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ison-Eating Healer RAW novel - Chapter (110)
110화
“헌터님!!!!!”
촤아아아아악.
땅에 떨어지는 천해선의 몸을 건사한 건 강정현이었다.
붕대를 풀 여유도 없이, 그의 오른 어깨에서 풍성한 나뭇가지들이 끈을 뚫고 돋아났다.
투욱.
허물어지듯 쓰러지던 천해선의 몸이 푹신한 이파리에 안긴다.
수많은 사람들이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
하나 곧, 이파리들이 본연의 빛을 잃고 썩어들어 가기 시작한다.
“무슨……?!”
천해선의 혈액에 어떤 성분이 있는지 알 길이 없는 강정현.
지금의 상황을 이해할 수는 없었지만, 그는 이를 악물었다.
스스스…….
쉼 없이 이파리를 넓게 펼친 덕분에 천해선은 추가적인 대미지를 입지 않았다.
하나 잘려 나간 양팔 부근에서는 여전히 피가 폭포수처럼 쏟아지고 있었고, 안색 또한 초 단위로 창백해져 갔다.
“버프, 빨리!!”
마리아가 평소의 말투와는 180도 다른 모습으로 비수를 향해 소리쳤다.
비수가 눈썹을 움찔했지만, 곧 그녀의 의도를 알아채고 몸 안의 에테르를 모조리 끌어모았다.
곧 비수의 ‘버프’가 마리아에게로 향했고, 마리아가 재빨리 달려와 천해선에게 치유력을 불어 넣었다.
샤르르르…….
현장의 어느 누구도 입을 뻥끗하지 못했다.
이루 말할 수 없는 대참사가 발생한 터라, 그저 숨죽이며 현장을 지켜볼 뿐이었다.
어디선가 나타난 회오리가 두 사람을 집어삼켰고, 천해선은 치명상을 입은 채 의식을 잃었다.
심지어 구건이는 어디로 갔는지 파악조차 되지 않은 상황.
사람들은 그저 애타는 마음으로 눈앞의 광경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치유를 시전 하고 있는 사람이 대한민국 최고의 힐러라는 점.
그리고 상처를 입은 지 얼마 되지 않았다는 점이었다.
‘돌려놓을 수 있어……!’
아니, 반드시 돌려놓 을거야.
마리아가 땀을 뻘뻘 흘리며 갖은 애를 쓰고 있었다.
비수의 버프를 받은 덕분에 평소보다 더 강한 기운을 쓸 수 있었다.
이 정도면 삼도천에 빠진 사람도 억지로 끌어다 올릴 기세였다.
하나 어찌 된 일인지, 천해선의 양팔은 소생할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어째서……!’
어찌나 애가 타는지 마리아의 붉은 색 입술이 바싹 말라 버렸다.
제아무리 티어가 높은 헌터라도 자신의 치유력이면 금세 몸이 회복되곤 했다.
전장에서 동시에 십수 명의 치유를 동시에 펼쳐 보이던 그녀다.
한데 지금은, 가진 힘을 몽땅 쏟아부었는데도 천해선 한 명을 회복시키지 못하고 있었다.
주륵.
그러는 와중에도 무심한 핏물은 계속 흘러내려 바닥을 흥건하게 적셨고, 천해선의 안색은 이제 파리하게 질려 버렸다.
이러다 정말 죽을지도 모른다.
죽는다고?
천해선이 이렇게 허망하게?
헌터의 죽음을 무척이나 많이 보아 온 마리아였지만, 어째서인지 천해선만큼은 죽을 거라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얄궂게도 마리아의 머릿속에 천해선과의 기억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간다.
협회 본사에서 처음 만났던 날, 자격 시험에서 그를 심사했던 날.
그가 유지원으로부터 자신을 구해 주었던 날.
그리고, 스스로 난도질을 했던 상처를 물어보던 날까지.
집중력이 조금씩 흐트러지고, 손이 가늘게 떨린다.
