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lease stop our Pope RAW novel - Chapter (96)
96화
5.
“차향이 아주 좋습니다. 레오 대주교께서 차에 조예가 깊으신 것 같습니다.”
“저희 레오 대주교가 못하는 게 없는 사람입니다. 신앙심도 깊고, 지식도 많지요. 거기에 사람까지 잘 접습니다.”
“레오 대주교의 별명이 폴더좌라는 것도 잘 알고 있습니다. 저도 사실 레오 대주교의 열렬한 팬 중 하나입니다.”
“원하시면 나중에 청와대에 초청하셔서 접기쇼를 라이브로 보시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요?”
“하하! 제의는 감사하지만, 사양하겠습니다! 다음 날 뉴스 헤드라인을 감당할 수가 없을 것 같네요.”
서 대통령은 넉살 좋게 웃음을 터뜨렸다.
지금 우리가 있는 이곳은 신전의 집무실.
아직 라이브 방송까지 시간이 넉넉히 남아 있었기 때문에 서 대통령에게 신전을 가볍게 소개시켜 주었다.
“그럼, 잠시 나가 있겠습니다.”
레오는 공손하게 허리를 숙인 다음 집무실에서 나갔다.
어째 요새 레오가 차만 타 주고 퇴장하는 것 같다.
한때는 광견이라고 부를 정도로 전투 속에 살아왔던 레오였는데 말이다.
하지만 그때의 표정보다 요새의 표정이 훨씬 보기가 좋은 건 사실이다.
나만큼이나 쉴 새 없이 싸워 온 레오에게, 지구에서의 평화로운 삶은 휴식이 되어 줄 것이다.
이 평화가 언제까지 이어질지는 잘 모르겠지만 말이다.
“김시우 교황님께서는 참 밑에 있는 사람들을 잘 챙겨 주시는 것 같습니다. 눈빛에서 따뜻함이 잔뜩 묻어나옵니다.”
“저 때문에 연고 없는 세계로 넘어온 친구니까요.”
“글쎄요, 연고가 없지는 않을 겁니다. 레오 대주교도, 루나 경도. 다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것 같군요.”
서 대통령은 그렇게 말하며 부드럽게 미소를 지었다.
나는 그런 서 대통령을 조용히 바라보았다.
공항 가는 길에서 처음 만났을 때에 비해서 훨씬 유해진 느낌이 들었다.
그때의 그는 어딘가 날이 서 있는 사람이었지만, 지금의 서 대통령은 한껏 여유로워진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
“김시우 교황님이 평화를 위해 노력해 주신 덕분에 많은 것이 바뀌었습니다. 가장 먼저 제 고민이 줄었습니다. 주치의도 제 건강 상태가 좋아진 것에 많이 놀라는 눈치예요. 확실히 스트레스가 만병의 근원인 것 같습니다. 요새는 아침이 참 개운합니다.”
“평소처럼 편하게 각성자라고 부르셔도 좋습니다.”
“다른 곳은 몰라도 이곳에서만큼은 김시우 교황님의 호칭을 함부로 부를 순 없습니다. 그리했다가는 교황님을 임명하셨다는 리멘님과, 교황님을 따르는 수많은 신도들에게 무례를 저지르는 꼴이 되어 버립니다.”
서 대통령은 자신의 앞에 놓인 홍차를 한 모금 목으로 넘겼다. 그리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을 이어 나갔다.
“저는 잃어버린 땅을 잠시 확인하고 오는 길입니다. 신청와대로 복귀하는 길에 소식을 듣고 잠시 들른 겁니다.”
“북진과 관련된 일이겠죠?”
“관련 없다고 하면 믿으시겠습니까?”
“그럴 리가요.”
“아직은 구상 단계에 있을 뿐입니다. 나중에 계획이 좀 더 정립이 되면, 그때 말씀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저렇게 말하는 걸 보니 저것과는 관련이 없는 이야기인 것 같은데.
나는 솔직히 서 대통령이 정말 아무 이유 없이 이곳에 왔으리라고 생각하진 않는다.
