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lease stop our Pope RAW novel - Chapter (71)
71화
4.
이쯤 되니 우리가 마치 아이돌 그룹이라도 된 기분이다.
그것도 혼성 3인조 아이돌 그룹.
나랑 레오 단둘이 귀국했는데 왜 3인조 혼성이냐고?
그것은.
“성하아. 혼자만 재밌게 놀다가 오신 것 같던데, 제 선물은 분명히 사 오셨겠죠?”
공항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던 루나가 합류했기 때문이다.
선글라스를 낀 채로 우리를 기다리고 있던 루나.
그래, 여기까진 우리를 배웅하러 나왔다고 치자.
그런데 말이다.
“오셨습니까! 교황 성하!”
“오셨습니까!”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검은색 양복을 입고 있는, 저 40명은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교황 성하 자리에 큰 형님이 들어가 있었어도 어색하지 않은 분위기였다.
나는 나를 향해 허리를 숙여서 인사를 하고 있는 그들을 바라보며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루나를 바라보면서 넌지시 물었다.
“네 짓이지?”
“교단에 몸을 담은 순간, 리멘의 대리자이시자 첫 번째 사도이신 교황 성하를 목숨 걸고 지키는 것은 당연한 일! 에덴이었다면 그 누구도 쉽게 얻지 못할 영예로운 일인 셈이죠.”
“도대체…….”
내가 없는 사이에 무슨 일이 벌어졌던 걸까?
나는 꺼림칙한 표정으로 우리의 신입들을 살폈다. 걔중에는 예전에 내가 직접 우리 교단으로 꼬셨던 초기 멤버 중 하나인 재민이가 있었는데, 재민이는 나와 눈이 마주치자마자 냅다 엎드리면서 소리쳤다.
“교황 성하 만세! 만세! 리멘께 영광 있으라!”
“……후우.”
“사상 교육 위주로 진행했거든요? 3일 내내 교리를 몸으로 체득할 수 있도록 굴렸죠. 마음에 드시나요?”
“도대체 어떻게 하면 저렇…… 아니다. 널 믿은 내가 잘못이지, 루나야.”
며칠 더 있다가 왔으면 진짜 큰일날 뻔했을지도 모른다.
내가 기대했던 건 파릇파릇한 신입들이었는데, 불과 3일 만에 이 정도의 광기를 받아들이다니.
대한민국에 독을 풀 뻔했구만.
그래도 루나가 신입들을 많이 끌고 온 덕분에 어느 정도의 치안은 유지되는 것 같다.
사람들은 멀리서 내 사진을 찍을 뿐, 그 누구도 나에게 달려들 생각을 못 했다.
나는 애써 웃음을 지으며 사람들을 향해 손을 흔들어 줬다.
그리고 조용히 중얼거렸다.
“벌써 기가 빨리는 기분이네.”
“아니, 그래서 성하. 제 선물은요?”
“맞다. 깜빡하고 일본에 두고 왔네. 가서 가져올래?”
“에이, 선물을 받으러 직접 가는 사람이 어디에 있어요? 사랑스러운 부하는 자유시간 다 포기하고 신입들 교육에 매진하고 있었는데…….”
루나가 엄청난 속도로 내 생기를 빨아들이기 시작하려던 찰나.
나를 향해 뜨거운 호응을 쏟아 내고 있던 사람들이 다시 한번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사람들이 왜 갑자기 그러나 싶었는데, 나는 곧 그 이유를 알아차릴 수 있었다.
인파가 잠시 갈라지더니, 그 사이에서 한 남자가 꽃목걸이를 든 채로 걸어 나왔다.
여기까지는 평범한 환영 인파라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남자의 정체는 도저히 ‘평범하다’라고 부를 수 없는 사람이었다.
“귀국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김시우 각성자. 당신이야말로 대한민국의 영웅입니다!”
“그래도 여기가 나름 유동 인구가 많은 공항이기도 하고, 안전을 위협하는 요소가 있을지도 모르는데…… 대통령이란 분이 이렇게 갑자기 등장하셔도 됩니까?”
