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ison-Eating Healer RAW novel - Chapter (11)
11화
첫 번째 던전 공략은 너무나도 수월하게 진행되었다.
‘이렇게 쉬워도 되나?’ 싶을 정도로.
물리 등급이 ‘E’밖에 되지 않는 포이즌 몬스터들은 내게 아무런 위협이 되지 못했다.
위협은커녕, 어떤 몬스터들은 내게서 슬금슬금 물러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독으로 따지면 해선이 너는 왕 같은 존재란다. 언젠가 녀석들을 심복으로 부릴 수 있을 날이 올지도 모르지.』
진 박사가 했던 말이다.
그때는 단순히 농담이라고 생각했는데, 확실히 내가 품고 있는 독을 알아보는 놈들이 있는 것 같았다.
근데 뭐, 말이 통해야 명령을 내리지.
놈들이 지금 당장 내게 해 줄 수 있는 건 딱 하나뿐이다.
블랙 에테르의 원천인 코어를 바치는 일.
나는 그 작업을 착실하게 수행해 나갔다.
스르르…….
또 하나의 블랙 에테르가 내 몸속으로 흡수된다.
이곳에 와서 처치한 몬스터의 수가 벌써 50마리를 넘어간다.
힘들지 않냐고?
천만에.
전투가 일방적인 학살로 끝나는 데다, 몇몇 놈들은 굳이 ‘독보’를 쓸 필요도 없는 하등한 녀석들이었다.
게다가, 블랙 에테르를 흡수하기만 하면 컨디션이 정상으로 돌아오니 체력적인 문제도 없었다.
하하.
이 상태로 가면 오늘 안으로 300BA 정도는 거뜬……
“크르르르르…….”
오우.
이래서 사람은 입을 조심해야 한다.
숲을 헤치고 안쪽까지 들어오자, 이전에는 볼 수 없었던 커다란 녀석이 나타났다.
내 키보다 커 보이는 신장에 우직한 턱을 가진 네발짐승.
한눈에 보아도 만만찮은 기운이 느껴진다.
“V1.”
내가 디바이스를 호출하자 눈앞에 녀석의 정보가 나타난다.
폴루티드 하이에나(polluted hyena) / type – poison / 처치 난이도 2성(★★) / 물리 레벨 ‘C’ / 기타 레벨 ‘B’>
“저놈이 바로……!”
폴루티드 하이에나.
녀석의 명성(?)을 들어 본 적이 있다.
재작년쯤인가.
지방의 한 도시에서 포이즌 게이트가 열렸을 때, 하이에나 한 마리한테 C등급 헌터 다섯 명이 목숨을 잃었다고 했다.
물리 레벨이 ‘C’등급인 걸 보고 안일하게 접근했다가 녀석의 독에 감염돼 손 쓸 새도 없이 죽어 버린 것이다.
힐러가 도착하지 않은 상태에서 벌어진 일이라고는 하지만, 일반인인 내게도 이름이 알려질 만큼 위험한 놈이었다.
녀석은 흉악한 이빨과 발톱은 물론, 날카로운 털 갈기에 스치는 것만으로도 치명적인 중독을 유발한다.
물리 등급이 ‘C’ 정도 되는 몬스터라면 털끝 하나 스치지 않고 처치한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니다.
허무하게 죽어 버린 헌터들도 전투력에서 밀렸다기보다, 이런저런 공격에 스치다 보니 중독이 되었을 것이다.
-크르르르…….
녀석이 자동차에 시동이라도 거는 듯 앞발로 땅을 긁는다.
언제라도 도약할 준비가 되어 있는 모습이다.
던전 자체의 평균 물리 등급이 ‘E’인 걸 감안하면, 보스 몹을 제외하면 이 녀석이 물리적으로 가장 강한 녀석일 터.
나는 블랙 에테르를 전신에 활성화시킨 채 자세를 조금 낮추었다.
탕!
빠르다……!
도약한다는 걸 확인하기가 무섭게 녀석은 내 코앞까지 도달해 있었고, 나는 가까스로 몸을 돌려 목덜미를 물어뜯는 걸 방지했다.
콰직!
그러나 하이에나의 발톱이 내 어깨를 후려쳤고, 티셔츠가 찢겨 나간 왼쪽 어깨 부분에서 피가 콸콸 흘러내렸다.
“윽…….”
과연.
이게 ‘C’ 등급인가.
V1 디바이스를 통해 확인한 내 신체 강화 등급은 ‘E’였다.
단순 비교를 해 보자면 저 하이에나와는 두 단계의 차이가 있는 것이다.
