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lease stop our Pope RAW novel - Chapter (89)
89화
3.
포터들을 관리할 직원은 10분 뒤에 배정되었다.
“오늘은 일곱 명이 끝인가? 예상보다 인원이 더 적게 모였군. 나는 오늘 너희들을 담당하게 될 감독관이다.”
검은색 뿔테 안경을 쓴 남자가 나를 포함한 포터들의 얼굴을 살피면서 인상을 잔뜩 찡그렸다.
안 그래도 비호감인 놈이 인상까지 찡그리니까 비호감 지수가 급격하게 상승한다.
녀석은 주머니에서 작은 기계 하나를 꺼냈다. 예전 이능관리부에서 본적이 있던 간이 마력 측정기였다.
“한 명씩 앞으로 나와서 측정받는다. 혹시나 모를 훼방꾼들을 걸러 내기 위한 과정이니까, 순순히 협조하길 바란다.”
측정 절차는 아주 빠르게 진행되었다.
진서준 씨에게 들었던 대로 일용직 포터들은 대부분 전투 능력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사람들 뿐이었다.
진서준 씨보다도 훨씬 떨어지는 마력량을 보유한 사람이 넷.
일반인이 둘.
마력을 통해 신체 능력을 향상시킬 수 있는 플레이어들은 대부분 일용직이 아니라 전문 업체에 취직한다고 했으니, 어찌 보면 당연한 현상일지도 모른다.
“오늘은 일반인이 셋인가?”
나는 당연히 일반인으로 분류되었다.
마력 측정기는 신성력을 감지해 낼 수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것이 김 실장이 나에게 이렇게 잠입할 것을 권유하게 된 이유기도 했다.
어찌 되었든 그렇게 간단한 검사 과정이 종료되었고, 감독관은 우리에게 노란색의 명찰을 나눠 주었다.
“10분 뒷면 첫 번째 구역 정리가 완료되니까 너희들은 10분 뒤에 투입될 거다. 할당량을 못 채우면 일당에서 삭감한다는 건 사전에 고지된 걸로 안다. 그럼, 몸이라도 풀고 있도록.”
감독관은 그렇게 말한 다음, 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내면서 잠시 우리에게서 멀어졌다.
우리가 하는 말이 그에게 안 들릴 정도로 떨어진 후에야 포터들 사이에서 불만이 터져 나왔다.
“개자식들.”
“일당에서 삭감한다는 이야기는 하지도 않았으면서…… 후우.”
하지만 그것도 잠시.
포터들 사이에서도 빠르게 계층이 나뉘었다. 각성자들과 일반인 두 계층으로.
내가 오기 전에 이미 서로 이야기를 나눴던 모양인지, 각성자들 포터들은 자기들끼리 이야기를 주고받으면서 왁자지껄 떠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얼마 가지 않아 각성자 포터들 중 가장 더러운 인상을 지닌 아저씨가 나에게로 다가왔다.
감독관 앞에서는 한없이 비굴한 표정을 짓고 있던 그였지만, 나를 바라보고 있는 얼굴에서는 대놓고 무시와 조소가 보였다.
“너도 일반인이지?”
“그런데요?”
“그런데요? 허, 이 새끼 좀 보게.”
그 남자는 손을 들어 올리며 나를 위협했다.
당장에라도 싸대기를 후려치려는 듯한 자세였다.
나는 그의 손을 심드렁하게 쳐다보면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러자 그놈은 기선제압에 성공했다고 생각하는지, 내 이마를 손으로 누르면서 말했다.
“하, 씨발. 말을 말자. 버러지 같은 일반인 놈들이 뭐 그렇지. 야. 저기 박 씨한테 가서 네가 할 일이나 전해 들어. 던전 들어갈 때 장비는 일반인들이 알아서 챙겨 가기로 했으니까. 캬악! 퉤.”
그놈은 그렇게 말하며 내 발밑에 침을 뱉은 다음, 자기네 무리로 되돌아갔다.
약자라고 해서 반드시 선인은 아니다.
약자들 사이에서도 얼마든지 나쁜 놈들이 존재한다.
에덴에서도 그랬고, 지구도 마찬가지다.
인간이란 애초에 강자는 악인이고, 약자는 선인. 그딴 흑백논리로 쉽게 구분되는 존재가 아니니까.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세상 모든 것을 비관적으로 바라볼 필요도 없었다.
