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lease stop our Pope RAW novel - Chapter (85)
85화
26. 쉬어가기
1.
인과율 적합 심사와는 별개로, 내가 마지막에 사용한 정화의 날개>는 성공적으로 난민촌을 뒤덮었다.
가장 큰 감염원이었던 종양 덩어리와 근원을 내가 성화를 제거한 덕분에, 난민촌에 남아 있던 건 마병에 걸린 환자들 뿐이었다.
근원이 사라지면서 마병은 힘을 잃었으며, 환자들 몸속에 남아 있던 마기는 내 날개에 의해 대부분 제거되었다.
물론 병마들이 직접 탐식의 표식>을 새겨 넣은 환자들 중 일부가 완벽하게 정화되지는 않았지만.
“이능관리부의 직원들과 함께 움직인다. 너희들이 해야 할 일은 단순하다. 지금까지 축성을 통해 실습해 왔듯이, 증상이 남아 있는 환자들에게 신성력을 부여하면 된다. 알겠냐, 병아리들?”
“예!”
“나를 실망시키지 말도록. 가장 많은 환자를 치료한 녀석들에게 성하께서 특별한 상품을 약속하셨다. 그럼 투입.”
“예!”
후발대로 도착한 우리 교단의 신입들에 의해 빠르게 후속 조치가 완료될 예정이었다.
나는 루나의 명령을 받고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신입들의 모습에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다들 슬슬 밥값을 하는 것 같아서 보기가 좋네.”
“이번 기회에 치료나 정화에 소질이 있는 병아리들을 가려내는 것도 괜찮을 것 같아서요.”
“언제는 병아리들 전부 성기사로 만들고 싶다면서?”
“에이, 그래도 사제의 길을 택할 친구들도 있어야죠. 구마사제든, 축성사제든, 치유사제든. 그래야 제가 할 일이 줄어들지. 성하도 내심 원하고 계시잖아요.”
“그렇긴 해.”
루나는 웃음을 지으며 손에 들고 있던 철퇴를 바닥에 내던졌다. 그러자 철퇴는 하얀 빛가루를 휘날리면서 사라졌다.
루나가 두르고 있던 순백색의 판금 갑옷도 철퇴와 함께 모습을 감추었고, 그 자리를 청바지와 라이더 재킷이 대체했다.
“성하.”
“어.”
“아까부터 표정이 안 좋아지셨는데, 혹시 무슨 일 있으세요? 이렇게 표정 안 좋은 건 진짜 오랜만에 보네요.”
루나에게까지 숨길 필요는 딱히 없었기 때문에 나는 곧바로 루나에게 내 상황에 대해서 말해 줬다.
3분 정도 이어진 설명.
그 설명을 다 들은 루나가 별거 아니란 듯이 웃으면서 말했다.
“아, 그거네 그거.”
“그게 뭔데.”
“현자 타임.”
“진짜 미쳤어?”
“아니, 딱 현자 타임이잖아요. 후후, 제가 한국 은어 많이 알아서 당황하셨나?”
……얼추 비슷하기는 한데, 성기사의 입에서 나오니까 진짜 기분 이상하네.
이쯤 되면 루나는 그냥 걸어다니는 시한폭탄인 게 아닐까?
나중에 공식 석상에서 저런 단어를 필터링 없이 날려 버린다면…… 상상조차 하기 싫군.
“그 시스템이라는 거, 제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대단하네요. 성하를 억제하는 게 가능할 줄은 몰랐어요. 그런데 그 인과율이란 놈, 기준이 좀 이상하긴 한데?”
“내 말이. 그래서 여기 상황 대충 정리되면 물어보러 가려고.”
“질문? 누구한테요.”
“때마침 질문에 답해 줄 귀인이 할머니 댁에 계시잖냐.”
“아, 그 신기한 할머니.”
본인을 시스템의 대리자라고 말했던 엠마 밀러 여사.
그녀라면 내 질문에 대해 답을 해 주지 않을까? 원래라면 리멘한테 물어봐야겠지만, 안타깝게도 리멘과는 여전히 연락이 되지 않는다.
