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lease stop our Pope RAW novel - Chapter (90)
90화
5.
‘이상해.’
설화 길드의 대표, 백설화는 아까 전부터 묘한 위기감을 느끼는 중이었다.
S급 헌터인 그녀가 D급 던전에서 위기감을 느끼는 것은 극히 드문 일이었다.
오랜만에 미튜브 채널에 던전 영상을 올리기 위해서 입찰받은 D급 던전이었다.
근래에 너무 일상 영상만 찍어 올리는 거 아니냐는 비판이 이어지고 있기도 했고, 마침 돈이 되는 머드 골렘들이 출현하는 던전이었기에 아무런 고민 없이 입찰했다.
하지만 상황이 뭔가 이상하게 흘러가고 있었다.
“대표님! 수색팀으로부터 연락이 없습니다.”
“통신 방해는?”
“없습니다. 통신은 정상적으로 작동됩니다. 아무래도 수색팀 쪽에 문제가 생긴 듯합니다!”
20분 전, A급 헌터들로만 구성되어 있던 수색팀과의 연락이 끊겼다.
그뿐만이 아니다.
지금 그녀가 있는 넓은 공동 곳곳에서 알 수 없는 검은색의 점액질이 발견되고 있었다.
각성한 이후로 많은 몬스터들을 상대해 왔던 백설화 그녀조차 잘 모르는, 알 수 없는 점액질이었다.
‘……무언가 있어.’
마법 계열 플레이어들의 직감은 놀라울 정도로 정확한 편이다.
마법은 보통 뇌를 통해서 발현된다.
그 과정을 통해 두뇌가 마력이 강화되고, 강화된 두뇌가 직관력을 높여주기 때문이다.
백설화는 손끝으로 마력을 끌어올렸다. 그녀의 손에서 나온 마력이 손가락에서 뻗어 나가 눈 결정체를 만들어 냈다.
째애앵-!
그녀가 만들어 낸 눈 결정체가 검은색 점액질에 맞닿았다.
어지간한 물질조차 꽝꽝 얼려 버릴 정도의 한기가 흘러나왔으나, 검은색 점액질은 아랑곳하지 않고 결정체를 집어삼켰다.
‘내 마력조차 잡아먹는 물질?’
비록 S급에 턱걸이하는 마력이긴 했지만 그래도 명색이 S급의 마력이다.
D급 던전 따위에서 무력화될 마력이 아니란 소리였다.
이 상황에서 확실한 건 이곳이 평범한 D급 던전이 아니란 사실이다.
어떤 위험이 도사리고 있을 줄 모른다.
적어도 백설화, 그녀는 쓸데없는 자신감으로 미지의 위험에 뛰어드는 사람이 아니었다.
“백명교 쪽에 연락 넣어.”
마력을 무력화시키는 점액질이다.
그렇다면 백명교 쪽에서 알고 있을 가능성이 높았다. 이렇게 기이한 미지의 것들은 최근 백명교 쪽에서 도맡아 처리하고 있으니까.
그녀의 말에 옆에 서 있던 부하가 눈을 둥그렇게 뜨면서 말했다.
“백명교요? D급 던전에서 그들의 도움을 받을 필요까지는…….”
“내가 언제 내 결정에 네 의견을 구한다고 했어? 시키면 좀 시키는 대로 해!”
백설화는 부하에게 신경질적으로 소리쳤다.
그러자 한 소리 들은 부하가 허리를 90도로 숙이면서 우렁차게 대답했다.
“죄송합니다! 바로 연락 넣도록 하겠습니다.”
“하여간에 토를 달어 자꾸. 내가 말대꾸하는 거 싫어하는 거 잘 알잖아? 이래서 이번 주 일정이나 제대로 소화가 가능할…….”
“대표님.”
“왜?”
“혹시나 몰라서 추가로 입찰해 둔 던전이 있습니다. 크게 염려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백설화는 자신에게 공손하게 보고한 남자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2팀의 팀장 임희수.
A급 헌터에다가 상황 판단도 빠르게 하는 놈이라 눈여겨보고 있던 직원이기도 했다.
“내가 이 던전을 못 깰 거라 생각했던 건 아니고?”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대표님께서 던전 하나로 만족 못 하실 것 같아서 준비해 뒀을 뿐입니다. 저희가 토벌하지 않을 경우를 대비해 입찰권을 판매할 곳도 미리 구해 두었습니다.”
