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lease stop our Pope RAW novel - Chapter (99)
99화
5.
루나의 손에 이끌려, 수많은 인파를 뚫고 나간 다음에 도착한 곳.
이곳은 바로,
“……그러니까, 내가 잘 아는 곳이란 게 바로 여기?”
“어머, 잘 모르는 곳인가?”
“회식을 왜…….”
우리 삼남매의 스위트 홈이었다.
이사한 지 얼마 되지 않은 따끈따끈한 우리 집 말이다.
원래대로라면 짜증을 냈겠지만,
“큰오빠! 우리 집에 손님 이렇게 많이 온 거 처음이야! 헤헤, 이사 오기를 잘한 것 같아! 이쁜 신전에도 다녀오구, 오빠 친구분들도 집에 놀러 오구! 오늘 진짜 행복한 날이야!”
시연이가 이렇게 좋아하니까 뭐라고 할 수도 없었다.
나는 시연이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면서 말했다.
“시연아. 그렇게 즐거워?”
“응!”
“사실, 오빠는…….”
짜아아아악-!
“이놈아. 시연이랑 놀아 줄 시간 있으면 음식이라도 더 나르든가. 응? 집주인이 되어 가지고, 손님들이 직접 음식을 나르는 게 맞다고 생각하니?”
“아으으으.”
고은영 여사의 손맛은 맛볼 때마다 항상 새롭다.
어쩌면 할머니가 세계관 최강자인 게 아닐까? 차라리 마족 놈들의 불덩어리가 덜 매콤하지 싶다.
아무튼 그렇다.
루나가 말했던 ‘회식’의 장소는 다름이 아니라 우리 집이었던 것이다.
넓은 평수로 이사를 와서 망정이지, 이사 오기 전의 집이었다면 이 많은 손님을 수용하기도 빠듯했을 것이다.
집들이 겸 회식에 참가한 인원은 다음과 같다.
김시우 삼남매, 할머니, 엠마 밀러 여사, 에이든, 루나, 레오, 최서진 대표, 민수 씨, 진서준 씨, 승우, 백설화.>
무려 13명이다.
축구팀을 구성하고서도 후보 선수가 무려 두 명이나 남는 정도의 숫자.
평수가 넓은 집인데도 불구하고 거실이 꽉꽉 들이차는, 그런 엄청난 숫자인 것이다.
“흐하하! 최 대표님. 한 잔 받으시죠!”
“여부가 있겠습니까 하워드 씨.”
“아주 좋습니다! 아주 좋아요. 한국에서 잃어버린 형제를 만나게 될 줄은 정녕 몰랐습니다!”
“하하하! 그렇습니까?”
에이든과 최 대표가 만나면 충돌할 것이라는 내 예상과는 달리, 둘은 서로의 주먹을 한 번 맞대자마자 의형제의 관계로 발전해 버렸다.
동양 야만인과 서양 야만인의 운명적인 만남.
기차 화통을 삶아 드신 성량의 주인공이 두 분이나 계시는 바람에, 이웃 주민들을 위해 소음 차단용 신성 결계까지 쳐 두었다.
신성 결계는 지구로 건너와서 너무 다양한 용도로 사용되는 중이었다.
진서준 씨와 승우는 우리 집에서 15분 정도 걸으면 되는 곳에서 살고 있었기에 초대하는 게 당연했고, 나머지 멤버들도 어느 정도 수긍할 수 있는 멤버들이었다.
하지만 딱 한 명, 참석했다는 것이 신기한 멤버가 있었다.
바로 백설화였다.
“뭘 그렇게 봐?”
내 시선을 의식한 백설화가 소주잔을 손에 쥔 채로 나에게 물었다.
“아니, 그냥. 신기해서.”
“뭐가?”
“회식 같은 거 별로 안 좋아하는 성격 같았거든.”
“좋아하는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싫어하는 것도 아니야. 우리 애들이랑 가끔씩 해.”
술은 잘 못하는 모양인지 소주 3잔 정도를 마신 그녀의 볼은 어느새 불그스레한 상태였다.
그녀의 능력은 회식 자리에서도 최고의 효율을 보여 주고 있는 중이었다.
“성하. 우리 상큼한 설화 영입하길 참 잘한 것 같아요. 역시, 아는 마법사가 한 명쯤은 꼭 있어야 한다니까?”
처음에는 백설화를 경계했던 루나조차 해맑게 웃으면서 백설화를 껴안았다.