이렇게 된 이상 차선책이라도 선택할 수밖에.
엠마 밀러 여사가 미국으로 돌아가지 않아서 다행이다. 자칫하면 미국까지 건너가야 할 뻔했다.
어찌 되었든.
그렇게 나와 루나가 차후 계획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을 때쯤이었다.
“시우 님. 루나 님.”
컨테이너 교회 안에서 아이들을 간호하고 있던 서 목사가 희민이와 함께 우리에게 다가왔다.
서 목사의 표정은 그 어느 때보다 부드러웠고, 또 차분했다.
마음의 짐을 일부 덜어서일까.
나는 서 목사를 향해 부드럽게 물었다.
“아이들은 괜찮아졌나요?”
“많이 좋아졌습니다. 그리고 몸이 나으신 성도분들께서도 나오셔서 도와주고 계십니다. 이 모든 것이 두 분 덕입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감사해요!”
희민이는 서 목사를 따라서 우리에게 감사 인사를 건넸다.
우리를 보자마자 쇠꼬챙이를 겨누었던 아까의 모습과는 정반대였다.
“이 은혜를 어떻게 갚아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은혜랄 것까지야.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입니다. 그리고 서 목사님께서는 모르시겠지만, 이미 서 목사님은 많은 일을 해 주셨습니다. 그것으로 충분해요.”
만약 이 남자가 없었다면 이곳은 어떻게 되었을까?
아마도 더 빠른 속도로 마병이 확산되었을 것이다. 그의 몸속에 존재하는 어마어마한 신성력은 분명 병마들에게 눈엣가시처럼 여겨졌으리라.
만약 서 목사가 신성력을 자유자재로 사용할 수 있는 수준이었다면, 내가 이곳에 올 필요조차 없었으리라.
마음만 같아서는 서 목사와 희민이, 이 둘을 교단으로 데려가서 설득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내 개인적인 욕심일 뿐.
애초부터 이 두 사람은 우리에게 허락된 존재들이 아니었으므로 아쉽게도 마음을 접는 수밖에 없었다.
나는 입꼬리를 살짝 올렸다.
“어떻게, 서 목사님은 앞으로도 이곳에서 사역을 계속 이어 나가실 생각인가요?”
“그것이야말로 저에게 주어진 사명이니까요. 이곳에 계신 분들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 수 있다면, 그것으로 만족합니다.”
“각성자 교육도 포기하셨다던데, 상황이 이렇다고 위쪽에 도움이라도 요청하시지 그러셨어요.”
그 말에 서 목사는 그저 웃음을 짓는다.
그래, 지금껏 도움을 요청하지 않았을 리가 있나.
지금이야 신성력이 등장하면서 종교들이 다시 주목받기 시작했지만, 그 전까지만 하더라도 대부분의 기성 종교들이 무너져가고 있었다고 들었다.
종말론을 주장하는 사이비 종교들이나 우후죽순처럼 늘어났을 뿐, 개신교를 비롯한 기성 종교들의 힘이 대폭 줄어들었더랬지.
실제로 내가 돌아왔던 그때까지만 하더라도 그랬다.
교세가 무너져 가는 상황에서 이런 난민촌까지 신경 쓸 여력이 과연 그들에게 있었을까? 나는 아니라고 본다.
“서 목사님.”
“예, 시우 님.”
“제가 이능관리부 측에 말해서 제대로 측정받을 수 있도록 도와드릴게요. 아마 측정 결과가 나오면 개신교 쪽에서도 관심을 가져 줄 겁니다.”
장담하는데 서 목사는 조만간 개신교를 대표하는 신성 계열 플레이어로 자리 잡을 것이다.
내가 지구로 건너와서 처음으로 마주한, 다른 종교의 선지자급 플레이어였으니까.
“……혹시 뭐 하나만 물어봐도 되겠습니까?”
서 목사는 조심스럽게 나에게 말했고,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세요.”
“전혀 다른 신앙을 가지고 있는 저를 이렇게 배려해 주시는 이유가 궁금합니다.”
대답하기에 어려운 질문이 아니었다.
