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ison-Eating Healer RAW novel - Chapter (133)
133화
노을이라고 여기기에는 지나치게 붉은 하늘.
그 아래로 반쯤 무너지다 만 석재 건축물들이 산재해 있다.
퀴퀴한 냄새가 코를 찌르고, 습한 기운이 피부를 천천히 잠식해 온다.
“여러모로 기분 나쁜 곳이군.”
모두가 육철완과 같은 마음이었다.
던전이라는 곳이 본래 아름다움과는 거리가 멀었지만, 이곳은 시작부터 불길한 기운이 차고 넘치는 곳이었다.
입구를 지나자 전방에 부서진 건물이 좌악 늘어서 있다.
건물의 형태로 보아하니 신전처럼 보이는데, 딱히 중요한 사항은 아니다.
이곳 ‘1층’에서 만나게 될 몬스터들의 난이도가 신경 쓰일 뿐.
각 층마다 다양한 타입의 마수들이 나타나고, 당연하게도 아래로 내려갈수록 그 난이도는 기하급수적으로 올라간다.
Stairs of hell(지옥의 계단).
우리는 지금 그 악명 높은 던전의 1층에 있다.
바사삭.
귓가를 영 거슬리게 하는 발걸음 소리가 들린다.
분명히 우리를 에워싸고 있는 것 같은데, 부서진 석재들 때문인지 놈들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와. 어찌나 하늘이 빨간지 다들 얼굴이 피범벅이 된 거 같아요.”
전투를 목전에 두고 정말 사기 충만해지는 말을 하는군.
그러나 비수의 말대로 비상식적인 빛이 하늘에서 내리쬐고 있었다.
제한 시간인 세 시간이 아니라, 삼십 분만 있어도 정신이 어떻게 될 것 같은 기분이다.
그나마 Stairs of hell(지옥의 계단) 중에서 가장 할 만하다고 여겨지는 1층이니만큼, 가능한 한 빠른 시간 안에…….
탁탁탁탁.
“엇……?”
생각을 정리하기도 전에 전방으로 달려 나가는 인영이 있었다.
검집에서 칼을 꺼내 가장 큰 신전으로 쇄도하는 헌터.
첸이었다.
“야! 어디 가……!”
비수가 다급하게 외쳤지만 첸은 들은 척도 안 하고 나아갔다.
그와 동시에, ‘바사삭’ 하는 소리가 급격히 늘어났다.
팟.
전후좌우.
부서진 잔해 속에서 육철완의 팔뚝만 한 갑각류들이 튀어나왔다.
“노웸……!”
육철완의 입에서 신음 같은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그와 동시에 V1이 내게 위험 신호를 보냈다.
노웸(novem) / BOSS / type – 전투형, 군집형 / 처치 난도 8성(★★★★★★★★) / 물리 레벨 ‘A’ / 기타 레벨 ‘S’ / 전용 스킬 – 분할 >
갑옷 같은 외피를 두른 다리가 아홉 개 달린 몬스터.
육철완의 말을 들은 강정현이 놀라서 물었다.
“노웸이라니…… 그럼 시작부터 보스급 몬스터가 나타났다는 말인가요?”
“그런 듯싶구나. 아직 내부로는 들어가지도 않았는데…….”
아래층으로 내려가는 ‘키’는 해당 층의 보스 몹을 처치하면 얻을 수 있다.
하나 우리가 위치해 있는 지점은 고작해야 던전의 출발점에 지나지 않는다.
그 말은 곧,
“다른 던전의 보스 몹이…… 이곳에서는 잡몹에 지나지 않는다는…….”
강정현이 질린 얼굴로 중얼거렸다.
그리고 곧, 비수에게서 비명에 가까운 목소리가 튀어나왔다.
“위험해!”
첸을 둘러싸고 있던 노웸이 사방에서 달려들었던 것.