이런 박쥐 같은 놈들이 있듯이.
“괜찮으십니까?”
“아, 예.”
“여기, 물이라도 한 모금 하세요. 산 올라오느라 힘드셨죠?”
나에게 물병을 건네주는 이 아저씨처럼 호의를 베푸는 사람도 있는 법이다.
나는 그의 손에 박혀 있는 굳은살을 조용히 훑었다. 그리고 미소와 함께 물병을 건네받았다.
“감사합니다.”
“천만에요. 던전에 들어가기 전에는 다들 예민해지는 편이라, 저 사람의 말을 크게 담아 두지는 마세요. D급 던전이라 장비의 양도 많지 않으니,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아, 박 씨라는 분이?”
“박정수라고 합니다.”
그가 웃으면서 손을 건넸고, 나는 그의 손을 맞잡으면서 답했다.
“김인욱입니다.”
동생의 이름을 말하는 거라서 딱히 양심의 가책이 느껴지지는 않았다. 그리고 그것보다는 그와 손을 맞잡자마자 익숙한 느낌이 전해져 왔다.
마력은 아니었고, 그렇다고 해서 신성력도 아니었다.
이 사람이 플레이어로 각성하지 못한 일반인인 건 틀림없었지만.
‘이것도 인연이네.’
그 사람의 몸에서는 ‘믿음’이 느껴졌다.
그것도 리멘을 향한 믿음이.
손을 맞잡기 전까지만 하더라도 살짝 긴가민가한 느낌은 있었지만, 손을 맞잡으니 확실히 알 수 있었다.
하지만 일부러 티를 내지는 않았다.
지금 이 사람 앞에 서 있는 건 김시우가 아니라 김인욱이었으니까.
대신에 진심을 담아서 말했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이런 곳에서 우리 교단의 신도를 만났는데 어떻게 반갑지 않을 수 있을까?
나는 다시 한번 미소를 지었다.
4.
작업은 빠르게 시작되었다.
던전에 들어서자 눈앞에 꽤 많은 메시지 창이 떠올랐는데, 그중에는 퀘스트와 관련된 메시지 창도 존재했다.
[D급 던전 ‘머드 골렘의 동굴’에 입장하셨습니다.] [현재 던전은 토벌이 완료되지 않았습니다. 던전 전역에서 몬스터 리젠이 이어집니다.] [퀘스트 ???>의 내용이 갱신됩니다.] [닫히지 못한 문]●종류: 서브 – DLC
●설명: 이 던전 안에 다른 곳으로 향하는 문이 숨겨져 있습니다. 그 문을 찾아서 진입하십시오.
●완료 조건: ???
●보상: ???
아직까지는 특별한 게 없는 퀘스트 창.
“오늘 너희들이 수거해야 하는 건 머드 골렘의 핵과 최하급 마정석이다. 만에 하나 마정석을 빼돌릴 생각을 하고 있다면 포기하는 게 좋을 거야. 전리품을 뒷주머니에 챙기는 놈들이 어떻게 되는지는 너희들이 더 잘 알 것이라 생각한다.”
감독관의 위협 섞인 지시와 함께 본격적인 수거 작업이 시작되었다.
수거 작업이라고 해서 특별한 건 없었다.
부서진 머드 골렘의 잔해물 사이에서 핵과 마정석을 찾아 가방에 집어넣는 것이 전부.
감독관 한 명이 수거 작업을 관리하고 있었기 때문에 나중에 타이밍 봐서 슬쩍 뒷길로 새 버리면 될 것 같았다.
“씨발, 더럽게 무겁네.”
“후우우욱. 후우우우욱.”
“으아아아!”
수거 작업은 단순한 작업이지만 곳곳에서 곡소리가 흘러나온다. 마정석의 무게는 큰 문제가 되지 않지만, 골렘의 핵은 무시할 만한 무게가 아니었다.
주먹만 한 크기조차 10kg.
애초에 골렘의 핵은 마법으로 압축되어 있는 형태였기 때문에 무거운 게 당연했다.
뭐, 그건 어디까지나 일반인들의 기준이고, 고작 그 정도 무게가 나에게 무겁게 느껴질 리가 없다.
솔직히 말해서 설화 길드에서 지급한 군용 더블백 전부를 골렘의 핵으로 채워도 아무런 지장이 없었지만, 지금은 일반인으로 위장한 상태였다.
