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ison-Eating Healer RAW novel - Chapter (13)
13화
우리나라에 ‘S’등급을 받은 헌터는 채 열 명이 되지 않는다.
그리고 그중 절반이 글로리 길드 소속이다.
그러니 서울을 비롯한 핵심 지역의 수호를 담당하고 있는 것이겠지.
게다가 말만 ‘S’등급일 뿐, 글로리 길드의 두 명은 ‘S’를 넘어 ‘규격 외’ 등급으로도 불린다.
천외천의 존재들이라는 의미다.
나는 오늘, 그 규격 외 헌터 두 명을 맞닥뜨리고 말았다.
일면식은 전혀 없지만 그들의 이름을 모를 수가 없다.
인터넷 기사와 방송, 위튜브를 통해 하루가 멀다하고 보게 되는 사람들이었으니 말이다.
옆에 있는 헌터 협회 부회장도 마찬가지.
부회장은 협회장을 대신해 각종 브리핑을 도맡고 있다.
옆에 비서로 보이는 인물까지 총 4명.
그들은 지금 꽤 불편한 시선을 내게 보내고 있었다.
특히나 S급 나이트, 구건이는 뾰족뾰족한 머리처럼 따갑게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태산을 마주하는 기분이 이런 걸까.
구건이의 존재감이 장난이 아니다.
실제 덩치도 컸지만, 눈앞의 남자는 헌터가 아니라 하늘까지 닿은 거대 몬스터처럼 느껴졌다.
“헌터 협회 본사에서 이게 무슨 행동이야. 당신, 감옥 가고 싶어?”
윽.
사자후를 날릴 때도 그랬지만, 아무래도 구건이의 목소리 안에는 특별한 기운이 담겨 있는 모양이다.
그냥 있다가는 자연스레 저 녀석에게 주눅이 들어 버릴 것 같다.
‘시발. 내가 왜.’
나는 몸 안에 블랙 에테르를 최대한 활성화시켰다.
구건이와의 격차를 뼈저리게 느꼈다고는 하나, 기술도 뭣도 아닌 목소리 따위에 눌리고 싶지는 않다.
“아…….”
그런데, 블랙 에테르를 활성화하자 마리아의 표정이 뭔가 이상하다.
혹시 저 여자도 에테르를 감지하는 능력이 있는 걸까.
시간을 오래 끌어서 좋을 게 없겠군.
나는 구건이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여기 있는 시큐리티 직원이 민간인을 힘으로 제지하길래 막았을 뿐이다. 헌터 협회 소속 직원라던데.”
나는 일부러 헌터 협회 소속이라는 걸 강조했다.
헌터 협회와 민간인과의 실랑이.
대외적으로 소란이 생기면 골치 아파지는 건 당신들이겠지.
“……그 말이 사실이야?”
“못 믿겠으면 CCTV를 돌려 보든가.”
자꾸 반말을 하니 나도 절로 말이 짧아지는군.
그러나 구건이는 앞선 녀석과 다르게 내 가벼운 도발에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부회장님. 흐흐흐흑. 너무 원통합니다.”
부회장을 확인한 아줌마가 울음을 터트리며 다가간다.
옆에 비서로 보이는 남자가 아줌마를 막아섰지만, 부회장이 비서를 만류한다.
“괜찮습니다. 어머니. 저쪽으로 함께 가시죠.”
부회장의 나이는 환갑이 조금 넘어 보인다.
잘 정돈된 수염이 툭 튀어나온 하관을 덮고 있었고, 동그란 안경 너머에는 자글자글한 주름이 새겨져 있었다. 유인원은 구건이와 마리아에게 눈인사를 한 뒤 아줌마와 함께 별실로 이동했다.
내게 손목이 꺾인 사내도 부회장의 비서로 보이는 사람과 함께 자리를 떴다.
그나마 부회장은 정상적인 인간이라 다행이군.
저 사람마저 아줌마를 내쳤다면 나는 헌터라는 직업 자체에 역겨움을 느꼈을지도 모른다.
“헌터 응시생이라고 했나?”
구건이가 부회장 쪽으로 고개를 한차례 숙인 뒤, 고개를 돌려 내게 물었다.
저릿.
허.
어떻게 목소리만으로 이렇게 전신을 압박할 수 있는 거지.
