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lease stop our Pope RAW novel - Chapter (76)
76화
23. 바닷가에서 생긴 일
1.
총 2일 동안 진행된 한일 정상회담은 성공적으로 종료되었다.
사사키 총리는 처음부터 끝까지 대한민국의 국민들에게 사죄를 했고, 식민 지배 시절의 피해에 대한 배상금을 약속했다.
비록 일본 정부 측에 배상을 요구할 수 있는 실질적인 피해자들은 이미 대부분이 영면에 들었지만, 그들이 배상을 약속한 것만으로도 한일 관계의 극복에 대한 가장 큰 산을 넘은 셈이었다.
양국은 각성자 문제부터 시작하여 경제, 외교, 문화 등의 다양한 분야의 교류를 시작하기로 선언했다.
아주 오랜 시간 동안 이어져 왔던 혐오의 역사를 하루아침에 극복하긴 힘들겠지만, 이번 기회에 물꼬를 튼 것만으로도 충분한 성과였다, 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입장.
국민들의 반응은 어떠냐고?
안타깝게도 대한민국 국민들의 관심이 분산되어 버렸다. 그것은 바로 정상회담이 끝나자마자 터져 나온 기사들 때문이었다.
「어느 보육원의 끔찍한 진실. 이레귤러 김시우가 밝혀낸 끔찍한 비극!」
「빌런, 공직자, 대형 길드들이 얽힌 거대한 비리 사건!」
「대한민국의 음지를 지배하고 있는 추악한 진실들이 모습을 드러내다.」
「서신우 대통령, 긴급 기자회견을 열어 대국민사과. ‘제 남은 임기를 대한민국의 악성 종양을 도려내는 데 사용하겠다. ’」
「여야 정당 대표, 임시국회 소집 합의. 주요 안건은 ‘이레귤러 특별법.’」
한일 정상회담의 파급효과도 잠시, 내가 개입한 보육원 사건에 대한 진실이 드러나면서 대한민국 전체가 분노로 달아올랐다.
디멘션 오프닝 이후 5년.
각성자들의 시대가 찾아오고 사회가 변화하는 과정 속에서 축적된 온갖 부정적인 요소들이 단번에 터져 나오기 시작한 것이다.
국회에서 논의하겠다는 이레귤러 특별법을 간단히 요약하자면, 나에게 여러 가지 특권을 부여해 주겠다는 이야기였다.
“민수 형제님도 특별법에 대한 이야기는 들어 보셨어요?”
“인터넷에서 가장 논란이 되고 있는 부분은 알고 있습니다. 교황 성하께서 직접 빌런 토벌 작전에 참여할 경우, 토벌 작전 중에 발생하는 모든 법적 책임이 면제된다, 그 조항으로 인해 각종 커뮤니티가 뜨겁습니다.”
민수 씨의 설명대로였다.
이레귤러 특별법은 한마디로 내 무력 행사를 정당화해 주는 법이라고 할 수 있겠다.
물론 내가 아무 때나 면책특권을 부여받는 건 아니었다.
정부 측의 협조 요청이 있을 때만 발동하는 부분적인 면책특권.
극단적인 예시를 들자면, 죄 없는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내가 범죄를 저지를 경우에는 특권이 적용되지 않는다.
그럴 일이 벌어질 리가 없겠지만, 예를 들어 그렇다는 뜻이다.
“여론 반응은 어때요?”
“대부분의 언론에서 이미 미국의 이레귤러 법을 예시로 들면서 법안 통과에 힘을 싣고 있습니다. 일부 언론은 비판적인 기사를 내보내고 있지만, 국민 여론이 이미 법안에 찬성하는 쪽으로 흘러가는 중입니다. 직접 보시지요.”
이곳은 합정에 위치한 민수 씨네 회사 회의실.
민수 씨는 리모콘을 누르면서 스크린 위에 한 커뮤니티 사이트를 띄웠다.
제목: 도대체 뭐가 문제임?>
내용: 몬스터 웨이브 혼자서 막아 줘, 지난번에 테러도 수습해 줘, 아무런 대가 없이 일본 가서 국가위기급 마수 잡아 줘. ㅋㅋㅋㅋ씨발 이 정도면 까방권 아니냐? 거기에 빌런 청소까지 도와주겠다는데 이걸 막겠다는 새끼들은 병신들임?