아니, 오히려 아주 쉬운 질문이었다.
나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사람이 사람을 돕겠다는데 복잡한 이유가 필요할까요? 그냥 도와주고 싶으면 도와주는 거지, 그 이상의 이유는 없어요.”
“……그렇습니까?”
“이곳에서 2년 동안 외롭게 노력하고 봉사했던 사람을 칭찬해 주지 못할망정, 그 사람의 신앙이 다르다고 욕한다? 글쎄요, 저희가 모시는 리멘께서는 그런 모습을 원하지 않으십니다.”
리멘이 자신의 아이들에게 원했던 모습은 ‘우리 교단만이 정의다’ 같은, 외골수적인 모습이 아니었다.
그녀가 원했던 것은 포용이었다. 그 누구든지 껴안아서 온기를 나눠 줄 수 있는, 부드럽고 따뜻한 마음.
리멘의 그러한 뜻을 잘 알고 있는 내가, 종교가 다르다는 이유로 이 착한 사람을 배척할 리가 있나.
나는 서 목사에게 악수를 건넸다. 그리고 기분 좋은 목소리로 말했다.
“다음에 볼 때도 지금처럼 편하게 인사 건네주세요. 아마도 우리는 앞으로 꽤 자주 보게 될 겁니다.”
가까운 시일 내에 그렇게 되리라 확신한다.
그 정도로 확실한 잠재력이다. 지켜보고 있는 지금조차 배가 아플 정도로 말이다. 다만, 본인만 모르고 있을 뿐이다.
서 목사는 다소 뻣뻣한 미소를 지으면서 내가 건넨 손을 맞잡았다.
그렇게 이곳에서의 일도 마무리되어 가고 있었다.
2.
루나는 현장에 남았다.
후속 작업에 투입된 우리 교단의 플레이어들을 인솔해서 서울 신전으로 돌아가야 했기 때문이다.
모바일 게임 패키지 50개를 사 주는 것이 조건이었고, 나는 어쩔 수 없이 그 조건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일단 루나를 떼어 낸 다음, 나는 김 실장이 직접 운전해 주는 차를 타고 할머니 댁으로 향했다.
“공무원을 사적인 일에 동원하는 것 같아서 마음이 무겁습니다.”
“어찌 그런 섭섭한 말씀을. 저는 시우 님을 수행하기 위해 존재하는 공무원입니다. 부담을 가지실 필요가 전혀 없습니다.”
“그럼 이참에 우리 신전으로 집무실 옮기시겠어요? 자리는 마련해 드릴 수 있는데.”
“하하.”
김 실장은 웃기만 할 뿐, 확답을 주진 않았다.
그는 겉으로 괜찮은 척하고 있었지만 방금 전 내 제의를 듣고 몸을 움찔했다.
거기에 목 줄기를 타고 땀 한 방울이 흘러내리고 있는 걸 보면 내 제의가 꽤나 살벌하게 느껴졌던 모양이다.
“그런데 시우 님. 서성신 목사의 잠재력이 그렇게나 뛰어났습니까?”
능숙하게 화제를 돌리는 걸 보면 이 사람도 참 사회생활 잘한다 싶다.
이럴 때는 못이기는 척 넘어가 주자.
나는 의자에 등을 기대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탐이 날 정도였어요. 길만 다르지 않았다면, 어떻게든 데려갔을 겁니다.”
“시우 님께서 누군가에게 그런 후한 평가를 내리는 건 최서진 대표 이후로 처음 보는 것 같습니다.”
“탐이 날 수밖에 없죠. 수많은 시련 속에서도 신앙심을 놓지 않고, 자기보다 남들의 안위를 먼저 신경 쓰는 사람. 그런 사람이 세상에 얼마나 있겠어요?”
어쩌면 그런 사람이기 때문에 그만한 잠재력을 부여받았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배가 아픈 이유가 하나 더 있었다.
서 목사가 데리고 있던 그 희민이라는 아이.
그 아이도 선지자의 운명을 타고난 아이였던 게 틀림없었다.
