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lease stop our Pope RAW novel - Chapter (70)
70화
22. 귀국
1.
길고 길었던 밤이 끝난 후, 다음 날 아침.
하룻밤 사이에 정말 많은 일이 일어났다.
「속보. 일본의 사사키 히로토 총리! 1주일 뒤, 한일 정상회담 발표. 주요 안건은 과거사 사죄와 재난 공동 대응!」
「일본을 구원한 검은 교황 김시우, 최악으로 치닫던 한일 관계를 바로잡다.」
「일본, 극우단체 욱일회와의 전쟁 선포. 그 안에 숨은 뜻은?」
「백악관 공식 대변인, ‘한일 정상회담을 적극적으로 환영하며, 긍정적인 성과를 기대한다.’」
「중국, ‘지금으로서는 할 말이 없다.’」
사사키 총리와 일본에 있어서는 굉장히 길었던 밤이었을지도 모른다.
중요한 건 그 변화의 중심에는 내가 있다는 것.
어찌 되었든 나로 인해 양국 관계가 좋아진다면, 리멘 역시 흐뭇해하고 있을 것이다.
리멘은 언제나 평화를 사랑하기 때문이다. 나중에 리멘이랑 연락이 닿으면 자랑해야지. 예전에는 불쑥불쑥 튀어나오더니, 요새는 연락이 잘 안 돼서 살짝 섭섭하기도 하고.
아무튼. 위에 기사를 보면 알 수 있듯이 국제 정세는 하룻밤 사이에 저렇게 흘러가고 있었고, 나는 아침 일찍 일본의 총리대신 관저로 초청되었다.
물론.
“감사합니다, 에이든 하워드 님. 일본은 에이든 하워드 님의 도움을 잊지 않을 것입니다.”
“하하! 미일 동맹은 여전히 굳건합니다. 환영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총리님.”
12시간 동안 위스키 240병을 마셔 댄 이 에이든 놈도 함께였다.
농담이 아니라 진짜 240병이나 마셨다. 5분에 1병을 비워 대는 페이스였거든.
그래도 한 나라의 정상을 만나는 자리라서 그런가? 늑대 가죽만 걸치고 있던 놈이 웬일로 양복을 입고 왔다.
2m 가까이 되는 큰 체구를 위한 맞춤 양복은 녀석으로 하여금 ‘신사’보다는 ‘조폭’에 가까운 인상을 자아내고 있었다.
촤르르르륵-!
기자들은 에이든이 사사키 총리와 악수를 하는 모습을 열심히 카메라에 담는다.
그리고 그다음, 사사키 총리는 나를 향해 손을 내밀었다.
“처음 뵙겠습니다. 사사키 히로토입니다.”
어제 한 번 들은 듯한 인사.
‘공식적인’ 자리에선 처음 만나는 거였으니, 나는 웃으면서 그의 손을 마주 잡았다.
“김시우입니다.”
“일본을 구해 주셔서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일본은 친절한 이웃 대한민국, 그리고 리멘 교단의 도움을 영원히 잊지 않을 것입니다.”
기자들 앞에서 의도적으로 호의를 표시한 사사키 총리.
총리의 발언에 방금 전보다 더 격렬한 플래시라이트가 터졌다.
그렇게 기자들이 있는 자리에서의 잠깐의 사진 촬영이 끝난 후, 관계자들은 기자들을 뒤로 물렸다.
잠시 후, 방 안에는 나, 에이든, 그리고 사사키 총리. 이렇게 셋만 남게 되었다.
가장 먼저 입을 뗀 건 사사키 총리였다.
“편한 밤 되셨습니까?”
“숙소가 워낙 좋았던 탓에 굉장히 편했습니다. 제 옆에 있는 야만인 놈이 방해만 하지 않았다면 더 좋았을 것 같기도 합니다.”
“섭섭한 말이야. 술잔을 나눌수록 친해지는 법. 좋은 온천이 하나 있다고 하던데, 함께 갈 생각 없나?”