그 이유야 단순했다.
쩌저저적-!
그녀의 빙결 마법 덕분에 술들이 아주 시원한 온도로 유지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작 백설화는 그런 루나의 호의가 부담스러운 모양이었다.
“붙지 마.”
“왜에. 푹신한 거 싫어해?”
“……아무튼 붙지 마. 너무 푹신거려.”
“후후, 내가 성하가 아니라서 싫어하는 건가? 자꾸 이러면 언니 섭섭하다?”
둘이 티격태격거리자 내 옆에서 치킨을 먹고 있던 시연이가 입가에 양념을 덕지덕지 묻힌 채로 말했다.
“둘 다 엄청 예뻐. TV에서 보는 연예인들보다 훨씬 예쁜 것 같아. 그렇지 큰오빠?”
“뭐…… 외모만큼은 그렇지.”
붉은색 머리카락, 딱 봐도 시원시원하고 호쾌한 느낌의 루나.
은색 머리카락, 신중하고 쌀쌀맞은 느낌의 백설화.
둘은 이미지부터 정반대에 서 있었다. 완벽하게 완벽하게 대비되는 느낌이랄까.
누가 더 예쁘다기보다는, 시연이 말대로 둘 다 예뻤다.
그렇게 내가 루나와 백설화가 투닥거리는 것을 보고 있을 때쯤, 할머니가 내 앞에 김치전을 내려놓으면서 말했다.
“그래서, 손주 며느릿감는 누군데?”
“할머니. 교황은 교황직 내려놓기 전까지 결혼 못 해. 교리에 적혀 있어.”
“아무래도 내가 직접 네 신전에 찾아가서 리멘인가 하는 분께 따져야겠어. 앞길 창창한 우리 손주 놈 홀아비로 늙어 죽는 꼴은 못 보겠다.”
가만 보면 우리 할머니도 나 놀려 먹는 걸 참 좋아하신다. 나를 때리는 타격감이 그렇게나 좋으신 걸까?
나를 짓궂게 놀린 할머니는 내 등짝을 한 번 더 후려치시더니, 곧 막걸리 한 병을 들고 엠마 밀러 여사의 옆으로 가서 앉으셨다.
왁자지껄한 회식 분위기.
인욱이와 민수 씨, 그리고 진서준 씨는 최 대표의 손에 이끌려 떡이 될 때까지 술을 주입당하고 있었고, 승우는 시연이 옆에서 오렌지 주스를 홀짝거리고 있었다.
왁자지껄하기는 해도 가만히 보고 있으면 마음이 절로 편해졌다.
나는 맥주를 목으로 넘기면서 이 분위기를 조용히 만끽했다.
아주 오랜만의 휴식이었다.
이렇게 다 같이 모여서 휴식을 하는 건 처음이지 싶었다.
‘좋네.’
지구로 귀환한 이후로 너무 정신없이 달려왔던 것 같다. 교단을 일으키랴, 정부 쪽이랑 이야기 나누랴. 새로운 동료도 모으랴.
지금처럼 제대로 쉴 시간도 없었던 것 같다.
“헤헤, 앞으로 자주 이렇게 같이 놀았으면 좋겠어.”
시연이도 평소에는 내색하지는 않았지만, 나와 같이 하고 싶었던 게 아주 많았을 것이다.
그래서 항상 시연이에게는 고맙고 미안하다.
나는 밝게 웃고 있는 시연의 머리를 다시 한번 쓰다듬어 주면서 말했다.
“그러자, 시연아. 약속.”
“약속! 헤헤헤. 좋아!”
……잠깐만.
어째서 시연이에게서 친숙한 알콜 향이 느껴지는 걸까? 게다가 시연이 손가락에 묻어 있는 그 달짝찌근한 냄새는……
“야! 어떤 새끼가 우리 시연이한테 막걸리 멕였어!”
틀림없는 막걸리였다.
시연이가 알아서 술을 따라 마셨을 리는 없고, 이런 경우 범인은 아주 가까운 곳에 있다.
예를 들면 우리의 바로 앞에서 온갖 술을 목구멍에 처넣고 있는 루나 레벤톤이라든가.
“아, 그거 시연이가 딱 한 모금만 달라고 그래서요. 저는 진짜 안 주려고 했…… 꺄아아아! 교황이 사람 팬다!”
“레오야. 니네 누나 꽉 잡고 있어라.”