“어우, 힘들다.”
따라서 일부러 힘든 티를 내는 수밖에 없었다.
나는 바닥에 굴러다니던 골렘의 핵 하나를 더블백에 넣은 다음, 허리를 두드렸다.
“쉽지 않지요, 인욱 씨?”
“아직까지는 할 만하네요.”
“허리 조심하세요. 골렘의 핵은 부피에 비해 무게가 많이 나갑니다. 항상 건강이 우선입니다. 저희 같은 사람들은 다치면 안 됩니다.”
박정수 씨는 여기까지 오면서 나에게 이런저런 조언들을 건네주었다.
부상을 방지하는 법부터 시작해서, 골렘이 나오는 던전에서 조심해야 하는 것들 등, 그가 2년 동안 포터로서 쌓은 경험을 고스란히 나에게 말해 주었다.
보통 처음 보는 사람들에게는 그런 귀중한 노하우를 공유해 주지 않는 게 정상이겠지만, 박정수 씨는 아무런 대가도 없이 이야기를 해 주었다.
그 밖에도 몇 가지 알게 된 사실은 박정수 씨가 올해로 47세이고, 2년 전부터 일용직 포터 일을 시작했다는 것, 이 정도.
어째서 이런 일을 시작하게 되었는지에 대해서는 일부러 묻지 않았다.
당장 죽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위험한 일.
그런 일을 2년 동안이나 한 사람에게는 이유가 존재하고 있을 것이고, 분명 불행한 이유일 것이다.
그리고 나에게는 남의 불행을 들쑤시는 악취미 따위는 없었다.
“욕심을 내서는 안 됩니다. 안전하게, 최대한 안전하게. 무리해서 한 번에 옮기기보다는 적당량으로 두 번 오가는 것이 좋아요.”
박정수 씨는 본인도 힘든 와중에 계속해서 나에게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나를 배려해 주는 사람을 싫어할 수야 있나.
거기다가 리멘을 향한 믿음도 지니고 있는 사람이니까, 나로서는 그저 고마울 따름이다.
그래서 사실 아까 박정수 씨 몰래 축복을 걸어 주었다.
신체 능력을 향상시키고 피로도를 낮춰 주는 효과를 지닌 축복이었으니 여러모로 도움이 되어 줄 것이다.
그렇게 내가 박정수 씨와 이야기를 주고받으면서 작업을 진행하고 있을 때쯤.
쿵-!
아까 전에 내 발밑에 짐을 뱉었던 남자가 우리에게 다가왔다.
녀석은 들고 있던 더블백을 내 앞에 던지면서 말했다.
“야, 들고 따라와.”
“윤태환 씨. 이 친구는 오늘이 처음이라서 제가 잠시 일을 알려 주는 중입니다.”
박정수 씨는 내가 대답하기도 전에 먼저 나서서 문제를 해결하려고 했다.
하지만 윤태환이라는 놈은 아주 집요했다.
녀석은 나를 바라보면서 비릿하게 입꼬리를 올렸다.
“그래? 그럼 내가 직접 교육시켜 주면 되겠네. 각성도 못 한 포터가 가르쳐 봐야 얼마나 가르치겠어? 내가 예전에 소속되어 있는 길드에서 신입 담당이었던 거, 아까 말했지? 나만 믿으라고.”
“하지만 이 친구는…….”
“박 씨. 그래도 내가 박 씨는 경력자니까 봐주고 있는 건데, 자꾸 그런 식으로 나오면 재미없어.”
박정수 씨와 윤태환이 주고받는 대화가 다소 시끄러웠던 건지, 한쪽에 앉아서 쉬고 있던 설화 길드의 감독관이 우리를 향해 다가왔다.
“뭐가 이렇게 소란스럽지?”
“아이고, 감독관님. 별일 없습니다. 이 친구가 이 일은 처음이라고 해서 이것저것 알려 주는 중이었습니다. 작업에 차질 없도록 빠르게 교육 끝내겠습니다.”
우리를 잡아먹을 듯 달려들던 모습이 사라지는 데 소요된 시간은 고작 2초.
윤태환은 감독관에게 굽실거리면서 알랑방귀를 뀌었다.
놀라울 정도로 빠른 태세전환이었다.
감독관은 그런 윤태환을 바라보면서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아직까지는 여유가 있으니까 그냥 넘어가 주겠다. 대신 제대로 교육시켜라. 오늘 일손이 부족하다는 거, 잘 알고 있지?”