“닥치고 있어. 뒈지기 싫으면.”
“두 영웅분께서 사이가 좋아 보이십니다. 늙은이가 보기에 참 좋습니다.”
역시, 연륜이란 건 무시할 게 못 된다.
사사키 총리는 그 한마디로 우리 둘을 제압해 버렸고, 우리는 멀뚱한 눈으로 총리를 바라보았다.
참 신기한 건 사사키 총리가 따로 통역을 안 두었단 거다.
즉, 지금 사사키 총리는 영어로 이야기를 하고 있다. 에이든이 말귀를 알아듣는 걸 보면 확실하다.
한국어도 조금 하고, 영어도 잘하는 총리라. 지식인 느낌이 물씬 풍겨온다.
“제가 두 영웅분들을 이렇게 초청한 이유는 거창하진 않습니다. 정치적인 얘기는 정치가들끼리 할 이야기고, 저는 이 나라를 위기에서 구해 준 두 영웅 분께 감사 표시를 하고자 이리 모셨습니다.”
“감사 표시 말씀이십니까?”
“타국의 위기에 선뜻 와 주신 분들에게 뭐라도 들려 보내야 제가 욕을 먹지 않습니다. 혹시, 두 분께서 따로 원하시는 게 있으십니까?”
요컨대 퀘스트를 완료했으니, 보상을 주고 싶단 얘기다.
그 질문에 먼저 답을 한 건 에이든이었다.
“전사는 친구를 도울 때 보상 같은 건 신경 쓰지 않습니다. 물론 제가 일본의 사케를 꽤 좋아하는 편이긴 합니다.”
“비서를 시켜 각 지역에서 유명한 사케를 넉넉하게 챙겨 두라 하겠습니다. 정말 그 정도면 되겠습니까?”
“술만큼 좋은 건 없지요.”
그래도 양심은 조금 있는지 장난스럽게 사케를 언급하는 에이든.
미국의 이레귤러라면 최고급 사케를 구하는 것 정도는 어렵진 않을 터.
그의 입장에선 성의만 받는 셈이었다.
사사키 총리는 고개를 끄덕인 다음, 나를 바라보았다.
“그럼 김시우 님께서는 혹시 원하시는 게 있습니까?”
그 말에 나는 잠시 고민을 했다.
내가 딱히 원하는 건 없다만, 일본으로 넘어오기 전에 시연이가 부탁했던 게 하나 있긴 하다.
“저한테 여동생이 하나 있습니다. 이곳에 오기 전에 여동생이 꽃이 많이 피는 섬 하나를 가지고 싶다고 했던 기억이 나네요.”
“꽃이 많이 피는 섬…… 흐음.”
“농담입니다. 제가 딱히 원하는 건…….”
“1주일 이내로 답변을 드리겠습니다. 꽃이 아름답게 피어나는 섬을 고르는 데 시간이 좀 걸릴 것 같습니다.”
“……진심이십니까?”
“당연히 진심입니다.”
이게 될 줄은 몰랐네.
사사키 총리의 대답을 가만히 듣고 있던 에이든이 씨익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일본도 당분간 아주 시끄러워지겠군요.”
“이웃 국가에 이레귤러가 등장했습니다. 그럼 당연히 판도도 바뀌어야겠지요.”
“탁월한 선택입니다. 이건 총리께만 알려 드리는 건데, 미국이 보유한 다른 세 명의 이레귤러 중에서도 시우를 상대로 우위에 설 수 있는 사람은 없을 겁니다. 장담하지요.”
“……조언 감사합니다.”
“별말씀을.”
여러 가지 속내가 담겨 있는 듯한 대화.
이 녀석이 갑자기 내 얼굴에 금칠을 하는 속내가 뭘까?
지난번에도 느꼈지만 에이든 이놈 안에는 뱀 수십만 마리가 살고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나는 떨떠름한 표정으로 그 둘을 바라보았고, 그렇게 총리와의 면담이 마무리되어 갔다.
2.
총리와의 면담이 끝난 후부터는 자유시간이었다.
