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lease stop our Pope RAW novel - Chapter (88)
88화
27. 언더커버
1.
김 실장은 서둘러 신전에 도착했다.
“좋아요. 김 실장님. 이야기를 계속해 볼까요?”
“일전에도 말씀드렸다시피 설화 길드는 전각련 소속의 중형 길드입니다. 길드가 만들어진 지는 불과 6개월 정도. 최근에 A급 헌터 두 명을 영입하면서 세를 불리고 있는 곳입니다. 여전히 A급 미만의 헌터들이 주축이긴 하지만…… 특이 사항은 시우님께서 태블릿 PC로 직접 확인해 보시면 되겠습니다. 자, 여기.”
역시 김 실장이 준비성 하나는 확실하다.
나중에 서 대통령한테 김 실장을 우리 교단에 아예 넘겨주면 안 되냐고 부탁이라도 해 봐야겠다.
정도 많이 들었고, 이만한 비서를 찾는 게 여간 쉬운 일이 아니다. 내가 이레귤러로서 횡포를 좀 부리면 마지못해 넘겨주지 않을까?
“……날이 많이 추워졌군요.”
김 실장은 갑작스레 오한이라도 느끼는 듯이 몸을 떨었다.
“한참 추워질 때긴 하죠.”
“갑자기 몸이 으슬으슬해서…….”
감도 참 좋은 사람이란 말이야.
진짜 탐난다.
“가만 보자.”
김 실장이 말한 대로 태블릿 PC를 집어 들어 화면을 몇 번 두드렸다.
그러자 김 실장이 미리 띄워 둔 파일이 눈에 들어왔다.
설화 길드의 가장 강력한 전력은 길드의 대표 ‘백설화’. 별칭은 빙설마녀. 냉기 계열 마법을 사용하는 S급 헌터. 단일 파괴력은 특출나진 않으나, 광역 파괴력은 충분히 인정해 줄 만함. 그러나 성격이 다소 특이하여……>
그것은 설화 길드에 대한 정보라기보다는 차라리 길드의 대표, 백설화라는 여자에 대한 정보였다.
백설화에 대해서는 이미 민수 씨에게 들어 대강은 알고 있었다.
백설화.
빼어난 미모와 수준급의 실력을 지닌 젊은 대표.
그로 인해 연예인급의 인기를 얻고 있으며, 그녀가 운영하는 미튜브 채널의 구독자수는 무려 900만 명.
미튜브뿐만 아니라 방송이나 예능에서도 심심찮게 등장할 정도로 유명한 사람이라고 한다.
“설화 길드는 사실상 그녀를 위한 길드나 마찬가지입니다. 특이하게도 길드원들 대부분이 그녀의 추종자들로 이루어져 있고, 백설화를 제외하고서는 주목할 만한 헌터는 없습니다.”
“대외적으로는 이미지 엄청 좋더만. 봉사 활동도 많이 하고, 기부도 하고. 팬층도 탄탄하던데.”
“세상에는 가면을 쓰지 않은 사람들보다는 가면을 쓴 사람들이 훨씬 더 많은 법입니다. 특히, 백설화같이 대중의 관심을 갈구하는 사람은 더더욱 그렇습니다.”
“관심을 먹고 사는 건 우리도 마찬가지라서 좀 그렇긴 하네.”
“적어도 시우 님은 일관되게 깽판을…….”
김 실장은 말을 이으려다가 화들짝 놀라면서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리고 다급하게 본론으로 되돌아갔다.
“가장 편한 방법은 입찰자에게 소정의 비용을 지급하고 던전의 입찰권을 양도받는 겁니다. 그러나 시우 님과 전각련 소속 길드들과의 상황을 미루어 보았을 때…… 불가능에 가깝겠군요.”
“그렇겠죠.”
돈 앞에 장사 없다지만, 내가 만약 비싼 가격을 부른다면 그쪽에서는 던전에 뭐가 있을 거라고 확신하게 될 것이다.
그렇게 된다면 더더욱 권리를 안 내어주려고 할 것이며, 최악의 경우에는 백명교 쪽에서 냄새를 맡고 달려들지도 모른다.
전각련과 백명교는 여전히 협력 관계에 있었기 때문이다.
지난번 부산의 경우를 생각해 보면 백명교 녀석들도 나름대로 성유물을 추적할 수 있는 듯했지만, 이번에도 알고 있으리라는 보장은 없었다.