“예예, 여부가 있겠습니까. 제가 그래도 설화 길드 포터만 일곱 번째인데, 믿어 주십시오.”
윤태환 이 새끼, 앞잡이 노릇을 하는 솜씨가 심상치 않다. 전생에 아마 굉장한 매국노가 아니었을까?
간드러지는 목소리에다가 쉴 새 없이 비벼 대는 저 손바닥.
보통 저 털이 덥수룩한 덩치에서 나오기 힘든 목소리인데 말이지.
“흠, 알겠다.”
“믿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기대에 꼭 보답하겠습니다.”
감독관은 윤태환의 등을 몇 번 두드려 준 다음, 자신의 자리로 되돌아갔다.
그리고 감독관이 떠나자마자 윤태환은 다시 한번 변신을 시도한다.
“봤지? 나는 이곳에서 신임을 받고 있는 사람이야. 그러니까 내 말에 토 달지 마. 그리고 박 씨. 박 씨는 박 씨 일이나 잘해. 저번처럼 할당량 달성 못 해서 일당 삭감되지나 말고. 알겠어?”
그 말에 박정수 씨가 뭐라고 대답하려고 했지만, 나는 그의 어깨를 잡으면서 고개를 가로저었다.
“괜찮아요. 배려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참에 일 제대로 한번 배우고 올게요.”
“정말 괜찮겠어요?”
“설마 저분이 저를 잡아먹기라도 하겠어요? 윤태환 님. 이거 더블백 들어 드리면 되는 거죠?”
내 질문에 윤태환은 다소 당황한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순순히 나올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던 듯하다.
“어? 음, 그렇지.”
“알겠습니다.”
나는 바닥에 엎어져 있던 더블백을 두 팔로 가뿐하게 들었다. 그러자 박정수 씨와 윤태환이 동시에 놀랐다.
“……그거 100키로는 넘는 건데?”
“아, 제가 평소에 운동을 엄청 열심히 해서요. 믿는 게 몸밖에 없습니다. 하하! 윤태환 선배님! 가시죠! 많이 배우겠습니다.”
“그, 그래!”
윤태환은 떨떠름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그러나 주위의 시선을 의식했는지, 곧 나를 이끌고 입구 쪽을 향해 이동하기 시작했다.
작업 장소에서 입구까지는 걸어서 10분 정도.
2분 정도 앞으로 걸어가자 비로소 둘만의 시간이 찾아왔다.
불편한 침묵이 이어졌지만, 그 침묵을 먼저 깨부순 건 나였다.
“선배님. 아까 보니까 감독관님이랑 되게 친하신 것 같습니다. 참 대단하신 것 같습니다.”
내가 아부로 이야기를 시작할 줄은 몰랐던 걸까?
윤태환은 갑작스럽게 시작된 그루밍에 당황하면서도 입꼬리를 올렸다.
“뭐야, 이 새끼 생각보다 눈치가 좀 괜찮은데? 흐흐, 맞아. 설화 길드의 레이드에 참여한 건 이번이 일곱 번째야. 아까 그 감독관님뿐만 아니라, 이 길드의 헌터님들 대부분이랑 안면을 텄지.”
“아, 그렇습니까?”
“당연하지. 조만간 정규직으로 채용될 예정이야.”
“와, 정말 대단하십니다.”
전형적인 기회주의자다.
강한 자에겐 약하고, 약한 자에게는 강한, 어떻게 보면 파악하기 참 쉬운 스타일.
장단만 맞춰 주면 술술 이야기가 흘러나오는 부류였다.
“그런데 저희 다음 작업 지역까지는 언제 이동하게 됩니까?”
“글쎄다. 적어도 1시간은 걸릴 거라고 들었다. 1구역 수거만 끝나면 쉴 시간이 꽤 생긴다는 이야기지.”
“오, 그거 듣던 중 반가운 소리네요.”
쿠우우우웅-!
나는 그 말을 듣자마자 더블백들을 던져 버렸다. 그리고 치명적인 미소를 지으면서 말했다.
“마침 저도 시간이 좀 필요했는데 잘됐군요. 답답해서 뒤지는 줄 알았잖아요, 선배님.”
“뭐?”
“자, 이제 교육을 시작해 볼까요?”
우리 교황님 좀 말려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