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ison-Eating Healer RAW novel - Chapter (136)
136화
“하…….”
2층의 입구를 확인한 비수가 나직이 한숨을 내쉰다.
시작부터 그녀가 진절머리를 치는 이유는, 던전의 형태가 가장 싫어하는 타입이기 때문이었다.
더럽고, 좁고, 습한 동굴형의 던전.
심지어 입구의 끝에 다다르자 불투명한 유수(流水)가 나타났다.
“설마 여기를 헤엄쳐서 가라는 건 아니겠지? 이 드러운 물살을 가르고?”
비수가 절망스러운 얼굴로 붉은 머리칼을 쥐어뜯는다.
“언제부터 그렇게 깔끔을 떨었다고…….”
“야! 이게 지금 깔끔의 문제냐? 저기 둥둥 떠다니는 것들 좀 봐. 여기를 헤쳐 가느니 갠지스강에서 반신욕을 하겠다!”
“저, 저기…….”
강정현이 우물쭈물하면서 손을 들었다.
“이럴 때 쓸 만한 식물이 있긴 한데…….”
“오.”
비수가 반색을 하며 강정현의 손을 덥석 잡았다.
“그거 듣던 중 반가운 소리네! 뭐든 꺼내 봐, 얘!”
“네.”
강정현이 입구 앞으로 나서자 첸의 눈매가 매섭게 변했다.
육철완은 앞서 충격파를 막아 주기라도 했지, 강정현은 지금까지 이렇다 할 활약을 보인 적이 없었다.
우리야 강정현이 얼마나 유능한 헌터인지 알고 있지만, 첸은 아직 녀석에 대해 잘 모를 수밖에 없다.
‘벌써부터 궁금한데. 저놈이 어떤 표정을 지을지.’
“발동.”
슈르르…….
강정현의 왼팔에서 섬유 디바이스가 흘러내린다.
그와 동시에, 비어 있는 어깨 끝에서 녹색의 이파리들이 튀어나왔다.
촹!
“……?”
그리고 우린 첸을 향해 고개를 돌릴 수밖에 없었다.
녀석이 난데없이 칼을 빼 들었기 때문이다.
“너 뭐 하냐?”
“……?”
“이거 몬스터 아닌데.”
“!!”
강정현과 그의 몸에서 나온 식물.
그리고 우리의 표정을 확인한 첸이 그제야 상황을 파악한 듯하다.
귀까지 벌게진 얼굴을 한 채, 첸이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갑자기 뭐가 튀어나와서…… 그랬다.”
“낄낄.”
피아식별을 똑바로 하는 것이 무인의 기본.
엉뚱한 쪽으로 칼을 뽑았다는 사실이 무척이나 창피한 모양이다.
“뭐, 이해는 해. 나도 처음에는 이게 말이 되나 싶었으니까. 강정현은 나이트나 에스퍼 같은 일반적인 타입의 헌터가 아니야. 기타 능력으로 S티어를 받은, 한국에서도 유니크한 헌터지.”
“……진짜 이상한 놈들만 모인 집단이군.”
그 말에 나는 씨익 웃을 수밖에 없었다.
“너는 평범하고?”
“…….”
첸이 말없이 자신의 칼을 품 안에 갈무리할 때 즈음, 비수와 마리아는 유수 위에 띄워진 잎을 감상하느라 여념이 없었다.
“어머나~ 예뻐라!”
노란색의 중심부를 기점으로 시원시원하게 뻗어 나간 연두색의 꽃잎.
무섭게 생긴 살상용 식물들과 달리 지금 꺼내는 연꽃잎은 바라만 봐도 훈훈한 기분이 들었다.
물론, 그 꽃잎의 줄기를 따라가다 보면 사람의 어깨가 나온다는 게 문제지만.
특히나 비수는 물에 몸을 담그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 때문인지 진심으로 연꽃잎의 등장을 반기고 있었다.
“이대로 타면 돼?”
“네, 이 정도 인원은 문제없을 거예요.”
식물의 본체(?)가 그렇게 말한다면 의심할 필요가 없지.
우리는 조심스럽게 연꽃잎에 두 발을 올렸다.
둥실.
“오오.”
과연.