에이든이 끈덕지게 달라붙으려 했지만, 다행스럽게도 미국 측에서 에이든을 끌고 갔다. 아직 일본에서 해야 하는 일이 남아 있다던가?
덕분에 야만인으로부터 벗어났고, 나는 그 길로 레오와 김 팀장과 함께 잠시 자유시간을 즐겼다.
일본 정부에서 헬기까지 제공해 준 덕분에 꽤 거리가 있던 쿠사츠 온천에도 다녀와 보고, 저녁에는 어렸을 때부터 들었던 도쿄의 유명한 스시야도 다녀오고.
원래는 당일 예약 따위는 어림도 없는 스시야였는데, 내가 그곳에 가고 싶다는 이야기를 들은 누군가가 본인의 예약을 양보해 줬다더라(심지어 먹고 싶은 거 다 먹으라면서 500만 원을 미리 결제해 두셨다.).
하여간에 꽤 알찬 하루가 지나갔고, 귀국하는 날이 밝았다.
나에게 자꾸 선물을 주려던 호텔 지배인으로부터 벗어나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
역시나 도쿄 시민들의 환호를 받으면서, 내가 처음 일본에 입국했던 나리타 국제공항에 도착했다.
마음만 같아서는 며칠 더 관광을 다니고 싶긴 했지만 혼자서 병아리들을 훈련시키고 있을 루나가 마음에 걸렸다.
“더 쉬다가 가고 싶다. 안 그러냐, 레오야?”
“레벤톤 경 혼자서 고생하고 있을 겁니다.”
“나는 다른 사람 고생하는데 꿀 빨 때가 제일 좋더라.”
돌아가면 고생길이 훤하다.
우리 교단에 들어온 신성 계열 플레이어들도 관리해야지, 그라운드 제로 정화 작업도 마무리해야지.
골치 아픈 일투성이다.
그래서 어제 아무 생각 없이 잔뜩 쉬었다.
그래도 이번 일본 파견은 성과가 아주 많았다. 야마타노오로치도 처리했지, 일본에도 리멘 교단의 명성이 널리 퍼졌지.
게다가 일본 정부 측과 센다이 시 정화 작업에 사용할 신성석에 관한 이야기도 나눴다. 야마타노오로치 그놈의 마기와 독을 중화시키는 데에는 신성석만 한 게 없었고, 당연히 총리는 큰 관심을 보였다.
돌아가는 대로 채굴된 신성석의 양을 확인한 뒤, 여유분이 있다면 일본 측에 팔아 주기로 했다.
그것도 아주 만족스러운 가격에 말이다. 최소 수백억은 확보할 수 있지 않을까? 잘하면 천억 단위도……
“성하? 왜 갑자기 그런 표정을…….”
“아니, 그냥 내 상황이 좀 웃겨서. 옛날에는 백만 원 단위에도 가슴이 철렁거렸는데, 단위가 좀 많이 달라지긴 했다.”
지난번에 최 대표한테 건강 팔찌 팔았을 때도 실감이 잘 안 나긴 했었지만 말이야.
에덴에서야 재정을 관리했던 게 내가 아니었으니까 잘 몰랐기도 했고.
아무튼.
3일 만에 이뤄 낸 성과치고는 말도 안 되는 성과인 건 틀림없었다.
돌아가면 재정을 관리해 줄 사람도 빨리 구해야겠다.
나는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인 다음, 내 옆에서 싱글벙글 앉아 있는 김 팀장을 바라보면서 말했다.
“그렇게 좋으세요?”
“물론입니다. 이참에 조금 더 쉬다가 갈 수 있겠네요. 역시, 시우 님은 제 평생의 은인이십니다.”
김 팀장이 저렇게 좋아하는 이유는 단순했다.
내가 유선호 장관한테 전화해서 김 팀장에게 따로 맡긴 일이 있으니, 나중에 귀국할 수 있도록 조치해 달라고 부탁했기 때문이다.
