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ison-Eating Healer RAW novel - Chapter (118)
118화
삐 삐 삐 삐.
폭룡이 날뛸 때는 코빼기도 안 보이던 구조대원들이 속속들이 도착하기 시작한다.
현장에 있던 사람들은 진작 대피한 지 오래고, 위급한 사람들은 이미 마리아가 치유를 끝내 놓은 상황.
흩어져 있던 이레귤러의 멤버들이 다시 한자리에 모였다.
그리고 그들은, 합이라도 맞춘 듯 동시에 하늘 위를 올려다보았다.
“에이……. 설마…… 아니겠지.”
흡사 지구 밖에서 운석이 날아오면 이런 기분일까.
크기만 10m가 넘는 커다란 생명체, 아니 ‘생명체였던 것’이 땅을 향해 직하강 하고 있다.
“설마…… 그럴라고?”
이레귤러의 멤버들은 오손도손 모여 그 광경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들은 모두 입을 모아 ‘에이~’란 말을 연신 반복했다.
“하늘 끝까지 올라가 폭룡을 혼자 때려잡아 놓고, ‘추락사’를 한다고?”
“에이~ 그건 너무 허무하지.”
그들은 너스레를 떨며 어깨를 들썩거렸으나, 얼굴 한켠에 자리 잡은 그림자를 완전히 없애진 못했다.
사실 누가 봐도 위험한 상황이다.
그동안 천해선이 기적과도 같은 전과를 매번 올려서 기대를 하는 거지, 상황은 꽤나 좋지 못했다.
헌터가 아니라 헌터 할아버지라도 이 높이에서 땅에 처박히면 몸이 가루가 되어 버릴 것이다.
“그래도 헌터님이라면 무슨 방법을 찾으실 거예요.”
“아니. 내가 봤을 땐 이대로 영락없이 쥐포가 되고 말걸?”
비수가 도저히 참지 못하고 본심을 말해 버렸고, 애써 평정심을 유지하던 이레귤러 멤버들이 몸을 움찔했다.
“천해선이라고 매번 용빼는 재주가 있는 줄 알아? 저렇게 드래곤이랑 함께 떨어지면 더 대미지가 심할 거라고.”
“나도 그게 의문이군. 왜 저렇게 드래곤의 몸에 딱 달라붙어 있는 거지? 저건 흡사 무서워서 베개를 꼭 껴안고 있는 모습이잖나.”
육철완의 말마따나 천해선은 아등바등하면서도 드래곤의 몸을 절대로 놓지 않고 있었다.
“공포심에 머리가 유아 수준으로 회귀한 건 아니겠죠?”
“…….”
비수의 말에 마리아가 두 눈을 질끈 감았다.
이레귤러 멤버들이 농을 주고받는 이 시간에도 천해선과 폭룡은 하릴없이 하강하고 있었다.
이제는 농담이 나올 정신도 없는지, 비수가 강정현의 어깨를 잡고 흔든다.
“얘. 정현아. 어떻게든 해 봐. 그 식물로 쿠션을 만들 순 없는 거야?”
“일단 해 보기는 해 보겠지만……. 제아무리 쫀득이라 해도 한 방에 찢겨 나가고 말 거예요.”
“쫀득이?”
강정현은 대답 대신 다시 섬유 디바이스를 풀어헤쳤다.
“발동.”
슈르르.
솔직히 얼마만큼 충격을 흡수해 줄 수 있는지는 자신할 수 없었다.
어쩌면 자신이 불러낸 식물 따위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대로 죽는 걸 가만히 지켜볼 수는 없어.’
강정현이 입술을 깊게 베어 문 뒤 구호를 외쳤다.
“흐앗.”
촤아아아아악.
천해선을 하늘 위로 올려다 준 녹색 덩굴 쫀득이가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쫀득이는 곧 대지에 원을 새겨 넣듯 둥그런 모양으로 회전하며 완충 지대를 형성했다.
과연 이것으로 될 것인가.
강정현의 머릿속에 산산이 박살 나는 쫀득이와 천해선의 머리가 떠올랐지만, 그는 세차게 고개를 흔들어 떨쳐 버렸다.
“비수 누나!”
“어, 어!!”
비수가 강정현에게 버프를 걸어 주자, 원형 지대를 형성한 덩굴들이 장벽처럼 덩치를 불렸다.
“와아!!”
지켜보는 사람들이 탄성을 숨기지 못하는 녹림 지대.
그러나 정작 강정현의 얼굴은 파리하게 질려 갔다.
‘이 정도는 턱도 없어……!!’
이건 S랭커의 감도 뭣도 아닌 간단한 추론이다.
제아무리 단단한 식물이라 한들 수십 톤에 달하는 중력을 이겨 낼 리 없었다.
비수의 버프를 통해 기적을 도모해 봤지만, 강정현은 넘을 수 없는 벽에 직면하고 말았다.
“좀 더…… 좀 더 안 돼요?”
“야. 가만있어 봐.”
“지금 가만히 있을 시간이…….”