블랙 에테르를 활성화시켜서 망정이지, 각성 전이었다면 대화만으로 기절을 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어린 티가 줄줄 흐르는군. 예의라고는 전혀 없고. 뭐, 한창 뜨거울 때지. 하지만 너처럼 젊은 혈기만 믿었다가 요절한 헌터들이 아주 많아. 앞으로는 경거망동하지 않기를 바라지.”
구건이가 내려다보는 시선으로 내게 충고를 한다.
글로리 길드의 정점이자 S급 헌터.
이제 막 응시생인 내가 어떻게 보일지 눈에 훤하다.
갑자기 짜증이 확 솟구친다.
세상 모든 이치를 다 알고 있는 듯, 철부지 어린아이에게 한번 봐준다는 듯한 표정이다.
개자식아.
봐주려면 우리를 진작에 봐 줬어야지.
“당신들도 부회장과 같이 들어갔어야 하는 것 아닌가?”
“……그게 무슨 소리지?”
“저 아줌마. 개방동 주민이던데.”
“!!!!”
“당신들 관할 구역 아니야?”
정확히는, 니들이 버린 구역 말이다.
남아 있는 티끌만큼의 이성이 마지막 말을 간신히 가로막았다.
구건이가 다시 한번 나를 내려다본다.
그래.
저 눈빛.
아까부터 감정적인 상태가 된 건 바로 저 눈 때문이다.
멸시와 동정이 적당히 뒤섞인 저 눈이 나를 돌아 버리게 만든다.
“아무래도 우리는 대화가 좀 필요할 것 같군.”
구건이가 두꺼운 입술을 좌우로 벌리며 듬직한 미소를 지어 보인다.
반면에 나는 하마터면 뒤로 한 발 물러날 뻔했다.
끝을 알 수 없는 강직한 에테르가 그의 전신에서 끓어오르고 있었기 때문이다.
역시.
개방동은 그에게 있어 역린과도 같은 존재가 확실하다.
“구 대표님.”
독보를 사용해야 하나 망설이고 있을 무렵, 비단결같이 고운 목소리가 들린다.
구건이의 옆에 서 있던 마리아가 그를 제지한 것이다.
“잘 타이르려고 하시는 거죠? 이제 막 헌터가 되려는 응시생분에게 응원도 겸해서.”
목소리는 상냥했지만, 그 안에 가슴 서늘해지는 한기가 느껴진다.
어쩐지 익숙한 느낌이다.
누나가 웃는 얼굴로 나를 혼낼 때 꼭 이런 느낌이었거든.
효과는 확실했다.
끓어오르던 구건이의 에테르가 씻은 듯이 사라져 버렸다.
“그래. 그럴 생각이었다.”
마리아가 싱긋 웃으며 내 쪽을 바라본다.
“그쪽도 이쯤에서 그만두세요. 소란이 커져서 협회 블랙리스트에 오르면 응시 자격이 박탈될 수 있어요.”
“압니다.”
안다.
아직은 내 능력이 그들에 비해 보잘것없다는 것도.
헌터 시험에 합격할 때까지 숨죽이고 있어야 한다는 것도.
지금으로서는 글로리 길드에 그 어떤 책임을 물을 수 없다는 것도.
병신도 아니고 모를 리가 없다.
“근데, 저도 개방동 주민이거든요.”
“……!!”
구건이의 미간에 주름이 패고, 마리아의 동공이 흔들린다.
“동네 주민이 자식을 잃고 부당하게 쫓겨나가는데 그냥 둘 수가 있습니까? 저도 게이트 밑에서 개죽음을 당할 뻔한 사람입니다.”
“개방동의 일은…… 저희로서도 안타깝게 생각합니다…….”
마리아의 목소리가 가볍게 떨린다.
표정뿐만이 아니라, 파리한 입술도 함께 떨리고 있었다.
누가 보면 이 시대 최고의 성녀를 핍박이라도 하는 줄 알겠군.
“……됐습니다.”
말뿐인 사과에 수긍할 생각은 없다.
진심 어린 반성이라도 하면 모를까, 구건이의 표정을 보니 그럴 일은 죽을 때까지 없어 보인다.
개방동을 지키려는 시도조차 하지 않은 것들이다.
이제 와서 안타깝다니.
내 머릿속에 남아 있는 성녀의 이미지마저 희석될 지경이다.
“저……!”
몸을 돌려 걸어 나가는데 마리아가 날 불러 세운다.
“시험을 친다고 하셨는데, 타입이 어떻게 되세요?”