“하하! 뭐가 그리 걱정이겠습니까? 미국마저 인정한 이레귤러가 바로 제 앞에 있잖습니까. 대한민국에서 이보다 안전한 곳이 또 어디 있겠는지요.”
대한민국의 국가 원수, 서신우 대통령이 직접 나를 마중 나온 것이다.
그는 내 목에 꽃목걸이를 걸어 주었다. 그리고 나에게 손을 내밀면서 쾌활하게 말을 이어 나갔다.
“정상회담이 끝나는 대로 청와대에 공식으로 초청하겠습니다. 아, 사사키 총리와 구면이시니 아예 정상회담 때 함께하시겠습니까?”
“그랬다가는 대통령께서 나라를 종교에 팔아먹었다, 리멘 교단이 실세다, 이런 소리 듣기 딱 좋지 않을까요?”
“그만큼 제가 김시우 각성자를 믿고 있다는 뜻입니다. 자자, 저 카메라입니다. 저쪽을 보고 함께 웃으실까요?”
정치인답게 능숙한 쇼맨십까지 탑재하고 있는 서 대통령이었다.
나는 서 대통령과 악수를 한 채로 다시 한번 미소를 지었고, 그런 우리를 향해 카메라의 스포트라이트가 쏟아져 내리기 시작했다.
번쩍거리는 불빛들.
그 속에서 서 대통령은 여유로운 목소리로 나에게 말했다.
“부탁을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덕분에 대한민국이 새로운 판을 짤 수 있게 되었습니다.”
“사람들을 구하려고 갔을 뿐인걸요. 더 일찍 가지 못해서 안타까웠을 뿐입니다.”
“김시우 각성자께서 만들어 내신 물결은 앞으로 수많은 것을 바꿀 것입니다. 실망하지 않으시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무언가 결심한 듯한 표정.
나는 서 대통령의 얼굴을 바라보면서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이레귤러로서 해야 할 일은 전부 끝났다.
여기서부터는 그들이 해결해야 하는 문제일 뿐.
“그럼 이제 가족분들이 기다리고 있는 집으로 가십니까?”
서 대통령의 질문에 나는 나지막하게 한숨을 내뱉었다.
“그러고 싶지만, 교황으로서 해야 할 일들이 좀 밀려 있어서.”
“저런. 지도자들은 원래 쉴 새 없이 바쁜 법이지요.”
“공감합니다.”
신전으로 돌아가자.
아직 해결해야 할 문제들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다.
5.
“교황 성하를 뵙습니다!”
“교황 성하를 뵙습니다!”
3일간의 외출이었지만, 다시 돌아온 우리 신전의 분위기는 3일 전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이 달라져 있었다.
먼저 100명은 족히 넘어 보이는 인원들이 그라운드 제로의 입구서부터 우리를 마중 나왔다.
루나가 공항에 데려왔던 인원들은 빙산의 일각에 불과했던 것이다.
나는 나를 향해 90도로 인사를 건네는 신입들을 바라보면서 애써 웃음을 지었다. 그리고 손을 흔들면서 루나를 쳐다보았다.
“도대체 애들을 어떻게…….”
“사랑과 자비. 그저 리멘께서 일러 주신 대로만 가르쳤을 뿐이옵니다. 아, 그리고 신입들에 대한 간략한 보고를 진행하겠습니다, 성하.”
“가면서 듣자. 말해.”
루나는 슬며시 미소를 지으면서 말을 이었다.
“일단, 현재 이곳에 모인 교육생의 총 숫자는 142명이에요. 최연장자는 36세, 최연소자는 15세고, 평균 연령은 26.6세. 제가 다른 쪽도 슬쩍 살펴봤는데, 확실히 저희 쪽이 압도적으로 평균 연령이 낮아요. 저희와 비교할 수 있는 건 기껏해야 백명교 정도?”
“그거야 당연한 거지. 대한민국이니까.”
기성 종교들은 그 종교에 대한 신앙심으로 각성한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그리고 대한민국의 특성상 젊은 층에서 무신론자 비율이 압도적으로 두드러진다.
복잡하게 생각할 것도 없었다.
