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lease stop our Pope RAW novel - Chapter (72)
72화
6.
내가 최 대표에게 안내해 주고 싶었던 산책로는 정화 작업이 막바지에 다다른, 그라운드 제로의 외곽 지역이었다.
최 대표는 폐허 속에서 자라나기 시작한 풀들을 바라보면서 감탄사를 내뱉었다.
“부산과 대전도 이렇게 풀이 자라나겠군요. 정말 대단합니다. 신성석의 효능입니까?”
“보시다시피 그렇습니다.”
정화가 진행되는 구역 곳곳에는 최상급 신성석이 배치되어 있었다.
채굴되는 대부분의 신성석을 이쪽으로 돌려 두었기 때문이다. 여기에 신전에서 뿜어져 나오는 신성력과, 신목의 힘까지 더해지니 속도가 더더욱 빨랐다.
5일 이내 모든 정화 작업이 끝날 것으로 예상되는 수준이었다.
“마력 오염을 이렇게나 빨리 정화할 수 있다면 각국에서 침을 질질 흘리겠습니다.”
“안 그래도 이번에 일본 정부 측과도 거래를 진행하기로 했습니다.”
“이런. 제 스스로가 부끄러워지는군요.”
“갑자기요?”
“처음에 기부를 안 받는다고 하셨을 때, 솔직히 말도 안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기부를 안 받는 종교 집단이 유지가 될 리 있나, 그렇게 생각했기 때문이지요. 하지만 역시 김 교황님께서는 다 계획이 있으셨군요.”
최 대표의 말에 나는 피식 웃으면서 대답했다.
“보시다시피 저희 교단은 자급자족이 방침이라.”
“제가 돈 냄새 하나는 잘 맡는 편인데, 이쯤 되면 자급자족 수준에서 끝날 것 같진 않은데요.”
지금이야 아직 교단의 규모가 작아서 괜찮지만,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돈은 더 많이 필요해질 것이다.
나는 최 대표의 능청에 씨익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교단의 재정을 관리해 줄 사람을 구해 볼까 합니다. 우리 최 대표님께서 혹시 도와주실 의향이라도 있겠습니까?”
“저한테 맡기셨다가는 다 술값으로 쓸 것 같습니다.”
“……아니, 최 대표님이 직접 해 달라는 게…….”
“압니다, 알아요. 장난 한번 쳐 봤습니다. 재정을 관리해 주는 사람이라. CFO가 필요하신 모양이군요. 확실히 재단이나 사업체를 운영하시려면 재무 관리자를 포함한 전문 인력이 필요하긴 합니다.”
가만 보면 에이든도 그렇고, 최 대표도 그렇고. 살벌한 덩치에 걸맞지 않은 인텔리함을 보유하고 있다.
에이든은 외교에 특화되어 있다면, 이쪽은 진짜 ‘대표’로서의 분위기가 여실히 드러난다.
요새 트렌드가 힘을 숨기는 것보단 지능을 숨기는 쪽인가?
“마침 적당한 인물이 하나 있습니다. 빠른 시일 내에 이곳에 방문하라고 전해 두겠습니다.”
“부담을 가지실 필요는 없습니다. 아시죠?”
“그놈이 먼저 관심을 보이는 상황입니다. 성격은 몰라도 능력 하나만큼은 괜찮은 놈이니, 직접 만나 보고 결정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그렇게 말하면서 웃는 걸 보니 친한 사이인 모양이다.
친구, 아니면 가족인가.
최 대표가 인정하는 사람이라면 능력은 보장되어 있는 셈이다. 만나 보지 않을 이유가 없지.
최 대표는 호탕한 웃음을 터뜨리면서 말을 이어 갔다.
“일본에 다녀오시더니 결심이 서신 듯합니다. 리멘 교단이 본격적으로 움직이겠군요.”
“일본에서 류진영 각성자와 많은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사실, 지구에 처음 돌아올 때까지만 하더라도 나랑 내 가족끼리만 잘 먹고 잘살면 된다고 생각했다.
전도를 위해 돌아온 게 아니라, 편하게 쉬기 위해 집으로 돌아온 거니까.
하지만 양화대교를 배경으로 와이번이 날아다니는 장면을 본 순간, 그건 단순히 희망 사항에 불과했다는 걸 깨달아 버렸다.
