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lease stop our Pope RAW novel - Chapter (79)
79화
24. 지각 변동
1.
아침이 밝았다.
나는 신전의 집무실에 앉아, 벽에 걸려 있던 TV를 시청하고 있었다.
TV 속에는 지난밤에 만났던 하이브 길드의 오준우가 긴급 기자회견을 진행하는 중이었다.
“혹시, 이것도 시우 님께서 의도하신 일입니까?”
내 옆에는 어젯밤에 급히 암시장으로 달려왔던 김 팀장, 아니 김 실장이 앉아 있었다.
“의도했다기보다는…… 음, 울고 싶은 아이 뺨 때려 줬다, 정도?”
“전각련 측에서 격렬하게 반응할 것 같습니다. 그들의 신뢰성에 치명적인 영향을 끼칠 것이 분명합니다.”
“그렇게 생각하신다니 더 뿌듯하네요.”
오준우가 빠르게 움직일 것이란 건 예상은 했었는데, 이 정도로 빠르게 움직일 줄은 몰랐다.
「더 이상 국민 여러분을 기만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제가 용기를 내서 이 자리에 설 수 있게 조언해 주신 그분께 진심으로 감사의 말씀을 올립니다.」
오준우의 기자회견은 한마디로 내부고발이었다.
암시장의 내부 구역에서 벌어지는 일들.
그리고 그곳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묵인하고 있던 하이브 길드.
길드 서열 2위이자 전각련의 한 축을 맡고 있던 하이브 길드에 대한 내부고발은 기자들에게 있어서 침이 질질 흐를 수밖에 없는 소젯거리였다.
특히, 내부고발자가 하이브 길드를 대표하는 S급 헌터 중 하나인 오준우라는 점은 내부고발의 신뢰성을 더해 주었다.
“바람 잘 날이 없습니다. 어제는 희망 보육원 사건부터 시작해서, 이번에는 암시장 인신공양까지…… 하나같이 고개를 차마 들 수가 없는 사건들입니다.”
“제가 원망스럽습니까?”
“그럴 리가요. 이 모든 것이 저희들의 무능이고, 불찰입니다. 저희가 어떻게 시우 님을 탓할 수 있겠습니까.”
지난밤의 사건은 조용히 지나가려야 조용히 지나갈 수가 없던 사건이었다.
인천뿐만 아니라 서울에 사는 사람도 느꼈을 정도의 지진이 있었으며, 이능관리부의 헌터들이 3년만에 암시장에 진입했다.
늦은 시간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기자들이 몰려들었으며, 암시장을 이용하고 있던 헌터들은 저마다 개인 SNS에 그 모습을 올렸다.
숨기려야 숨길 수가 없는 일이었다.
거기에 오준우가 단독으로 기자회견까지 열어 버렸고, 아침 시간에 전국으로 생중계가 되고 있는 상황.
연타석으로 터져 나온 끔찍한 범죄의 소식에 이목이 집중되는 건 아주 당연한 흐름이었다.
“원래는 수습하러 온 하이브 길드의 인원들까지 정리할 생각이었습니다. 제가 봤을 땐 녀석들도 공범이었거든요.”
“도대체 그곳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던 겁니까?”
“의식. 무엇을 위한 의식이었는지는 아쉽게도 알아내지 못했습니다. 그래도 최악의 경우는 막았으니, 그것대로 만족해야죠.”
더 늦게 그곳을 발견했다면 마기에 의한 침식이 더 진행되었을 것이다.
그랬다면 지진 선에서 끝나진 않았을 것이다.
그 주변 일대가 마기와 저주에 오염되어, 죽음만이 가득한 땅으로 변해 버렸을지도 모른다.
“정화자들이 만든 제단의 존재가 공식적으로 확인된 셈이군요.”
“이번 일로 인해서 녀석들은 더 음지로 파고들겠죠. 조용히 처리하는 것도 좋긴 했겠지만…… 숨겼어도 금방 알아차렸을 겁니다.”
녀석들의 목적은 여전히 오리무중이었다.
하지만 지금 상황을 냉정하게 바라보면 썩 나쁘지는 않았다.