급기야 천해선을 바라보는 시야가 뿌옇게 흐려지기 시작한다.
“안 돼……!”
마리아의 입술 끝에서 선홍빛 액체가 흘러나온다.
가뜩이나 버프를 받은 상태에서 감정까지 격해지다 보니 에테르가 흐트러지기 시작한 것이다.
그 모습을 확인한 고위급 헌터들은 가슴이 철렁 내려앉고 말았다.
마리아의 입에서 피가 흘러나온다는 것.
그만큼 천해선의 상태가 절망적이라는 이야기였다.
“안 돼!!”
마리아의 비명이 대련장을 가득 메운다.
시야는 이미 완전히 흐려져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금방이라도 먹은 것을 다 게워 낼 것처럼 속이 울렁거린다.
하지만 그럼에도 마리아는 뻗은 손을 거두어들이지 않았다.
여기서 자신이 치유를 중단하면, 정말로 끝이기 때문이다.
“제발…… 누가 좀…….”
눈에서는 맑은 눈물이, 입에서는 피를 흘리는 마리아의 모습은 처연하면서도 기이한 것이었다.
지켜보는 모두가 참담한 마음을 금하지 못하고 있을 그때.
누군가 빠른 동작으로 대련장 위로 뛰어들었다.
“물러나십시오.”
반듯하게 생긴 중년 남성이 마리아를 제지한다.
누구지?
낯이 익은 인물이다.
잠시 기억을 더듬던 마리아가 사내의 이름을 불렀다.
“표혁규 감독관님……. 다가오시면 안 돼요…….”
어째서인지 모르나, 천해선의 피에는 끔찍한 독성이 득실대고 있었다.
S랭크 힐러인 자신이니까 옆에 있는 거지, 다른 사람들은 근처에서 숨만 쉬어도 치명상을 입게 된다.
하나 그 사실을 아는지 모르는지, 표혁규는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괜찮습니다.”
마리아가 무어라 더 이야기하려는 찰나, 그가 정장 속에서 눈부신 물질을 꺼내 들었다.
“아……?”
오색 찬란히 빛나는 꽃잎들.
그리고 그것들을 지탱하는 백색의 잎줄기.
마리아조차 실제로는 본 적이 없는 보물.
금영화(金永花).
죽은 사람도 살린다는 전설적인 물질이 표혁규의 손에 들려 있었다.
“이걸…….”
이 귀한 물질을 어떻게 가지고 있는 거지?
하지만 그런 걸 따져 물을 시간은 없었다.
마리아는 급히 입을 다물고 자리를 비켜 주었다.
이제 보니 피가 흥건한 천해선의 주변에 올 수 있었던 것도 금영화 덕분인 것 같았다.
“이런 곳에서 끝내기에는…… 당신이 할 일이 너무 많습니다.”
표혁규가 금영화를 내려놓으며 나직이 중얼거렸다.
슈르르르…….
어린 요정이 내는 말소리가 이러할까.
간지럽게 속삭이는 것처럼 부드러운 소리가 금영화로부터 새어 나온다.
천해선의 심장 위에 놓인 금영화가 곧, 오색 빛무리를 뿌리며 녹아내리기 시작한다.
“오오……!!!”
“저, 저건……!!”
희귀초에 대해 알고 있는 사람들이 탄성을 터트린다.
그들의 얼굴 또한 금영화의 빛깔처럼 환하게 변한다.
금영화가 가지고 있는 가치를 알아보는 것이다.
“이제 됐어……!! 저 물건이라면……!!”
슈르르…….
오색 빛이 더욱 강해지자 주변 사람들이 저마다 손으로 자신의 눈을 가린다.
멍하니 바라보고 있다가는 금방이라도 눈이 멀 것 같아서였다.
그리고 그 눈부신 빛무리의 한중간에서, 천해선이 몸이 회복되고 있었다.
팟!
“오오……!!”