그대로 잘 성장한다면, 아마 우리 승우와 비견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아직까지는 씨앗이 발아하지 않았기 때문에 따로 언질을 주진 않았다.
내가 그 꼬맹이의 운명에 개입하게 되면 어떤 일이 일어날지 예상할 수 없기 때문이다.
“개신교도 훌륭한 인재를 얻게 되었군요.”
“인재야 얻었지만, 그 인재가 꽃을 피울지는 의문이긴 합니다. 그 사람에게는 쉽지 않은 길이 될 겁니다.”
그런 부류의 사람은 쉽게 타협하지 않는다.
아마도 그것은 그의 장점이자 약점이 될 가능성이 높았다.
이제 막 지구에 자리 잡기 시작한 우리 리멘 교단과는 달리, 기성 종교들의 내부에는 분명한 기득권들이 존재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가 빛을 내기 위해서는 그들을 상대로 목소리를 높여야만 할 것이다.
하지만 거기서부터는 서 목사가 알아서 해결해야 할 일.
더 이상 내가 상관할 일이 아니었다.
“그래도 시우 님은 백명교를 제외한 나머지 종교들에겐 호의적이신 듯합니다.”
“굳이 사이 나쁘게 지낼 필요가 없잖아요? 백명교 놈들이야 먼저 이빨을 드러냈으니까 그런 거구요.”
“시우 님이 대한민국의 이레귤러셔서 참 다행입니다. 저는 언제나 그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김 실장은 이제는 그냥 입에 침도 안 바르고 저런 말을 내뱉는다.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는 말이 사실이긴 사실인 모양이다.
특수조사국의 일개 팀장이었을 때는 저런 아부를 부담스러워했는데, 지금은 입만 열었다 하면 저런다니까?
그렇게 김 실장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사이, 어느새 차는 목적지에 도착했다.
경기도 여주에 위치한 우리 할머니의 집.
어르신 혼자 살기에는 다소 과하다고 느껴질 수 있는 2층 집이었지만, 이 집에는 꽤 많은 추억이 깃들어 있었다.
시연이와 인욱이가 방학을 할 때마다 이곳에 함께 와서 놀고는 했었다.
지구로 귀환한 이후로는 한 번도 안 와 봤지만, 오랜만에 왔어도 옛날의 기억이 새록새록 떠오른다.
하지만 추억에 젖는 것도 잠시, 곧 양복을 입은 한 무리의 외국인들이 우리가 타고 있는 차를 향해 다가왔다.
당장에라도 한바탕 붙을 기세의 외국인들.
그러나 그들은 내가 차에서 내리자마자 부동자세를 취하며 나를 향해 경례를 했다.
엠마 여사를 경호하는 미국 소속의 각성자들답게 내 얼굴을 단번에 알아본 것이다.
나는 그들을 향해 손을 가볍게 흔들어 주며 경례를 받았다.
“수고가 많으십니다.”
그나저나 이곳에 그 야만인 놈도 같이 있다고 들었는데, 그놈이 보이지 않는다.
내가 온 걸 모를만한 녀석도 아닌데 말이다.
그러나 호랑이도 제 말 하면 온다던가.
“헤이!”
에이든 놈이 할머니 집 뒤쪽에서 걸어 나오며 나를 향해 반갑다는 듯이 오른팔을 흔들었다.
방금 전까지 장작이라도 패고 있었는지, 녀석의 왼손에는 도끼 한 자루가 쥐어져 있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에이든은 할머니가 내어준 듯한 회색 삼베 바지를 입은 채로 당당하게 걸어오는 중이었다.
윗도리?
그딴 걸 저 야만인 놈이 평소에 입고 있을 리가 있냐고. 당연히 맨살이다.
내 옆에 서 있던 김 실장이 그런 에이든의 모습을 바라보며 조용히 중얼거렸다.
“……마당쇠?”
그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몇 마디 더 보탰다.
“분명 저 새끼 지금까지 계속 고봉밥만 처먹고 있었을 거예요. 그러고도 남을 놈이지, 암.”
이따가 몇 대 쥐어 패서라도 식비를 받아 내야겠다.
반드시.
우리 교황님 좀 말려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