이런 상황에서 내가 웃돈을 주고 던전의 소유권을 가져온다?
백명교 놈들도 눈에 불을 켜고 달려들 것이라 확신한다.
“차명을 통해서 입찰권을 가져오는 방법도 있기는 합니다.”
“그거 불법이잖아요.”
“당연히 불법입니다. 그런 방법도 있다, 라는 걸 말씀드리고 싶었을 뿐입니다.”
아무리 나에게 면책특권이 주어졌다고 한들, 그건 어디까지나 빌런들을 처벌할 때에만 적용된다.
이건 어디까지나 내 개인적인 일인데 그런 특권을 들먹여서야 되겠는가?
기자들의 귀에 들어가면 딱 물어뜯기기 좋은 구실이다.
나쁜 짓을 안 했다면 내가 직접 나설 명분이…….
“잠깐만.”
“음?”
“성격적 결함이 많다고 했으면, 나쁜 짓을 안 했을 리가 없잖아. 아닌가요?”
나쁜 짓을 안 한 게 아니라, 안 걸린 거라면 이야기가 많이 달라진다.
김 실장은 예상했다는 듯이 나를 지그시 바라보았다.
나는 그런 김 실장을 향해 당당하게 말했다.
“포기할 수는 없습니다. 최악의 경우, 강행 돌파까지 생각하고 있다는 것만 말씀드리고 싶네요.”
신성 점수와 별개로 성유물과 관련된 퀘스트는 반드시 수행해야만 했다.
성유물을 통해서 할 수 있는 것이 너무나도 많다.
운이 좋으면 신전의 지부를 설치할 수 있을 정도의 성유물을 소환하는 것도 가능했고, 현재 일본 정부에서 신전을 세워 달라는 부탁이 계속해서 들어오고 있다.
실제로 최근 많은 일본인들이 정식 교인이 되고자 신청을 넣고 있는 상황.
일본에서 각성한 신성 계열 플레이어들 중에서도 많은 이들이 리멘 교단을 선택하고 있는 실정이라고 한다.
이런 상황에서 성유물?
단 하나도 포기할 수 없다.
게다가 우리가 포기하게 되면 백명교의 아가리로 싹 들어갈 것이 분명했다.
“그렇게 나오실 줄 알고 있었습니다.”
김 실장은 크게 한숨을 내뱉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다른 사람이 입찰한 던전에 아무런 명분 없이 강제로 진압하게 되면 여러 가지 말이 나오게 될 수밖에 없습니다. 이레귤러 특별법이 통과된 지금, 이레귤러가 권한을 남용한다는 이야기가 흘러나오게 된다면 시우 님에게도, 리멘 교단에게도. 그다지 아름다운 그림이 아닙니다.”
“김 실장님은 잘 모르시겠지만, 저희에게는 아주 중요한…….”
“그래서 제가 차선책을 하나 준비해 왔습니다. 일단 들어 보고 생각하시지요.”
나는 그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고, 곧 김 실장은 본인이 준비해 온 ‘차선책’을 나에게 말해 주기 시작했다.
그 이후로 10분 정도 이어진 ‘차선책’에 대한 설명.
간략하게 본인의 계획을 말해 준 김 실장은 헛기침을 몇 번 내뱉으면서 설명을 마무리했다.
“어디까지나 초안입니다. 급조된 아이디어라서 디벨롭시킬 부분이 많습니다만, 시우 님께서 원하신다면 이런 방향으로…….”
“김 실장님.”
“예?”
“그냥 이참에 우리 교단으로 옵시다. 내가 지금 받고 계시는 연봉 따따블로 드리면 되잖아요. 와, 나는 상상도 못 했네. 나보다 한술 더 뜨시잖아?”
“……흠흠, 그러면 어떻게, 이대로 진행을?”
“이거, 혹시 작전 이름 뭐 그런 거 붙여 두셨어요?”
내 질문에 김 실장은 작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언더커버…… 정도로 해 두겠습니다.”
“이러니까 첩보물 같네. 좋아요, 이걸로 갑시다.”
재미와 실속을 다 챙긴 프로젝트.
언더커버의 시작이었다.
2.
[당신에게 걸려 있던 시스템 제한이 잠시 후 해제됩니다.] [5……4……3……2……1] [시스템의 제한이 해제됩니다.]“드디어 끝났다.”
