯤 되는 놈이니까 저렇게 마구잡이로 굴리는 걸지도.
그나저나 이 야만인 놈이 미국의 이레귤러 중 최약체라.
나머지 이레귤러들도 한번 보고 싶기는 하다. 투기>라는 새로운 성질의 힘도 흥미로운데, 다른 이레귤러들 역시 저 녀석처럼 특이한 힘을 보유하고 있다는 소리 아닌가?
궁금증이 이는 건 어찌 보면 당연했다.
나는 여전히 성창을 움켜쥔 채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녀석을 향해 넌지시 물었다.
“너 아까까지만 하더라도 네 세계의 신들을 다 죽여 버렸다고 하지 않았어?”
“그래. 그것 역시 사실이다. 내 세계의 신들은 비루한 놈들뿐이었는데, 아무래도 네가 모시는 신은 엄청난 존재임이 틀림없다. 경의를 표한다.”
아니, 얘 진짜 성격 바뀌었다니까? 아니지, 처음부터 이중인격이었던 게 아닐까?
몇 분 전까지만 하더라도 나를 향해 살벌하게 이빨을 드러냈던 놈이라고는 도저히 믿을 수가 없다.
에이든은 투기를 완전히 가라앉혔고, 곧 오른손으로 본인의 가슴을 세 번 두드렸다.
“진짜는 진짜를 알아보는 법. 미국의 이레귤러인 나 에이든 하워드는 대한민국의 이레귤러 김시우를 인정한다! 너는 나의 친구가 되기에 충분한 자격을 지녔다!”
……보기보다 아주 뻔뻔한 새끼다.
아까는 분명히 ‘전사는 싸움을 통해 스스로를 증명하구 어쩌구 저쩌구’라고 말했던 놈인데 말이야.
“내 새로운 친구여. 그 창을 내려놓고 우리 부족의 전통에 따라 함께 목욕을 즐기는 것이 어떻겠나?”
“너 솔직히 지금 우리 촬영 중이라서 몸 사리는 거지?”
“……무슨 말인지 원체 모르겠군. 한국말이라서 그런가? 잘 들리지 않는다.”
움찔거렸으면서 끝까지 잡아떼는 추함까지!
위대한 전사고 뭐고를 떠나서 확실히 지도자로서의 재능이 있는 놈인 건 틀림없었다.
자고로 지도자는 얼굴이 두꺼워야 하는 법.
나는 스스로 자멸의 길을 선택한 에이든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런데 이걸 어쩌냐? 내가 부탁을 받아서, 이대로 끝내기에는 좀 그렇다.”
“부탁? 무슨 부탁?”
“무슨 부탁이긴.”
너 아작 내 달라는 부탁이지.
나는 씨익 웃음을 지으면서 손가락을 까딱였고.
콰아아아아아아아앙!
이번에는 다섯 개의 성창이 에이든을 향해 날아들었다.
“살아남으면 친구하자.”
물론 살아남는다면 말이야.
4.
일본의 27세 남성, 카시미 시게지.
카시미는 모니터 속에서 생중계되고 있는 전투를 넋이 나간 듯이 바라보았다.
각성도 못 하고, 아무런 능력 없는 백수였던 그는 불과 30분 전까지만 하더라도 인터넷 커뮤니티에 ‘드디어 중세 잽랜드가 멸망한다www’, ‘야마타노오로치야말로 유일한 구원자다.’ 따위의 글을 싸지르고 다녔다.
그때까지만 해도 그는 이 지긋지긋한 세상이 정말로 끝이 날 거라 생각했다.
야마타노오로치가 출현한 센다이 시는 그가 살고 있는 곳으로부터 차로 1시간쯤 걸리는 위치.
시골에 살고 계시는 부모님이 쉴 새 없이 그의 핸드폰에 전화를 걸어 왔지만, 그는 받지 않았다.
어차피 인생의 실패자인 그를 반겨 줄 곳은 더 이상 이 세상에 없었으니까.
그래서 이 조그마한 방 안에서 마수에게 최후를 맞이하는 것도 괜찮을 거라 생각하고 있던 차였다.
하지만 지금, 모든 것이 바뀌었다.