그의 사람 됨됨이를 의심하는 건 아니지만, 대통령은 모든 행보가 정치적일 수밖에 없는 존재다. 그리고 이 남자는 그 당연한 진리를 모를 정도로 무능한 사람도 아니었다.
이럴 경우 경우의수는 두 가지다.
정화 작업을 완료했다는 소식을 듣고 숟가락을 얹으러 왔다거나, 아니면 단둘이 직접 할 말이 있다거나.
서 대통령의 성격으로 보았을 때 전자의 경우는 확실히 아니다. 만약 그럴 생각이 있었다면, 유선호 장관을 보내는 선에서 적당히 티를 냈겠지.
그렇다면 남은 경우의수는 한 가지.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김시우 교황님.”
대통령께서 나와 긴히 나눌 말씀이 있다는 소리지.
나는 고개를 작게 끄덕였다.
“이렇게 직접 오셔서 이야기를 나누실 정도라면 쉬운 사안은 아니겠네요.”
“김시우 교황님과도 적잖이 관련이 있는 이야기라서 말이지요.”
“높으신 분들은 항상 본론을 늦게 이야기하신다니까? 좋습니다. 그 이야기, 한번 들어 보고 싶습니다.”
서 대통령은 들고 있던 찻잔을 가볍게 내려놓았다. 그리고 한층 진지해진 표정과 함께 본론으로 들어갔다.
“어제 아침, 중국 정부 측에서 제안이 하나 들어왔습니다.”
“참 지긋지긋한 친구들이라니까.”
그의 말대로 현재 한중 관계는 최악으로 치닫는 중이었다. 지난번 오크 웨이브도 그렇고, 특히 테러 사건이 주요했다고 들었다.
정부에서 공식적으로 중국 정부 측에 책임을 묻겠다는 성명을 발표하기도 했었으니까.
그런 상황에서 제안이 왔다라.
무슨 제안이 온 건지는 모르겠다만, 한 가지 확실한 건 우리 쪽에 이로운 제안은 아닐 것이라는 점.
만약 이로운 제안이었다면 애초에 서 대통령이 저렇게 말을 꺼내진 않았으리라.
“중국 정부 측에서는 공식적으로 각성자 친선전을 제의했습니다. 각성자들끼리의 교류를 통해서 경색된 한중 관계를 풀어 나가자, 공식적으로는 그렇게 발표할 예정이라고 합니다.”
“방식은요?”
“중국 측의 각성자들이 직접 대한민국에 방문하는 형식입니다. 이번 기회를 통해서 정기적으로 교류를 실시하고, 양국 간의 관계를 회복해 나가자는 것이 저쪽의 입장입니다.”
“참 다양한 방법으로 지랄을 떠네요.”
“동감합니다.”
관계 회복, 겉으로는 참 예쁜 말이다.
게다가 명분도 좋다.
만약 이쪽에서 친선전을 거절해 버린다면, 저쪽에서 어떻게 나올지가 참 뻔했다.
“우리가 거절할 경우, 양국 관계가 악화되는 것에 대한 책임을 우리 쪽으로 싸그리 짬 때릴 생각이겠군요. 수법이 참 고전적이네.”
“고전적인 방법을 여전히 사용한단 뜻은 그 방법이 여전히 효과적이라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 말에 나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여기까지가 일단 표면적인 이유고,
“친선단에 포함될 중국 측의 각성자 명단 중에 왕웨이가 있습니다. 중국이 보유한 네 명의 이레귤러 중 한 명입니다. 별칭은 검귀. 실제로 초대형 게이트를 일곱 번이나 혼자서 막아냈다고 합니다.”
“이레귤러를 우리 쪽에 보낸다?”
“그들은 김시우 교황님 역시 이번 친선전 명단에 포함시킬 것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이쪽이 그들의 진정한 목적이겠지.
사실, 친선전이라는 단어가 나온 순간 이미 예상은 하고 있었다.
그런데 어째서일까.
“푸흡.”