나에게 걸려 있던 168시간의 제한이 끝났다.
한마디로 1주일간의 휴가가 종료되었고, 다시 현장을 뛸 수 있게 되었다.
이런저런 명령어를 통해서 몸 상태를 얼추 확인해 보니 모두 다 정상적으로 작동했다.
나는 크게 숨을 들이마시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별일이야 없었다지만 지난 1주일 동안 몸이 너무 근질거렸다.
역시, 바깥으로 나돌던 놈은 계속 바깥으로 나돌아야 된다. 이제는 가만히 있으려니 좀이 쑤시더라니까?
그건 그렇고.
“여기 있습니다.”
“고마워요, 김 실장님.”
이곳은 경상북도 구미시에 위치한 금오산.
나는 김 실장의 차량에서 그와 이야기를 나누는 중이었다.
“강채아 각성자가 몇 번이나 성능을 확인했고, 실제로도 실험을 해 봤으니 걱정하실 필요 없을 겁니다.”
“확실히 마법이 이럴 때는 편해요. 우리 종교쟁이들은 이런 능력은 좀 부족한 편이죠.”
그가 건네주는 목걸이를 손으로 쥐면서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작전명 언더커버.
이름에서 알 수 있다시피, 작전을 요약하자면 다음과 같다.
「1. 강채아의 환각 마법이 걸려 있는 목걸이를 착용한 채로 설화 길드의 던전 레이드에 포터(Porter), 그러니까 짐꾼으로 참여한다.
2. 목표물을 발견할 때까지 기다린다.
3. 목표물을 발견하면 빠르게 챙긴 후, 조용히 빠져나온다.」
내가 봐도 훌륭한 요약이다.
물론 김 실장은 저 요약들 사이사이에 디테일한 요소들을 배치해 두었지만, 작전의 핵심은 바로 저 3줄이다.
어차피 이번 작전의 목적은 최대한 논란 없이 이계의 성유물을 챙겨 오는 것.
하지만 저대로 실현될 가능성은 극히 드물었다.
변수가 셀 수도 없이 많았기 때문이다.
“일단 이곳은 이중던전일 가능성이 높은 걸로 판단됩니다. 이계와 연결된 어비스 던전이었다면 이미 저희 탐지반이 감지를 했어야만 합니다.”
“이중던전?”
“던전 안에 또 다른 던전이 숨겨져 있는 구조를 뜻합니다. 보통은 특정 트리거를 통해 발동하는 편인데, 디멘션 오프닝 이후로 딱 네 번 발견되었을 정도로 희귀한 던전입니다.”
지난번 부산에서 발생했던 어비스 던전도 탐지해 냈던 이능관리부였다.
에이든의 말에 따르면 대한민국의 이능관리부는 전투력은 몰라도 탐지 능력 하나만큼은 미국에서도 인정해 주는 수준이라고 했다.
실력이 뛰어난 탐지 계열 플레이어들을 다수 보유하고 있다던가.
하여간에 여러모로 찝찝한 장소인 건 맞다.
[퀘스트 ???>의 목표 지점에 근접해 있습니다.]이 시스템 메시지 창만 아니었다면 나도 의심을 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시스템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그것은 내가 시스템을 접한 이후로 쭉 지켜져 오던 명제였기 때문이다.
“백설화만 조심하신다면 큰 문제가 없을 겁니다. 그 목걸이는 저희 쪽 블랙 요원들이 잠입할 때 주로 사용하는 방법이거든요. 백설화라면 목걸이에 깃들어 있는 극소량의 마력을 탐지해 낼 수도 있…….”
우우우웅-.
나는 목걸이 위에 신성력을 덧씌웠다.
“신성력으로 마력을 숨겼으니 걱정하실 것 없습니다.”
“……그런 게 가능한 겁니까?”
“쉬워요. 마력 위에 신성력으로 얇게 막을 생성하는 거죠.”
대신 그 막이 목걸이에 조금이라도 닿으면 마력이 소멸될 수도 있겠지만, 이 정도의 세밀한 조종쯤이야 나에게는 어렵지 않다.
내 대답을 들은 김 실장은 이해를 포기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좋습니다. 그 목걸이를 착용하고 계신 이상, 다른 사람들은 시우 님을 평범한 30대 중반의 남성으로 볼 겁니다. 강채아 각성자가 그렇게 설정을 해 두었습니다.”
