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lease stop our Pope RAW novel - Chapter (75)
75화
6.
보육원에 있던 아이들이 정부에서 운영하는 시설로 입소하는 것을 마지막으로 사건은 일단 마무리되었다.
대대적인 언론 보도는 없었다.
한일 정상회담이 개최되는 기간이라서 그런 건 아니었고, 보육원과 관련되어 있던 모든 비리를 단번에 밝혀내기 위해서였다.
그것과 관련해서 서 대통령으로부터 전화가 오기도 했다.
-보육원과 관련되어 있던 모든 관련자들이 반드시 죗값을 치르도록 하겠습니다. 탐탁지 않으시겠지만 이번 건만큼은 저희들에게 일임해 주셨으면 합니다. 김시우 각성자에게 이레귤러에 걸맞은 권한을 주기 위해서는 다소 시간이 필요합니다. 그전까지는 최대한 조심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대통령이라는 사람이 저렇게까지 말하는데 재촉을 할 수가 없었다.
한일 정상회담으로 인해서 정신이 없는 와중에도 직접 전화를 걸었던 걸 보면 그 나름대로 성의를 표시한 것이라고도 볼 수 있었다.
아무튼.
그렇게 심란한 밤이 지나고, 다음 날 아침.
생각할 게 많아서 이른 아침에 신전에 나왔는데, 나보다 먼저 신전에 나와서 바닥을 쓸고 있는 한 남자와 소년을 마주할 수 있었다.
“아, 나오셨습니까 교황님? 평소보다 일찍 나오셨군요.”
“안녕하세요 교황님!”
“좋은 아침입니다 진서준 형제님. 승우도 좋은 아침.”
둘의 정체는 승우와 승우의 아버지인 진서준 씨였다.
병원에서 퇴원한 이후로 신전 관리인으로 교단에 고용된 진서준 씨는 항상 이렇게 성실하게 신전을 관리해 주는 중이었다.
나는 웃으면서 그 둘을 바라보았다.
부자의 표정은 정말로 행복해 보였다.
“승우는 오늘 학교 안 가?”
“시간이 좀 남아서 아빠를 도와드리고 있었어요.”
“우리 승우 참 성실하네. 시연이는 내가 나올 때까지도 자고 있었는데.”
“미인은 원래 잠꾸러기라잖아요, 헤헤.”
우리 시연이가 예쁜 건 맞는데 저 입에서 나오니까 기분이 참 이상하네.
안 그래도 최근에 둘이 까톡하고 있는 걸 본 것 같은데 말이지.
하지만 진서준 씨가 바로 옆에 있었기 때문에 뭐라고 할 수는 없었다.
탐탁지는 않지만 넘어가 주도록 하자.
“그래, 요새 레오 대주교로부터 수업은 잘 듣고 있지?”
“네!”
“레오 대주교가 너무 엄하게 교육하는 건 아니고?”
“항상 친절하셔서 좋아요. 가끔 루나 님도 오셔서 도와주시기도 하구요!”
일본에서 돌아온 이후로 승우의 교육은 전적으로 레오가 전담하고 있다.
승우는 선지자로서 선택된 아이다.
교단에 합류한 선지자는 선지자라면 반드시 교육받아야 하는 교리, 신성력 운용법 등을 숙지해야만 한다.
막 교단에 들어온 신성 계열 플레이어들보다 훨씬 더 전문적인 교육을 받아야 하는 것이다.
어린아이에게 다소 부담이 될 수도 있겠지만, 그래도 레오와 루나가 성심성의를 다해서 가르쳐 주고 있는 모양이다.
둘 다 선지자 출신이기도 하고, 아이들을 좋아하니까 크게 걱정하진 않고 있었다.
“다행이네.”
승우도 우리 교단에 들어오면서 각성자로 분류되었다.
그래서 각성자 아카데미의 초등반으로 배정받았고, 지난주부터 등교하는 중이다.
승우는 처음 만났을 때보다 확실히 얼굴이 밝아졌다. 아빠를 제발 구해 달라고 간절히 기도했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이제는 얼굴에서 그늘을 찾아볼 수가 없었다.
나로서는 뿌듯할 수밖에 없는 변화였다.
그리고 그것은.