“아니, 그게 아니라.”
“네?”
사력을 다하던 강정현이 빼꼼하고 고개를 뒤로 돌린다.
“저기 봐. 해선이가 안 보여!”
이건 또 무슨 자다가 트월킹을 추는 소리란 말인가.
하늘에서 추락하던 천해선이 갑자기 텔레포트라도 썼단 말인가?
강정현이 황당한 표정을 한 채 시선을 하늘로 돌렸다.
“어……?’
그런데.
정말로 없었다.
폭룡의 사체와 씨름하던 천해선이 감쪽같이 모습을 숨긴 것이다.
멀리 떨어져 있어서 안 보이는 건가 싶었지만 그런 게 아니었다.
빙글빙글 돌며 추락하는 폭룡의 어디에도 천해선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뭐야? 어떻게 된 거야?”
땅으로 꺼졌나.
하늘로 솟았나.
하나 공중에서 떨어지고 있는 천해선에게는 모두 해당 사항이 없는 이야기였다.
그러는 와중에도 폭룡의 커다란 사체는 무서운 기세로 하강했고, 땅 위에 있는 사람들은 슬슬 몸을 피해야 하는 단계에 이르렀다.
“피…… 피해!!!”
“뭐가 어떻게 된 거야아아아아!!”
비수의 앙칼진 외침과 함께, 8성(★★★★★★★★) 몬스터 폭룡이 땅에 추락했다.
콰과과과과과광.
“윽……!!”
어찌나 충격이 큰지 가만히 서 있던 발이 두둥실 떠오를 정도였다.
가까스로 균형을 잡은 이레귤러 멤버들은 너 나 할 것 없이 폭룡에게로 달려갔다.
폭룡에게 매달려 있다 사라졌으니 근처에 가면 뭔가 단서가 있지 않을까 싶었던 것.
“켁. 켁.”
부서진 건물의 잔해와 폭룡의 추락 때문에 사방이 매캐한 먼지로 가득 뒤덮였다.
비수와 마리아는 물론이요 육철완조차 옷깃을 입에 가져다 대지 않으면 곤란할 지경이었다.
그들은 한 팔을 좌우로 휘저으며 폭룡의 사체를 향해 나아갔다.
설마하니 정말 이대로 죽은 건 아니겠지.
“천해선!!”
“헌터님!!”
그러나 아무리 목놓아 불러 보아도 천해선의 털끝만큼도 보이지 않았다.
오직, 꿈틀대는 폭룡의 근육만이 보였을 뿐.
“아! 깜짝이야! 이거 아직도 살아 있는 거야??”
비수가 화들짝 놀라자 육철완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건 아닐 게다……. 아마도 이건 근육이 사후경직을 일으키는 듯싶구나.”
“후아……. 죽어서도 이렇게 꿈틀댈 수도 있구나……. 끝까지 재수 없는 새끼!”
그런데, 둘의 대화를 지켜보던 마리아의 표정이 점점 심각해진다.
“잠깐만요…….”
“?”
“사후경직은 원래 간헐적으로 움직이는 것 아닌가요? 이건 마치…….”
마리아의 말마따나, 폭룡의 가슴 쪽은 마치 살아 있는 생명체처럼 꾸준히 꿈틀거리고 있었다.
아니, 살아 있는 생명이라면 저런 식(?)으로 움직이지는 않을 터.
흡사 다른 바이러스가 숙주의 몸 안에서 숨을 쉬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숙주 안의 바이러스.
“……!!!!!!!!”
“설마!!!!!!!!!!!!”
그리고 감쪽같이 사라진 천해선.
푸확!!!!!!!!!!!!!!
블랙 에테르를 쥐고 있는 그의 손이, 폭룡의 가슴으로부터 튀어나왔다.
* * *
나는 어릴 때부터 집 안에만 틀어박혀 있었다.
바깥바람을 잠시 쐬다가도 중독 증세가 올라오면 혼절해 버리기 일쑤라, 언제부턴가 집 밖에 나가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집에서 딱히 할 수 있는 게 뭐가 있겠는가.
정신이 올곧게 서 있을 때는 책을 읽었고, 통증이 올라올 때는 멍하니 티비 화면만 바라보았다.
그 와중에 마음속의 무의식이 발동된 걸까.
웃프게도 내가 가장 많이 본 건 생존과 관련된 영화였다.
먼 옛날이라 제목은 기억이 나지 않는데, 굉장히 인상적인 영화가 있었다.
극한의 자연에서 홀로 생존해 나가는 주인공의 이야기였다.
밤의 추위를 피하기 위해 말의 배를 가르고 그 안에 들어갔던 장면이 아직도 뇌리에 생생히 남는다.
추격에 대한 공포에 떨면서도 한편으로는 안식을 찾는 표정.
아침이 되어 뻣뻣이 굳은 몸으로 동물의 배 안에서 삐져나오던 기괴한 몸짓.
화면으로 보는 건데도 배우가 얼마나 개고생을 했을지 피부로 느껴지는 영화였다.
