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lease stop our Pope RAW novel - Chapter (9)
9화
3.
[현재 당신이 있는 던전 사령술사의 실험실>은 어비스화가 진행되는 중입니다.] [이에 던전의 이름이 사령술사의 실험실>에서 교만의 교두보>로 변경되었습니다.] [어비스 던전의 우두머리를 처치하지 못할 시, 반경 5km 이내 모든 지역이 어비스에 오염됩니다. 현재 남은 시간은 2시간 7분입니다.]“시간은 충분하네.”
대략 2시간 정도면 곤죽을 만들고도 남을 시간이지.
나는 눈앞에 떠오른 메시지 창을 읽어 내리면서 가볍게 고개를 끄덕인 다음, 천천히 주위를 둘러보았다.
적막이 감도는 칙칙한 통로.
벽면에 드문드문 설치된 횃불은 조명의 역할보다는 오히려 을씨년스러운 분위기를 자아낸다.
중세 시대에서나 볼 법한 지하 구조물이다.
내가 에덴에서 경험했던, 어느 성당의 지하 무덤 같은 분위기가 느껴진다고 해야 할까.
“후우.”
확실히 던전 내로 직접 진입해 보니까 마기가 더 짙어졌다.
강대한 마기가 한꺼번에 느껴져 오는 건 아니었다만, 특정 대상이 아니라 이 던전 전체가 마기를 머금고 있는 듯했다.
메시지 창에 표기되어 있던 어비스화>라는 단어와 연관된 듯싶은데, 중요한 건 이 마기 사이로 일부 플레이어들의 마력 역시 함께 감지되고 있었다.
아마도 마기에 저항하는 플레이어들이 남아 있는 듯했다.
나는 짧게 숨을 뱉어 낸 후 조용히 앞으로 걸어갔다.
구불구불 이어진 통로들.
알 수 없는 표식이 새겨진 벽들을 낀 채로 한참을 걷고 나서야 드디어 내 눈에 처음으로 무언가가 들어왔다.
푸른색의 흉갑을 입고 있는 성인 남성 둘이 바닥에 널브러져 있던 것이다.
멀리서 봤을 땐 죽어 있는 줄 알았는데, 가까이 보니 둘의 신체는 상처 하나 없이 멀쩡했다.
다만, 섬뜩할 정도로 기괴한 부분이 눈에 들어왔다.
“얼굴이 없다라.”
말 그대로 ‘얼굴’이 없었다.
인간이라면 당연히 가지고 있어야 할 이목구비가, 있어야 할 자리에 없었다.
이목구비를 대신하는 건 기괴한 검은색 연기뿐.
나는 남자 둘의 상태를 확인하고 나서야 아까 전에 던전 앞에서 박살 낸 괴물들의 정체를 확신할 수 있었다.
“미믹.”
마기를 통해서 상대방을 기절시킨 다음, 기절시킨 대상으로 변장하여 활동하는 기이한 마수.
이때 상대방을 죽이지 않고 기절시키는 이유는 아주 간단했다.
녀석들의 변장은 일종의 거울이다. 거울에 비출 대상이 없으면, 변장할 수 없다.
겉으로는 분간할 수 없을 정도로 완벽한 변장이지만 아무래도 저급한 마수인 탓에 분명한 단점이 존재한다.
미믹은 말을 할 수 없다.
애초에 발성 기관이 없는 녀석들이기 때문이다.
이쯤 되니 이 빌어먹을 상황을 만들어 낸 그 우두머리라는 녀석도 짐작이 갔다.
[시스템이 당신의 몸에서 일어나는 변화를 감지합니다.] [현 공간을 점유하는 기운에 반응하여, 차원계: 에덴>에서 축적한 스킬들이 자동적으로 발현됩니다. 시스템이 해당 스킬들을 분석합니다.]미믹은 절대로 홀로 존재할 수 없는 마수다.
반드시 미믹을 지휘하는 상위 개체가 있어야 하며, 녀석들은 어디까지나 그 상위 개체의 하수인이다.
“교만의 척후병, 도플갱어인가.”
[키워드 도플갱어>를 확인하였습니다.] [어비스 던전의 우두머리가 도플갱어>로 밝혀졌습니다.]도플갱어.
목소리를 낼 수 없는 미믹과는 달리, 상대방을 보는 것만으로도 완벽하게 복제할 수 있는 상위 개체.
아마 그 녀석이 이 사태의 원흉일 거다.
도플갱어는 본체의 전투력은 보잘것없지만, 복제한 대상의 힘을 일부 흉내 낼 수 있기 때문에 상황에 따라서 상대하기 껄끄러운 놈에 속한다.