당연히 유선호 장관은 내 부탁을 들어주었고, 그렇게 김 팀장은 3일 뒤에 귀국하게 되었다.
물론 내가 진짜로 김 팀장에게 맡긴 일은 없었다. 이를테면 3일짜리 유급휴가라고 해야 할까?
나 때문에 주말 가릴 것 없이 고생했던 그에게 내가 줄 수 있는 선물이기도 했다.
“잘 놀다가 오세요. 귀국하시면 또 저 때문에 머리 빠지시잖아요.”
“10개월 만에 처음으로 쉬어 보는 것 같습니다. 후회 없이 있다가 가겠습니다.”
3일간의 자유시간이 그렇게나 좋은 걸까?
아주 그냥 입이 귀에 걸렸다. 지난번에 자기 승진했다고 말할 때보다 더 좋아하는 것 같다.
그렇게 내가 김 팀장님과 이야기를 주고받고 있을 때쯤, 강채아가 우리에게로 다가왔다.
“김시우 각성자님. 비행기에 탑승하실 시간입니다.”
“채아 씨도 이곳에 남죠?”
“예, 그렇습니다. 내일부터 한일 정상회담 전, 일본 이능청과 교류에 관한 사전 협상을 준비하라는 명령입니다.”
딱딱하고 사무적인 말투.
나는 강채아를 바라보면서 조용히 미소 지었다.
그저께 밤을 새우면서 술을 마실 때쯤, 넌지시 진영이 형에게 물어봤다. 강채아와 어떤 사이였냐고.
술이 꽤 달아오른 진영이 형은 내 질문에 순순히 대답했다.
-많이 사랑했다. 나도, 채아도.
술 취한 남자의 넋두리.
그가 일본으로 넘어온 이후로 한일 관계는 더 악화되었고, 매국노가 된 그의 뒤를 이어 정부의 마스코트가 된 강채아와는 당연히 멀어질 수밖에 없었다.
서로가 원하지 않았지만, 동시에 서로가 이해할 수밖에 없던 결말.
그의 넋두리가 떠오르니 나도 모르게 오지랖을 부리고 싶어졌다.
“그저께 제가 진영이 형이랑 술을 마셨는데, 자꾸 핸드폰을 보더라구요. 누구한테 연락 안 오나 기다리는 눈치였어요. 일본 넘어온 이후로 여자친구도 못 사귀었다는데…… 아, 제가 요새 쓸데없이 말이 많아져서. 미안합니다.”
“……저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예?”
“감사합니다, 김시우 각성자님.”
다행히도 오지랖은 아니었나?
나는 나를 향해 조용히 고개를 숙이는 강채아를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별말씀을.”
짧게 인사를 건넨 후, 몸을 돌려서 계단을 내려가려던 순간이었다.
“김시우 각성자님께 대하여 경례!”
“충성.”
누가 국방부 소속 각성자들 아니랄까 봐.
나는 나를 향해 경례한 그들에게 가볍게 손을 흔들어줬다.
“한국에서 또 봅시다.”
짧았지만 새로운 인연도, 얻어 가는 것도 많았던 해외여행이었다.
“레오야. 가자.”
“예, 성하.”
레오와 함께 가볍게 발을 앞으로 내디뎠다.
이제는 신전으로 돌아갈 시간이었다.
3.
3시간 뒤.
대한민국, 인천국제공항.
나는 내 앞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을 바라보면서 난감하게 웃을 수밖에 없었다.
“와아아아아!”
“김시우! 김시우! 김시우!”
“꺄아아아아아아아!”
“여기요! 여기 좀 봐 주세요!”
“폴더좌도 같이 있어!”
“오빠아아아아아아! 꺄아아아아악!”
“웃어 주세요!”
온갖 알 수 없는 광기로 혼란한 이곳.
나는 나를 향해 쏟아지는 스포트라이트와 괴성을 들으며 조용히 중얼거렸다.
“……이세계인가?”
적어도 내가 알고 있던 대한민국은 아닌 게 틀림없었다.
확실히.
우리 교황님 좀 말려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