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lease stop our Pope RAW novel - Chapter (87)
87화
6.
시스템에 제한이 걸린 탓에 그 이후로는 활발하게 돌아다니지는 못했다.
설명에 따르면 ‘자기방어’를 위해 필요할 때는 제한이 해제된다고는 하지만, 지금까지 그러했듯 시스템이 규정하는 ‘자기방어’의 범위가 너무나도 애매모호했다.
스스로 위험에 노출 시켰을 때도 ‘자기방어’라는 기제가 발동할지가 의문이었다.
그래서 그냥 1주일 동안 휴가를 받은 셈쳤다.
아침에 일어나서 백설이 데리고 놀아 주다가, 인욱이를 시켜서 점심도 해 먹고.
시연이가 돌아오면 맛있는 음식도 시켜 먹고.
그렇게 하다 보니 어느덧 이삿날이 다가왔다.
이사는 순조롭게 이루어졌다.
원래는 전문 이사 업체를 불러서 이사를 진행하려고 했지만.
-보안상의 이유로 불가합니다. 저희에게 맡겨 주십시오.
김 실장의 반대로 인해서 이능관리부 이레귤러전담실이 이번 이사를 도맡아 버렸다.
전문 이사 업체도 아닌데 아주 깔끔하게 포장 이사를 해 주더라.
못하는 게 없는 양반들이라니까? 이러다가 이레귤러 갑질 논란이 터지는 게 아닐까 걱정되기는 한다.
사기업이었으면 백 프로 논란이 터졌을 테니 말이다.
아무튼.
그렇게 해서 오전 중으로 이사를 끝낸 우리 가족은 예전 집에 비해 한층 넓어진 거실에서 옹기종기 모여 중화요리를 시켜 먹었다.
“이삿날은 자장면에 탕수육이지. 시연아, 많이 먹어. 이따 오후에는 오빠랑 같이 새 학교에 가 볼까?”
“좋아!”
“그래그래.”
나는 입가에 자장을 잔뜩 묻힌 채로 자장면을 먹고 있는 시연이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이사 오기 전날, 이웃분들에게 선물을 직접 돌렸다.
백화점 상품권이랑 시연이가 직접 쓴 편지, 그리고 시연이가 직접 그린 그림까지.
우리 가족이 인복이 있었는지 이웃분들은 하나같이 아쉬워하시더라.
나 때문에 이런저런 피해를 입으셨는데도 별말씀 안 하신 걸 보면 더욱 그랬다.
그게 너무 고마워서 레오에게 시켜서 시연이 몰래 그림에 축성을 해 두었다. 신성력을 가득 담아 두었으니, 효과가 아주 좋을 것이다.
“그런데 아까 전 일 생각하면 아직도 웃기네.”
“아, 그거?”
“아니, 우리 이웃분들도 가만히 계시는데, 왜 다른 사람들이 나서서 이사를 막으려고 하냐고. 형은 그거 안 웃겼어?”
인욱이의 말대로 오늘 아침, 몇몇 아파트 주민들이 우리가 이사를 가려는 걸 막아 세웠다.
이삿짐 차 앞에서 배를 까뒤집더라.
이능관리부 직원들이 나서지 않았다면 이사를 못 할 뻔했다.
우리가 이사하기 전의 상황을 간략하게 묘사하자면…….
-이사 가려면 우리 깔고 지나가든가!
-어? 우리 잔뜩 불편하게 만들어 놓고, 무책임하게 도망가냐? 그러고도 네가 교황이야!
-결사반대! 우리 집값은 우리가 지킨다!
-입주민들의 동의를 받지 않은 이사, 반대한다! 반대한다!
-들어올 땐 마음대로였지만 나갈 때는 아니다!
아수라장도 그런 아수라장이 없었다.
주말이라서 그랬던 건지는 몰라도, 이른 아침인데도 불구하고 나와서 시위를 벌였던 것이다.
관련도 없는 사람들이 나와서 이사를 막았던 이유는 단순했다.
“내가 이 아파트에 산다고 하니까 집값 많이 뛰었다면서? 내가 나가면 올라간 집값 그대로 빠지니까 다들 그렇게 막으려고 든 거야. 뻔하잖아.”
“진짜 사람들…….”
“대한민국에서 집값은 목숨 걸고 지킬 값어치가 있는 법이란다, 동생아. 아직 배울 게 더 많구나. 허허.”
원래 자기 자산 가치가 올라가는 걸 가만히 지켜볼 수 있어도, 떨어지는 건 지켜볼 수 없는 법.
대한민국 사람들에게는 부동산은 가장 소중한 자산 중에 하나다.
