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lease stop our Pope RAW novel - Chapter (84)
84화
5.
마족 놈은 내 궁금증을 아주 시원하게 해결해 주었다.
“도마뱀들은 꼬리만 덜렁 끊어 버리던데, 네 경우에는 힘 조절만 잘하면 엉덩이도 같이 뜯겨 나가네. 좋은 거 하나 배웠다.”
【끄아아아아아악-!】
전투라고 부르기조차 부끄러운 수준이었다.
상대하는 난이도나 힘을 생각해 본다면, 지난번 이능관리부 청사에서 상대했던 마왕의 화신체가 더 까다로웠을지도 모른다.
나는 어느새 몸뚱아리만 남아 버린 이름 없는 병마를 향해 진득하게 미소를 지어 줬다.
진액과 고름을 흘려 대는 것부터가 이 녀석의 정체가 병마라는 건 알고 있었다.
다만, 병마들 중에서도 그나마 강했던 놈이었다.
어떤 경로로 획득했는지는 모르겠지만, 마왕의 마기를 아주 미세하게 보유하고 있었던 덕분이다.
“개인적으로 언데드보다는 너희들이 조금은 더 낫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언데드들은 느끼는 고통의 강도가 미약하거나 아예 고통을 느끼지 못하지만, 너희들은 고통을 아주 잘 느끼거든.”
그것은 에덴에서 오랜 시간 동안 마족들과 싸우면서 알게 된 유용한 팁이기도 했다.
특히, 성화는 마족에게 주는 고통이 엄청난 편이다.
마족들은 기사들의 오러나 마법사들의 마법보다는 신성력, 특히 성화에 맞닿으면 아주 발광을 했었다.
성화는 이 녀석들에게 아주 쥐약 같은 힘이나 마찬가지였다.
마족들마다 다르기는 해도 마족은 보통 팔다리가 잘려 나가도 재생시킬 수 있는 재생력을 지니고 있는데, 성화는 녀석들의 재생력에 아주 훌륭한 효과를 발휘한다.
이를테면.
“팔다리가 16개였다가 사라진 기분은 어떠냐?”
상처 부위를 성화를 통해서 완벽하게 지져 버리면 다시는 재생하지 못하게 만들 수 있었다.
나는 녀석의 몸에 새겨진 17개의 화상을 바라보면서 능글맞게 미소를 지었다.
참고로 팔다리를 제외한 나머지 1개의 화상은 꼬리를 떼어 낸 부위였다.
“적어도 지난번 리치 놈은 내가 누군지는 알아보더라고? 하긴, 에덴에서 넘어온 놈이라면 나를 알아볼 수밖에 없었겠지. 너희 병마들이 추종했던 탐식의 마왕을 내가 어떻게 죽였는 줄 알아?”
탐식의 마왕, 바알.
에덴에서 내가 네 번째로 잡아 죽였던 마왕이었는데, 녀석은 끝도 없이 처먹는 돼지 아니랄까 봐 어지간한 요새를 방불케 할 정도로 거대한 몸집을 자랑했다.
병마들을 비롯한 수많은 마족이 포함되었던 탐식의 군단.
녀석들이 지나간 곳은 황폐한 대지와 질병만이 남았던 걸로 기억한다.
그런 바알 놈에게 내가 선사한 최후는.
“신성 결계로 몸 결박해 둔 다음, 산채로 불태워 죽였어. 바알 그 새끼 몸에 지방이 얼마나 쌓여 있었던지, 4일 동안 활활 불타오르더라. 조명이 따로 필요 없었다고.”
성화를 통해서 산 채로 화형을 시켜 버리는 것이었다.
바알이 지니고 있던 탐식의 마기를 완전히 제거하기 위해서 택한 방식이기도 했다.
당연히 바알은 4일 내내 비명을 내지르면서 죽어 갔고, 불이 사그라든 곳에는 한때 바알이었던 검은 재가 수북하게 쌓여 있을 뿐이었다.
“내가 리치를 소멸시켰던 게 1주일 전이었는데, 넌 그걸 알고 있으면서도 일을 저질렀던 거 아니야?”
나는 능글맞은 목소리와 함께 녀석을 향해 성큼성큼 다가갔다.
팔다리를 상실한 병마가 어떻게든 몸을 비틀면서 뒤로 물러나려고 했지만, 녀석은 원하는 만큼 물러서지 못했다.
성화에 녹아 버린 종양에서 흘러나온 끈적끈적한 진액들이 녀석의 몸을 늪처럼 잡아당기고 있었던 것이다.
【어째서 이렇게 된 거지? 네놈이…… 네놈이 나타나기 전까지만 하더라도 완벽했단 말이다!】
“전염병 상장회사라는 게임이 있는데, 그거라도 좀 해 보지 그랬어. 우리 동네 중학생이 너보다는 마병 잘 퍼뜨렸겠다.”
전염병 상장회사라고, 전염병으로 전 세계를 감염시키는 게임이 있다.