“항상 리멘님과 교황님께 감사드리고 있습니다. 평생을 이 은혜를 갚아 나가겠습니다.”
승우의 아버지, 진서준 씨도 마찬가지였다.
참고로 진서준 씨는 지난번에 세례식을 통해서 세례를 받은 사람 중 한 명이다.
덕분에 그의 몸에서 은은하게 신성력이 피어오르고 있었다.
“리멘님께서는 이미 형제님의 진심을 알고 계십니다. 형제님이 이곳에서 행복하시다면, 리멘님께서는 그것으로 만족하실 겁니다.”
만약 승우의 기도가 나에게 들리지 않았다면 그들은 이곳에 오지 못했을 것이다.
진서준 씨는 응급실에서 괴한의 습격을 받아 세상을 떠났으리라.
승우 역시 죽거나, 어제 봤던 보육 시설로 팔려 가는 최후를 맞이했을 테고.
새삼 둘의 존재가 고마웠다.
아침 일찍 나와서 사이좋게 신전을 관리하고 있는 이 부자를 보고 있자니, 지난밤 동안의 고민이 부질없었다는 것을 느꼈다.
처음부터 복잡하게 생각할 것 없었다.
에덴에서도 그랬듯, 우리 교단은 결국 많은 이들이 행복할 수 있도록 노력하면 될 뿐이다.
나쁜 놈이 보이면 아무도 모르게 분리수거해 버리면 되고, 착한 사람이 보이면 도와주고.
교단이란 게 결국 그런 거 아니겠어?
나는 둘을 바라보면서 기분 좋게 미소를 지었다.
“아침부터 귀중한 선물을 받은 기분이네요. 즐거운 하루가 될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예?”
“그런 게 있습니다. 날씨가 참 좋네요.”
역시, 나에게는 단순한 게 최고다.
지난밤에 가슴이 답답했던 것도 내가 어울리지 않게 고민을 했기 때문인 듯하다.
나는 그들을 향해 웃으면서 고개를 숙인 다음, 가벼운 발걸음으로 내 집무실을 향해 걸어갔다.
머릿속이 청량해진 기분이었다.
7.
내가 아침 일찍 신전으로 출근한 데에는 당연히 이유가 있었다.
“매일 불효만 저지르던 우리 둘째가 처음으로 효자 같다 느껴집니다. 아침에 집에서 나오면서 제가 안사람에게 얼마나 자랑했는지 모르실 겁니다. 안사람이 꼭 김시우 교황님을 뵙고 싶다고 조르는 걸 겨우 말리고 왔습니다.”
“사모님이 함께 오셔도 좋았을 것 같습니다.”
“저희 안사람이 워낙 말이 많은 편이라서 말이지요. 하하!”
나는 내 앞에서 사람 좋게 웃음을 짓는 유선 그룹의 최길영 회장을 바라보면서 부드럽게 미소 지었다.
호부 밑에 견자 없다고, 최길영 회장은 아들인 최서진 대표만큼이나 호방한 인물이었다.
도저히 67세라고 믿을 수 없는 탄탄한 근육들과 180은 가뿐히 넘는 체격은 그가 최서진 대표의 아버지란 사실을 여실히 알려 주고 있었다.
내가 가지고 있던 재벌 그룹 회장에 대한 이미지와는 사뭇 다른 인물인 건 틀림없었다.
안경을 쓰고 지적이고 온화한 분위기. 그것이 내가 재벌 회장들에 가지고 있던 대략적인 이미지였는데, 역시 사람은 직접 만나 봐야 안다.
다만, 이 사람이 재벌 회장 중에서도 상당히 특이한 캐릭터인 건 의심의 여지가 없어 보였다.
일이 잘 안 풀리면 주먹으로 해결할 것 같은 건 단순한 기분 탓일까?
“원래는 제가 직접 찾아뵐 생각이었습니다.”
“목이 마른 사람이 우물을 파는 법입니다. 김시우 교황님. 제가 찾아뵙는 건 아주 당연한 일입니다.”
타이밍도 좋았다.
언론들의 눈이 한일 정상회담에 집중된 상황이기도 했고, 아직까지 신전이 있는 이 그라운드 제로는 통제구역이기도 했으니, 이곳만큼이나 보안이 확실한 곳은 없었다.