어깨 부근에서 저릿저릿한 통증이 느껴진다.
각성을 한 지 얼마 안 된 헌터라면 고통 때문에라도 패닉에 빠지겠지만, 나는 그럴 일이 없다.
평생을 몸 안의 독과 싸워 오다 보니, 어지간한 고통에는 면역이 되었기 때문이다.
-크르르…….
한차례 도약을 마친 하이에나가 나를 뚫어져라 탐색한다.
표정을 읽을 수는 없지만, 놈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는 예상할 수 있다.
‘왜 안 쓰러지는 거지?’라고 생각할 테지.
상처도 상처지만 중독 증세가 나타나도 벌써 나타났어야 하는 시간이다.
하지만 나는 거품을 물고 쓰러지는 대신, 녀석의 시야에서 홀연히 사라졌다.
파박!
아마 내 신체 강화 레벨이 ‘E’등급인 건 ‘전신’ 기준일 것이다.
하지만 그 대상을 ‘다리’ 쪽으로 한정하면, 그 레벨은 비약적으로 상승한다.
다리에는 키릴이 넘겨준, 무려 ‘1,000BA’에 해당하는 블랙 에테르가 있기 때문이다.
키릴의 에너지가 농축되어 나온 기술, ‘독보’.
그 스피드는 물리 등급 ‘C’의 하이에나조차 반응하지 못할 만큼 빠른 것이었다.
서걱.
녀석의 후방으로 ‘독보’를 사용한 나는, 가볍게 등 부근을 엑사로 긁었다.
하이에나는 전신의 갈기를 세우며 펄쩍 뛰었지만, 이미 승부는 끝난 것이나 마찬가지다.
독중지왕.
이 세상에서 가장 강한 독이 침투한 이상, 몬스터의 타입이 일반이건 포이즌이건 중요하지 않았다.
-케르…….
다시 한번 도약 준비를 하던 하이에나가 갑자기 사지를 움찔하더니 픽, 하고 쓰러진다.
단순히 엑사의 칼날에 긁힌 것만으로 2성(★★)의 몬스터가 절명한 것이다.
스치기만 해도 사망이라는 말은 이럴 때 쓰는 것이리라.
그동안 자신이 사용하던 전투 방식에 역으로 당하고 말았으니, 기가 막힌 최후라 할 수 있었다.
서걱서걱.
“오……. 이 녀석은 확실히 좀 큰데.”
녀석의 배를 갈라 엄지손가락만 한 크기의 블랙 코어를 추출했다.
키릴이 내게 준 것만은 못하지만, 구슬 같았던 잡몹에 비하면 꽤 큰 소득이었다.
슈르르…….
블랙 에테르는 특별히 중화 작업을 할 필요가 없다.
몸속으로 들어오는 순간 온전히 내게 에너지를 제공해 주는 셈이다.
“와…….”
피가 철철 흐르던 어깨가 순식간에 아물어 간다.
흉터 하나 남기지 않고 완벽하게 복원되는 모습을 보면서, 나는 감탄사를 토해 내지 않을 수 없었다.
정말 신기하다.
확실히 나에게 꽤 강한 치유 능력이 있는 것 같다.
-꾸왕!
뽀리가 기분 좋은 울음소리를 내며 내 복구된(?) 어깨 위에 내려앉는다.
어쩐지 내 어깨를 전용 받침대로 사용하는 것 같다.
“얌마. 이제부터 자릿세 내라.”
-꾸르?
농담 같지만 진짜다.
세상에 공짜가 어디 있냐.
* * *
극과 극은 통한다.
키릴과 진 박사가 마르고 닳도록 하던 이야기다.
“헉, 헉.”
그 한 문장 때문에, 나는 시쳇말로 x뺑이를 치고 있다.
쉬아악!
거대한 낫 같은 다리가 내 정수리를 향해 날아든다.
파악-
조금 전까지 내가 서 있던 곳에 1m가 넘는 뾰족한 구덩이가 생긴다.
제자리에 서 있었다면 흔히 하는 말로 반으로 갈라져 죽었을 것이다.
하지만 녀석의 공격은 ‘독보’ 앞에 무용지물이었다.
나는 아웃복싱을 하듯 놈의 주위를 배회하며 둥지의 이곳저곳을 살폈다.
-키아아악!
눈앞의 녀석이 여 덟개의 다리를 구르며 분노를 표출한다.
옐로우 휴즈 타란툴라(Yellow huge tarantula).
이 던전의 주인이 잔뜩 화난 것 같다.
조금만 기다려 봐 자식아.
곧 편히 보내 줄 테니까.
우웅.