다른 부위와 달리, 앞쪽에 있는 세 개의 다리는 집게 형태를 띠고 있었다.
그 단단한 재질과 날카로움으로 보건대, 제아무리 S랭크 헌터라 한들 한번 물리면 치명상을 면하기 어려워 보였다.
더욱 큰 문제는, 첸에게 달려드는 노웸의 숫자가 수십에 이른다는 것.
일부는 땅을 기어서.
일부는 얼굴 높이로.
일부는 붉은 하늘을 가르며.
어디서 이렇게 숨어 있었나 싶은 개체 수가 일제히 집게를 세워 달려들었다.
우웅.
그때.
‘바사삭’ 하는 발소리 사이에서 희미하지만, 귀에 익은 소리가 들렸다.
며칠 전 녀석과 대결을 펼쳤을 때 들어 본 소리다.
첸이 자신의 검에 특별한 힘을 주입하는 소리.
대만이 꼭꼭 숨기고 있던 비밀 병기가, 마침내 ‘지옥의 계단’에서 그 진가를 발휘했다.
촤악!!
검의 표면에 맺힌 푸르스름한 검기가 공기마저 베어 버릴 듯 좌우로 펼쳐진다.
서걱.
그러자, 과연 흠집이라도 날까 싶은 노웸의 겉껍질이 두부처럼 힘없이 갈라진다.
“저럴 수가……!!”
노웸을 보고 탄식하던 육철완이 이번에는 어깨를 들썩이며 탄성을 터트린다.
촤악.
한 번, 또 한 번.
차례차례 다가오는 노웸을 향해 첸이 춤이라도 추듯 검을 놀린다.
금방이라도 첸에게 달라붙을 것 같았던 노웸들이 언제 그랬냐는 듯 조각나 바닥에 떨어진다.
“굉장해요…….”
그 검무에 강정현이 벌린 입을 다물지 못한다.
‘다시 봐도 유려하기 짝이 없는 움직임이다. 하마터면 저 동작에 나도 당할 뻔했지.’
다가오는 노웸들의 생김새는 흉측하기 짝이 없지만, 첸이 휘두르는 검은 반대로 아름답기 그지없었다.
추풍낙엽처럼 떨어지는 노웸의 조각들.
몇 초나 지났을까.
첸은 어느새 주변의 모든 노웸을 처치해 버렸다.
“천해선. 네가 사기 쳐서 끌고 올 만한데?”
비수가 팔꿈치를 살짝 움직여 내 옆구리를 건든다.
하지만 내 시선은 여전히 전방을 향하고 있었다.
“칭찬은 아직 일러.”
“야박하긴. 저 정도면 충분히 강한…….”
“아직 죽은 게 아니거든.”
“응?”
몬스터에 대한 사전 지식이 없는 비수는 잘 모를 거다.
확실히 첸의 검기와 검무가 대단한 수준이기는 하나, 이 정도만으로 정리가 된다면 노웸이 8성의 난이도를 얻을 일도, 다른 던전의 보스 몹이 될 일도 없었다.
바사삭.
“어마?”
이제 다시는 들을 수 없을 거라 생각했던 발소리가 다시 들리기 시작한다.
흉측한 배를 까뒤집고 부들거리던 노웸들이, 어느새 완전한 모습으로 진형을 짜기 시작했다.
반으로 갈린 탓에 몸체는 절반 수준에 그쳤지만, 그 외형은 처음에 보았던 그 혐오스러운 모습 그대로였다.
“아니, 그러면…….”
비수가 양미간을 찌푸리며 내게 묻는다.
“여기서 저놈들을 다시 베면 어떻게 되는 거야?”
“또 분화하겠지. 두 배로 늘어서.”
“그걸 베면?”
“…….”
아마 몰라서 계속 묻는 건 아닐 것이다.
일반적인 물리력으로는 상처를 입히기도 힘든 몬스터가, 몸체를 절단하면 작은 크기로 분화해 끝없이 달려든다.