물론 그건 어디까지나 다른 사람에게 적용되는 경우고, 나에게는 아니다.
어차피 그놈도 대가리 터트리면 죽는다. 만약 대가리 터트려서 운이 좋게 살아남는다면 몸뚱아리 전체를 으스러뜨리면 된다.
나는 상황을 판단하자마자 서둘러 앞으로 향했다.
도플갱어와 미믹은 알고도 대응하기 힘든데, 모르는 상태에서 습격을 당하면 진짜 생지옥을 맛보게 된다.
동료를 신뢰할 수 없는 상황.
전장에서 그것만큼 끔찍한 경우도 없거든.
꺄아아아아악-!
그때였다.
통로 저 멀리서 날카롭고 높은 비명 소리가 들려왔다.
이런 상황에서 비명 소리를 낼 수 있다는 건 생존자거나 도플갱어라는 소리다.
일단, 저쪽으로 가 보자.
생존자가 기다리고 있든, 아니면 도플갱어가 기다리고 있든.
나로서는 손해 볼 거 없으니까.
4.
결론부터 말하자면, 생존자가 있기는 했다.
“아 씬 좋았는데…… 거기서 갑자기 나오시면 어떻게 해요. 예? 다시 찍어야 하잖아요.”
그것도 좀 많이.
나는 나를 원망의 눈초리로 바라보는 생존자들을 향해 멋쩍게 웃으며 말했다.
“갑자기 비명 소리가 들려서 저도 모르게 그만…… 미안합니다.”
“……입구에 있는 저희 애들이 그냥 보내 줬습니까? 여기 던전 저희가 입찰받아서 촬영 진행 중인 건데, 이렇게 무단으로 들어오시면 곤란해요.”
생존자긴 생존자인데, 내가 생각했던 만큼 급박한 상황은 아니었던 것 같다.
현재, 이 사람들은 이 던전에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도 모른 채로 미튜브 촬영을 진행하고 있었다.
던전 안이어서 그런지, 바깥과는 다르게 카메라를 들고 있는 사람조차도 플레이어였으며, 이 자리에 있던 다섯 명 전원이 아직까지 마기에 잠식된 상태는 아니었다.
사실, 이게 훨씬 더 심각한 문제다.
이 사람들은 아직까지 현재 본인들에게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깨닫지 못했다는 뜻이니까.
다르게 말하자면, 도플갱어가 주연을 맡은 연극이 성황리에 진행 중이라는 의미기도 하다.
나는 쓴웃음을 지으면서 그들에게 말했다.
“구민수 씨 뵈러 왔다고 하니까 알아서 비켜 주시던데요.”
“민수 형님을요?”
“오늘 미리 약속 잡고 왔거든요. 여기 와서 한번 직접 보면서 이야기 나누자고, 뭐 그런.”
“아아, 그 귀환자! 귀환자 맞죠.”
“그게 바로 접니다.”
“진작에 그렇게 말씀하시지. 야 야, 막내야. 무전기 아직도 안 되지? 이분 민수 형님께 안내해 드려라. 너도 아까 이분 이야기 듣지 않았냐?”
“아, 새로운 참가자 후보요? 당연히 들었죠.”
바깥에서 이야기를 나눴던 설세명 씨처럼, 이들도 나에 대해서 전달받은 사항이 있는 것 같긴 하다.
그들은 서로 잠시 이야기를 주고받았고, 곧 막내라고 불린 남자가 나를 향해 가볍게 고개를 숙이면서 말했다.
“제가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따라오시죠.”
“감사합니다.”
그는 그렇게 말하면서 나를 향해 따라오라고 손짓을 했고, 나는 조용히 그를 따라갔다.
첫 생존자 무리를 조우한 이후로 꽤 적지 않은 숫자의 생존자들이 눈에 보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사이에 조금씩 섞여 있는 미믹들 역시 눈에 들어왔다.
한 가지 특이한 점은 그들 중 그 누구도 미믹들이 입을 다물고 있는 걸 이상하게 여기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같이 일을 하던 사람이 갑자기 말을 하지 않으면 이상할 법도 한데, 그들 중 아무도 문제를 제기하지 않는다.
“그러니까…… 맞아! 어. 내 말이 그 말이라니까? 네가 생각해도 그렇지?”
“빨리 집에 가고 싶다고? 나도.”
아니, 오히려 입을 다물고 있는 미믹을 상대로 대화를 나누고 있는 생존자들도 있었다.
그 일방적인 대화는 불쾌할 정도로 기괴했고, 나는 곧 그것이 이 눅눅한 공기에 섞인 마기로부터 비롯한 현상이란 것을 깨달았다.