“뭐, 쓸 만하네. 잘했어.”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입니다.”
백설화는 천천히 손을 뻗어 임희수의 볼을 두드렸다.
제법 봐줄 만한 얼굴에다가 적당한 전투력, 거기에 준비성까지.
꽤 쓸 만한 놈이지 싶었다.
‘괜찮네.’
그렇게 그녀가 머릿속으로 이런저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쯤, 저 멀리서 몇몇이 뛰어오기 시작했다.
가까워지니 그들의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이곳저곳 상처를 입기는 했지만, 그들은 연락이 끊겼던 수색팀이었다.
순식간에 본대에 합류한 수색팀은 가까스로 숨을 돌렸다. 그리고 수색팀을 이끌던 수색팀장이 숨을 고르면서 백설화에게 다가왔다.
“죄송합니다, 대표님. 수색 도중에 통신 장비들이 파괴되었습니다.”
“앞에 뭐가 있는 건데?”
“D급 던전에 어울리지 않는 함정들이 좀 있어서, 해제하느라 시간이 오래 걸렸습니다. 보스 룸의 존재를 확인했습니다.”
수색팀장은 탐색 계열의 플레이어였다.
그는 잠시 손을 흔들더니 허공에서 던전의 통로가 그려져 있는 지도를 소환해 냈다. 탐색 계열의 플레이어들 대부분이 사용할 수 있는 지도 제작> 스킬이었다.
백설화는 그가 건네주는 지도를 건네받으면서 슬쩍 수색팀장의 전신을 살폈다.
그리고 넌지시 말했다.
“고생했어. 이제 여기서 빠져나가자.”
“보스 룸이 코앞입니다, 대표님. 그리 오래 걸리지 않-”
그녀는 곧바로 마력을 방출했다.
까드드드드득-!
그녀의 마력이 맞닿은 모든 것들이 얼음으로 뒤덮였다.
[스킬 얼음 감옥 Lv. 19>를 시전합니다.]눈 깜짝할 사이에 수색팀이 얼음 속에 갇혀 버렸고, 나머지 길드원들은 소스라치게 놀라면서 거리를 이격했다.
백설화는 얼음 속에 갇힌 수색팀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인상을 잔뜩 찌푸렸다.
“이 새끼들, 도대체 뭘 건드리고 온 거야?”
투명한 얼음 감옥에 먹물이 번져 나가듯, 검은색 점액질이 뻗어 나가기 시작한다.
잠시 후, 그녀의 눈앞에 빨간색 테두리의 메시지 창이 떠올랐다.
[경고! 해당 던전에서 치명적인 오류가 발생합니다!] [위험 코드 001: 이계 침식>] [던전의 출입구가 강제로 봉쇄됩니다. 위험의 원인을 제거하기 전까지 밖으로 탈출할 수 없습니다.] [던전 어딘가에서 알 수 없는 통로가 개방됩니다.]그리고 그 순간.
콰아아아아아아아앙!
뒤쪽에서 엄청난 폭발음과 함께 거대한 구멍이 뚫렸다.
백설화는 고개를 돌려 그쪽을 바라보았다.
먼지가 자욱한 공동 내부로 두 명의 남자가 걸어 들어오고 있었다.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마침내 먼지가 걷혔고, 곧 능글맞은 목소리가 공동 내부에 울려 퍼졌다.
“실수했네. 살짝만 부순다는 게, 이게 다 선배님 때문이잖아요.”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대가리 박고 계세요. 힘드시면 제가 심어 드릴 수도 있고.”
“대가리! 박겠습니다!”
둘 중 한 명이 갑자기 머리를 바닥에 박으면서 엎드렸고, 나머지 한 명은 여유롭게 공동 내부를 둘러보면서 말했다.
“저희는 신경 쓰지 마시고 하던 것들 하세요. 저희 짐꾼이거든요? 조용히 있다가 나가겠습니다.”
‘저것들은 또 뭐야?’
백설화의 머리가 복잡해지기 시작한 순간이었다.
6.
항상 말하지만, 인생은 언제나 생각대로 흘러가지 않는다.
큰 물결이라고 할 수 있는 인생조차 그러한데, 작은 물결에 불과한 ‘계획’ 역시 생각대로 흘러가지 않는 경우가 있다.
게다가 내 경우에는 계획이 제대로 흘러간 적이 단 한 번도 없다.
그야말로 악운을 타고난 셈이다.
그리고 그 악운은 이번에도 여지없이 맞아떨어졌다.