입꼬리가 올라가려는 걸 숨길 수가 없었다.
“그러니까 그 친구들이 지금 저를 테스트해 보겠다, 뭐 그런 거예요? 와, 내가 에이든 놈 두드려 패는 걸 보고서도 그렇게 나온다고?”
“미국에서 대한민국에 힘을 실어 주기 위해서 일부러 봐줬다, 그렇게 판단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자국의 이레귤러들에 대한 신뢰도도 굉장히 높은 것도 한 가지 이유가 되겠군요.”
“여러 가지로 참 중국답네요. 친선전을 통해서 얻으려는 것도 뻔히 보이구요.”
서 대통령은 씁쓸하게 미소를 지은 다음, 맥이 빠진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우리들에게 자신들의 힘을 과시하겠다는 뜻입니다.”
“친선전을 위해서 전략무기를 이웃 나라에 보내겠다?”
“중국이잖습니까.”
“중국이니까요.”
‘중국’이라는 단어는 참 마성의 단어다.
‘중국’이라는 단어를 붙여 버리면 그 어떠한 기행조차 ‘일어날 법한 일’로 둔갑해 버리는, 그런 마성의 단어 말이다.
하지만 생각해 보면 나에게 있어서도 그리 나쁘지 않은 제안이다.
저쪽의 전략무기가 이쪽으로 넘어오는 선례를 만들어 두면, 그 반대의 경우도 보다 수월하게 성립될 수 있다.
이를테면 내가 정화자 놈들을 불태우기 위해서 중국에 방문한다든지.
‘그렇게 생각하니까 또 괜찮네?’
여러 가지 변수가 발생할 수밖에 없는 일이었지만, 그렇다고 내가 거절할 이유는 딱히 없어 보였다.
나는 손가락으로 책상을 두드린 다음,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이번 기회에 여러 가지 좋은 선례를 만들어 두면 좋을 것 같긴 한데…… 맞다, 대통령님. 친선전 도중에 안타까운 사고로 불구가 되는 경우도 더러 있겠죠?”
“……음, 그건…….”
서 대통령은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6.
모든 이야기가 끝난 후, 나는 서 대통령과 함께 집무실에서 나왔다.
이야기를 하다 보니 벌써 라이브 방송을 시작할 때가 임박해 있었다.
“급한 이야기는 얼추 나눈 것 같습니다. 자세한 건 일이 진행되는 대로 말씀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있으니까, 크게 걱정은 안 하셔도 좋습니다.”
서 대통령은 크게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모든 각성자들이 우리 교황님만 같았다면 참 좋았을 텐데 말이죠. 어찌 되었건 이렇게 갑작스럽게 찾아와서 정말 죄송했습니다. 불편하실 테니 저는 이만 돌…….”
눈치 빠르게 빠져나갈 각을 잡아 버리는 서 대통령.
하지만 어림도 없었다.
나는 곧장 그의 앞을 막아 세우면서 말했다.
“하하, 대통령님. 이쪽으로 함께 가실까요?”
“예?”
“잔칫날 방문해 주셨는데, 한 숟가락이라도 하고 가셔야죠. 마침 방송 준비가 다 끝났다고 합니다. 오셔서 좋은 말씀 한마디 부탁드립니다.”
내 제의에 서 대통령이 난감하다는 듯이 웃었다.
“교황님께서 되도록 정치 쪽과 연관되기 싫어하신다고 들었습니다. 그래서 그냥 돌아갈 생각이었지요.”
“좋은 건 함께 나눠야죠. 그것이야말로 대통령께서 말씀하셨던 상생 아니겠습니까?”
오늘 라이브 방송에서 발표할 이야기는 정부 측과도 관련이 있는 이야기였으니, 그가 참석하는 것도 크게 이상할 것도 없었다.
그라운드 제로의 정화를 완료하고 아크를 해체하는 것.
이건 대한민국의 경사라고 부르기에 충분한 일이었다. 그리고 지금까지 이어 온 정부 측과의 관계를 생각했을 때, 한 숟가락 올리는 것 정도야 얼마든지 용인해 줄 수 있었다.