괜찮을 거라는 강정현의 말은 거짓이 아니었다.
무려 여섯 명이 연꽃잎 위에 올라탔음에도, 녀석은 푹신하게 우리를 떠받쳐 주었다.
“와, 마치 구름 위에 올라탄 거 같네.”
더러운 물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된 비수가 무척이나 만족스러운 얼굴로 연꽃잎을 쓰다듬는다.
“헌터님. 2층의 난이도는 바로 여기부터 출발하는 것 같습니다.”
“그러게요.”
나는 육철완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야 연꽃잎을 타고 순항하고 있지만, 다른 길드는 여기서부터 진이 빠져 버렸을 것이다.
유수의 길이는 생각보다 길었고, 물의 깊이는 점점 깊게 차올랐다.
날 때부터 물고기로 태어난 게 아닌 이상에야, 제아무리 헌터들이라 한들 이런 환경에서 매끄럽게 전투를 펼칠 수 없었을 것이다.
게다가 이번에는 다른 던전과 달리 시간 제한이 있지 않은가.
최대한 빨리 각 층을 점령해야 하는 상황에서 이런 형태의 던전은 너무나 골치 아픈 일이 될 것이다.
“물살을 헤치랴, 몬스터를 상대하랴. 이중고도 이런 이중고도 없겠군요. 그런데…….”
육철완이 말을 하다 말고 자신의 두꺼운 턱을 쓰다듬는다.
“유수를 타는 건 그렇다 치고, 왜 아직 몬스터가…….”
촤아아아아아아아악!!
육철완의 말에 대답이라도 하듯, 물살을 가르고 거대한 생명체가 우리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찌릿.
자고로 예로부터 그런 말이 있지 않은가.
입이 방정이라는 말.
우린 모두가 하나 되어 육철완을 향해 따가운 시선을 날렸다.
심지어 첸조차 부리부리한 눈을 더욱 치켜뜨고 있었다.
“아니…… 전 그냥…….”
-캬아아아아!
육철완의 다음 말은 이어지지 못했다.
등장하자마자 성질 급한 몬스터들의 공격이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1층에서는 눈깔이더니, 2층은 이빨인가.”
첸의 말처럼 유수에서 나타난 몬스터들엔 딱히 눈이라 부를 만한 기관이 없었다.
머리에 돋아난 구멍들은 오로지 사나운 이빨, 이빨들뿐이었다.
그들 본체에 연결된 기다란 손(?)의 끝에도 상어의 그것 같은 날카로운 이빨이 달려 있었다.
그리고 그 이빨들이, 가냘프기 짝이 없는 연꽃잎을 향해 날아들었다.
파캉!!
육철완이 어느새 방패 디바이스를 들어 일행을 보호한다.
그러나 어쩐 일인지, 그들의 공격 범위는 우리보다 다른 데 집중되어 있었다.
펑!펑!
몬스터의 손끝이 연꽃잎의 이곳저곳을 사정없이 뚫어 버린다.
그 빈도를 보니 우리를 향한 공격은 숫제 페이크처럼 보일 지경이다.
“이 새끼들……. 아무래도 보통 지능이 아닌것 같은데.”
내 말에 육철완과 첸이 고개를 끄덕였다.
홈그라운드의 이점을 살리기 위해, 일단 헌터들을 물가로 끌어내리려는 전략인 것이다.
“지능에 있어서는 가히 비수와 견줄 만하군.”
“너 진짜 죽을래!!”
비수가 으르렁거리는 와중에도 놈들은 가녀린 연꽃잎을 무작위로 물어뜯고 있었다.
“어, 어떻게 좀 해 봐. 버프는 원하는 대로 줄 테니까. 이대로는 가라앉고 말겠어.”
눈앞의 몬스터는 보스 몹은 아니다.
하지만 어떤 경우에 있어서는 보스 몹보다 더 상대하기 까다롭다.
A랭크 나이트의 몸 정도는 단숨에 넝마로 만들어 버릴 수 있는 강인한 이빨.
물속에서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는 기동성.
그리고 교활한 지능까지.
보스 몹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7성이라는 높은 난도를 가진 마수.
이빨의 생김새와 너무도 잘 어울리는 녀석의 이름은, ‘그리드(greed)’였다.