누가 먼저라고 할 것도 없이 기쁨의 탄성이 터져 나온다.
차마 바라볼 수 없을 정도로 강했던 빛이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온몸이 멀쩡해진 천해선이 모든 사람들의 앞에 다시 나타났다.
* * *
‘꿈을…… 꾼 건가.’
꿈이라기에는 너무 생생했다.
양팔이 갈기갈기 찢겨지고, 핏발선 눈이 자연스레 감겼다.
하지만 정신을 차려 보니, 내 양팔은 언제나 그렇듯 제자리에 있었다.
-우와아아아아아아!!
천천히 돌아오던 의식이 사람들의 함성 소리에 가파르게 회복된다.
맞아.
나 지금 랭킹전을 하고 있었지.
“천해서어어어어어어언!!”
“헌터님!!!!!!!”
가까운 곳에서 물기를 가득 머금은 소리가 들린다.
비수와 강정현의 목소리다.
어지간히 걱정했나 보군.
억지로 상체를 일으키려고 하는데 어쩐지 몸이 무겁다.
이제 막 의식이 돌아와서 그렇다고 하기에는, 몸이 두 겹이 된 듯한…….
“얼레?”
그건 착각이 아니었다.
누군가 내 가슴 위에 얼굴을 묻고 꺼이꺼이 울고 있었다.
“마리아?”
그녀는 대답도 없이 어깨를 부르르 떨며 눈물을 흘렸다.
흠.
갑자기 뭔가 굉장히 반성해야 할 것 같은 기분이다.
“다행입니다. 헌터님.”
고개를 돌려 보니 익숙한 남자의 얼굴이 보인다.
전형적인 범생 스타일의 중년 남자.
어지간해서는 감정을 내비친 적이 없는 그다.
하지만 지금 표혁규의 볼에는, 가느다란 경련이 일고 있었다.
스윽.
신기하게도 새로 생긴(?) 팔에 프라셀이 달려 있었다.
금영화의 치유 원리가 ‘시간을 되돌리는 것’이라더니, 과연 회오리가 일기 전과 동일한 상태가 되었다.
조금씩 조금씩, 가슴에 촉촉한 기운이 전달된다.
마리아가 흘리는 눈물에 옷이 젖은 것이다.
이렇게 감정이 극에 달한 모습을 보는 건 정말이지 처음이었다.
나는 조심스레 오른팔을 들어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이제 괜찮아요.”
그러자 눈물범벅이 된 얼굴로 마리아가 고개를 들었다.
그 처연한 모습을 보자니 절로 마음이 숙연해진다.
“다시는 다치지 마세요…….”
“…….”
그게 어디 사람 마음대로 되는 일이던가.
하지만 나는 엉겁결에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 * *
“그랬군요…….”
랭킹전이 모두 끝났지만, 별도의 행사는 진행되지 않았다.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급습이었고, 구건이는 여전히 행방불명인 상태였다.
주변의 고위급 헌터들에게 일일이 물어보았지만, 그 무자비하고 비상식적인 쐐기는 다들 처음 보는 것이라고 했다.
딱 하나.
자신이었으면 치유고 뭐고 한 방에 죽어 버렸을 것이라는 의견만 남겼을 뿐.
“헌터님! 다행입니다!”
정말 수많은 사람들이 나에게 인사를 건네러 찾아왔다.
아직 회복실에 있어야 할 육철완부터 시작해 가열찬, 배정대, 무지…… 아니 부지성, 등등.
특히나 누나의 얼굴을 마주했을 때는 정말이지 쥐구멍에라도 들어가고 싶었다.
절대 다치는 일 없을 거라 안심시켜 줬는데, 관중석에서 양팔이 잘려 나가는 모습을 보여 주게 될 줄이야.
누나는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다행이라는 말만 반복했다.
하지만, 돌아서기 전에 남들과 다른 특별한 한마디를 남겼다.
“집에 가서 보자.”