엑사에서 튀어나온 칼날이 독특한 공명 소리를 낸다.
이전처럼 칠흑 같은 검은색 칼날이 아니다.
백옥처럼 희게 빛나는 새로운 색상의 칼날.
이건 엑사의 비살상 시프트(shift) 중 하나인 백몽(白夢)이다.
진 박사가 직접 이름을 붙일 정도로 자부심이 들어간 기술.
그건 이전에 나누었던 대화에서 출발했다.
『대상을 무력화시킬 수단이 필요해요. 죽이지 않고요.』
『음……. 사람을 죽이는 것이 무서운 게냐.』
『천만에요. 제 눈에는 이제 사람이나 몬스터나 그게 그거처럼 보입니다.』
『허허. 녀석. 그렇다면 망설일 이유가 없을 텐데.』
『망설이는 게 아닙니다. 합리적인 방법을 선택하는 것뿐이죠.』
사람이든 몬스터든, 죽이지 않는 게 편할때가 있다.
그리고 지금이 바로 그런 경우다.
혹시라도 놈이 죽어 버리게 되면 던전이 붕괴되고, 그 즉시 이 던전 일대에 헌터 협회의 조사가 벌어질 것이다.
그래서, 죽이지 않고 제압할 무언가가 필요하다.
다른 헌터나 보스 몹에게 엑사의 칼날이 닿으면 대부분 절명하게 된다.
살상력으로만 따지면 어지간한 ‘S’급 무기들도 머리를 박아야 한다고 할 정도였다.
시발.
자칫하면 몸이 두 동강 날 판에 그런 것까지 신경 써야 하다니.
마음 같아서는 놈의 머리에 엑사를 찍어 버리고 싶지만, 그럴 수가 없다.
키릴이 내게 알려 준 정보에 따르면, 보스 몹이 절명하면 ‘그것’도 빛을 잃는다고 했으니까.
‘젠장. 어디 있는 거야.’
파앗-
독보를 연속으로 써서 그런가.
가볍게 어지럼증이 올라온다.
이대로 정신을 잃으면 나도 죽고, 날 먹다가 저 타란튤라 놈도 죽겠지.
둘의 생명을 위해서라도(?) 빨리 찾아내야 한다.
키릴이 말한 ‘보물’을.
쉬아아악.
머리를 향해서 거미줄이, 좌우에서는 양쪽 다리가 덮쳐 온다.
위로 뛰어서는 피할 길이 없다.
나는 헤드 퍼스트 슬라이딩을 하듯 녀석의 배 밑을 파고들었다.
촤악-
비릿한 냄새와 흙먼지 때문에 눈이 떠지질 않는다.
하지만 여기서 더 머물렀다간 놈의 여덟 다리가 내 몸을 난도질할 거다.
고개를 세차게 흔들고 일어서려던 와중, 드디어 원하던 ‘보물’이 내게 모습을 드러냈다.
‘찾았다……!!’
애처롭게 서 있는 꽃 한 송이.
그 꽃잎은 기묘한 동(銅)색으로 빛나고 있었다.
이 꽃의 이름은 동영화(銅永花).
포이즌 타입 던전에서만 확보할 수 있는 희귀종이었다.
“아자!”
흙먼지를 뒤집어쓴 상태에서 나는 주먹을 불끈 쥐었다.
지금까지 이 녀석을 찾기 위해 얼마나 많은 공격을 피해 다녔던가.
목표물을 찾은 이상 더는 망설일 이유가 없지.
나는 재빨리 동영화(銅永花)를 뿌리째 뽑아내 품 안에 넣은 뒤, 백몽(白夢) 상태의 엑사로 녀석의 배를 길게 그어 버렸다.
-갸아아악!
집채만 한 크기의 타란튤라가 전신을 부르르 떤다.
이대로 잠이 들면 내 몸도 같이 깔리겠군.
파앗.
‘독보’를 발동해 녀석이 쓰러지기 전에 간신히 빠져나올 수 있었다.
“휴우.”
이마에 땀이 흥건하다.
직전에 만났던 하이에나와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빠르고 강한 녀석이었다.
뭐, 보스 몹이니 당연한 건가.
-크엉…… 컹…….
“뭐야. 코도 고는 거냐?”
잠꼬대를 하며 코를 고는 포이즌 몬스터라.
이런 진풍경을 보는 건 세상에 몇 명 되지 않을 거다.
심지어 녀석의 등급은 3성(★★★)이 아니던가.
새삼스레 진 박사가 가진 능력에 감탄을 금할 길이 없었다.
진 박사의 백몽(白夢)은 내가 가진 블랙 에테르를 수면 성분으로 바꾼 기술이다.