한국에서 건너왔다는 이레귤러, 검은 교황(Black Pope)은 단 두 번의 공격으로 야마타노오로치를 제거했다. 그리고 그 모습은 헬기 촬영을 통해 고스란히 일본 전역으로 퍼져 나갔다.
미래에 대해 비관적인 전망을 내놓던 전문가들도.
종말론을 비롯하여 각종 혼란에 휩싸여 있던 여론도.
한국인이 보여 준, 그야말로 전율적인 힘을 본 뒤로 180도 바뀌어 버렸다.
-정말 형의 나라다. 미운 동생이 위기에 빠졌다고 최대 전력을 파견해 준다고?
-아시아 최강의 결전병기 브락꾸 포프!
-아아, 일본은 더 이상 한국에겐 무리수구나
-오늘부터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서쪽을 바라보면서 소리칠 거야. ‘아! 위대한 형님! 우리를 구원해 줘서 감사합니다!’
-차라리 이참에 그에게 우리의 모든 걸 맡기는 게 어때?
-브라꾸 포프가 모시는 신이라면 우리 일본을 어둠 속에서 구원해 줄 거야!
카시미가 보기에도 한국의 이레귤러는 그야말로 신이나 다름없었다.
눈부시게 빛나는 창을 던져, 악마와도 같은 마수를 찢어발겼다.
그런 이가 신이 아니면 도대체 누가 신이란 말인가?
그리고 그러한 카시미의 생각은 야마타노오로치 이후에 이어진, 이레귤러들 간의 전투를 통해서 확신에 가까워졌다.
-아메리카의 결전병기 투신 사마를 상대로도 압도하는 모습!
-브라꾸 포프 사마는 정말 강하구나……
-그야말로 아시아의 구원자.
-목소리만 큰 어떤 덜떨어진 집단과는 차원이 달라.
-그 덜떨어진 놈들이 공항에서 브라꾸 포프 사마를 잡아 가려고 했던 영상 봤어?
-투신 사마였으면 목을 꺾었을 텐데!
-이 사람, 자비롭기까지 하네.
이레귤러 간의 전투는 갑작스럽고 느닷없이 시작되었지만, 야마타노오로치의 전투처럼 그 전투 역시 빠르게 마무리되었다.
둘이 무어라 이야기를 주고받는 모습이 화면에 잡힌 다음, 한국의 이레귤러가 일방적으로 미국 측을 두들겨 댔기 때문이다.
“굉, 굉장해!”
성창을 겨우겨우 막아 내던 투신은 마침내 자신의 트레이드마크인 도끼를 바닥에 던져 버리면서 손을 흔들었고, 화면 속의 김시우는 카메라를 정확하게 바라보면서 웃음을 지었다.
마치 화면 너머의 사람들과 눈을 맞추는 듯한 모습.
하지만 기적은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정화?”
김시우의 등에서 갑자기 날개가 뻗어 나오더니, 그의 몸에서 흘러나온 빛이 도시로 스며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빛은 야마타노오로치의 극독으로 인해 검게 죽어 버린 도시에 다시 색깔을 불어넣는다.
카시미는 그 아름답고도 경이로운 장면을 한참 동안이나 멍하니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그런 그의 눈앞에 또 하나의 기적이 모습을 드러냈다.
[축하합니다. 당신은 가능성을 인정받아 플레이어로 각성하게 되었습니다.] [당신은 신성 계열 플레이어입니다.]“이것은…….”
플레이어들에게만 주어진다는 시스템이 틀림없었다.
메시지 창을 보며 눈을 몇 번 껌뻑인 카시미는 조용히 키보드에 손을 올렸다. 그리고 거침없는 속도로 키보드를 두드렸다.
-그의 교단에 들어가고 싶어. 방법 아는 사람?
그렇게 열도는 뜨겁게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5.
진짜 큰일 날 뻔했다.
[액티브 스킬 정화의 날개 Lv. ?>가 종료됩니다.] [당신에게 허용된 인과율의 한계치에 근접했습니다.] [경고! 인과율을 넘어서게 되면 불이익이 주어집니다.]야마타노오로치와 에이든을 정리하는 건 어렵지 않았지만, 그 이후에 이어진 정화 작업에서 내가 너무 멋을 부린 모양이다.
나름 국제무대 첫 데뷔라고 신경을 썼는데,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오염이 심각했다.