그 사람, 상을 엄청 받고 싶어 했다던데 지금은 받았나 모르겠네.
폭룡과 함께 땅으로 추락하면서, 나는 운명처럼 그때의 일이 떠올랐다.
그래서 나는 폭룡의 배를 갈랐다.
이 녀석의 거대한 몸이, 영화 속 동물처럼 나를 보호해 주길 바라며.
푸욱.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딱히 내용물(?)을 끄집어내지 않더라도 폭룡의 내부는 공간을 침투하기 적절했다.
아직 뜨거운 핏물을 뒤집어쓰는 게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죽는 것보다는 낫잖아?
웃긴 것은, 그 와중에 포이즈너로서의 직감이 발동했는지 파고 들어간 끝자리에서 녀석의 핵심을 마주할 수 있었다는 점이다.
‘이건……?!’
붉은 피가 넘실대는 폭룡의 내부에 고귀하게 빛나는 구체가 있었다.
골드 코어(Gold core).
나는 그걸 냅다 움켜쥔 뒤 재빠르게 몸에 흡수했다.
폭룡의 몸이 푹신하다 한들 떨어지는 높이를 생각하면 생존을 장담할 수 없다.
몸보신(?)을 할 게 있다면 닥치는 대로 흡수하고 봐야 한다.
보통의 경우, 코어의 가치가 높을수록 체내로 흡수하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린다.
쟈르르…….
그런데 어찌 된 일인지 골드 코어가 눈 깜짝할 사이에 몸 안으로 흡수되었다.
포이즈너 레벨이 올랐기 때문일까?
아니면 사람이 죽을 위험에 닥치니 없던 집중력도 솟아올랐던 걸까.
뭐가 어찌 됐건, 나는 땅에 떨어지기 직전에 폭룡의 골드 코어를 몽땅 흡수할 수 있었다.
그와 동시에, 영혼이 빨려 나가는 기분을 느끼며 폭룡과 함께 지면에 처박혀 버렸다.
쾅!!!!!!!!!!!!!!
“큭……!”
예상했던 대로 뼈를 부수는 듯한 충격이 전신에 쏟아진다.
아니, 실제로 전신의 뼈가 성한 곳이 없었다.
폭룡의 살과 근육으로 이루어진 쿠션(?) 안에서도 이 정도라니.
이놈의 몸에 들어가 있지 않았다면 분명 뼈도 못 추렸을 것이다.
샤르르…….
원래 있던 치유력과 더불어 골드 코어의 기운이 내 몸을 빠르게 수습해 나간다.
온몸에 황금빛 기운이 넘실거리고, 언제 아팠냐는 듯 전에 없던 활기가 몸에 가득하다.
게다가 더욱 나를 기운차게 만드는 게 한 가지 있었는데, 그건 바로 V1이 내게 준 변경 정보였다.
사용자 정보>
Poisner Class Level : 2 – Summoner>
보유 블랙 에테르 : 17,564BA >
신체 강화 능력 : ‘A’>
치유 능력 : ‘S’>
염동력 : ‘S’>
보유 스킬 : 독보(毒步) – level 3 / 독무(毒霧) – level 1 / 교감(交感) – level 2 / 사자후(獅子吼) – Level 2 / 호신강기(護身罡氣) – level max>
폭룡의 골드 코어를 흡수하여 사용자의 능력이 향상되었습니다.>
독보(毒步)의 레벨이 올랐습니다.>
교감(交感)의 레벨이 올랐습니다.>
신체 강화 능력이 A랭크로 상승했습니다.>
“와……. 뭐야 이거?”
폭룡의 코어는 뭐가 달라도 달랐던 걸까?
기를 쓰고 노력해도 오르지 않던 스킬 레벨이 한꺼번에 두 개나 올랐다.
게다가 나이트의 무력을 가늠할 수 있는 물리 레벨의 상승까지.
이 정도면 A랭크 나이트와의 순수 물리력 싸움에서도 전혀 밀릴 것이 없는 정도가 되었다.
‘게다가…….’
교감이야 비전투 능력이니 그렇다 쳐도, ‘독보’의 레벨이 오른 건 무척이나 고무적인 일이었다.
내 전투 스타일상 ‘독보’는 모든 싸움의 알파요 오메가라 할 수 있었다.
오늘도 ‘독보’의 스피드가 아니었다면 사방팔방으로 방사했던 폭룡의 브레스를 막아 내지 못했을 터.
지금보다 더 날렵해질 수 있다는 사실이 날 가슴 뛰게 만들었다.
“좋았어.”
스피드가 얼마나 더 빨라졌는지.
몸이 얼마나 더 단단해졌는지 당장이라도 확인해 보고 싶다.
적당히 몸을 갈무리한 나는 세리머니를 하듯 오른팔을 치켜들었고, 그 끝에는 프라셀의 검은 칼날이 솟아 있었다.
푸확!!!!
곧, 어두컴컴한 폭룡의 배 안에 눈부신 햇살이 비추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