일단 백몽의 칼날이 체내에 침투만 하면, 대상은 프로포폴을 맞은 사람처럼 급격히 잠에 빠지게 된다.
‘잠’만큼 대상을 무력화하기에 좋은 스킬은 없을 터.
대형 거미의 머리 부근을 콩콩 두드려 보았지만, 녀석은 미동도 하지 않은 채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역시 진 박사야.
성능 확실하구만.
“좋아. 얻을 수 있는 건 다 얻었다.”
-꾸왕!
뽀리와 함께 던전 입구를 향해 걸음을 옮겼다.
“신기한 물건이야…….”
꽃잎이 동색이라니.
특수 효과라도 입힌 듯 꽃잎 주변이 영롱하게 반짝인다.
내 어깨에 올라탄 뽀리처럼, 인간 세계에서는 볼 수 없는 희귀 생물이다.
동영화는 포이즌 던전에서만 서식하는 생물로, 보스 몹의 거점에서 확보할 수 있다.
보통 던전의 난이도에 따라 식물의 ‘급’이 결정되는데, 이 녀석은 최하품에 속한다.
가장 상품으로 치는 꽃이 금영화(金永花), 그다음이 은영화(銀永花), 그리고 그다음이 바로 이 동영화(銅永花)인 것이다.
동영화가 최하품이라고는 하나, 키릴의 말에 따르면 이 녀석이 가진 가치는 수천만 원에 이른다고 했다.
『그게 그렇게 비싸요? 꽃 한 송이가?』
『당연하지. 이쪽 세계에서는 치료하기 힘든 병들을 치유해 주는데.』
『와……. 그럼 다른 헌터들이 왜 그 꽃들을 찾아 나서지 않는 거죠?』
『수지가 안 맞거든. 지독한 독을 쏟아 내는 보스 몹이 눈앞에 있는데, 독과 물리 공격을 전부 피하면서 한가하게 약초를 찾을 틈이 어디 있겠어. 대부분은 보스 몹을 만나기도 전에 중독 증세에 빠져 버릴걸?』
『하긴. 저희와 달리 보스 몹의 코어도 일반 헌터들은 쓸 수도 없다고 했었죠.』
『후후. 맞아. 있을지 없을지도 모르는 약초를 찾아서 포이즌 던전에 들어가는 건 자살행위나 마찬가지야. 그것 말고도 돈을 벌 던전은 얼마든지 많거든.』
키릴의 말에 따르면 약초를 찾으러 가기는커녕, 포이즌 던전에 이런 희귀종이 있는지조차 모르는 사람이 대부분이라 했다.
이 동영화의 정체를 알고 있는 사람은 세 분류뿐이다.
헌터 협회의 고위층.
키릴과 가까운 사람들.
마지막은, 이 꽃을 거래하는 지하 세계.
바로 암시장이었다.
『극과 극은 통하는 법이야. 무시무시한 독을 가진 몬스터의 옆에서 생명을 유지하려면, 엄청난 자가 치유력이 필요하겠지? 마치 해선이 네 몸처럼 말이야.』
『그렇겠…… 죠?』
『동영화는 기본적으로 독초야. 다루기가 상당히 까다롭지. 그리고 독 성분만큼이나 강한 치유 성분을 가지고 있어. 약초의 등급이 높을수록 더 높은 효과를 제공하지.』
『한 번에 다 이해하기는 힘들지만……. 이거 하나는 확실히 알겠네요.』
『응? 뭔데?』
『키릴이 그동안 이 약초로 한몫 단단히 챙겼다는 거요.』
『뭐어? 꺄하하하. 그래, 맞다 이눔 자식아.』
고작 한 송이에 수천만 원을 호가하는 보물.
그 꽃이 내 수중에 들어왔다.
위험을 감수하고 3성(★★★) 던전에 들어온 보람이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꾸르…….
뽀리가 동영화 옆에서 눈을 감고 꽃잎의 향을 들이마신다.
커피 향을 음미하는 CF 배우의 표정이다.
“꽃잎 뜯어 먹으면 혼나.”
-꾸르…….
잘만 하면 이번 한 번의 던전 공략으로 헌터 자격 시험 비용을 충당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물론 풋내기인 내가 암시장에서 제대로 된 거래를 하려면 정신을 바짝 차려야겠지.
“뽀리. 혹시 암시장에서 수상한 자식이 있으면 덥썩 물어 버려.”
-꾸왕!!
녀석이 맡겨만 달라는 듯 콧김을 내뿜으며 포효한다.
하하. 제법 듬직한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