-김시우는 누가 견제함?
ㄴㅋㅋㅋㅋㅋㅋ왜 견제해야 함?
ㄴ그럼 김시우한테 나라 팔아넘길 거임?
ㄴ이딴 놈한테 먹이ㄴㄴ 킹황님 잘되시는 거 배아픈 전각련 똘마니 새낀 듯
-일본이랑 미국에선 이미 적극적으로 환영한다는 입장 표시함. 원래 이레귤러들한테 특권 주는 건 당연한 거.
-중국에선 또 유감 표시한다던데?
ㄴ중국의 유감 = 잘하고 있다
“보시다시피 좋은 말이 잘 나오지 않는 사이트에서조차 어마어마한 쉴더들이 붙어 있습니다. 포털 사이트 덧글도 마찬가지고, 심지어 일부 팬덤에서는 시위에 나선다고 합니다.”
“호의적인데 시위를요?”
“지금 당장 법안을 통과시키라는 의미라고 들었습니다.”
생각해 보면 내가 여태까지 참 많은 일들을 해 왔다 싶었다.
여론이 나에게 호의적인 건 어찌 보면 내가 그동안 열심히 해 왔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구로구 게이트부터 시작해서 야마타노오로치 토벌, 거기에 이번 보육원 사건까지.
굵직굵직한 사건들을 많이 해결하긴 했지.
나는 민수 씨의 설명을 들으면서 가볍게 숨을 뱉어 냈다.
“민수 형제님이 보기에는 잘될 것 같나요?”
“물론입니다. 전각련에서 개입하기에는 현재 그들의 상황이 좋지 않습니다. 전각련 소속 길드 일부가 이번 사건에 개입되어 있으니, 그들도 책임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을 겁니다.”
에이든의 말에 따르면 전각련 내부에서도 계파가 나뉜 채로 권력 다툼이 진행 중이었다고 한다.
백명교와 관련이 있었다고 했는데 그 와중에 엄청난 이슈가 터져 버린 것이다.
이로써 전각련은 엄청난 혼란에 휩싸이게 되었다.
위기 앞에서 하나로 뭉칠 수는 있겠지만, 뭐 딱히 상관할 바는 아니었다.
녀석들이 하나로 뭉치기 전에 몇 방 더 꽂아 넣어 주면 되거든.
민수 씨는 그렇게 현 상황에 대한 간략한 보고를 해 주었고, 나는 그런 민수 씨를 향해서 부드럽게 미소를 지어 줬다.
그리고 은근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나저나 세례 못 받은 거, 아쉽지는 않아요?”
지난번 세례식 때 민수 씨는 세례를 받지 못했다.
대신 민수 씨네 회사 직원 다섯 명이 세례를 받았다. 민수 씨라면 세례를 받을 거라 생각했는데, 세례가 적용이 안 되더라.
자세한 이유는 모르겠지만 그가 리멘을 영접하고 난 직후, 그의 몸에 자리 잡은 신성력의 씨앗 때문이지 싶었다.
“리멘님께서 뜻이 있으실 거라 생각합니다.”
“제가 나중에 꼭 AS 해 달라고 할게요.”
“챙겨 주셔서 감사할 따름입니다.”
리멘에게도 계획이 있겠지.
나중에 물어보면 될 일이다. 다만, 근래에 리멘으로부터 연락이 없는 게 걱정될 뿐이었다.
하여간에 필요할 때는 연락이 안 된다니까?
“그건 그렇고.”
나는 대화 화제를 슬쩍 돌렸다.
“오늘 저녁에 시간 괜찮아요?”
“어제 도깨비 길드 영상 촬영이 끝나서, 별다른 약속은 없습니다.”
“잘되었네요. 저녁에 저랑 같이 인천 바다나 보러 갑시다. 마침 가서 할 일도 있어서요.”
“갑작스럽게 인천…… 말씀이십니까?”
“싫어요?”
“그건 아닙니다. 그런데 교황님을 수행하기에는 저보단 레오 님이나 루나 님이 더 적합하지 않나, 그렇게 생각합니다.”