“곤란하네.”
원래의 계획은 설화 길드의 본대와 살짝 이격된 곳에서 녀석들을 뒤따라가는 것이었다.
그래서 일부러 윤태환을 길잡이로 삼아서 끌고 다녔던 건데.
“윤 선배. 길 잘 안다면서.”
“저, 그게 제가 사실은 한낱 포터에 불과해서…… 길드의 계획 같은 건 잘…….”
“그래, 이미 저지른 일인데 따져서 뭐 하겠어? 대가리나 잘 박아. 거기 옆에 돌 있지? 그거 하나 사이에 끼고.”
“옙!”
이 무능한 놈은 길조차 제대로 모르고 있었다.
그래서 그냥 마력이 느껴지는 쪽을 향해서 잠시 길을 뚫었을 뿐인데, 동굴의 벽이 내가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매가리가 없었다.
가볍게 후려쳤을 뿐인데 이렇게 거대한 구멍이 뚫릴 줄이야.
게다가 역시 악운이 따르는 운명답게 뚫린 구멍 앞에서는 설화 길드의 본대가 멍하니 나를 바라보고 있는 중이었다.
얼음으로 뒤덮인 몇몇과 그 앞에 서서 나를 노려보고 있는 여자.
저 여자가 백설화라는 건 아주 쉽게 알아차릴 수 있었다.
“얼음땡을 하고 계셨나 보다. 쉬는 시간에 이런 레크리에이션도 진행하는 걸 보면 길드원끼리 사이가 좋으신가 봐요. 하하! 이것 참 부럽네요. 저도 제 여동생이랑 예전에 얼음땡 많이 했…….”
슈우우우우욱-!
내 대사가 끝나기도 전에 백설화가 손을 휘두르면서 나에게 얼음창을 쏘아 보냈다.
사람 몸만 한 크기의 얼음창이 나를 스쳐 지나갔다.
몸을 살짝 비틀지 않았다면 그대로 내 몸이 꿰뚫렸을 거다.
“아무리 제가 레크리에이션 시간을 방해했다지만, 그게 죽을죄는 아니잖아요.”
“너 뭐야.”
“방금 전에도 말씀드렸다시피 오늘 일일 포터로 참여한 김인욱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저를 신경 쓸 시간에…….”
쩌저저저적-!
“대표님 뒤쪽에서 얼어 있는 저 친구들부터 신경 써야 하지 않을까요? 누가 땡 해 준 것 같은데.”
차아아아아아앙!
그녀의 뒤에서 얼어 있던 사람들이 얼음을 깨부수면서 뛰쳐나왔다.
타르 덩어리 같은 검은색 점액질을 온몸에 뒤집어쓴 모양새였는데, 그들은 구속에서 벗어나자마자 곧장 백설화에게 달려들었다.
“씨발!”
백설화는 시원하게 욕설을 내뱉으며 얼음벽을 세워 올렸다. 그다음 곧바로 발밑에 얼음 지대를 생성하면서 스케이트를 타듯 뒤로 물러났다.
여기 오기 전에 본 그녀의 미튜브에선 항상 예쁜 단어만 사용하려고 노력하던 것 같던데, 역시 사람은 직접 만나 봐야 한다.
“이 새끼들아 뭐 해! 싸워!”
“대, 대표님! 그래도 우리 길드원들…….”
“그럼 저 새끼들한테 목 따여 뒈지든가!”
그녀는 그렇게 말하며 허공으로 자신의 마력을 흩뿌렸고, 곧 그 마력들은 고드름처럼 변하면서 검은 덩어리들을 향해 무자비하게 쏟아지기 시작했다.
확실히 손절 속도 하나만큼은 빠르다.
보통 동료들을 향해 공격하라고 하면 그녀의 부하들처럼 머뭇거리는 반응이 대부분인데, 그녀는 부하고 뭐고 없었다.
가차 없이 얼음 마법을 난사하는 모습.
최 대표가 상처를 입어 가면서까지 부하들을 공격하지 않았던 모습과 확실히 대비되었지만, 저것도 딱히 틀린 판단이 아니긴 하다.
최 대표 쪽이 워낙 낭만이 넘쳤던 것일 뿐, 현실적으로 보면 이쪽 판단이 맞다.
지극히 마법사다운 냉철한 판단이었다.
“상대가 안 좋네.”
“예, 예? 저…… 인욱 님! 혹시 시끄러운 이유가…….”