“신성석을 이용해서 마기를 탐지할 수 있는 성물을 제작할 수 있습니다. 정부 측에 제공해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부족한 정보원은 이능관리부를 통해서 보충할 수 있었다. 여기에 마기의 존재를 인지하고 있던 미국의 도움까지 받을 수 있었으니, 추적은 더 이상 문제가 되지 않는다.
따라서 지금은 겉으로 드러난 고름부터 긁어내는 것이 우선이었다.
“이번 사건으로 인해서 여론은 이레귤러 특별법을 강하게 요구할 것입니다. 시우 님께 더 많은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는 여론이 힘을 얻겠지요. 이것도 예상하신 겁니까.”
“뭐, 부정하지는 않겠습니다.”
오준우의 내부고발을 통해서 전각련 내부의 분열은 본격적으로 시작될 것이다.
김 실장의 말대로 인터넷에서는 나를 지지하는 여론이 더욱 거세질 것이며, 내가 활동할 수 있는 범위 역시 넓어질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되면 리멘 교단이 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 방법도 더욱 다양해질 테고.
김 실장은 나를 바라보면서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추경예산이 편성될 예정입니다. 이능관리부의 기능을 확대하기 위한 추경이며, 대통령께서 강력하게 의지를 표명하셨습니다.”
“정부 재정이 넉넉하지 않다고 들었던 것 같은데.”
“아직까지는 충분히 감당할 수 있는 수준입니다. 그리고 국채 발행까지 논의되고 있습니다. 그 모든 것이 시우 님 덕분에 가능한 일이기도 합니다.”
“살면서 제가 국채랑 관련될 줄은 몰랐네요.”
“이레귤러가 있고 없고는 그 국가의 신뢰성에 있어서 엄청난 차이를 가져다줍니다. 그런 세상이니까요.”
굳이 내가 직접적인 도움을 주지 않아도 서 대통령이 알아서 꾸려 나가고 있다.
에덴에서는 전후 복구를 위해서 교단 차원의 지원이 필요했었는데, 할 일이 줄어들어서 편하다.
이능관리부의 힘이 강화되면 나로서는 나쁠 게 없지.
다만, 추경예산을 편성하면서까지 이능관리부를 키우는 걸 보면 단순히 치안 확보만이 목적은 아닌 것 같았다.
나는 김 실장을 향해 넌지시 물었다.
“제가 가방끈이 짧아서 잘 모르긴 하지만, 국채를 발행하면서까지 돈을 끌어모은다는 건 뭔가 있다는 거잖아요. 그게 뭡니까?”
김 실장은 올 것이 왔다는 듯이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차로 목을 축인 후, 한껏 진중해진 목소리로 답했다.
“북진입니다. 대통령께서는 북진을 준비하고자 하십니다. 류진영 각성자가 나타났을 때부터 논의가 시작되었지만, 3년 전 사건으로 인해서 잠정 폐기되었던 프로젝트입니다.”
북진이라.
에이든한테서 얼핏 이야기를 듣긴 했었다.
북한이라는 나라가 존재했던 한반도의 북부는 게이트와 던전의 폭주로 인해서 인간이 살 수 없는 땅이 되었다고 했다.
아프리카나 시베리아 등의 일부 오지와 마찬가지로, 이계의 존재들에게 점령당한 지역이었기 때문이다.
대신 마정석을 비롯한 수많은 자원이 존재하는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고 했으니, 수복할 수만 있다면 어마어마한 돈이 되는 건 분명했다.
“여러 장점이 있는 프로젝트입니다. 지난번처럼 몬스터 웨이브가 형성되는 것도 조기에 방지할 수 있으며, 발생할 경제적 효과도 어마어마합니다. 거기에 잃어버린 땅을 수복했다는 상징성까지 얻을 수 있을 수 있으니, 저희들로서는 언젠가는 반드시 시도해야 할 프로젝트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오래 걸리겠네요.”
“그렇기 때문에 지금부터라도 추진해야 합니다.”
로드맵이 대강 눈에 들어온다.
이능관리부의 덩치를 다시 키워서 빌런들을 쓸어낸 다음, 그 전력을 고스란히 북진 프로젝트에 투입한다.