들어올 때도 비밀 출입구(대형 길드들이 파 둔 백도어)를 이용했기 때문에 이 만남이 노출되었을 확률은 지극히 낮았다.
일부러 순례객들이 입장하지 않은 이른 아침에 약속을 잡은 이유도 이것 때문이기도 하고.
아무튼.
나는 레오가 내려 준 녹차를 마시면서 슬며시 최 회장에게 말했다.
“보통 다른 사람들은 저를 교황보다는 각성자라고 부릅니다. 교황이라는 칭호가 어색하시면 그리 부르셔도 좋습니다.”
“한 교단을 이끄시는 분인데, 교황이라고 부르지 않는 건 무례한 행동입니다.”
확실히 이런 부분까지도 아들과 닮았다. 아니지, 이런 경우에는 아들이 아버지를 닮았다고 해야 하나?
“또한 제가 오늘 이곳에 찾아온 이유는 개인 대 개인이 아닌, 수장 대 수장으로서 유선 그룹과 리멘 교단의 일을 논의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러니 교황이라는 호칭은 당연하다고 생각합니다.”
단호한 말투에서 그의 성격이 대강 엿보인다.
최 대표의 성격에 원칙주의를 더하면 딱 저런 모습일 것 같다.
교황이라고 부르겠다는 사람을 막을 이유는 없었다.
최 회장은 자신의 앞에 놓인 녹차를 한 모금 마신 후, 부드럽게 웃으면서 말을 이어 갔다.
“유통에 관심이 있으시다고 들었습니다. 자세한 이야기를 듣고 싶습니다.”
“음, 일단 직접 보시는 게 빠를 것 같습니다. 레오 대주교?”
내 부름에 레오는 작은 판을 들고 집무실 안으로 들어섰다. 그리고 그 판을 나와 최 회장 사이에 놓여 있던 탁자 위에 조심히 내려 두었다.
판 위에는 각각 보급형 성수, 중급 성수가 담긴 병 두 개와 하급 신성석으로 제작된 신성석 팔찌가 놓여 있었다.
참고로 저 팔찌는 도깨비 길드에게 팔았던 팔찌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품질이 떨어진다.
레오가 직접 축성했던 팔찌들과는 다르게, 저 팔찌를 축성한 것은 우리 교단의 신입들이었기 때문이다.
-축성 역시 가장 기초적인 축복이라고 할 수 있죠. 병아리들 교육도 하고, 팔찌도 만들고. 그 와중에 재능 있는 친구 보이면 축성 사제로 키울 수 있고. 이거야말로 일석 삼조 아니겠어요?
그리고 이 팔찌는 내가 아니라 루나의 아이디어로 만들어 낸 결과물 되시겠다.
누구한테 배웠는지는 몰라도 밑사람을 갈아 넣기에 아주 탁월한 아이디어였다.
팔찌 제작에 사용된 하급 신성석은 하급 마정석을 루나가 직접 변환시켰다.
루나의 성의가 들어가 있는 셈.
게다가 최상급 신성석을 이용한 팔찌에 비해선 손색이 있을지는 몰라도 분명히 이로운 효과를 지니고 있다.
시스템에 의해 아이템>으로 분류될 정도기도 하고, 플레이어가 아닌 일반인의 건강에도 분명히 도움이 될 것이다.
“저희 교단에서 판매하고 싶은 성수와 팔찌입니다.”
“잠시 설명을 부탁드려도 되겠습니까?”
“물론입니다.”
나는 흥미를 보이는 최 회장에게 간단하게 설명을 해 줬다.
일반인들에게도 판매될 최하급 성수와 신성석 팔찌.
그 두 가지에 대한 설명을 들은 최 회장은 감탄사를 내뱉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효과만 입증된다면 분명히 큰돈이 될 겁니다.”
“그렇겠죠?”
“건강이란 시대를 불문하고 인류의 오랜 숙제였습니다. 치유 능력을 인정받은 플레이어들은 각국의 부자들로부터 천문학적인 금액에 고용되고는 하지요. 그들의 몸값이 비싸진 이유 중 하나였습니다.”