그건 알아서 뭐 하게.
아, 생각해 보니 저 사람 앞에서 블랙 에테르를 발동시켰었지.
이제 와서 거짓말을 하기는 뭐하고, 나는 퉁명스럽게 내뱉고 내 갈 길을 갔다.
“힐러.”
* * *
시간이 꽤 지났는데도 가라앉은 기분이 좀처럼 올라오지 않는다.
특히나 마리아의 동공이 시계추처럼 흔들리던 모습이 뇌리에 강하게 남아 있다.
꼴에 남자라고 예쁜 여인을 봐서 그런 걸까.
천만에.
외모로 따지면 우리 누나나 마리아나 별 차이 없다.
하지만 각성 이후로 예민해진 감각이, 내 기분을 바닥으로 질질 끌고 있었다.
대체 뭐냐.
내가 글로리 길드 놈들에게서 뭘 놓치고 있는 거냐.
“고민은 여기까지.”
여기까지 와서 쓸데없이 심력을 낭비할 수는 없다.
터미널 버스를 타고 한 시간 반.
나는 대전에 위치한 지하철 경호역 앞에 서 있었다.
이곳이 키릴과 진 박사가 알려 준, 우리나라 최대의 암시장이다.
부스럭.
품 안에서 비닐 봉투를 꺼내자 뽀리가 ‘꾸왕!’ 하며 반가운 목소리를 낸다.
봉투 안에는 매일같이 녀석이 향을 음미하던 희귀초, 동영화가 들어 있었다.
“자식……. 곧 팔리게 될 테니 지금이라도 마음껏 들이마셔라.”
-꾸르르…….
참으로 신기한 식물이다.
물이나 영양분을 준 것도 아닌데 이틀간 영롱한 빛이 가시지를 않는다.
진 박사의 말에 의하면 안에 내재한 치유 물질을 추출하기 전까지는 빛을 잃지 않는다고 하던데.
과연 동영화는 검은 비닐 봉투 안에서도 영롱히 빛나고 있었다.
“후우.”
심호흡을 하고 경호역 1번 출구 안으로 들어선다.
왔다 갔다 하는 사람들이 아니었다면, 내부가 깜깜해서 통로가 있는지조차 모를 지경이다.
이곳의 입구는 독특한 결계가 쳐져 있는데, 체내의 에테르 성분이 없으면 입장 자체가 불가능하다.
즉, 헌터나 미등록 각성자가 아니면 구경조차 하지 못한다는 의미다.
지잉.
입구를 통과할 때 발가벗겨진 것 같은 기분이 들긴 했지만, 그다지 큰 문제는 없었다.
그리고 암시장 내부로 들어서는 순간, 나는 서울 구경을 처음 하는 시골 소년이 되어야 했다.
“우와…….”
누가 이곳을 암시장이라 부를 수 있을까.
좁고 어두컴컴한 입구와는 다르게, 밝은 조명의 공간이 광활하게 뻗어 있었다.
지하철 선로로 긴 상점 같은 것들이 위치할 줄 알았는데 예상과는 달라도 너무 달랐다.
-꾸왕.
투명 상태로 변한 뽀리가 내게 일침을 날린다.
초짜인걸 티 내냐고 나무라는 듯하다.
흠흠.
그래, 암시장에 와서 호갱처럼 보여서는 안 되지.
내 손안에 든 물건이 어디 보통 물건인가.
거래라는 걸 처음 해 보기는 하나, 무조건 처음 부르는 값의 몇 배를 받아 내야 할 것이다.
“히야…….”
이곳이 과연 불법으로 운영되는 시장이 맞는 걸까.
아니, 이 정도의 규모라면 정부에서 묵인하고 있다고 보는 게 정확할 것이다.
사방 천지에 희귀한 물건과 몬스터(!)들이 진열되어 있었다.
박제된 녀석들도 보이고, 철창 안에 갇혀서 으르렁거리는 소형종도 있다.
이런 녀석들을 돈을 주고 왜 사려는 걸까.
사람의 심리는 알다가도 모르겠다.
암시장의 중앙 쪽으로 가자 이제는 헌터용 디바이스 전문 매장까지 보인다.
나는 호기심에 디바이스 매장에 들어가 보았다.
사장은 나를 흘끗 바라보더니 안경을 고쳐 쓴 다음, 이내 고개를 돌려 버렸다.