“에이, 걔네들은 애들 가르쳐야지. 그리고 이번 일은 민수 형제님이 훨씬 더 든든할 것 같습니다.”
계속되는 내 제의에 민수 씨는 끝내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알겠습니다. 그런데 혹시 어떤 일로 인천을…….”
“후후, 비밀.”
알면 재미없잖아?
도망갈지도 모르고.
후후.
2.
“저, 교황 성하. 궁금한 게 하나 있습니다.”
“편하게 말씀하세요.”
“법이 제정되기 전까지는 행동에 조심해 달라고, 서신우 대통령이 직접 부탁했다 하지 않으셨습니까?”
“그렇죠.”
“그런데 이건…….”
“조심해 달라고 했지, 하지 말라는 소린 안 했잖아요? 그리고 이건 그냥 마실 나온 거예요, 마실.”
나는 하얗게 혈색이 질린 민수 씨를 향해 넉살좋게 말했다.
민수 씨가 이렇게 걱정하는 이유를 모르는 건 아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지금 우리가 있는 이곳은 인천항 주위에 형성되어 있는 비밀스러운 상점가, 일명 암시장이라고 불리우는 곳이었기 때문이다.
태어나서 처음 오는 곳이라 디멘션 오프닝 이전에는 이곳이 어땠는지는 잘 모른다.
인욱이로부터 이런 곳이 있다고 이야기는 들어 봤는데, 직접 와서 보니 내가 생각했던 것과 분위기가 사뭇 달랐다.
암시장이라면 무릇 어두침침하고 은밀한, 범죄가 만연해 있을 것 같은 분위기를 떠올리기 마련이다.
하지만.
“암시장이라기에는 사람이 참 많네.”
마스크를 쓴 채로 무심하게 돌아다니는 사람들.
“몬스터의 부산물 최고가로 매입합니다!”
“각종 장비들 수선, 판매합니다. 들어오셔서 살피고 가세요!”
“회복제를 비롯한 소모품 저렴한 가격에…….”
몬스터의 부산물이나 장비를 판다며 호객행위를 하는 사람들.
거기에 치안을 담당하는 것처럼 보이는 순찰대가 돌아다니는 모습을 보면 마냥 무법지대는 아닌 모양이었다.
“들어서자마자 빌런들이 몰려들 줄 알았는데, 그건 또 아닌 것 같네요. 보기보다 치안이 괜찮아 보이는데요?”
“암시장이라고 불렸던 것도 옛날의 일입니다. 지금은 플레이어들이 물품을 구하는 주요한 루트로 자리 잡았습니다. 저기, 완장을 낀 채로 돌아다니고 있는 플레이어들은 하이브 길드 소속입니다.”
“사회의 암묵적인 합의, 그런 건가?”
“정확하게 보셨습니다. 부산과 목포에도 이러한 암시장이 존재합니다. 플레이어들에게 반드시 필요한 시설이기도 합니다. 원래는 정부에서 관리하던 시설들이었습니다만, 3년 전부터 전각련에게 관리 권한이 넘어갔습니다.”
3년 전이라면 진영이 형이 일본으로 넘어갔던 그 사건과 관련되어 있는 듯했다.
민수 씨는 분주히 돌아다니는 사람들을 바라보면서 간단한 설명을 덧붙였다.
“소속된 길드가 없이 활동하는 플레이어나, 생산 계열 플레이어들, 중소형 길드들이 이곳의 핵심 고객들입니다. 스마트폰 어플을 이용한 직거래 등, 플레이어 간의 거래가 가장 활발하게 일어나는 장소입니다.”
“정부의 힘이 닿지 않고, 돈이 모이는 장소라.”
빌런들이 숨어들기 딱 좋은 장소였다.
나는 앞으로 걸어가면서 턱을 긁었다.
마스크를 쓰고 있었기에 지나가는 사람들 중 나를 알아보는 사람은 없었다.
신성력이 이럴 때 참 좋은 게 지구의 플레이어들로서는 나를 쉽게 탐지할 수 없다.
즉, 얼굴만 가리면 이런 곳에서도 자유롭게 돌아다닐 수 있는 셈이다.
“다른 간부님들을 데리고 오지 않으신 이유는…….”
