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lease stop our Pope RAW novel - Chapter (95)
95화
“백 대표 그 친구, 여전히 계산 하나는 빠른 것 같습니다. 무엇이 자신에게 득이 되는지, 또 승부수는 언제 걸어야 하는지, 아주 잘 알고 있어요. 대표라는 자가 그 정도로 과감하기가 쉽지 않다는 것, 우리 김 교황께서도 잘 알고 계시잖습니까?”
“그렇긴 하죠.”
백설화 앞에서 따로 내색을 하진 않았다만, 최 대표의 말은 결코 틀리지 않았다.
내가 그녀의 합류를 ‘환승’이라고 표현했던 이유도 거기에 있었다.
확실히 지금의 전각련은 그녀 같은 인플루언서들에겐 치명적으로 작용할 수밖에 없었다.
날이 가면 갈수록 터져 나오는 비리 스캔들, 빌런과의 결탁.
정부가 아예 작정하고 때려 대는 상황에서 그녀에게 남아 있던 선택지는 그리 많지 않았을 것이다.
“아마도 백설화 대표도 전각련 측에 불만이 많이 쌓여 있었을 겁니다.”
“얼굴마담까지 도맡았을 정도면 이런저런 혜택을 챙겨 주지 않았을까 싶은데.”
“그럴 리가요. 그 돼지 같은 놈들이 고작 인플루언서에게 자신들의 이권을 양보해 줬을 거라 생각합니까? 그놈들이 얼마나 자존심이 쎈 놈들인데요. 여하간 그런 상황에서 때마침 김 교황님께서 나타나신 겁니다. 흐하하! 생각해 보니 이것 참 드라마 같습니다. 운명 아닙니까.”
최 대표는 호탕하게 웃음을 터뜨렸다.
쓸데없는 사족이 붙기는 했다만, 나 역시 그의 말에 일부 동의할 수밖에 없었다.
“때로는 어쭙잖은 의리로 맺어진 관계보다는 확실한 이해관계로 엮이는 것이 믿음직한 때가 있습니다. 저희는 능력 있고 인기 많은 인재를 영입해서 좋고, 백 대표는 전각련을 막는 우산을 얻어서 좋고. 윈윈이라고 생각합니다.”
백설화의 의견도 아마 최 대표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그 짧은 시간 동안 최선을 다해 최선의 수를 떠올렸다는 것을 고려한다면, 확실히 그것만으로도 그녀의 판단력은 높이 사 줄 만했다.
거기에 잠재력 높은 마법 능력까지 고려한다면, 확실히 우리에게 많은 도움이 되어 줄 것이 분명했다.
신성 계열 플레이어만큼은 아니었지만, 지구에서는 마법사들 역시 품귀 현상이라고 들었다.
마법은 신성력이 해결할 수 없는 부분을 커버해 줄 수 있는 힘이기도 하다.
동료 마법사를 만들어 둬서 나쁠 건 없었다.
“그렇다면 다음에 모일 때는 백설화 대표까지 부르는 걸로 하겠습니다.”
“젊은 사람들이 많을수록 역동성이 살아나는 법. 아주 흡족합니다.”
“누가 들으면 최 대표님 나이가 지긋한 줄 알겠어. 어지간한 젊은 사람들 한 트럭 가져와도 혼자서 정리하실 분이…… 엄살은 좀.”
좋아, 이 정도면 백설화에 대한 이야기도 얼추 정리되었고.
슬슬 다음으로 넘어가 보도록 하자.
나는 고개를 천천히 끄덕인 다음, 주머니에서 작은 나무 상자 하나를 꺼냈다.
나무 상자 안에는 어제 던전에서 획득한 전리품이 들어 있었다.
외관만으로도 충분히 불쾌감을 자아내는 유기물.
문을 찢어발기면서 얻게 된 꿈틀거리는 조각>이었다.
[꿈틀거리는 조각]●아이템 종류: 기타 – 알 수 없음
●설명: 닫히지 못한 문에서 찢겨 나온 조각. 기원을 알 수 없다. 불길한 신성력이 은은하게 느껴진다. 지금으로서는 알 수 있는 것이 많지 않다.
●성장률: 0%
*성수를 통해서 조각을 배양할 수 있습니다. 성장률이 100%에 도달하면 시나리오 퀘스트 고대의 편린>을 진행할 수 있게 됩니다.
역겨운 생김새에서도 짐작할 수 있었지만, 확실히 손이 많이 가는 놈이었다.
마음 같아서는 흔적도 없이 소멸시키고 싶었지만, 정보창에 적혀 있는 저 시나리오> 퀘스트라는 단어가 마음에 걸렸다.