반점을 보자 안경을 고쳐 쓰고, 추레한(…….) 복장을 확인한 뒤 관심을 끊은 것이리라.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매장 안에 진열된 디바이스들을 천천히 구경했다.
너클, 단검, 방패, 총기, 대형 화기류까지.
종류는 너무나 다양했지만, 공통점이 하나 있었다.
진 박사가 내게 준 디바이스에 비하면 그 품질이 저급하다는 것.
각막에 결합해 정보를 보여 주는 V1에 비해, 이 고글형으로 생긴 디바이스는 너무나도 조악해 보였다.
진 박사는 거처를 어디로 옮겼을까.
그곳에서도 닥치는 대로 독가스로 침입자를 죽이고(…….)있을까.
통조림 종류는 좀 늘었을까.
매장을 한 바퀴 돌아본 뒤 나는 사장에게 살짝 목례를 했고, 사장은 이번에도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히야…….”
한동안은 암시장을 구경하느라 여념이 없었다.
이곳은 의외로 마음 놓고 다녀도 되는 구역이다.
왜?
각성자의 능력은 ‘겉보기’로 판단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100kg가 넘는 ‘E’등급의 나이트보다 44사이즈를 입는 ‘C’등급의 나이트가 백배는 더 강하다.
상대방의 능력을 가늠할 수가 없기 때문에, 섣불리 움직이지 않는 것이다.
그리고 그건 내게 정말 큰 도움이 되었다.
겉보기에는 비리비리한 내가 일행도 없이 홀로 다니니, 뭔가 있어 보이는 효과를 낳는 것이다.
입장을 했다는 자체가 일단은 각성자라는 의미일 터.
거기에 얼굴의 반을 덮고 있는 공포스러운(…….) 반점까지.
내가 암시장을 모르듯, 상대방도 나를 모른다.
피차간의 정보 부족으로 발생하는 틈을 파고들어 유유히 암시장을 활보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이 모든 전략을 혼자 세운 것은 아니다.
키릴이 했던 행동들을 진 박사가 알려 주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허…….”
문제는 그다음이었다.
이곳 암시장에, 희귀초를 판매하는 상점이 보이지 않았다.
중간중간 인간을 위한 약초나 식품을 파는 곳은 있었지만, 금영화는커녕 내가 가진 동영화조차 보이는 곳이 없었다.
조금 더 내부로 들어가서 물어봐야 하나.
하지만 나 같은 초짜가 갑자기 ‘동영화를 팔려고 왔다’고 하면, 그건 상어의 머리에 머리를 집어넣는 일이나 다름없다.
시세라도 조금 알면 흥정이라도 해 볼 텐데.
암시장에 들어온 지 세 시간째.
나는 일반적인 방법으로 내 물건을 처분할 길이 없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한쪽 방향의 끝에 다다르자 조명이 어두워지고, 오가는 사람조차 보이지 않는다.
다른 쪽 끝에도 가 봐야 하나.
“끄응…….”
-꾸르르……..
내 신음에 화답이라도 하듯 뽀리가 울음소리를 낸다.
“뭐야. 너도 막막해서 그러는 거냐?”
-꾸르르르.
“?”
아니다.
이 녀석이 가끔 내 생각에 공감하는 것 같긴 하지만, 이번은 다르다.
녀석은 지금 ‘무언가’를 향해 으르렁거리고 있었다.
파앗!
녀석이 갑자기 은신을 풀었다.
“뭐야. 너 왜 그래?”
뽀리의 눈동자가 좌우를 빠르게 스캔하더니, 이내 폴짝 날아올랐다.
-캬옹.
“얌마. 가만히 있…….”
“꺄악!”
꺄악이라니.
이곳에는 사람이 없는데.
뽀리가 드디어 사람의 말을 할 줄 알게 된 건가?
“저, 저리 가!”
아니었다.
지금까지 이 골목에 사람이 전혀 없는 줄 알았는데, 사람이 있었다.
뽀리가 날아오른 건, 녀석처럼 모습을 숨긴 채 다가오는 불청객 때문이었던 것이다.
꽈악!
“아야야야야야야야야야.”
뽀리가 누군가의 목덜미를 물고 있었다.
입가에 긴 흉터가 난 붉은색 머리칼의 여자아이.
뽀리에게 수상한 사람이 있으면 확 물어 버리라고 한 적이 있다.
그런데, 그게 정말 현실이 되어 버릴 줄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