실제로 아주 오랫동안 이어진 전통이다.
혐오 시설은 최대한 멀리, 선호 시설은 최대한 가까이.
인간의 가장 원초적인 욕망 중 하나였기 때문에 이해를 못 하는 건 아니었다만, 막상 우리가 당해 버리니까 찝찝하긴 하더라.
나는 자장면을 한 입 먹은 다음, 뉴스가 흘러나오고 있는 86인치 벽걸이 TV를 가리키면서 말했다.
“뭐, 우리가 살던 집주인만 신났지. 이사 간다고 이 넓적한 티비도 하나 사 주셨잖아.”
“어쩌면 집주인이 최후의 승자가 아닐까? TV 말고도 나머지 가전들도 사 준다고 했잖아.”
“그만큼 좋으시다는 거지.”
김 실장의 예상에 따르면 우리가 살던 집은 최소 2배 이상의 웃돈을 받고 팔릴 것이라고 했다.
어쩌면 그 이상도 가능할지도 모른다. 거기서부터는 집주인의 재량이겠지만, 어찌 되었건 일명 ‘김시우 프리미엄’이 붙는 건 사실이다.
실제로 그 집 곳곳에 신성력이 남아 있는 것도 사실이었다.
어찌 되었든 내가 살았던 곳이기도 하고, 신수인 백설이가 이곳저곳에 흔적을 남긴 건 틀림없었으니 말이다.
“우리 뒤에 들어오는 사람들은 실제로 효과를 보긴 할 거야.”
“하긴. 나도 백설이가 집에 온 이후로 피로감이 많이 사라지기는 했어.”
피로감이 사라졌다고 치기에는 아직도 다크서클이 보이는걸?
어쩌면 다크서클이 하도 오래돼서 신체의 일부가 되어 버린 걸지도 모르겠다.
한마디로 팬더로 진화해 버린 셈이지.
나는 인욱이를 안쓰럽게 쳐다보았다. 그리고 녀석의 자장면 위에 단무지를 하나 올려 주면서 말했다.
“그래도 이제 우리 집이네.”
“엄마 아빠가 봤으면 서울에 집 샀다고 되게 기뻐했을 텐데. 아니다, 한강뷰 아니라서 실망하셨으려나?”
“한강뷰 대신에 청계천뷰니까 어느 정도 인정해 주셨을 것 같기도.”
이곳이 우리 남매에게는 역사적인 장소인 건 틀림없었다.
“이번 주 주말에 시연이 데리고 납골당 한번 다녀올까? 근래에 인사도 제대로 못 갔잖아.”
“이번 주에 루나 누나를 중심으로 컨텐츠 하나 기획하고 있기는 한데…… 뭐, 잠시 시간을 비우는 건 괜찮을 거야.”
참고로 우리 교단 공식 채널에서 가장 조회수가 잘 나오는 영상은 루나가 출연한 영상들이라고 한다.
루나의 미모가 고스란히 드러나기도 하고, 루나가 워낙 말을 털털하게 하는 편이라 팬층도 확실하다든가.
조회수만 보더라도 대중들의 관심이 어느 쪽으로 집중되는지 잘 알 수 있었다.
“이번에는 무슨 컨텐츠를 기획하고 있는데?”
“다큐멘터리 같은 형식인데, 이번에 교단에 새롭게 들어온 신입 플레이어들 있지? 그 사람들을 루나 누나가 어떻게 교육하는지, 그런 거 찍을 생각이야. 레오 형도 도와주기로 했고.”
“좋은 생각이네.”
“흔한 플롯이긴 하지만, 그만큼 든든한 플롯이기도 해. 민수 형도 ‘뉴비 사관학교’ 컨텐츠 진행한 적 있어서 조언 많이 해 준다고 했어.”
교단의 이미지에 충분히 도움이 될 것 같다. 신규 플레이어들을 유입시키는 데에도 유리할 것 같고.
그래도 인욱이 녀석, 정말 열심히 한다. 이렇게까지 열심히 해 줄 거라고는 기대는 안 했는데 말이다.
그렇게 우리 가족이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면서 점심을 먹고 있는 사이, TV에서 흥미로운 이야기가 흘러나왔다.
「임시국회에서는 이레귤러 특별법을 만장일치로 통과시켰습니다. 한국대학교의 선호준 교수님을 모셔서 이레귤러 특별법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고자 합니다. 안녕하십니까, 교수님.」
「예, 안녕하십니까.」
「많은 시청자 여러분들께서 궁금해하시는 것이, 이레귤러 특별법을 통해서 김시우 각성자에게 주어지는 권한인데요, 혹시 설명해 주실 수 있으시겠습니까?」
「에에, 일단 이레귤러 특별법은 미국의 법안을 참고하여 빠르게 발의된 법안으로서, 이레귤러에게 사법적 특권을 부여한다는 내용이 담겨 있는……」
나와 관련된 법안이 만장일치로 통과되었다는 이야기.