“뻔하잖아요? 티가 나잖아!”
레오의 덩치는 숨기기에는 너무 티가 난다. 루나의 미모 역시 마찬가지고.
마스크로 가려도 루나의 비주얼은 숨길 수가 없었다.
게다가 둘 다 이곳 인천 암시장에 대해서는 무지했으니, 민수 씨야말로 이번 일의 적임자라고 할 수 있겠다.
내 시원한 대답을 들은 민수 씨의 표정이 더더욱 굳어 버렸다.
내가 무슨 속셈으로 이곳에 왔는지 드디어 깨달은 모양이다.
“성하께서 이곳에 쇼핑을 하러 오진 않으셨겠지요?”
“쇼핑? 혹시 관심 있는 물건이라도 있습니까? 말씀만 하세요. 뭐든지 사 드릴 수 있습니다. 이래봬도 이제 부자 교단입니다.”
교단의 초기 멤버인 민수 씨를 위해서라면 뭐든지 사 줄 의향이 있다.
미튜브부터 시작해서 이래저래 신세만 졌으니, 그쯤이야 못 해 줄 거 없다.
하지만 민수 씨가 원했던 대답은 이게 아니었던 것 같다.
민수 씨는 크게 한숨을 내쉰 다음, 조용한 목소리로 말했다.
“이곳에서 일이 생기면 하이브 길드에서 나설 수밖에 없지만…… 교황 성하께서는 이미 각오를 하고 오셨겠지요.”
“미국 친구들이 건네준 서류에는 이곳에서 정화자 놈들의 흔적을 봤다, 그렇게 적혀 있었습니다. 인천이면 코앞이나 마찬가지인데 그냥 지나칠 수가 있어야죠.”
나는 민수 씨를 데리고 성큼성큼 앞을 향해 걸어갔다.
오늘 내가 이곳에 온 이유는 단순했다.
정화자의 흔적, 그러니까 마기를 추적하기 위해서 이곳에 온 것이다.
정보에 의하면 이곳 어딘가에서 정화자로 추정되는 빌런들을 목격했다고 했는데.
“새 친구의 능력이 꽤 마음에 듭니다.”
“무언가 느껴지십니까?”
“마기라는 건 그리 쉽게 숨길 수 있는게 아니거든요.”
미국이 제공해 준 정보는 정확했다.
“이곳에 뭔가 있습니다. 안쪽으로 들어가 봐야겠는데요.”
암시장에 도착한 순간부터 알 수 있었다.
암시장 안쪽에서부터 느껴지는 마기를.
누군가 마기를 숨기기 위해서 여러 장치를 설치해 둔 듯했지만, 다른 사람은 몰라도 나를 속일 수는 없었다.
[당신의 감지 반경 내에 마기 반응이 감지됩니다.] [이에 따라 액티브 스킬 마기 추적>이 자동적으로 발동됩니다. 마기 반응이 극대화되어 전달됩니다.]마기는 암시장의 내부 구역으로부터 느껴지고 있었다.
단순히 누군가가 뿜어내는 마기라기에는 감지되는 마기의 양이 상당했다.
의식이라도 진행하고 있는 걸까?
“성하. 이 앞 블록부터는 하이브 길드에서조차 순찰조를 파견하지 않습니다. 그만큼 위험한 장소입니다.”
“위험하다라.”
나는 민수 씨의 말에 입꼬리를 슬쩍 올렸다. 그리고 능글맞은 목소리로 말했다.
“진짜로 위험에 놓인 건 우리 쪽이 아니란 거, 민수 형제님도 이미 알고 계시잖아요?”
“……시끄러워지지 않겠는지요.”
“에이, 시끄럽지 않게 조용히 처리해야죠. 대통령이 직접 부탁한 건 최대한 들어줘야지. 말이 안 나오게 깔끔하게 처리할 계획입니다. 걱정 마세요.”
죽은 자는 원래 말이 없는 법이니까, 그것만큼 깔끔한 방법이 없지 않겠어?
나는 주먹을 가볍게 움켜쥐면서 위험>이라고 적혀 있는 표지판을 지나쳤다.
간만에 화끈한 밤이 될 것 같았다.
우리 교황님 좀 말려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