게다가 오염 범위도 꽤 넓었던 편이라 내 시야가 닿는 곳까지만 일단 긴급하게 정화를 시켜 뒀다.
인과율이 제동만 안 걸었어도 더 넓은 범위를 정화시킬 수 있었겠지만…… 뭐, 어쩔 수 없지.
아무튼.
그렇게 1차 정화를 끝낸 다음, 바닥에 쓰러져 있던 에이든과 함께 헬기를 통해 베이스캠프로 복귀했다.
베이스캠프에는 이미 셀 수 없이 많은 기자들이 몰려 있었고, 그들은 우리가 헬기에서 내리자마자 달려들었다.
“한 말씀만, 한 말씀만 해 주십시오!”
“당신은 일본의 영웅입니다!”
“에이든 하워드와는 왜 갑자기 전투를…….”
아주 그냥 다양한 언어로 질문이 쏟아졌다.
한국어, 영어, 일본어, 중국어 등등.
일단 한국어로 대답하려던 찰나, 내 옆에서 뻘쭘하게 서 있던 에이든이 가슴을 쭉 펴면서 대신 대답했다.
“나 에이든 하워드는 대한민국의 이레귤러 김시우와 절친한 친구 사이가 되기로 했다! 앞으로 내 친구의 적은 곧 나의 적이며, 조만간 대한민국을 방문하여 친분을 쌓아 나갈 생각이다!”
에이든의 말에 나는 녀석의 귀에 입을 가져다 댔다. 그리고 조용히 속삭였다.
“역시, 대부족장 출신. 싸움으로 대부족장 올라간 게 아니라 정치질로 올라간 거였냐?”
“오, 오해하지 마라. 이건 그냥…… 20년 동안 대부족장으로 살아온 습관…….”
“암요, 그러시겠죠.”
이 녀석, 어쩌면 야만인이라는 것조차 컨셉일지도 모른다.
그래도 힘 하나만큼은 진짜인 놈이다. 첫 만남 때는 나조차도 살짝 경계했을 정도였다.
다른 사람들은 이 녀석보고 눈치 안 보는 막가파라느니, 야만인 그 자체라더니, 온갖 무서운 이야기를 늘어놓더만.
실상은 그냥 곰 안에 여우가 자리 잡고 있던 셈이다.
나는 씨익 웃으면서 에이든의 등을 손바닥으로 후려쳤다. 그리고 웃으면서 기자들을 바라보았다.
“그렇게 되었습니다. 애들은 싸우면서 친해진다잖아요?”
일단 에이든과 장단을 좀 맞춰 줘야겠다. 아까 살아남으면 친구해 주기로 했으니까, 약속은 지켜야지.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이 한국 기자들이 질문을 던지기 시작했다.
“혹시 그 말은 한미 관계가 일전보다 더 가까워진다, 그런 메시지로 받아들이면 되겠습니까?”
“한미일 관계는 어떤 방향으로 흘러가는 겁니까!”
“대답을…….”
다시 질문 세례가 쏟아지기 시작했고, 나는 그 질문에 답하는 것 대신에 조용히 손을 올렸다.
그렇게 한 10초 정도 있자 기자들이 다시 조용해졌다.
“물어보고 싶으신 게 많은 건 이해합니다. 그러나 질문에 관한 것은 나중에 따로 기자회견을 통해 답하겠습니다. 여러분. 지금 중요한 것은 그런 질문들이 아닙니다.”
나는 작게 숨을 내뱉었다. 그리고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을 이어 나갔다.
“많은 일본 국민들이 희생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지금 저희가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그분들을 애도하는 것입니다.”
야마타노오로치는 내 손에 의해 죽었다. 그러나 야마타노오로치 역시 수많은 희생자를 만들어 냈다.
죄 없는 이들이 너무나도 많이 죽었다.
나로 인해서 그들의 죽음이 묻힌다면, 그것만큼 미안하고 속상한 일도 없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잠시 눈을 감으며 손을 모았다.
“부디 리멘께서 여러분들을 평안으로 인도해 주시기를.”
내 조용한 기도에 그 자리에 있던 모두가 잠시 고개를 숙이며 묵념했다.
그렇게 야마타노오로치 토벌전은 종료되었다.
우리 교황님 좀 말려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