즉, 나에게 부분적으로나마 면책특권이 주어질 예정이라는 것.
“그래도 약속은 지키셨네.”
서 대통령이 나에게 권한을 부여해 주겠다던 약속을 지켰다. 그것도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빠르게.
나는 아나운서와 패널이 주고받는 이야기를 들으며 씨익 입꼬리를 올렸다.
일이 잘 풀려 가고 있었다.
아주 만족스러울 정도로.
7.
이레귤러 특별법에 이어 대전 난민촌에서 발생한 전염병 사태가 보도되는 바람에 대한민국의 분위기는 계속 뒤숭숭했다.
피해자가 다수 발생할 수도 있는 사건이었지만, 그래도 내가 늦지 않게 해결해서 사망자는 굉장히 적었다.
마인 상태의 환자들은 당분간 지속적인 치료가 필요하기는 했지만, 루나가 이끄는 우리 교단의 신입 플레이어들이 훌륭하게 조치를 한 덕에 위중증 환자를 대폭 줄일 수 있었다.
난민촌에서 탈출한 일부 보균자들도 이능관리부의 집요한 추적 덕분에 대부분 정리할 수 있었고, 근원이 제거된 상태에서의 마병은 그리 위협적이지 않았기 때문에 상황이 완벽하게 종료되었다고 봐도 무방했다.
「(사진)리멘 교단의 ‘누나’, 루나 레벤톤이 이끄는 리멘 교단 소속 플레이어들이 환자들을 치료하고 있다.」
「이번에도 김시우! 대한민국을 수많은 위기에서 구원한 영웅, 이레귤러 특별법으로 날개를 달게 되다!」
「루나 레벤톤, ‘오랜 시간 동안 이곳에서 봉사하던 서성신 목사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 종교를 떠나 그에게 존경을 표한다.’」
「‘대전의 성자’ 서성신 목사. 그는 누구인가?」
언론 상대 능력까지 손에 넣은 루나는 능수능란하게 인터뷰도 진행했다. 그 과정에서 서 목사에 대한 이야기도 해 줬는데, 그것은 루나 역시 서 목사의 인간성을 인정해 줬다는 소리였다.
루나의 인터뷰에 더불어 이능관리부 측에서 발표한 서성신 목사의 신성력 측정 결과는 아주 훌륭한 기폭제가 되어 주었다.
현재 이능관리부 측에서는 우리 교단이 제공해 준 신성석을 통하여 신성력을 측정해 왔는데, 서 목사가 측정 이래 최고치를 찍었던 것이다.
당연히 개신교에서는 난리가 났다.
새로운 사도가 나타났다니, 개신교 부흥의 시작이라느니.
역대급 재능이 등장한 셈이니 호들갑 떠는 건 당연하겠지만…… 글쎄, 그들에게 마냥 좋은 소식만은 아닐 것이다.
아무튼.
우리 교단에도 임시적으로나마 새로운 식구가 들어왔다.
“……그렇게 해서 당분간 리멘 교단에서 전투와 몬스터에 대해서 교육하게 될 오준우라고 합니다. 다시 만나 뵙게 되어서 기쁩니다, 여러분!”
“다들 박수.”
짝짝짝.
하이브 길드의 내부고발자, 오준우였다.
전각련 소속의 헌터가 전각련의 등에 칼을 꽂아 넣고 나서 갈 데가 어디 있겠어?
그래서 내가 냅다 모셔 왔다.
S급 헌터에다가 수많은 레이드를 경험했던 사람이었으니 우리 교단의 신입들에게 아주 큰 도움이 될 거라 생각했으니까.
게다가 오준우 그 본인조차 우리 교단에 합류하는 것에 대단히 호의적이었다.
아마도 그건.
“그럴 줄 알았어요. 다시 봐서 반가워요, 준우 씨.”
“네, 넵! 열심히 하겠습니다! 저도 다시 만나서 반갑습니다 루나 님!”
그가 루나에게 첫눈에 반했기 때문이 아닐까?
물론 단순히 루나에게 눈이 멀어서 이곳에 온 것만은 아닐 것이다.
그 본인조차 우리 교단만큼 그를 보호해 줄 수 있는 단체가 없다는 것을 짐작하고 있었을 것이다. 솔직히 여자에 홀려서 미래를 맡기는 사람이 어디 있겠어?