그리고 그날부터 목표가 바뀌었다.
“리멘 교단은 가족들과 내 사람들에게 가장 강력한 울타리가 되어 줄 겁니다.”
“리멘 교단이라면 울타리가 아니라 요새입니다.”
“요새는 너무 고압적이고 고립된 이미지잖아요. 누구라도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는 울타리. 그게 좋습니다.”
“혹시 적대적인 누군가가 울타리를 넘는다면요?”
“글쎄요. 그런 일이 벌어지질 않길 바랍니다만.”
나는 잠시 걸음을 멈췄다. 그리고 나를 향해 질문을 던진 최 대표를 바라보면서 조용히 말했다.
“그런 불행한 일이 발생한다면, 다시는 그런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본보기를 보여 줘야겠죠.”
최 대표는 내 대답에 자신의 턱을 쓰다듬었다.
“미리 본보기를 보여 주면, 불행한 일을 처음부터 예방할 수 있는 것 아닙니까?”
“우리는 보통 그걸 협박이라고 부릅니다, 최 대표님. 그나저나 아까 제게 말씀하셨던 비즈니스는 뭡니까?”
“유통에 관련해서 드릴 말씀이 좀 있습니다.”
건강 팔찌를 비롯한, 향후 축성소에서 제작될 성물들의 판매처.
최 대표는 내가 예상했던 것보다 빠르게 답을 가져왔다.
“저희 아버지께서 김 교황님을 뵙고자 하십니다.”
“아버지라고 하신다면…….”
“유선 그룹의 회장이시기도 하지요. 제가 아들이라서 높이는 건 아닙니다만, 정말 좋으신 분입니다.”
한 나라의 정부 수반들도 만나고 다닐 정도인데, 재벌 그룹의 회장을 만나는 것 정도야 이상할 건 없다.
그러나 본능적으로 살짝 꺼려지는 것도 사실이다.
“종교인은 정치인만큼이나 기업인도 피해 다녀야 한다는 거, 알고 계시는 건 맞죠?”
“비밀리에 회동하시면 되겠군요. 솔직히 기자나 파파라치 정도는 마음만 먹으시면 따돌릴 수 있지 않습니까?”
그 말에 잠시 나는 머릿속으로 이런저런 계산을 더했다.
유선 그룹이라.
도깨비 길드나 최 대표와는 좋은 관계를 맺어 나갈 생각이긴 하지만, 유선 그룹은 별개의 문제다.
그러나 굳이 부정적인 자세로 나설 필요는 없다.
현재 리멘 교단과 정부의 관계처럼 기업과 상생하는 관계 정도는 가능할 것이다.
서로 필요한 것이 있으면 정당한 대가를 통해 거래를 하면 된다.
적어도 우리 교단은 그런 부분에 있어서 만큼은 상당히 개방되어 있으니까.
“좋습니다.”
잠시간의 고민을 끝낸 나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대답했다.
“날짜는 언제쯤이 괜찮겠습니까?”
“빠르면 빠를수록 좋다고 하셨습니다.”
누가 최 대표네 아버지 아니랄까 봐, 성격 한번 화끈하시다.
리멘 교단의 교황은 신도들을 잘 관리하는 것뿐만 아니라 사업체 역시 발전시켜야 하는 의무를 지니고 있다.
그래야 구휼 사업을 적극적으로 펼쳐 나갈 수 있기 때문이다.
즉, 기업인을 만나러 가는 건 교리에 어긋나지 않는 셈이다.
“기왕이면 한일 정상회담이 종료되고 뵙는 게 괜찮을 것 같은데, 안 그렇습니까?”
“변수가 많이 생길 회담이니까요. 동의합니다.”
“다음 주쯤에 찾아뵌다고 전해 주세요. 이번 주는 이래저래 바쁠 예정이라.”
내 명쾌한 대답에 최 대표는 만족스럽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호쾌하게 웃음을 터뜨리면서 말을 맺었다.
“좋습니다! 비즈니스도 성공적으로 끝냈으니, 귀국 기념으로 시원하게 한잔 어떻겠습니까?”
“……다시 한번 말씀드리지만, 바바리안은 꼭 피해 다니세요.”
“예?”
“그런 게 있다니까요.”