에덴에서 경험한 바에 따르면 저 시나리오>라는 퀘스트 등급는 차원계 전체에 영향을 끼칠 수 있는 경우에만 부여된다.
즉, 이것을 배양시키는 일이 생각보다 훨씬 중요하다는 뜻이었다. 이 혐오스러운 걸 보면 누구라도 질색을 하리라 장담한다.
하지만 여기서 내가 간과한 게 있다.
끔찍한 생김새에 사람들이 질색을 할 것이라 생각했지만, 이곳에 모인 사람들은 정상이 아니었다.
“꿈틀거리는 모양새가 꼭 산낙지 같구만. 산낙지 하면 소준데.”
“오, 최 대표님. 끝나고 한잔하실래요?”
“좋지, 루나 양. 내가 한턱 쏘지.”
“굿. 2차는 제가 쏘죠.”
틈만 나면 삼천포로 빠지는 꼴이 꼭 나를 보는 것만 같았다. 혹시 이것이 그 유명한 거울 치료?
……아니, 지금 중요한 건 그게 아니지.
“집중 좀 해 주시죠. 자, 이것 좀 보세요.”
나는 사제복의 소매를 걷으면서 오른팔을 드러냈다. 오른팔에는 어제에 이빨이 박혔던 자국 그대로 흉터가 남아 있었는데, 그 모습을 본 레오가 표정을 일그러뜨렸다.
“감히 어떤 이단자가 성하의 몸을! 말씀만 해 주십시오. 지금 당장 찾아가서 관련된 모든 이들에게 마땅한 심판을 내리도록 하겠습니다.”
“레오야. 오버하지는 말고…… 여러분. 보시다시피 제 신체도 잠깐이나마 뚫렸습니다. 한마디로 굉장히 위험천만한 녀석이었단 뜻이죠. 제가 여러분들에게 이걸 보여 드리는 이유는 단순합니다.”
잠시 숨을 고른 후, 집무실에 모인 동료들의 얼굴을 하나씩 살피면서 말을 이어 나갔다.
“보시다시피 더 이상 막연한 위협이 아닙니다. 이미 직면한 위협입니다. 정화자 놈들도 본격적으로 활개를 칠 것이고, 전각련도 쇠퇴하지 않기 위해 몸부림을 치겠죠. 백명교 역시 지금까지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이 활발히 움직일 겁니다.”
우리가 저지른 일들의 파급효과는 이미 걷잡을 수 없이 퍼져 나가는 중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가장 중요한 건 딱 하나.
방심하지 않는 것.
비록 지금 이 자리에는 없지만 앞으로 이능관리부 쪽과도 긴밀하게 대화를 이어 나가며, 서로 협력할 수 있는 건 최대한 협력할 것이다.
애초부터 우리 교단 혼자서 모든 걸 해결할 수는 없다.
이번에 팔에 구멍이 뚫리고 나서 더 절실히 깨달았다.
내가 혼자서 커버할 수 있는 범위는 어디까지나 한정되어 있었다.
그렇다고 우리 교단의 신입들이 성장하는 걸 기다리기에는 당면 과제가 너무도 많은 상황.
하지만 복잡하게 생각할 건 하나도 없었다.
손이 부족하다면 다른 사람의 손을 빌리면 되니까.
이레귤러 특별법도 제정되었겠다, 여론도 좋겠다, 더 이상 망설일 것 없었다.
“내일모레면 이곳, 그라운드 제로의 정화 작업이 완벽하게 종료됩니다. 그리고 정부 주도하에서 그라운드 제로를 둘러싸고 있는 장벽, 아크의 해체가 시작될 예정입니다. 그래서 말인데요.”
나는 씨익 미소를 지었다.
“이 좋은 소식을 라이브로 국민 여러분들에게 전해 보고자 합니다. 다 같이 말이죠. 백설화 대표도 합류하자마자 함께하게 되겠네요.”
판은 이미 벌어져 있었으니, 이번에는 판을 조금 더 키울 차례였다.
4.
근래에 들어 일본에 가느랴, 국내에 들어와서 빌런들도 잡으러 다니랴.
확실히 대중매체에 소홀하기는 했었다. 간간이 몇 번 라이브 방송으로 얼굴을 비치긴 했다지만, 임팩트는 다소 부족하긴 했다.
귀국하고 나서는 비교적 얌전했……다기에는 양심이 찔리는군.
하여간에 라이브 방송을 준비하다 보니까 이틀이 순식간에 지나가 버렸다.