“채아 씨에게도 감사하다고 전해 주십쇼.”
“마지막으로 말씀드리자면, 일용직 포터에 대한 대우가 상상 이상으로 형편없을 겁니다.”
“아아, 그건 익히 들어 알고 있습니다. 우리 신전 관리인께서 아주 상세하게 말씀해 주시더군요.”
일용직 포터들에 대한 이야기는 이미 진서준 씨로부터 충분히 들었다.
던전이나 게이트에서 짐꾼을 도맡는 사람들.
업체에 소속되어 있는 포터들에 대한 대우는 그나마 괜찮은 편이나, 일용직 포터들은 대부분은 법의 사각지대에서 일한다고 했다.
전투력이 약한 플레이어나 돈이 급한 일반인들이 주로 일용직 포터로서 활동하며, 법의 사각지대에 있는 만큼 폭언과 가혹행위가 일상다반사라고 들었다.
하지만 그것만이 길드에 소속되어 있지 않은 상태로 레이드에 참여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했으니,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설화 길드는 일용직 포터 문제와 관련해서 문제가 터졌던 전적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 문제들은 쥐도 모르게 묻혀 버렸죠.”
“전과가 있는 친구들이었네요.”
어쩐지.
내가 일용직 포터로 신청하니까 확인조차 제대로 안 하고 받아 주더라.
물론 진서준 씨의 말을 들어 보면 다른 곳의 상황도 크게 비슷하다고 했다.
자세한 건 내가 몸으로 직접 느껴 보면 되겠지.
나는 목걸이를 목에 건 다음, 차에서 내렸다.
반쯤 열린 창문 사이로 김 실장이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럼, 별일 없이 목표를 달성하시기를 기원합니다. 멀지 않은 곳에서 대기하고 있겠습니다.”
“저도 혹시 몰라서 비밀병기 하나 숨겨 두긴 했는데, 걱정 마시고 퇴근하셔도 됩니다.”
“비밀……병기요? 혹시 누구…….”
“에이, 그걸 말씀드리면 비밀이 아니지. 아무튼 저 다녀옵니다.”
찝찝한 표정의 김 실장과 인사를 끝낸 나는 곧바로 앞을 향해 걸어갔다.
첩보 영화의 주인공이 된 것만 같아서 간만에 기분이 새롭다.
산 공기도 좋고, 산림욕을 하는 기분.
그렇게 한 20분쯤 여유롭게 걸었을까?
“다 왔네.”
저 멀리서 시끄러운 소리가 들려 다가갔더니, 그곳에는 한창 무기와 물자를 점검하고 있던 플레이어들이 모여 있었다.
그들의 복장에 그려져 있는 눈 결정체 문양은 그들이 설화 길드 소속이라는 것을 알려 준다.
“너 뭐야.”
나를 발견한 몇몇 설화 길드 소속 플레이어들이 빠르게 나에게 다가왔다.
나는 경계심을 드러내는 그들을 향해 해맑게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최대한 비굴한 목소리로 말했다.
“일용직 포터로 지원한 김인욱입니다. 이곳으로 오라고 하셔서…….”
참고로 김인욱은 이번에 내가 사용할 가명이다.
인욱이를 생각하면서 지었다.
“확인해 볼 테니까 기다려.”
잠시 후, 스마트폰을 통해서 내 가명을 확인한 남자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손가락으로 오른쪽을 가리키며 말했다.
“포터들은 저기에서 대기해라. 너희를 담당할 직원을 곧 보낼 테니까 얌전히 있어.”
“예예.”
그의 손가락이 가리키고 있는 곳에는 여섯 명이 이미 앉아서 기다리는 중이었는데, 그들의 표정은 하나같이 피곤에 쩌들어 있었다.
하나같이 사연이 참 많아 보이는 얼굴.
나는 그들 사이로 들어가서 자리에 앉았다.
그러자 그곳에 모여 있던 다른 포터들이 나를 경계하듯이 노려보았다.
그 시선이 어찌나 뜨겁던지. 그래도 웃는 낯에 침 못 뱉는다고, 그들에게도 덕담 한번 날려 주도록 하자.
“날씨가 참 좋네요. 다들 식사는 하고 오셨나요?”
오늘 역시 재밌는 하루가 될 것 같았다.
우리 교황님 좀 말려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