서 대통령의 그림이 얼핏 보인다.
“앞으로 재밌어질 것 같습니다.”
“대통령께서는 시우 님과 리멘 교단의 선행에 감사하여, 더 많은 역할을 기대하고 계신 것 같습니다.”
“당연히 그래야죠.”
나는 그렇게 말하며 TV 속의 오준우를 다시 바라보았다.
변화는 이미 시작되었다.
2.
“……그리하여 우리도 이제 본격적으로 활동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질문 있으신 분?”
김 실장이 돌아간 직후 현재 우리 교단의 간부라고 할 수 있는 이들을 모아서 간단한 회의를 진행했다.
간부라고 해 봤자 나, 레오, 루나, 거기에 민수 씨가 끝이었지만 말이다.
“본격적으로 활동한다는 건 정확히 무슨 의미인가요, 성하?”
“게이트, 던전 토벌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하게 되겠지? 정부 측의 협조 요청이 있으면 빌런 토벌에도 참여할 거고, 그냥 능동적으로 움직이자는 소리야.”
“병아리들 교육하느라 정신도 없어요. 그리고 병아리들 사람 구실하게 하려면 시간 꽤 걸리지 싶은데.”
“여기는 지구야. 꼭 에덴처럼 새신도들을 키울 필요는 없어.”
몸 건강한 게 전부였던 청년이 한 차원의 구원자가 되기까지 걸렸던 시간은 고작 10년도 되지 않는다.
물론 리멘으로부터 온갖 특전이란 특전을 몰아받은 덕에 그렇게 성장했던 거지만, 시스템의 도움도 엄청나게 컸다.
시스템을 잘만 이용하면 에덴과 비교도 할 수 없는 속도로 신도들을 키워 낼 수 있었다.
계몽>이라는 특성도 그렇고, 지난번에 선택한 전투 중점> 교육도 그렇고.
결국, 플레이어들은 몬스터들을 처치하면서 빠르게 성장하는 존재들이다.
“시스템을 말씀하시는 거죠?”
“알고 있네?”
“우리 귀여운 민수 형제님한테 과외받았거든요. 성하께서도 몇 번 말씀하시기도 했었고, 제가 모를 리가 있나요? 그러니까 성하는 지금 병아리들 데리고 전투에 나가라, 이 말씀이시잖아요.”
지구에 훌륭하게 적응한 루나답게 내 말에 담긴 뜻을 빠르게 눈치챘다.
하지만 루나의 입장은 부정적이었다.
“적어도 무기술은 충분히 교육하고 전투에 내보내야지, 무기도 제대로 못 잡는 놈들 내보내 봤자 개죽음이에요. 뭐, 방어구라도 든든하다면 맞으면서 몸으로 체득할 수야 있겠지만…….”
“바로 그거야.”
“예?”
“소위 템빨이라고들 하지. 신입들에게 축성된 방어구와 무기를 지급할 거다. 그 부분에 대해서는 내가 이미 유선 그룹의 회장님과 이야기했어.”
유선 그룹에서는 생산 계열 플레이어와 기존의 기술들을 이용하여 방어구를 제작해 주기로 했다.
아직까지는 에덴의 드워프들이 제작해 주었던 갑옷에 비해 손색이 있겠지만, 축성만 제대로 한다면 성능은 쓸 만할 것이다.
방어구들의 가격이 비싼 편이기는 했지만 어차피 당분간은 돈을 쓸 곳도 없다.
“신성력 사용자가 마력 사용자보다 유리한 점이 맷집밖에 없잖아? 가장 낮은 등급의 던전 위주로 토벌 진행하면 크게 위험한 것도 없을 거다.”
“전투의 변수는 누구도 장담할 수 없을 텐데요.”
루나의 지적에 나는 루나를 바라보면서 조용히 말했다.
“너랑 레오는 장담할 수 있잖아. 그러니까 이렇게 말하는 거지. 잘 생각해라, 루나야. 이번 1기 애들을 빡세게 굴려야 자유시간 더 많아진다.”
“아주 그냥 노예처럼 부려 먹으시네요. 보너스라도 주시고 그 말씀하시든가.”