베어도 베어도 다시 살아나는 불사의 몬스터.
검을 다루는 입장에서는 실로 악몽 같은 일이라 할 수 있는 일이었다.
촤악.
그러나 여전히 첸의 검은 강했고, 그가 추는 검무는 막힘이 없었다.
베고 또 베어 버리면 그만이라는 듯, 첸의 검이 끊임없이 노웸을 가르고 있었다.
바사삭.
하나 전망은 그다지 밝아 보이지 않았다.
노웸의 개체 수는 점점 늘어나는 데 반해, 첸의 검은 여전히 하나였으니까.
게다가 노웸의 크기가 작아짐에 따라 칼의 움직임도 점점 정밀함이 요구되었다.
뚝.
한 방울.
첸의 각진 턱선을 타고 땀방울이 흘러 떨어진다.
그 모습에 육철완의 굵은 눈썹이 꿈틀거렸다.
“슬슬 체력적으로 지치는 것 같습니다만…….”
“그렇죠.”
“안 도와주실 생각입니까?”
“도와주다뇨. 첸을? 하하.”
“……?”
“자신의 본 실력을 보여 주지 않은 건 첸도 마찬가지예요. 저놈은 단지 때를 기다리고 있을 뿐이죠.”
이 자리에서 첸의 진짜 무력을 확인한 사람은 나밖에 없었다.
그래서 다른 네 명이 발을 동동 구르고 있을 때도, 오직 나만이 천하태평으로 전장을 구경하고 있는 것이다.
“때라면…….”
콱.
“큭……!”
이제는 손가락만 한 크기가 된 노웸 하나가 첸의 목덜미를 물었다.
개체 수가 두 배씩 늘고 끝없이 작아지다 보니, 완벽해 보이는 검무에 틈이 생겨 버린 것.
여리고 하얀 첸의 목에서 새빨간 피가 흘러내렸다.
생긴 건 저래도 육체는 ‘S’랭크 나이트일 텐데.
노웸의 집게는 크기가 줄었음에도 위력은 그대로였다.
“치유를…….”
“아서요. 저기 갔다간 마리아도 같이 휘말릴 수 있어요.”
다가가려는 마리아를 제지하자, 그녀가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전황이 너무 안 좋아요. 처음 허용한 공격이지만, 앞으로 계속…….”
“조금만 더 기다리죠. 이제 곧 끝날 겁니다.”
끝나다니.
노웸이?
아니면 첸이?
마리아가 그런 얼굴로 나를 쳐다본다.
백문이 불여일견이겠지.
나는 대답하는 대신 시선을 첸에게 돌렸다.
샤샥.
크기가 작아진 노웸들에게서 더 이상 ‘바사삭’ 하는 발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조금 더 은밀하고 치명적인 움직임만이 있을 뿐.
그 와중에도 첸은 한 손으로 목을 지혈하며 미친 듯이 칼을 휘두르고 있었다.
승기를 잡았다고 생각해서일까.
사방으로 널리 퍼져 있던 노웸들이 스스로 뭉치기 시작한다.
안 그래도 두꺼운 외피를 가진 놈들이 똘똘 뭉치자 난공불락의 요새처럼 견고해 보였다.
“군집……!”
육철완이 합쳐지는 노웸을 보며 침음했다.
첸의 발 주변으로부터 조금씩, 작은 돔이 만들어져 간다.
무릎 높이까지 차올랐다 싶더니, 어느새 어깨까지 솟아올랐다.
반면 첸의 움직임에는 별다른 변화가 없었다.
자신을 포위해 가는 노웸의 성벽을 묵묵히 바라보고 있을 뿐.
“저러면 집게가 문제가 아니라 질식해서 죽는 거 아냐?”
비수가 그런 질문을 할 정도로, 노웸이 만들어 낸 돔은 한 치의 빈틈도 찾아볼 수 없었다.