“준우 씨가 와서 정말 기뻐요.”
“저도, 저도 굉장히…… 기쁩니다!”
……음, 여기 있을 수도?
루나는 자신을 바라보며 얼굴을 붉히는 오준우를 향해 가볍게 윙크를 했고, 오준우는 애써 마음을 가라앉히다 루나의 윙크에 화들짝 놀랐다.
저러다가 얼굴에서 불나겠다, 불나겠어.
나는 오준우의 얼굴을 살피면서 조심스럽게 루나의 귓가에 입을 가져다 댔다.
“루나야. 쓸 만해질 때까지 굴려. 알겠지?”
“당연한 거 아니겠어요? 지금 우리가 물불 가릴 땐가? 성하가 그렇게 부탁 안 하셔도 아주 그냥 기름기 쫙쫙 빼둘 생각이었어요. 저번에 상대했을 때 잔동작이 너무 많더라구요. 후후, 어디서부터 괴롭혀 줄까아. 벌써 기대되네.”
굳이 걱정 안 해도 되겠군.
게다가 대형 길드에서 중요 책임자로 재직했던 사람이었기 때문에 추후 지구식으로 성기사단과 사제단을 편성할 때 많은 도움이 되어 줄 것이다.
마력 사용자라는 건 우리와 다르긴 했지만, 지금 우리 교단의 상황이 그런 거 따질 때가 아니다.
지금과도 같은 인력난에 일 잘하고 말 잘 들을 사람이기만 해도 충분하다.
당장 민수 씨만 하더라도 마력 사용자잖아.
그리고 우리 교단이 그렇게 보수적인 집단도 아니었으니, 교리상의 문제도 없었다.
“준우 씨 환영회는 차차 하도록 하고, 루나. 신입들 중에서 사제의 길을 걸을 만한 친구들 좀 찾았어?”
“꽤 있더라구요. 해당 교육생들 명단 작성해서 오늘 중으로 제출할게요.”
“듣던 중 반가운 소리네.”
신전의 내실을 위해서라면 사제들 역시 중요하다.
성기사가 외부의 적을 두드려 부수는 쪽이라면, 사제는 교단의 내부를 채워 주는 역할이었기 때문이다.
“명단을 확인하는 대로 레오 네가 신경 좀 써 주고.”
“알겠습니다, 성하.”
근래에 레오의 지분이 좀 줄어든 것 같은 기분이란 말이지.
조만간 데려다가 잔뜩 부려 먹어야겠다.
부하들 간에 차별 대우를 하는 건 최악의 리더라고 했으니, 똑같이 부려 먹어 줘야지 않겠어?
나는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나저나 김 실장에게 부탁해 뒀던 게 하나 있다. 지금쯤이면 답이 올 때가 되었는데……
띠리리리링-.
“양반은 못 되신다니까. 여보세요?”
그러자 전화기 너머로 김 실장의 목소리가 전해져 왔다.
-시우 님. 통화 괜찮으십니까?
“예예, 편하게 하세요.”
-일단, 결론부터 말씀드리겠습니다. 시우님께서 문의하신 그 D254 던전을 확인해 본 결과 이미 입찰이 되어 있는 상태입니다. 입찰권을 웃돈을 주고 구매하는 것도 고려할 수 있는 옵션이었지만, 쉽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반드시 입찰을 해야만 하는 던전이 하나 있었다.
지난번 부산처럼 이계의 성유물과 관련되어 있는 던전.
시스템이 일부 제한되어 있는 와중에도 퀘스트가 발생했으니, 분명히 이계의 성유물과 관련되어 있을 것이다.
그래서 곧바로 김 실장에게 이야기를 했지만, 아무래도 내가 원하는 결과가 아닌 듯했다.
“많이 비싼가요? 저희 교단 쪽에도 여유 자금은 있긴 합니다.”
-가격보다는…… 입찰받은 쪽이 문제입니다. 후우.
김 실장은 전화기 너머로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착잡한 목소리로 말했다.
-설화 길드라고, 하필이면 전각련에 소속된 중형 길드에 입찰된 상태입니다.
악연이란 게 원래 그렇다.
엮이기 싫어도 어쩔 수 없이 엮여 들어간다. 그것이 진짜 악연이다.
나는 김 실장을 따라 한숨을 내쉬었다.
“이번에도 편하게 넘어가기는 글러 먹었네요.”
내가 하는 일이 다 그렇지 뭐.
기대도 안 했다.
에휴.
우리 교황님 좀 말려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