순순히 잠재력만으로 각성한 플레이어들은 신흥 종교 쪽으로, 올곧은 신앙심으로 각성한 플레이어들은 기성 종교 쪽으로.
그나저나 142명이라.
“백명교 애들은?”
“놀랍게도 190명. 저희보다 48명 많아요.”
“딱히 놀랍지는 않네.”
백명교 놈들은 이래저래 준비를 많이 했던 모양새였다. 다들 어리버리하고 있던 와중에 빠르게 인재를 포섭하기도 했고, 전각련과 연계를 통해 확실한 출세의 길을 보장해 줬다.
그런 놈들을 상대로 이만큼이나 인력을 끌어왔으면 충분히 만족스러운 결과였다.
이 정도면 선방은 했다고 생각한다.
게다가 이번에 일본에서 인지도를 높혀 둔 덕분에 한국뿐만 아니라 일본에서도 대량의 인력을 수급할 수 있게 될 테니까, 시간이 흐를수록 우리 쪽으로 무게추가 많이 기울게 될 것이다.
“전각련 쪽도 손보면 훨씬 효과가 좋을 것 같기도 하고…… 좋아, 교육은 어떻게 진행했어?”
“국립 각성자 아카데미에서 나온 교수들이 2일 전부터 각성자의 의무와 권리에 대해서 교육하고 있고, 레오가 번역해 둔 성서를 통해서 핵심 교리부터 알려 주고 있어요.”
“다들 어떤 것 같아?”
“아직은 잘 모르죠. 성하의 말대로 무신론자였던 삐약이들이 대부분이잖아요?”
무신론자가 하루아침에 신을 받아들이는 건 어려운 일.
그것은 시간이 차근차근 해결해 줄 문제다. 리멘이 직접 나타나서 기적을 보여 주면 간단하게 끝날지는 모르겠다만, 리멘 성격이면 그런 이유로 현신할 것 같진 않단 말이지.
내가 그렇게 이런저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쯤, 오랜만에 눈앞에 시스템 메시지가 떠올랐다.
[DLC – 교황>의 새로운 카테고리가 해금됩니다.] [현 시간부로 교육> 카테고리를 사용할 수 있습니다. 당신은 해당 카테고리를 이용하여 당신 교단 소속의 플레이어들이 어떻게 성장해 나갈지를 조율할 수 있습니다.] [현재 당신이 선택할 수 있는 교육 중점은 교리 중점>, 전투 중점>입니다.] [교리 중점>: 교리를 공부할 때 추가 경험치를 지급합니다. 건물: 수도원>의 기능이 대폭 강화되며, 축성>의 효율이 증가합니다.] [전투 중점>: 전투로 획득하는 추가 경험치가 증가합니다. 건물: 성기사단 본부>의 기능이 대폭 강화되며, 전투를 통한 신성력 획득이 가능해집니다.]전략 게임의 느낌이 물씬 풍기는 카테고리.
각 중점이 장단을 지니고 있는 듯했지만, 지금의 나로서는 사실상 답이 하나라고 느껴졌다.
나는 길게 고민하지 않았다.
“전투 중점.”
[교육 중점이 전투 중점>으로 선택됩니다. 교육 중점은 일정 신성 점수를 지불하여 변경할 수 있습니다.]마왕을 소탕하고 평화를 되찾은 에덴이었다면 교리>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 좋았을 거다. 지구에 비하면 비교적 전투가 적게 일어나고 있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지구는 아주 뜨겁다.
내일 당장 전투에 투입되어도 이상할 것 없을 정도란 뜻이다. 그렇기 때문에 고민의 여지가 없었다.
그들의 신앙심의 주축이 될 성서와 핵심 교리를 교육한 이후, 전투를 통해서 담금질하는 방법.
사선을 넘나들고 수많은 죽음을 마주할수록 그들의 신앙심은 시험받을 것이며, 동시에 그 시험을 통해서 단단해질 것이다.
다만.
“이러다가 교단에 성기사들만 넘치는 거 아니야?”
그 방식을 통해 성장하는 성직자들은 대부분 성기사들이란 점이지.
사제와 성기사가 균형을 이루는 것이야말로 이상적인 모양새거늘, 살짝 우려스럽긴 했다.