따로 품이 드는 것도 아니고, 우리에게 호의적인 이들에게 힘을 실어 주는 것쯤이야 크게 문제 되지 않을 거다.
그리고 무엇보다,
“오셨을 땐 마음대로셨겠지만, 가실 땐 아니랍니다. 혹시 싫으세요?”
이 정도의 파급력을 가진 게스트를 그냥 돌려보낼 수야 있나.
내 말에 서 대통령은 다시 한번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그리고 고개를 가로저으면서 답했다.
“그럴 리가요. 저로서는 영광입니다.”
“자, 그럼 이동하시죠.”
7.
그렇게 나는 서 대통령을 이끌고 라이브 방송이 예정되어있던 신목 앞에 도착하게 되었다.
내가 처음 대통령을 끌고 나타나자 현장의 분위기가 빠르게 가라앉았다.
이미 대통령이 방문했다는 소문은 돌았겠지만, 정말로 내가 라이브 방송에 대통령까지 출연시킬 줄은 몰랐던 모양이다.
게다가 그뿐만이 아니었다.
현장에는 대통령을 제외하고서라도 어마어마한 게스트가 둘이나 도착해 있던 상태였다.
바로 엠마 밀러 여사와 에이든이었다.
“이런 곳에서 뵙게 되는군요, 여사님.”
“후후, 시우가 초대를 해 주었답니다.”
“아, 그렇습니까?”
서 대통령은 곧바로 엠마 밀러 여사와 인사를 주고받았다.
“역사적인 날에 초대를 받았으니, 도저히 거절할 수가 없더군요. 그것은 대통령께서도 마찬가지인 듯하네요?”
“하하! 저는 불청객이긴 합니다만, 김시우 교황님께서 자비를 베풀어 주셨습니다.”
“미스터 프레지던트. 또 뵙습니다.”
“오! 미스터 하워드. 잘 지냈습니까?”
거물들끼리 통하는 텔레파시라도 있나 본지, 서 대통령은 엠마 여사와 에이든과 활발하게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당연한 말이지만 그 셋은 영어로 대화를 주고받고 있었고, 어느새 내 옆으로 다가온 최 대표가 고개를 끄덕거리면서 말을 걸어왔다.
“방어 태세를 마지막으로 확인하고 왔습니다.”
“문제없던가요?”
“문제가 있을 리가요. 이 정도의 전력은 머리털 나고서 처음 봅니다.”
최서진 대표조차 혀를 내두를 정도의 방어 병력을 정리하자면 다음과 같다.
동측. 레오와 루나를 중심으로 한 리멘 교단 소속 플레이어들.
서측. 도깨비 길드 소속의 정예 헌터들.
남측. 강채아를 비롯한 이능관리부와 국방부 소속 헌터들.
북측. 엠마 밀러 여사와 에이든을 경호하는 미국 소속 헌터들.>
내가 봐도 확실히 문제가 생기는 것이 이상할 정도의 방어 태세였다.
“서신우 대통령에, 오라클 엠마 밀러 여사…… 여기에서 폭탄이라도 터지는 순간, 곧바로 3차 세계대전이겠네.”
백설화가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나는 그 말에 능글맞은 목소리로 답했다.
“게스트 라인업 괜찮지?”
“대통령이랑 오라클을 라이브 방송 게스트로 섭외할 수 있는 사람은 아마 세상에서 김시우, 너 혼자뿐일 거야. 이건 인정할 수밖에 없겠네.”
“저도 백설화 씨의 말에 동감합니다.”
“이게 바로 인복이란 거지.”
900만 미튜버와 600만 미튜버가 내 얼굴에 금칠을 해 주니까 콧대가 높아지는 기분이다.
나는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인 다음, 내 동료들을 돌아보면서 말했다.
“자, 그럼 우리 게스트분들도 다 모이셨으니…… 슬슬 방송을 시작해 보도록 할까요?”
우리 교황님 좀 말려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