그 게임의 목표는 전 세계인을 감염시켜서 인류를 멸종시키는 것.
여러 가지 방향으로 전염병을 진화시켜 나가며 목표를 달성하는 전략 게임인데, 그 게임을 해 본 사람이라면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게 스타팅 포인트를 잘 잡았어야지. 내가 있는 걸 알면서도 대한민국에서 시작한 거면, 처음부터 그냥 자살하고 싶었던 생각이었던 거 아니냐?”
스타팅 포인트의 중요성은 게임을 안 해 본 사람조차 공감하지 않을까?
옛말에 시작이 반이라고 했다.
물론 이럴 때 사용하는 속담은 아니었지만, 그렇게나 중요한 시작부터 잘못되었는데 좋은 결과가 나올 리가 있나.
화르르르륵-!
공터에 퍼져 나간 오염을 전부 불태워 버린 성화가 천천히 나를 향해 모여들기 시작했다.
이곳에 남아 있는 오염원은 이제 단 하나뿐이었으니까.
“그래도 너 덕분에 쓸만한 정보는 하나 얻어 간다. 나를 모르는 걸 보면, 지구에 있는 마족들 전부가 에덴에서 넘어온 건 아니란 소리잖아. 맞지?”
리멘이 말했었다.
마족들은 에덴의 종족이 아니라고. 녀석들은 그저 다른 세계로부터 에덴을 침략했을 뿐이라고.
그녀의 말이 맞다면, 어쩌면 내가 상대해야 할 마족들은 에덴에서 도망쳐 온 마족뿐만이 아닐지도 모른다.
내가 알지 못하는 적, 새로운 적이 나타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
하지만 죽음의 공포에 휩싸인 이놈에게 내 질문이 귀에 들어올 리가 있나.
【내가 왜 죽어야만 해? 아직이다. 아직, 나는 여기서 죽을 수는 없어.】
최후의 발악인 건지, 녀석의 몸에서 흘러나온 고름이 곧 녀석을 둘러쌓으며 고치 형태를 이루었다. 녀석의 전투 의지는 이미 소멸한 지 오래다.
처음부터 이 녀석은 나에게 그 어떠한 위협조차 줄 수 없는 병신이었다.
아니, 마왕급에 도달하지 못한 마족이라면 애초부터 그 누구도 나를 위협할 수 없었다.
“요새 마족 놈들은 끈기가 없어. 나 때는 죽을 걸 알면서도 달려들었는데 말이야.”
더 길게 끌고 갈 이유도 없었다.
아직 이 난민촌 내부에는 마병에 노출된 환자들이 즐비해 있다. 슬슬 이 녀석을 죽이고, 마병에 걸린 환자들을 정화시켜야 한다.
“그래도 좋은 정보를 줬으니까 바알이랑 똑같은 최후를 선물해 줄게. 영광인 줄 알아.”
화르르르륵!
【끼야아아아악! 끼야아아아아아아악-!】
기다리고 있던 성화가 녀석의 고치를 완전히 집어삼켰고, 녀석의 비명은 성화 속에 파묻혔다.
나는 그 모습을 바라보면서 가볍게 숨을 뱉어 냈다.
그리고 능글맞은 목소리로 말을 맺었다.
“밤에 불장난하면 오줌 싼다고, 할머니가 그랬었는데.”
오늘 자기 전에는 방광 싹 비우고 자야지.
그렇게 나는 활활 타오르기 시작한 종양들을 잠시 지켜본 다음, 서둘러서 몸을 돌렸다.
[역병의 근원>을 성공적으로 제거하셨습니다.] [퀘스트 역병>을 완료하였습니다.] [보상으로 신성 점수 1만 점>과 성유물 점수 1점>이 지급됩니다.]근원을 제거하는 건 성공했지만, 아직 해야 할 일이 많이 남아 있었다.
서둘러 움직이도록 하자.
6.
종양이 퍼져 있던 곳을 확실하게 불태운 나는 곧바로 서 목사의 컨테이너 교회로 되돌아왔다.
돌아오기까지 소요된 시간은 정확히 17분.
컨테이너 교회에 다다르자 출발할 때와는 전혀 다른 풍경이 펼쳐져 있었다.
바닥에 쓰러져 있는 환자들.
그리고 군데군데 섞여 있는, 두개골이 박살 나서 형체를 알아볼 수 없는 괴물들까지.
그 중심에는 당연히 순백색의 갑옷을 입고 있는 루나가 서 있었다.
“금방 오셨네요? 안 그래도 저 멀리서 성화가 보이던데, 불태울 게 꽤 많으셨나 봐요.”
“별거 없더라. 옛날에 야영했던 거 생각하면서 불 좀 피웠지.”
“야영 이야기하니까, 성하가 모닥불 피우다가 엘프들의 숲 불태워 먹을 뻔했던 거 생각나네. 아주 그냥 방화범이 따로 없었다니까?”
“……됐고, 이쪽 상황은?”
“보시는 그대로랍니다.”