건강을 위해선 돈을 아끼지 않는 사람들이 많다. 애초에 이 두 상품은 그들의 니즈를 노리고 판매될 것이다.
에덴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축성소에서 가장 많은 매출을 가져다주는 건 부유한 귀족이나 상인 계층이었다. 그리고 교단은 축성소에서 발생한 수익으로 빈민들을 구제하는 등, 아주 다양한 활동을 이어 나갔다.
일종의 리멘식 재분배라고 부를 수 있겠다. 그리고 나는 지구에서도 그것을 이어 갈 생각이고.
“이미 두 상품으로도 충분히 흥미롭습니다. 신성력을 이용한 지구최초의 상품이라…… 분명히 엄청난 수요가 발생할 것 같습니다.”
“여기서 놀라시면 곤란합니다. 진짜는 이 녀석부터거든요.”
나는 그렇게 말하며 중급 성수가 담겨 있는 병을 가볍게 흔들었다.
“중급 성수라고 합니다. 자세한 스펙을 말씀드리기 전에, 이미 미국 정부에서 50프로를 구매해 갔다는 것부터 말씀드리고 싶군요.”
재계 순위 5위라는 유선 그룹의 회장 앞에서 본격적인 약팔이 쇼가 시작되었다.
8.
유선 그룹의 회장실.
최서진은 창문 밖을 바라보고 있는 자신의 아버지, 최길영을 향해 넌지시 물었다.
“어떠셨습니까, 아버지.”
“참 재밌는 젊은이더구나. 첫 만남부터 나를 대놓고 벗겨 먹으려는 놈은 처음이었어. 하마터면 그룹의 기둥까지 뽑힐 뻔했단다.”
“그래서, 기둥 뿌리까지 뽑아 주셨습니까?”
“기둥을 뽑아 주면 우리는 뭐로 먹고산단 말이냐? 대신 기둥을 하나 만들어 주기로 했다.”
“손해 보신 것치고는 얼굴이 참 밝으십니다.”
“손해? 하하하!”
최길영은 크게 웃으면서 뒤로 돌았다. 그리고 최서진을 바라보면서 말했다.
“너도 정말 손해라고 생각하느냐?”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제 덕분에 리멘 교단에 손을 보태셨는데, 이 아들놈에게 뭐라도 주십사 해서 말씀드렸습니다.”
“고얀놈. 다 늙은 애비한테 뭘 더 뜯어 먹으려고. 내가 먹을 것도 없다. 이따가 술 진열장에서 술이나 몇 병 가져가려무나.”
“흐흐. 사양하지 않겠습니다.”
애주가인 최길영의 술 진열장에는 구하기 힘든 술들이 많았다. 최서진은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인 다음, 천천히 아버지 옆으로 다가갔다.
최길영은 어느새 자신의 옆에 선 아들을 향해 말을 이어 나갔다.
“장사꾼은 어떤 세상이 와도 적응하여 이윤을 남겨야 한다. 적응하는 방법엔 아주 여러 가지가 있지. 최선은 내가 세상을 바꾸는 것이다. 자신이 바꾼 세상이라면 적응할 필요조차 없거든.”
최서진은 최길영의 말을 가만히 들었다.
그의 아버지는 원래 기분이 좋으실 때 말이 많아지신다. 즉, 그는 지금 기분이 굉장히 좋다는 뜻이었다.
“하지만 최선을 선택할 수 없다면, 차선을 선택해야 한다. 차선은…….”
“세상을 바꾸는 놈 옆에 붙어 있어라.”
“그래. 그게 차선이지.”
아들의 대답에 최길영은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도 내 자식 놈들 중에선 서진이 네가 그나마 눈이 좋아. 네 말대로 직접 찾아가 보길 잘했다.”
“그렇게나 마음에 드셨나 봅니다.”
“마음에 든다 뿐일까. 그 김시우라는 놈, 세상을 바꾸고도 남을 놈이다. 아니, 더 정확하게는.”
최길영은 아까 전에 보았던 젊은 교황, 김시우의 얼굴을 떠올렸다. 그리고 짙은 웃음을 지으면서 말을 맺었다.
“세상을 바꿀 수밖에 없는 놈이다.”
우리 교황님 좀 말려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