“흠. 가장 좋은 방법은 이 물속에 내 혈액을 섞는 건데.”
“혈액을?”
“어. 보아하니 물속에서 숨을 쉬는 타입 같은데, 어떤 식으로든 블랙 에테르가 스며들어 가면 곧바로 죽을지도 몰라.”
“그, 그거 좋은 방법인데? 당장 실행하자. 내가 손목 긋는 거 도와줄까?”
“……아니. 사양할게.”
“뭐야. 좋은 방법인 것처럼 말해 놓고선!”
“좋은 방법인 건 맞는데, 아마 그렇게 되면 너를 포함한 나머지 헌터도 다 죽을지도 몰라.”
“……!”
이 안에 있는 모든 생명체를 다 죽여야 한다면 모를까, 그런 방법은 사용할 수 없다.
게다가 이번 2층은 첸의 불신을 날리기 위해서라도 두 명의 활약이 필요하다.
무늬만 B랭크인 탱커 육철완.
그리고 S랭커 헌터인 강정현.
내가 굳이 말하지 않아도, 둘은 서로 눈빛을 마주치며 의견을 교환했다.
스팟.
큰 덩치에 어울리지 않게 육철완이 날랜 동작으로 연꽃잎을 박차오른다.
“철완 아저씨!”
비수가 비명에 가까운 소리를 지른다.
그녀의 입장에서 이 더러운 물에 빠지는 건 죽음보다 더한 형벌처럼 느껴질 것이다.
그러나 육철완은 거리낌 없이 유수 속에 몸을 담갔다.
눈앞의 ‘그리드’에게 스스로의 몸을 미끼처럼 내던진 것이다.
“준비해.”
나는 비수를 향해 낮은 목소리로 지시했고, 비수 또한 입술을 굳게 다물고 버프를 준비했다.
-캬아아.
안 그래도 연꽃잎에서 내리기만 바라고 있었던 ‘그리드’들이, 이게 웬 떡인가 싶어 득달같이 몰려든다.
수십 개의 이빨이 육철완에게 달려드는 모습은 정말이지 너무나 위태로워 보였다.
심지어 유수에 뛰어든 육철완에게는 그 흔한 방패 하나 없었다.
“후우…….”
육철완이 심호흡을 한 뒤 몸을 살짝 웅크렸다.
백색의 에테르가 그의 전신에 넘실거리기 시작한다.
그리고 곧, 그 기운은 딱딱한 형태로 실체화되었다.
‘갑옷……?’
이번에는 나조차 놀랄 수밖에 없었다.
에테르를 갑옷처럼 두르는 게 가능한 일인가?
물론 내 경우 코어를 직접적으로 습득하면서, ‘호신강기’라는 영구적 스킬을 얻은 적이 있다.
하나 그건 포이즈너의 이야기고, 육철완은 전형적인 나이트 탱커가 아닌가.
에테르가 너무 강해서 외부로 표출되는 경우는 있어도, 저렇게 딱딱한 형태로 실체화되는 경우는 극히 드문 일이었다.
‘안 그래도 S랭크 나이트급의 강성을 가진 육철완의 육체에, 에테르 갑옷이 둘러 쳐진다라…….’
어그로를 끌고 적의 공격을 받아 내는 것이 탱커의 사명.
그런 의미에서 보면, 지금의 육철완은 궁극의 탱커라 칭해도 모자람이 없었다.
콰득.
“꺅!”
수많은 이빨들이 육철완의 전신에 달라붙는다.
어깨나 허벅지는 물론이요, 얼굴과 목까지.
그들의 공격 범위에서는 일말의 인정도 찾아볼 수 없었다.
하나,
뚜둑.
녀석들의 사나운 이빨은 육철완의 어느 부분도 뚫어 내지 못했다.
뚫기는커녕, 일부에서는 ‘그리드’의 이빨이 부서지는(!) 일까지 벌어지고 있었다.
“오 마이 갓…….”
차마 물어뜯기는 걸 보지 못해 두 눈을 가렸던 비수가 이제는 휘둥그레진 눈으로 전장을 주시한다.