도플갱어를 만나면 죽는…… 아, 두 사람의 경우는 오히려 도플갱어를 생으로 잡아먹겠구나.
어쨌든.
빨리 집으로 돌아가서 쉬고 싶다.
시연이랑 백설이 데리고 잔뜩 농땡이 피우고 싶거든.
나는 마지막까지 나에게 달라붙으려던 최 대표를 미뤄 내면서 한숨을 내쉴 뿐이었다.
오늘 집에 가면 아무것도 안 할 거다.
아무것도.
7.
바로 퇴근하겠다는 내 의지는 금세 꺾여 버렸고, 결국 신전에 남아서 이런저런 업무를 처리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나는 저녁 10시가 되고 나서야 집에 돌아올 수 있었다.
냐아아아아-.
집으로 돌아온 나를 맞이해 주는 백설이.
백설이는 이산가족이라도 상봉한 것마냥 내 다리에 얼굴을 잔뜩 부빈다. 신수가 이렇게 귀여워도 되나 싶을 정도였다.
“형, 왔어?”
“큰오빠아!”
인욱이랑 시연이 역시 현관으로 나와서 나를 반갑게 맞이해 주었다.
“오빠! 나 선물은?”
“응, 다음 주에 일본 총리 아저씨가 섬 하나 챙겨 주시겠대. 그거면 될까?”
“꽃 많이 피는 섬으로 달라 했지?”
“당연하지.”
“좋아!”
시연이는 섬이라는 선물의 값어치가 뭔지는 알고 있을…….
“그럼 거기다가 리조트 지어서 우리 돈 많이 벌자, 큰오빠. 막 해양 레저 시설 같은 것도 짓고!”
“응?”
“우리 집은 이제 부자야! 헤헤!”
……선물의 값어치를 너무나도 잘 알고 있는 것 같다. 그것도 내가 당황스러울 정도로 말이야.
시연이는 한참 동안 내 앞에서 끼를 부렸다. 그리고 곧 백설이를 데리고 본인의 방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인욱이는 시연이의 뒷모습을 바라보면서 넌지시 나에게 말했다.
“혹시 투자 받아 주나?”
“무슨 투자.”
“리조트 건설하는 거. 나 꽤 알차게 돈 모아 뒀거든? 여차하면 대출이라도 받아서 투자를…….”
어째 내 동생들은 하나같이 정상이 아닌 것 같다.
나는 인욱이의 등을 후려친 다음, 식탁 위에 있던 식빵 하나를 집어먹으면서 말했다.
“가족끼리 돈거래하는 거 아니다.”
“아니, 그럼 내 선물은?”
“계좌 보든가.”
내 말에 인욱이가 급하게 본인의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더니, 곧 나를 바라보면서 눈물을 글썽였다.
“1,000만 원? 형!”
“네가 미튜브 관리 잘해 줬으니까 주는 특별 상여금. 우리 교단이 원래 금전 관계만큼은 확실히 하는 편이야.”
“앞으로도 열심히 할게! 형! 먹고 싶은 거 뭐 없어? 집에 재료만 있으면 다 만들어 줄게!”
역시, 우애를 증진시키는 데에는 돈만 한 게 없다.
나는 열정으로 불타오르기 시작한 인욱이를 바라보면서 피식 웃음을 지었다.
“미튜브 관리는 잘되고 있냐?”
“100만 돌파한 지는 꽤 되었고, 이 속도면 반년 안에 천만 찍을 것 같은데? 해외 트래픽이 엄청 늘었고, 특히 그저께부터는 일본 쪽 유입이 장난 아니었어. 맞다, 형. 팬 카페 생겼다?”
“팬 카페까지?”
“이상할 것도 없긴 하지. 대한민국도 구하고, 일본도 구하고. 안 그래?”
아까 공항에서도 느끼긴 했지만, 확실히 내 인기가 많이 올라오긴 한 모양이다.
참고로 우리 집 앞에도 기자들이랑 인파가 몰려 있더라.
빨리 보안 좋은 곳으로 이사라도 가야지 싶다. 우리 가족도 우리 가족인데, 아파트 이웃 주민들에게 민폐다.
“맞다, 형. 혹시 오피셜 리멘 채널에는 예배 영상이나 설교, 그런 영상들만 올릴 거야?”