“예, 성하.”
초등학생한테 술이나 멕이고, 아주 그냥 성기사라는 놈이 잘하는 짓이다.
아무튼.
그렇게 정신없는 분위기 속에서 우리 교단 첫 회식의 밤이 무르익어 가고 있었다.
6.
시간이 지나자 회식의 피해자가 곳곳에서 속출했다.
가장 먼저 녹아웃된 것은 에이든, 최 대표라는 최악의 세대를 상대하고 있던 인욱이와 민수 씨였다.
나조차도 제대로 못 알아볼 정도로 인사불성이 될 때까지 마셨더라.
의외로 진서준 씨가 끝까지 버텨서 승우와 함께 자택으로 복귀했다. 개인적으로는 아빠의 위대함이 증명되었다고 생각한다.
할머니와 엠마 밀러 여사는 적당히 마시다가 안방으로 들어가셨으며, 2시간만에 만취해 버린 백설화는 시연이와 함께 시연이 방에 눕혀 두었다.
시연이로서는 백설화를 처음 만난 거라, 낯을 가리면 어떻게 하나 걱정 많이 했다.
하지만 이번에도 걱정은 기우에 불과했다.
친자매처럼 서로 꼭 껴안고 잘만 자더라.
외관만으로는 냉기가 풀풀 떨어질 것 같던 백설화에게서 의외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다.
결국 최후의 생존자는 나, 레오, 루나, 에이든, 최 대표, 이렇게 해서 다섯 명으로 결정되었다.
솔직히 생존자라고 부르기에도 애매한 게 뭐냐면,
“좀 아쉽네.”
“카드 주시면 제가 편의점 가서 싹 쓸어 올게요. 간에 기별도 안 가는 것 같은데?”
“역시 루나 양이야! 하지만 레오 군도 참 대단한 것 같던데…….”
“미스터 최. 지난번에 일본에서 제가 레오 저 친구한테 졌다고 하면 믿으시겠습니까?”
“과찬이십니다. 이 정도의 취기로는 제 신앙심을 시험할 수 없을 뿐입니다.”
이미 거실 한쪽에 빈 병을 가득 쌓아 둘 정도로 마셨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상태는 워낙 멀쩡했다.
일반인이었으면 이미 급성 알콜중독으로 세상을 떴을 정도였지만, 괴물들의 몸에는 별다른 타격을 줄 수 없었던 것이다.
“이렇게 끝내기에는 너무 아쉬운걸.”
“그러게 말입니다.”
나는 입맛을 다시는 그 괴물들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그리고 은근한 목소리로 말했다.
“놀 만큼 놀았으니까 슬슬 일 이야기나 해 봅시다.”
“어허, 이렇게 좋은 날에 일 이야기라니! 김 교황님. 이러지 말고 밖에 나가서 한잔 더 합시다.”
“나도 그게 맞다고 생각한다, 시우. 아직 우리의 밤은 끝나지 않…….”
“두 분의 밤을 영원히 끝내 버리기 전에 닥치고 자리에 앉아 주시길 바랍니다.”
주먹을 살짝 움켜쥐며 말하자 효과는 매우 탁월했다.
이미 나에게 매운맛을 한 번 본 적이 있던 야만인들이었기 때문에 그들은 헛기침을 몇 번 내뱉으면서 자리에 앉았다.
“커험.”
“시우가 그렇다면 그런 거지. 앉읍시다, 미스터 최. 우리 대장께서 긴히 나눌 말씀이 있다고 하는군요.”
확실히 영어가 만국 공용어긴 하다.
특히, 최 대표.
고졸이라는 양반이 영어 하나만큼은 네이티브 수준으로 잘한다.
본인의 설명에 의하면 외국의 명문대를 다니다가 자퇴를 했다고 했으니, 어쩌면 영어를 잘하는 건 기본일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덕분에 의사소통에 불편함은 없었다.
나와 루나, 레오 이렇게 셋은 현재 언어의 축복이 적용되는 상태.
최 대표와 에이든만 원활하게 소통이 된다면 크게 상관은 없었으니까.
“그런데 에이든.”
“말해, 시우.”
“너는 이미 대충 무슨 일인지 예상하고 있는 거 아니냐?”
내 질문에 에이든은 멋쩍게 웃으면서 머리를 긁적였다.
“불편한 이웃 국가에 관한 이야기, 뭐 그런 건가?”