지금도 수많은 이빨들이 그에게 흠집을 내 보고자 지랄 발광을 하고 있지만, 육철완은 태산보다도 더 굳건히 그들의 공격을 받아 내고 있었다.
스윽.
꼼짝 않고 있던 육철완의 고개가 슬쩍 돌아간다.
그 시선의 끝에는 강정현이 있었고, 녀석은 굳은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뚝.
“어? 어맛?”
제자리에 머물던 연꽃잎이 갑자기 유수의 흐름을 따라 움직인다.
갑자기 물의 세기가 강해진 것일까?
아니었다.
단지, 이제는 더 이상 강정현의 지배에 놓이지 않은 것일 뿐.
녀석은 스스로 연꽃잎의 줄기를 절단했다.
강정현은 준비하고 있는 것이다.
연꽃잎이 아닌 새로운 식물을 꺼내 들 준비를.
촤아아아악.
강정현의 어깨에서 칠흑처럼 검은 줄기가 뻗어 나간다.
오랜 시간 자라 온 고목처럼 듬성듬성 금이 가 있는 수십 다발의 줄기들.
생긴 건 나무줄기처럼 생겼지만, 저건 강정현이 가지고 있는 식물 중 가장 강력한 강성을 지닌 녀석들이었다.
사람의 어깨에서 어찌 저런 식물이 돋아난단 말인가.
녀석의 능력을 줄곧 지켜본 나도 기가 막힐 노릇인데, 옆에 있는 첸의 심정은 어떨지 궁금했다.
고개를 돌려 보니, 첸은 딱 두 글자로 자신의 기분을 표현하고 있었다.
“쉬발…….”
-!
허를 찌른 습격이었지만, 교활한 ‘그리드’들은 본체를 향해 오는 강정현의 공격을 간파해 냈다.
제아무리 물속에서 자유로운 녀석들이라지만 유도탄처럼 날아오는 검은 줄기를 회피할 수는 없을 터.
놈들은 팔에 달린 이빨보다 몇 배는 커다란 아가리를 쩌억 벌렸다.
날아오는 줄기를 덥석 물어 절단시키려는 모습으로 보였다.
콱!!!
놈들은 합을 맞추기라도 한 듯 강정현의 식물을 동시에 물어 버렸다.
“울컥.”
동시에 여러 다발의 식물을 출수하고, ‘그리드’의 힘과 충돌하다 보니 강정현에도 무리가 온 모양이다.
하지만 녀석은 물러서기는커녕 비수에게 소리쳤다.
“누나!”
“알았어……!”
그리드의 본체가 힘을 쓰느라 육철완에게 향하는 공격이 무뎌진 상태.
비수는 자신이 가진 버프 전부를 강정현에게로 돌렸다.
“흐압!!”
잘못 본 것일까.
강정현의 검은 줄기들의 두께가 손가락 마디 하나 정도 두꺼워진 것만 같다.
그것도 하나가 아니라, 모든 줄기들이.
-끼긱…… 끽.
-!
그와 동시에 ‘그리드’의 이빨에서 칠판을 긁는 듯한 듣기 힘든 소리가 새어 나왔다.
버거워하고 있는 것이다.
버프가 동반된 강정현의 기운을.
버둥거리며 저항하던 그리드의 이빨이 천천히 안으로 말려들어 간다.
“!”
그리고 곧, 모든 식물의 줄기들이 그리드의 뒤통수를 뚫어 버렸다.
퍼버버버버법벅.
-캬아…….
첨벙.
비명조차 똑바로 지르지 못한 채 뒤로 넘어가 버리는 그리드들.
그와 동시에 육철완 주변에 있던 나머지 부위들도 유수에 빠져 버리고 말았다.
“자…… 잡았다! 우리 이쁜 내새끼!”
“읍.”
비수가 격하게 강정현을 끌어안았고, 육철완은 이쪽을 향해 엄지손가락을 치켜들었다.
그 방향은 정확히, 내가 아닌 첸을 향하고 있었다.
단 두 사람.
버프를 받았다고는 하나 두 명의 헌터만으로 2층의 중간을 통과한 것이다.
사정이 이쯤 되자 첸이 기가 막힌 목소리로 내게 물었다.
“너네 대체…… 뭐 하는 놈들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