난 이제 뒤졌군, 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을 무렵 표혁규가 독대를 청한다.
주변 사람들을 안심시킨 뒤 우리는 본사 건물 뒤편으로 이동했다.
협회 측에 기본적인 보고는 이미 마친 뒤지만, 그와는 좀 더 심도 있는 대화가 필요했다.
처음부터 구건이나 습격자의 존재에 관해 물을 줄 알았는데, 전혀 다른 인물이 먼저 언급됐다.
“마리아 님이 걱정입니다.”
“마리아요? ……에테르가 역류했다는 소리는 들었는데…….”
“아니요. 그런 의미가 아닙니다.”
범생이 같은 외모의 표혁규.
그에게서 좀처럼 어울리지 않는 익살스러운 미소가 보였다.
“아무래도 마리아 님이 천해선 헌터님을 각별하게 생각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만.”
“에?”
각별하긴 각별하지.
우린 한국에 다섯 명밖에 없는 ‘이레귤러’의 일원이니까.
하지만 저 교활한(?) 웃음을 보자니 그런 의미가 아닌 것 같았다.
“아시다시피 구건이 대표와 마리아 님은 꽤 오랜 시간을 동고동락한 사이입니다. 그 시간 동안 구건이 대표도 크고 작은 부상을 입었죠.”
“그런데요?”
“오늘이 처음이었습니다. 마리아 님이 그렇게 실성한 사람처럼 굴었던 건.”
“……음?”
“구건이 대표의 목숨이 오락가락할 때조차 로봇처럼 치유에 집중하던 분입니다. 헌데 오늘은…….”
표혁규는 말을 흐렸지만, 뒤 내용은 능히 짐작할 만했다.
정신이 든 지 한참이 된 후에도, 마리아는 오랜 기간 얼굴을 묻은 채 오열을 했다.
하지만.
원래 누군가 죽다 살아나면 감정이 격해지기 마련이 아닌가?
내가 연신 고개를 갸웃거리자 표혁규가 웃음을 터트렸다.
“그래서 큰일이라는 겁니다. 보아하니 비수 씨도 천해선 헌터님과 각별해 보이던데…….”
“잘못 짚으셨어요. 저희 이레귤러는 공과 사를 엄격히 구분합니다.”
“그분들도 과연 그렇게 생각할까요?”
“당연하죠.”
어…… 음.
아마도?
“그렇다면 다행이구요.”
진정성 없는 얼굴로 표혁규가 고개를 끄덕인다.
농은 그만하면 됐고, 이제 본론에 들어갈 차례다.
“헌터님. 우리가 사는 세상 말고, 총 세 가지의 이계가 있다는 걸 알고 계십니까?”
세 가지나?
내가 알고 있는 다른 세상은 두 가지뿐이다.
던전과 연결되어 있는 이계.
대범이를 비롯한 영물들이 살고 있는 영계.
그 외에, 또 다른 한가지가 더 있단 말인가.
“이계나 영계에 대해서는 들은 풍문이 있습니다.”
암시장의 야차로부터 전달받은 탈혼수.
그 물건을 통해 영계를 체험할 수 있었고, 각종 영물들은 물론 키릴의 그림자를 보았다.
“맞습니다. 이계와 영계. 모두 이 세계와 간접적으로 연결이 되어 있습니다. 특히나 이계 같은 경우는 수많은 던전 공략을 통해 꽤나 많은 파악이 되었습니다. 허나…….”
표혁규의 눈매가 불현듯 날카롭게 변했다.
협회에서는, 아니 사석에서 그를 만났을 때조차 보지 못했던 독한 인상이다.
“딱 하나 짐작조차 못 하고 있는 세계가 있습니다.”
“그게…… 어디죠?”
“마계(魔界).”
“……!”
표혁규의 대답에 얼굴이 절로 경직되었다.
“오늘 습격한 놈이 바로, 마계의 인물로 추정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