“레벤톤 경의 말이 옳습니다. 성하. 이번에 헌터들 전용으로 출시된 유선 전자의 신상 스마트폰이…….”
레오도 이때다 싶어 본인의 의지를 전한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외눈 안경을 쓴 채로 근엄하게 앉아 있었는데, 보너스 이야기가 나오니까 눈빛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레오 저놈도 지구에 적응을 완벽하게 끝낸 것이 분명하다.
당근을 주기는 해야겠지.
“던전이나 게이트 토벌은 돈이 된다. 민수 형제님. 그렇죠?”
내 질문에 민수 씨가 즉각적으로 대답했다.
“몬스터들의 부산물만 하더라도 굉장한 수익을 얻을 수 있습니다.”
“들었지, 얘들아? 너희들 성과만큼 성과급 지급해 주는 쪽으로 가닥 잡을테 니까 걱정하지 마. 우리가 하루 이틀 안 사이도 아니고, 어? 내가 설마 너희들을 부려 먹기만 하겠냐.”
“네.”
“예, 성하.”
단호하게 대답하는 둘.
이럴 때는 의남매 맞다니까?
“날 너무 못 믿는 거 아니야? 우리 의리가 이 정도밖에 안 돼? 우리 가족이잖아!”
“가족 사이에도 돈 문제는 확실하게 해야죠.”
“드라마에서도 돈 앞에서는 가족이고 뭐고 없었습니다, 성하. 계약서를 통해서 확실하게 정리를 하셨으면 합니다.”
둘은 자본주의 패치가 완벽하게 된 모습을 선보였고, 나는 그런 둘의 합동 공격에 백기를 들 수밖에 없었다.
결국, 나는 둘에게 1주일 내에 계약서 작성을 약속함으로써 둘의 반란을 진압할 수 있었다.
독한 녀석들.
내가 나 혼자 잘 먹고 잘살자고 이러는 것도 아니고, 교단 좀 키워 보겠다고 이러는 건데. 누가 보면 내가 월급도 제대로 안 주는 악덕 사장인 줄 알겠다니까?
……크흠.
아무튼 그렇게 해서 향후 계획에 관한 부분은 논의가 끝났다.
“교황 성하. 개인적인 질문이 하나 있습니다.”
내가 뚱한 표정으로 있을 때, 민수 씨가 조심스럽게 질문을 해 왔다.
“편하게 하세요, 형제님.”
“교단 차원에서 던전이나 게이트 입찰에 나서게 되면, 성하께 제공된 면세 혜택이 적용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혹시 그 부분은 정부 측과 협의가 되셨습니까?”
“물론이죠. 관련된 세금은 모두 납부하기로 했어요. 하나도 빠짐없이.”
아무리 내가 이레귤러로서 면세 혜택이 적용된다고 한들, 이 정도로 교단의 수입 규모가 커진 이상 언제까지고 세금을 모르는 척할 수 없다.
그 부분에 대해서도 이미 정부랑 이야기를 끝냈다.
유선호 장관은 충분히 배려해 줄 수 있다고 했지만, 내 쪽에서 거절했다.
세금은 똑바로 제대로 납부해야지.
안 좋은 선례를 남겼다가 내가 무슨 소리를 들을 줄 알고?
“내야 하는데 안 내는 것과, 안 내도 되는데 내는 것. 그 둘은 아주 큰 차이가 있죠. 안 그래요?”
“옳으신 결정입니다. 역시, 성하께서는 더욱 먼 미래를 바라보고 계시는군요.”
“그게 진짜 상생 아니겠어요? 우리는 떳떳한 납세로 여론 챙겨서 좋고, 정부는 세금 걷어서 좋고. 좋은 게 좋은 거죠.”
그래야 탈세하는 놈들 앞에서도 떳떳하게 죄를 물을 수 있지 않을까?
이를테면 전각련이라든가, 백명교라든가, 그런 놈들.
“앞으로 정신없이 바빠질 테니 다들 각오하고 계세요.”
나는 슬쩍 입꼬리를 올리면서 말했다.
균열이 생겼으니 이제는 우리가 그 속으로 파고 들어갈 때였다.
우리 교황님 좀 말려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