그라운드 제로의 정화 작업이 끝난다는 소식은 워낙 빅뉴스였기 때문에 우리 딴에도 준비할 게 많았다.
아마 빠르게 합류해 준 설화 길드 촬영팀의 도움이 없었다면 일정을 맞추기도 빠듯했을 것이다.
민수 씨네 촬영팀 에이스였던 설세명 씨가 우리 교단의 신입 플레이어로 들어온 이후로 아직까지 인력 충원이 안 된 상태였기 때문이다.
합류하자마자 톡톡히 제 몫을 해 주는 설화 길드였다.
라이브 방송까지 남은 시간은 2시간 정도.
시간도 살짝 여유가 있었고, 게다가 주말이었기 때문에 소풍 나오는 느낌으로 시연이와 인욱이도 데려왔다.
시연이는 백설이, 승우와 함께 정원을 뛰어다니고 있었다.
아침 일찍 인욱이가 김밥도 싸 온 덕분에 피크닉 분위기가 제법 난다.
겨울이 시작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이곳의 기온은 봄 날씨나 다름없었다. 신전에서 흘러나오는 신성력이 주위를 감싸고 있기 때문이었다.
나는 도시락 바구니에 담겨 있던 김밥을 입에 집어넣었고, 인욱이는 시연이가 뛰어노는 모습을 웃으면서 바라보았다.
“신났네, 신났어. 백설이도 되게 좋아하네? 고양이가 아니라 강아지 같다.”
“똥개도 자기 홈그라운드에선 반은 먹고 들어가는 법이지. 백설이는 여기가 집이야. 저 나무 보이지? 저 나무 지키는 게 원래 백설이 임무잖아.”
턱짓으로 슬쩍 신목을 가리키면서 말했다.
신목이 자라나는 속도는 상상을 초월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내 허리쯤 겨우 왔었는데, 이제는 내 키보다 더 자라났다.
과연, 신목은 신목이였다.
“그나저나 인욱아. 너도 나름 우리 채널 관리자인데, 라이브 방송 준비하는 걸 조금이라도 도와줘야 하지 않겠니?”
“편집자는 그런 거 몰라.”
“……무책임하구나.”
“대한민국에서 플레이어 방송 쪽으로 유명한 전문가들 잔뜩 모여 있는데, 번데기 앞에서 주름잡으라는 거야? 내가 끼어들면 저 사람들 엄청 불편해할걸.”
“왜.”
“왜기는. 내가 형 동생이잖아. 나 때문에 형 욕먹는 건 싫어. 나는 그냥 여기서 이렇게 있어 주는 게 도와주는 거지.”
인욱이 녀석, 기특하긴 기특하다.
모르는 척 내 이름 대고 거들먹거릴 수도 있을 텐데, 행동을 참 조심스럽게 한다.
당연히 인욱이처럼 행동하는 게 맞다고 쳐도, 인욱이는 아직 어린 편이다. 주변에 과시하는 걸 좋아할 나이일 텐데도 알아서 절제하는 모습이 내 눈에 참 흡족했다.
인욱이는 내가 흐뭇하게 웃고 있든 말든, 계속해서 신목을 쳐다보면서 말을 이어 갔다.
“900만 채널, 600만 채널, 400만 채널. 도합 구독자 1,900만 명이라…… 스케일이 커도 이 정도로 커 버리니까 아예 실감이 안 간다. 이 정도 콜라보레이션은 나 미튜브 편집자 시작한 이래로 처음 봐.”
“확실히 어마어마하긴 하지. 그런데 우리 교단 미튜브 구독자 벌써 400만 돌파했냐?”
“루나 누나가 힘 많이 썼어. 레오 형도 틈틈이 출연했고. 다른 사람들 전부 열심히 노력하고 있는 거 알지?”
루나와 레오의 영향력이 유의미할 정도로 급상승했다는 이야기는 들었다.
틈틈이 업로드되는 신전에서의 일상에서, 루나가 레오가 주고받는 티키타카가 찰지다는 평가가 주를 이루고 있다던가?
나야 뭐 근래에 신전에 붙어 있는 시간이 적어서 찍을 기회가 없었을 뿐이다.
“오늘을 기점으로 틈틈이 출연할게. 섭섭해하지 마라.”
“난 지금이 더 편한데. 편집하면서 형 얼굴 안 봐도 되잖아.”
“너 그러다가 죽어.”
“나도 모르게 속마음이 튀어나와 버렸네.”
이래서 남동생, 남동생 하나 보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기특했었는데 말이지, 눈 몇 번 깜박였다고 뒤통수를 후려갈기고 싶어질 줄이야.
저것도 어떻게 보면 재능이다.