이미 이 공간은 도플갱어의 극장이 되어 버린 상태였다.
아직 마기에 잡아먹힌 플레이어들이 많았지만, 그들은 이미 단체로 환각을 마주하고 있는 상태인 것이다.
그들의 눈과 귀에는 동료들의 탈을 쓴 저 미믹들이 말을 하고 있는 것처럼 느껴질 것이다.
도플갱어가 이 정도 수준의 집단 환각을 사용한다는 건, 그만큼 힘을 많이 모았다는 뜻이기도 했다.
그래, 그 정도는 모았으니까 던전 밖으로 마기가 흘러나오는 거겠지.
그렇게 내가 주변을 바라보면서 흥미롭다는 듯이 눈을 빛내고 있을 때였다.
내 표정을 오해했는지, 나를 안내해 주던 남자가 웃으면서 말했다.
“던전이라고 해서 긴장하실 것 전혀 없습니다. 이미 던전은 저희들이 통제하고 있는 상황이라서요. 이미 던전의 보스도 저희가 포획해 둔 상태입니다.”
포획?
이건 또 무슨 신선한 개소리인 걸까.
“포획이요?”
“아! 원래 던전 촬영이란 게 그런 식으로 진행되거든요. 보스를 죽이면 던전이 소멸합니다. 그렇다고 가만히 내버려 두기에는 위험하잖아요? 그래서 보스는 일부러 무력화만 시킨 채로 포획합니다. 그렇게 하면 던전 내 몬스터들도 약화돼서, 촬영 각 잡기가 편해지죠.”
그러니까 미튜브 촬영을 위해서 일부러 보스를 죽기 직전까지만 만들어 두고, 촬영이 끝날 때까지 살려 둔다는 거지?
진짜 가끔 이런 거 보면 사탄도 인간한테 한 수 배워 가야 하는 게 아닐까 싶다.
이야기를 듣고 보니 이런 상황도 결국 자업자득인 거다.
그동안 이런 식으로 던전 컨텐츠를 촬영해 왔다는 건데, 이번에는 운 나쁘게 도플갱어한테 걸린 거지 뭐.
아무튼.
그는 이런저런 이야기를 해 주면서 나를 민수 씨가 있다는 보스 방으로 안내해 줬다.
“안에서 이야기 나누시고, 이따가 다시 뵙겠습니다. 촬영 같이하면 좋을 것 같아요!”
“예예, 저도요. 그럼 수고하십쇼.”
본인의 책무를 다한 그 ‘막내’는 빠른 속도로 물러났다.
나는 멀어지는 그의 뒷모습을 바라본 다음, 슬쩍 방 안으로 들어섰다.
그러자 그곳에는.
“편집점을 좀 다르게 잡는 게 좋지 않을까? 그래, 거기 거기. 딱 좋네.”
이미 영상 속에서 몇 번 봤던 플레이어 K.
구민수 씨가 스태프들과 활발하게 이야기를 주고받는 중이었다.
그는 그렇게 한참 동안을 일에 열중하더니, 어느 순간 나를 바라보면서 묻는다.
“못 보던 얼굴인데…… 여긴 어쩐 일로 오신 거죠?”
이 질문만 오늘 몇 번째인지 모르겠다.
나는 그의 질문에 싱긋 미소를 지으면서 대답했다.
“인욱이 소개받고 왔습니다. 인욱이 형인 김시우라고 합니다.”
“아! 시우 씨! 어제 인욱이한테 이야기 많이 들었습니다! 안 그래도 언제 오시나 기다리고 있었어요. 인욱이가 이야기했던 것보다 훨씬 멋있으신데요?”
민수 씨는 소위 말하는 ‘인싸’의 표본이었다.
영상으로 봤을 때보다 훨씬 잘생긴 데다가, 목소리도 딱 듣기 좋은 중저음의 목소리였다.
그는 얼굴 가득 자신감 넘치는 미소를 짓더니, 곧 옆에 있던 접이식 의자를 손수 끌어오면서 말했다.
“오시느라고 고생하셨을 텐데 일단 여기에 앉으시죠. 얘들아? 내가 얘기했던 대로 편집점 잡아 주고, 잠시 밖에 나가 있어 줄래? 손님이랑 이야기 좀 나누게.”
“네.”
“고맙다. 이따가 보자.”
그는 부하 직원으로 보이는 사람들을 밖으로 내보낸 다음, 나를 바라보면서 말했다.
“이 컨텐츠가 현장감이 엄청 중요해서, 편집자 중에서 현장에 올 수 있는 친구들은 다 데리고 오거든요.”
“아, 그럼 저분들도 플레이어신가요?”