“그건 아니지. 애초에 소통이 주목적이니까, 다른 컨텐츠도 몇 개 추가하지 않을까?”
“나 괜찮은 아이디어가 하나 생겼는데 한번 들어 볼래?”
머리에 연료가 들어가니 의욕이 활활 불타오르는 것 좀 봐라.
좋은 변화다.
“말해 봐.”
“잘 들어 봐 형 그러니까…….”
나는 흐뭇하게 웃으면서 인욱이의 이야기를 한참 동안이나 가만히 듣고 있었다.
역시, 집에서 가족들이랑 보내는 밤이 제일 편안하다, 그런 생각을 하면서 말이다.
8.
「에이든, 네 말은 블랙 포프라면 우리에게 충분한 도움이 되어 줄 것이다, 그 말인가?」
“그렇다니까? 게다가 이미 정화자, 그 정신 나간 빌런 새끼들이랑도 적대 관계라고. 딱 우리에게 도움이 되어 줄 친구야. 장담하지, 보스.”
「그들이 한국 이능관리부 청사 테러, 그 배후에 있어서인가.」
“마기. 김시우는 이미 마기에 대해서 알고 있었어. 내가 말했지? 김시우 그놈, 평범한 사이비 교주가 아니란 말이야.”
에이든 하워드는 해변가의 썬베드에 누운 채로 위스키 한 모금을 목으로 넘겼다.
그리고 입술을 닦아 내면서 말했다.
“진짜야. 그놈은 진짜라고. 서쪽의 교황과는 달리, 동쪽의 교황 놈은 그냥 망나니 같은 놈이야. 알겠어?”
「서쪽의 교황?」
“바티칸에 있는 그 할아버지 있잖아. 아, 지금은 없나?”
「……바티칸은 무너지지 않았다, 에이든. 세력이 많이 약해졌을 뿐이야. 그나저나 동쪽의 교황이라. 괜찮은 표현이군. 그리고 망나니라는 표현은 네놈이 더 어울린다는 생각은 안 하나?」
“신사에게 망나니라니. 아무리 보스라지만 너무 실례인걸.”
태블릿 PC 너머로 한숨이 들려왔다. 그리고 잠시 후, 다소 경직된 목소리가 이어졌다.
「중국 측에서 압록강 쪽으로 각성자 전력을 움직이고 있다. 단순한 훈련 규모가 아니야.」
“북한 쪽을 강제로 점거하기라도 할 생각인가?”
「한국 정부 측에서 본격적으로 북진을 논의할 가능성이 있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북한 땅에 마정석을 비롯한 다양한 자원들이 매장되어 있는 건 사실이거든. 한국 측이 이레귤러를 보유하게 된 이상, 가만히 있을 리는 없지.」
마정석을 비롯한 이계의 광물들은 현재의 지구에서 가장 귀중한 전략 자원으로 분류된다.
에이든은 귀환자였지만, 그러한 이해관계를 모를 정도로 둔감한 사내가 아니었다.
“좋아, 그래서 내 역할은?”
「한일 정상회담에서 논의될 사항이 하나 있다. 회담 내용이 발표되는 대로 너는 한미 연합사령부로 향해라.」
“듣던 중 반가운 소식이야. 한국에서는 뭘 하면 되나?”
「추후에 지시를 내리도록 하지. 그 전까진 김시우와 친분을 계속 쌓아 나가도록. 대한민국 내부의 빌런들에 관한 정보도 제공해 줄 테니, 네가 알아서 잘 써먹어라. 정화자와 관련된 놈들도 꽤 많을 거다. 이상.」
-통화가 종료되었습니다.
통화가 끝나자 에이든은 들고 있던 술병을 내려놓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뜨거운 햇빛을 만끽하면서 가볍게 기지개를 켰다.
“한국이라.”
그는 얼마 전에 만났던 미친 교황을 떠올렸다.
자비 없이 창을 던져 대던 그 미친놈. 그야말로 공포스러운 놈이 아닐 수 없었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더욱 좋았다.
미친놈은 미친놈에게 끌리는 법이니까.
“당분간은 재밌겠어.”
혀로 입술을 핥은 에이든은 성큼성큼 걸어가기 시작했다.
김시우에게 또 다른 골칫거리가 탄생한 순간이었다.
우리 교황님 좀 말려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