“우리 윤 선배님은 신경 쓸 거 없으니까, 계속 머리나 박고 있어.”
“예!”
이마에 돌이 잘 박힌 모양인지, 그의 이마에서 피가 질질 흘러내리고 있다.
정작 본인은 모르고 있는 것 같으니 그냥 넘어가 주도록 하자.
“후우.”
일단 김 실장의 계획대로 조용히 들어왔다가 조용히 나가는 건 글러 먹었다.
이렇게 된 이상 차선책으로 선회를 해야 하는데, 여기서 문제는 따로 차선책을 준비해 오지 않았다는 것.
게다가 저 검은색 타르 덩어리로부터 느껴지는 기운이 영 심상치 않았다.
신성력이 한 스푼 섞여 있는 것은 틀림없었으나 저건 마기와 비슷한 욕망 덩어리였다.
그야말로 모순 덩어리라고 해야 할까.
원래는 최대한 개입하지 않을 계획이었지만, 그랬다가는 이 사람들 모두가 이곳에서 죽을 것 같았다.
잠시간의 고민 끝에 이어진 내 선택은.
콰드드드드득-!
그들에게 손을 잠시 보태 주는 것이었다.
나는 백설화를 잡아먹으려고 아가리를 벌리던 검은 괴물의 목을 움켜쥔 다음, 당황한 표정의 백설화를 내려다보았다.
“도움이 필요할 것 같은데, 아니야?”
“너 이 새끼!”
“김 실장이 챙겨 가라고 해서 챙겨 오긴 했는데, 알고 보면 김 실장도 신기가 있다니까?”
왼손으로 품에서 접어 두었던 종이 한 장을 꺼내서 백설화에게 던졌다.
백설화는 그 종이를 줍자마자 펴서 읽더니, 곧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던전 토벌 참가 승인서?”
“아까도 말했다시피 나는 어디까지나 짐꾼으로 이곳에 온 거거든. 던전 입찰자의 동의 없이 던전 내부에서 전투 행위를 하게 되면 불법이라고 하더라? 그 서류에 사인만 해 주면 내가 너를 도와줄 수 있다는 소리지.”
“누군지도 모르는 놈한테 순순히 싸인을-”
콰아아아아앙!
“대표니이임!”
“마력이, 마력이 통하지 않습니다! 빠져나가셔야 합니다!”
사방에서 비명 소리가 터져 나왔다.
검은색 괴물들에게 설화 길드의 전투원들이 일방적으로 밀리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그 괴물들에게 당한 사람들조차도 검은색을 둘러쓴 채로 바닥에서 일어나고 있었다.
백설화는 일그러진 표정으로 자신의 부하들을 쳐다보았다. 그리고 다시 고개를 돌려 나를 바라보았다.
“원하는 게 뭐야.”
“계산이 빠르네. 원하는 건 딱히 없어. 그냥 이 던전 탐험만 같이할 수 있게 해 주면 돼. 어차피 던전이 봉쇄되는 바람에 바깥에서 원군도 못 오잖아?”
“네가 이 괴물들을 처리할 수 있는 건 확실해?”
“쓸데없이 의심만 많은 손님이네.”
파스스슥-!
나는 오른손에 쥐어진 검은 괴물에 신성력을 불어넣었다. 그러자 녀석을 뒤덮고 있던 검은색 점액질이 재가 되어 흘러내렸고, 곧 정신 잃은 사람의 몸뚱아리가 모습을 드러냈다.
“이 정도면 충분하지?”
“처음부터 이렇게 될 걸 알고 이곳에 들어온 거야?”
“그게 뭐가 중요하실까. 나는 내 목적 달성해서 좋고, 너는 네 목숨이랑 부하들 목숨 구해서 좋고. 서로 윈윈이잖아.”
“……좋아. 사인해 줄게.”
백설화는 마법사답게 빠르게 판단을 내렸다. 그녀는 계약서의 하단에 자신의 이름을 써넣었고, 곧바로 사인까지 끝냈다.
“좋은 결정이야.”
“네가 원하는 대로 되었으니까, 이제 가면을 좀 벗었으면 하는데.”
“가면? 무슨 소리를 하는지 잘 모르겠네.”
그 말에 백설화가 내 눈을 똑바로 직시하면서 말을 맺었다.
“김시우. 내가 널 못 알아볼 줄 알았어?”
이래서 눈치 빠른 마법사들이 싫다니까.
우리 교황님 좀 말려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