“그렇죠. 각성은 했지만 헌터로 뛰기에는 부족한 친구들이 저한테 많이 지원합니다. 플레이어라고 해서 다 같은 플레이어는 아니니까요. 대신 보수는 확실하게 챙겨 주는 편입니다. 하하…… 내 정신 좀 봐. 먼 길 오셨는데, 대접해 드릴 게 믹스 커피 뿐이네요? 괜찮으신가요?”
“믹스 커피 좋아합니다.”
“다행이네요!”
내 대답을 들은 민수 씨는 옆에 놓여 있던 종이컵에 능숙하게 커피를 탔다.
그리고 나에게 건네주면서 말을 이어 갔다.
“인욱이는 플레이어가 아니라서 밖에 있는 건가요?”
“오늘 인욱이가 몸이 좀 안 좋아서, 그냥 저 혼자 왔습니다.”
“쯧쯧. 또 보약이라도 지어 보내야겠네. 혹시 그 녀석 어릴 때도 몸이 안 좋았나요? 제 영상 편집해 줄 때도 자주 몸살에 걸리곤 했거든요.”
어색한 사이일 때는 둘의 공통분모를 이야기하는 게 가장 효과적인 대화법이다.
이런 것만 보더라도 이 사람의 붙임성을 짐작할 수 있는 부분이다.
원래 성격이 이런 걸까, 아니면 방송을 하면서 이렇게 바뀌게 된 걸까?
나는 그가 타 준 믹스 커피를 한 모금 마신 다음, 고개를 끄덕거리면서 대답했다.
“재밌는 놈이네.”
“예?”
“아아, 인욱이 말이에요. 어렸을 때부터 원체 약골이었죠.”
“하하! 그럴 것 같았어요. 음, 이렇게 인물도 좋으시고. 던전에 들어오신 걸 보면 플레이어도 맞으시니까 더 볼 것 없이 슬슬 일 이야기를…….”
“그 전에 저 뭐하나만 물어봐도 될까요?”
꽤 갑작스러운 타이밍의 질문이었지만, 민수 씨는 여전히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얼마든지요.”
“제가 걱정이 좀 많은 편이라…… 혹시 촬영 과정이 안전한 건 맞나요?”
내 질문에 민수 씨는 이해한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더니, 방 한구석에 설치되어 있는 가리개를 향해 다가가면서 말했다.
“던전이 처음이실 테니 충분히 그럴 수 있습니다. 자, 한번 보시죠.”
그는 그렇게 말하며 가리개를 치웠고, 곧 연푸른색의 반투명한 막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 막 너머에는 ‘그것’이 금색의 줄에 결박된 채로 갇혀 있었다.
민수 씨는 ‘그것’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면서 말을 이어 갔다.
“보시다시피 저는 안전을 항상 최우선으로 생각합니다. 미튜브 영상에서는 위험해 보이는 장면이 많이 나오지만, 사실 모든 영상은 저를 비롯한 전투 인원들이 이렇게 안전을 확보해 둔 채로 촬영됩니다.”
“동생 이야기 들어 보니까 한 분이 아프셔서 하차하신 거라던데.”
“아, 그분은 원래 지병이 악화되신 경우라…… 안전이 걱정이시라면 천천히 촬영을 참관하시면서 결정하셔도 좋습니다. 귀환하신 지 얼마 안 되셨다는데, 그 정도는 이해해 드릴 수 있습니다.”
“좋네요.”
“강요할 이유는 없으니까요.”
그는 그렇게 말을 맺었고, 나는 종이컵에 남아 있던 믹스 커피를 모두 마시면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민수 씨에게로 걸어간 다음, 그에게 손을 내밀면서 말했다.
“좋습니다. 그럼 우리 악수나 한번 할까요?”
“좋죠.”
민수 씨는 내 악수 요청에 흔쾌히 응하면서 나와 손을 맞잡았다.
마침내 그의 새하얀 손이 내 손에 맞닿은 그 순간.
화르르륵-!
내 팔에서 피어오른 하얀색 불꽃이 순식간에 그를 뒤덮었고, 곧 그의 입에서 끔찍한 비명 소리가 튀어나왔다.
“끄으으으으으윽!”
[패시브 스킬 성화(聖火)>의 정보가 동기화됩니다.]“너희만 우리 속이는 건 딱히 재미가 없잖아. 연극이란 게 반전이 좀 있어야지. 안 그래?”
“끼아아아아악!”
나는 고통스러워하는 민수 씨, 아니 도플갱어의 귓가에 입을 가져다 댄 채로 조용히 속삭였다.
“내 연기는 어땠어?”
우리 교황님 좀 말려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