“정보력 좋네.”
“본국의 외교 라인을 통해서 입수된 정보기도 하고…… 예상 범위 내의 일이지.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야.”
우리 정부 측에서 미국에 따로 언질을 준 건지는 몰라도, 에이든은 대충 상황을 인지하고 있는 듯 보였다.
나는 그런 에이든을 향해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나머지 인원들을 위해서 설명을 이어 나갔다.
“에이든의 말대로 조만간 중국에서 손님이 올 가능성이 높습니다. 명분은 각성자 교류. 말이 그렇다 뿐이지, 본인들의 힘을 과시할 생각인 것 같아요.”
“미국은 멀리 있고, 자신들은 가까운 곳에 있다, 아주 오래된 명분이군요. 경색된 한중 관계를 풀어 나가고 싶다는 뜻을 드러내는 겁니다. 속은 이미 시커멀 대로 시커멓겠지요. 원래 그런 놈들입니다.”
최 대표는 익숙하다는 듯이 어깨를 으쓱였다. 그리고 자신의 맥주잔 안에 반쯤 남아 있던 소주를 목으로 털어 넣은 다음, 소매로 입가를 훔치며 말을 이어 나갔다.
“주 목적은 자신들의 힘을 과시한 후, 구 북한 땅. 그러니까 잃어버린 땅에서 유리한 고지를 선점하겠다, 맞습니까?”
“서 대통령도 그렇게 말했습니다.”
“중국은 한국이 향후 몇십 년 동안은 잃어버린 땅에 손도 못 뻗을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을 거다. 그러던 와중에 발등에 불이 떨어진 상황이지. 시우. 충분히 이해했다.”
국제정치와 연관될수록 귀찮은 일이 쏟아져 내리겠지만, 이건 불가항력이었다.
국내정치든, 국제정치든.
내가 정치에 관심이 없다 할지라도 정치는 나에게 관심이 있을 수밖에 없다.
정치란 원래 그런 생물이니까.
서 대통령에게는 친선전에 대해서 생각을 해 보겠다고 말했지만, 사실 이미 정답은 나와 있는 상태였다.
“중국에서는 검귀라는 놈을 파견할 예정이라고 합니다. 그 조건으로 친선전에 제가 참여해 주길 요청했다는데, 여러분들에게 의견을 묻고 싶네요.”
그 말에 가장 먼저 답을 준 것은 에이든이었다.
“시우. 이레귤러가 다른 국가의 영토를 밟는 것은 아주 심각한 도발이자 위협이야. 그건 알고 있겠지?”
“네가 할 말이 아니란 것도 알고 있겠지?”
“한국과 미국은 우방국이고, 또 우리 둘은 친구잖아. 이건 아주 다른 경우야. 디멘션 오프닝 이전이라면 몰라도, 디멘션 오프닝 후에는 한중 사이에 여러 번의 충돌이 있었던 건 사실이잖나?”
불과 몇 달 전까지만 해도 한미 동맹 파기 이야기까지 나왔었다는 이야기도 들었는데 말이다.
하여간에 에이든 놈은 육체보단 저 혓바닥이 주 무기다.
계산 없이 다 때려 부술 것 같은 비주얼 주제에 대가리 한번 빠르게 굴린다.
“계속 말해 봐.”
“중국의 이레귤러들에 대한 정보는 굉장히 적어. 변수가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는 거지. 이런 상황에서 그들이 먼저 움직인다는 건, 그만큼 녀석들이 급하다는 뜻이다.”
“간단하게 생각하자고, 간단하게.”
복잡하게 생각할 이유는 단 하나도 없었다. 정치는 정치인들이 해결해야 할 문제였고, 우리 교단은 우리 교단대로 셈을 하면 될 뿐이다.
“중국 측의 이레귤러가 우리 땅을 밟으면, 반대의 경우도 가능하지 않겠어?”
“확실히 막아 낼 명분은 없을 거다.”
“언젠가 그놈들 땅은 한번 밟아야 해. 정화자 놈들의 본거지가 거기에 있다는 거, 잘 알잖아. 저 새끼들은 지금 테러범도 수출하고 있는 새끼들이라고. 그리고 무엇보다.”
“무엇보다?”
나는 시원한 맥주를 한 모금 마신 다음, 입꼬리를 비릿하게 올리면서 말했다.
“나는 그냥 중국이 싫어.”
우리 교황님 좀 말려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