하지만 오늘은 좋은 날. 인욱이 역시 오늘까지 열심히 해 줬기 때문에 너그럽게 봐주도록 하자.
그렇게 나와 인욱이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있을 때쯤,
“동생이야?”
한눈에 봐도 비싼 코트를 입고있는 은발의 미녀, 백설화가 우리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던전에서 봤을 때와는 느낌이 확실히 달랐다.
메이크업까지 끝낸 상태라서 그런가, 지난번보다 훨씬 화려하면서도 도도한 분위기가 전해졌다.
인욱이는 백설화가 나타나자마자 얼굴이 굳었다. 녀석이 놀랐을 때 주로 나오는 반응이었다.
나는 그런 인욱이의 얼굴을 슬쩍 살핀 다음, 한숨을 내쉬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얘는 내 남동생. 저기에서 뛰어놀고 있는 여자애는 내 여동생.”
“그 옆 남자애는?”
“쟤는 우리 교단의 첫 번째 성자. 가족 같은 아이야.”
“……부럽네.”
백설화는 씁쓸하게 중얼거렸다. 그리고 마법으로 내 옆에 얼음 의자를 생성하더니, 조심스럽게 의자에 앉았다.
“우리를 받아 줘서 고마워.”
“한 명이라도 반대했으면 고민 좀 했을지도 모르지. 그런데 뭐, 만장일치더라? 고민할 것도 없었어.”
“앞으로 최대한 기여할 수 있도록 노력할게.”
“기여는 무슨. 그냥 편하게 있어도 돼. 오늘 라이브 방송 도와준 것만 해도 충분히 고마워.”
이건 정말 진심이었다.
지금 당장 그들에게 요구하고 싶은 건 없었다. 그저 닥쳐 올 미래를 위해서 지금보다 더 강해졌으면 하는, 그런 욕심이 있을 뿐이다.
백설화는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저 멀리서 정신없이 움직이고 있는 촬영팀을 바라보면서 말했다.
“아까 보니까 의자들이 생각보다 많이 놓여 있던데, 게스트를 따로 초청한 거야?”
“역사적인 날이기도 하잖아? 이 사람들이 대놓고 우리 편이다 선언하기 딱 좋은 타이밍이기도 하고, 그래서 안면 있는 사람들 좀 불렀어. 그런데 그 사람들이 올지 안 올지는 모르겠네. 워낙 엉덩이가 무거운 사람들이라.”
마력 오염을 정화하고 그라운드 제로 주위에 세워진 ‘아크’를 해체하는 것은 우리 교단과 대한민국에 있어서 아주 상징적인 의미가 될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직접 이 장면을 송출하려고 하는 것이고, 이 일을 축하해 줄 내 친구들을 모았다.
미튜브 채널에는 그저 ‘라이브 방송’이 있을 거라고 예고만 해 뒀을 뿐, 자세한 내용은 말해 두지 않았다.
일종의 서프라이즈인 셈이다.
“성하.”
백설화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사이, 레오가 나에게 다가왔다.
“손님이 오셨습니다.”
“손님? 누구?”
“저기 오시는군요.”
나는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검은색 양복을 입은 채로 저 멀리서 걸어오고 있는 중년의 남성이 보였다. 그는 자신감 넘치는 발걸음으로 내가 앉아 있던 곳으로 다가오는 중이었다.
그리고 마침내 내 앞까지 도달한 그가 나에게 손을 내밀면서 말했다.
“서프라이즈를 준비 중이시라는 소식을 듣고, 저도 서프라이즈를 한번 해 볼까 해서 왔습니다. 잘 지내셨지요?”
“……유 장관님이 오실 줄 알았는데.”
“하하! 주말인데 우리 유 장관도 쉬어야죠. 대신 조금은 젊은 제가 왔습니다.”
“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미리 말씀이라도 하고 오시지 그러셨어요.”
“미리 말하고 오는 것은 진정한 서프라이즈가 아니잖습니까?”
서 대통령은 너스레를 떤 다음, 아주 조용한 목소리로 내 귓가에 속삭였다.
“긴히 나눌 이야기가 있습니다.”
대통령이나 되는 사람이 직접 찾아와서 긴히 나눌 이야기가 도대체 뭘까.
“자세한 이야기는 들어가서 계속하시죠. 오신 김에 간단하게라도 신전을 소개해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좋지요.”
나는 꺼림칙한 표정을 애써 감추며 서 대통령과 함께 신전으로 들어섰다.
어째 오늘 하루도 쉽게 흘러갈 것 같지가 않았다.
우리 교황님 좀 말려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