하지만 나는 뒤이어진 레오의 말에 표정을 풀 수밖에 없었다.
“성하. 크게 걱정하실 건 없습니다. 사제들 역시 전투와 같은 고행을 통하여 성숙해질 수 있습니다. 저 역시 마찬가지였지 않습니까?”
“그렇긴 해.”
“후후, 그래 봤자 성서만 읽는 샌님들이지. 그렇죠 성하?”
맞다.
에덴에서도 대주교들이랑 성기사단장들이랑 라이벌 의식이 있었지?
레오랑 루나 둘이 같은 선지자 출신이라 깜빡하고 있었다.
루나의 말에 레오는 고개를 가로저으면서 대답했다.
“성서도 암송하지 못하는 방패쟁이보다는 낫지요.”
“우리 동생. 간만에 그 방패쟁이한테 서열 교육 좀 당해 볼래?”
“성하께서도 엄연히 사제시란 걸 기억하셔야 합니다 레벤톤 경.”
“그와 동시에 모든 성기사단을 지휘하시는 총 성기사단장의 직위도 가지고 계시지. 그렇죠 성하?”
둘이 동시에 나를 쳐다본다.
마치 자기를 편들어 달라는 눈빛.
그 말에 나는 재빠르게 화제를 돌려 버렸다.
“내가 없는 동안 신전에는 별다른 일 없었어? 신탁이라던가.”
“없었는데요.”
“그래?”
리멘으로부터 연락이 좀 늦어진다. 저쪽 세계에서 무언가 일이 진행되고 있는 것 같은데, 자세히 알아볼 수가 없으니 답답할 지경이다.
지금쯤이면 슬슬 연락할 때가 되었을 텐데 말이지.
“아, 맞다.”
대신 루나는 나에게 다른 소식을 전해 주었다.
“오늘 도깨비 길드의 최서진 대표가 온다고 했는데, 아마 지금쯤이면 도착해 있겠네요.”
“……에이든 놈이 사라지니까, 이번에는 최 대표가? 마초 보존의 법칙, 뭐 그런 건가?”
“아, 마침 저기 계시네요.”
루나의 말에 나는 고개를 돌려 전방을 바라보았다. 그곳에는 최 대표가 얼굴 가득 웃음을 품은 채로 나를 향해 걸어오는 중이었다.
부하 한 명 대동하지 않은 채로 걸어오는 최 대표.
겨울에 접어든 계절 따윈 아랑곳하지 않는 하와이안 셔츠는 그의 사나이다움을 강조해 주……기는 개뿔.
주책이다 정말.
“전 세계 공인 이레귤러! 우리 김 교황님 아니십니까? 기다리느라 잠들 뻔했지 뭡니까.”
“저, 최 대표님.”
“예!”
“되도록이면 미국의 바바리안을 피해 다니세요.”
“바바리안이요? 안 그래도 한번쯤 보고 싶었던 인물이었습니다.”
“둘 중 하나는 죽을 것 같아요.”
왜, 똑같은 사람끼리 만나면 한 명은 죽는단 말이 있지 않은가?
이런 경우에는 보통 약한 쪽이 죽기 마련이다.
아무리 최 대표가 대한민국에서 날고기는 각성자라고 하더라도, 바바리안을 이길 급은 아니거든.
진심이 반쯤 담긴 내 농담에 최 대표는 머리를 긁적이더니, 아랑곳하지 않는 목소리로 말했다.
“산책이라도 잠시 하시겠습니까? 드리고 싶은 말씀이 있습니다.”
“전화로 하셔도 괜찮은데.”
“비즈니스는 직접 얼굴을 맞대야 한다는 게 철칙이라.”
무슨 비즈니스를 하려고 내가 귀국하자마자 이렇게 찾아오셨으려나?
나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대답했다.
“마침 보여 드리고 싶은 산책로가 있습니다. 같이 가시죠.”
느낌이 좋은 걸 보니, 최 대표가 괜찮은 건수를 하나 잡아 온 듯싶었다.
벌써 기대되는걸?
우리 교황님 좀 말려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