분할과 군집.
노웸은 마음만 먹으면 일개 사단 규모를 돔으로 가둔 뒤 천천히 영역을 좁혀 나갈 수 있었다.
하물며 첸 한 명을 가두는 건 일도 아닐 터.
첸의 칼끝에 자신들의 몸이 갈라지는 것.
그건 도리어 노웸들이 바라던 일이었을지도 모른다.
“도저히 못 참겠어요. 빨리 구해 줘야……!”
슈르르…….
지켜보던 강정현이 참지 못하고 한 발 앞으로 나선다.
그의 어깨에서 날카로운 줄기들이 이제 막 뻗어 나갈 무렵, 나는 강정현의 어깨를 살짝 잡았다.
“기다려 봐.”
“헌터님. 하지만……!”
강정현의 얼굴에 안타까움과 다급함이 묻어난다.
녀석이 보기에는 금방이라도 첸이 죽을 것 같겠지.
범위를 좁혀 오는 수천 개의 집게에 갉아 먹히거나.
그도 아니면 비수의 말대로 정말 질식해 죽거나.
그러나 나는 돔이 완전히 완성되기 전, 귀를 살짝 간지럽히는 목소리를 들었다.
‘파직’ 하는, 작은 스파크 소리를.
“첸은 일부러 가만히 있는 거야. 잘게 다져 놓은 다음에.”
“네……?”
“전기 구이를 하려면 그편이 좋으니까.”
파지지직.
전방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동료들이 너 나 할 것 없이 고개를 돌린다.
이제는 귀를 기울이지 않더라도 모두가 확실히 들을 수 있었다.
마른하늘에 날벼락이 치는 소리를.
꽈르르릉!
“?!”
한 치의 틈도 허용하지 않을 것 같던 새카만 돔에 백색의 균열이 보이기 시작한다.
바늘 하나 겨우 들어갈 것 같았던 틈이 새끼손가락만큼 벌어지고, 얼마 안 가 돔의 곳곳에 비슷한 균열이 수없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번…… 개?”
비수가 황당한 목소리로 혼잣말을 뱉었다.
핏빛을 닮은 붉은 하늘에는 구름 한 점 보이지 않았다.
당연히 이 자리에 번개가 내려칠 리 만무.
하나 지금 들려온 소리는, 명백히 천둥 번개의 소리를 닮았다.
꽈르르릉!
귀를 의심할 만한 소리가 한 번 더 들려온다.
견고한 노웸의 돔은 이제 위태로워 보일 만큼 균열투성이가 되어 있었다.
다시 한번 더.
꽈릉!
놀랍게도, 새카맣던 노웸의 벽이 이제는 완전히 백색으로 빛나고 있었다.
‘아니, 빛난다는 표현보다는…….’
벼락에 구워지고 있는 중이라고 해야겠지.
펑!!!!
파지지지지직.
“꺅!”
날카로운 벼락 소리와 무언가 폭발하는 소리, 그리고 타는 냄새가 동시에 전해져 온다.
첸의 주변을 둘러싸고 있던 노웸이, 어느새 새카만 잿더미로 변해 있었다.
그 단단한 외피와 내부의 몸체가 가루로 변해 사방으로 흩날리고 있었다.
벼락검.
첸이 마지못해 들려준, 자신이 사용하는 스킬의 이름이었다.
“보스급 몬스터를…… 혼자서…….”
눈으로 보고도 믿겨지지 않는다는 건 이럴 때 쓰는 말이겠지.
육철완이 벌린 입을 다물지 못하고 있었다.
다른 동료들이라고 해서 사정은 다르지 않았다.
모두가 기가 막힌 얼굴로 눈앞의 검객을 마냥 바라보고 있었다.
정작 첸은, 무심한 얼굴로 이쪽에 고갯짓을 할 뿐이었다.
“뭐 해. 안 갈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