루나의 주위에는 병마가 흩뿌린 듯한 검은 피가 낭자했지만 정작 루나의 몸은 순백색 그대로였다.
그녀의 몸에서 아지랑이처럼 피어오르는 신성력이 병마들의 피를 싸그리 증발시킨 듯했다.
“대가리 박살 난 놈들은 병마고, 나머지는 마인들. 마인의 숫자가 생각보다 많았어요.”
“500명은 가뿐히 넘기겠는데?”
“실제 숫자는 이것보다 훨씬 많을 거예요. 다만, 병마 놈들의 수준이 형편없어서 제대로 동원을 못 했을 뿐이죠.”
마기가 두뇌에 침입한 상태의 마인들 역시 치료할 수 있는 환자였다.
손상이 아예 없지는 않겠지만, 마기를 제거하게 되면 점차 정상으로 돌아올 것 같았다.
신성력에만 의존했던 에덴과는 달리 이곳은 의학이 발달한 지구다. 뇌까지 침투한 마기만 제거해 주면 그리 어렵지 않게 치료가 가능하겠지.
거기에 우리가 판매용으로 비축해 둔 최하급 성수를 지원해 준다면 예후가 아주 좋아질 것이다.
“그런데 루나야.”
“네에.”
“혹시 쓰러져 있는 사람들한테도 철퇴 휘두른 건 아니지?”
내 물음에 루나가 불쾌하다는 듯 인상을 찌푸리며 대답했다.
“제가 미친년이긴 하지만 그 정도까지 미친년은 아니거든요? 성하가 말씀하신 대로 뇌만 살짝 흔들어서 기절시켜 둔 거예요.”
그래, 우리 루나가 아무리 막 나가더라도 불쌍한 희생자들도 후려칠 정도로 막 나가지는 않지.
나는 씨익 웃으면서 루나의 등을 두드려 줬다.
“잘했다.”
“말로만?”
“그러면?”
“저 요새 모바일 게임 하는 거 있는데, 게임 패키지 딱 50개만 사 주세요.”
“지난번에 보너스 주기로 약속했잖아.”
“에이,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고. 해 주실 거죠?”
루나 얘는 도대체 언제 K-모바일 게임까지 섭렵한 거야?
이럴 때는 일단 대답을 회피하도록 하자.
“잠깐만 루나야. 내가 정화를 아직 못 했거든? 정화부터 하고 다시 이야기하자.”
마병의 근원은 제거되었지만, 아직 이 구역 내부에는 환자들이 남아 있었다.
그들을 정화하는 것이 우선이다.
감염을 일으키는 감염원은 전부 제거하고 왔기 때문에 더 이상 머뭇거릴 필요는 없었다.
나는 크게 숨을 들이쉬면서 신성력을 끌어올렸다.
“정화의 날개.”
[액티브 스킬 정화의 날개 Lv.?>를 사용합니다.]이펙트가 쓸데없이 화려하지만, 마기에 오염된 것들을 광역으로 정화하는 데에는 이만한 스킬이 없었다.
지구에 돌아온 이후로 꽤 자주 사용한 스킬인 것 같기도 하다. 시간이 남으면 틈틈이 그라운드 제로 외곽 지역에서 사용하기도 했고 말이다.
우우우우웅-!
좋아, 이 정도면 금방 정화가 끝…….
[경고! 현재 당신은 수많은 인간의 생명에 직접적으로 관여하고 있습니다. 해당 행위는 시스템을 교란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차원계: 지구>의 시스템이 인과율 적합 심사>를 진행합니다!]잊을 만하면 꼭 등장하는 우리의 인과율.
그런데 여태까지 떠올랐던 경고 메시지들과 많이 다른 것 같다.
정화의 날개는 이미 몇 번 사용했었고, 사용할 때마다 경고 메시지가 표시되었지만 실제로 뭔가 제약이 들어온 적은 없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뭔가 달랐다.
방금 전에 사용한 정화의 날개가 취소된 건 아니었지만, 눈앞에 빨간색 테두리의 경고 메시지가 쉴 새 없이 떠오르기 시작했던 것이다.
[인과율 적합 심사 결과: 불합격>] [사유: 수많은 필멸자의 운명에 직접적으로 관여함. 해당 기적은 현재 사용자의 격에 걸맞지 않음. 사용자에게 허용된 인과율을 심각하게 초과함. 이에 따라 본 시스템은 사용자의 행위가 인과율에 적합하지 않다는 판단을 내림.] [당신에게 페널티가 부여됩니다!] [168시간 동안 당신의 시스템이 일부 제한됩니다.]나는 눈앞에 떠오른 수많은 메시지 창들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그리고 애써 침착한 목소리로 명령어를 내뱉었다.
“상태창.”
[해당 기능은 정지되었습니다. 정지 해제까지 남은 시간 167시간 59분 55초]“도대체 이게 무슨…….”
……아무래도 오랜만에 X된 것 같다.
우리 교황님 좀 말려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