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ison-Eating Healer RAW novel - Chapter (157)
157화
[말씀하신 물건이 도착했습니다. 연구소에서 뵙겠습니다.]‘왔구나.’
핸드폰을 잡은 손에 힘이 들어간다.
‘이레귤러’ 쪽으로 배송될 물건이 두 가지 있었다.
하나는 ‘트리니티’ 길드에서 얻어 낸 헬기형 디바이스.
두 번째는, 저 멀리 바다 건너 프랑스가 보낸 저주받은 물건.
암흑 물질(Dark matter)이었다.
조금 전 도착한 문자는 ‘엄브렐라 인더스트리’의 도이수가 보낸 것이었다.
‘이레귤러’는 소수 정예가 움직이는 집단이고, 다른 길드처럼 별도의 연구소가 존재하지 않는다.
물건이 물건이니만큼, 신뢰 관계가 형성된 최신식 연구소와의 협업이 필요한 상황.
그런 의미에서 도이수는 내게 완벽한 파트너나 다름없었다.
무엇보다, 그가 운영하는 별도의 연구소에 진 박사가 있지 않은가.
“마침 쉬는 날인데 잘됐네.”
이레귤러는 최근 며칠간 특별한 스케줄을 잡지 않았다.
계룡시에서 체력을 소진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았고, 곧 ‘히든 던전’에서 개고생을 할 테니 그동안 자유를 만끽한 생각이었다.
‘그래도 혹시 관심 있어 할 사람들이 있을지 모르니…….’
나는 이레귤러 멤버들이 있는 톡방에 공지를 올렸다.
[프랑스에서 암흑 물질이 도착했습니다. 내일 진 박사님 연구소로 이동할 예정인데 함께하실 분?]그러자 5초도 되지 않아 비수에게서 답장이 도착했다.
[ㅗ]“이런 슈발…….”
애초에 비수는 기대도 하지 않았다.
육철완은 부인과 함께 약속을 잡았다며 난처해했고, 첸도 [불참]이라는 짤막한 말을 남겼다.
웃기는 녀석이다.
지금 나와 함께 우리 집 소파에 앉아 있으면서.
“옆에 있으면서 직접 말하지, 뭐 하러 톡을 보내냐?”
“그랬다가 네가 나중에 딴소리하면 어쩌려고. 확실히 내 의사를 밝힌 것뿐이다.”
“와. 대놓고 사람을 사기꾼 취급하네.”
그러자 첸이 입술을 비틀며 이죽거렸다.
“그럼 아닌가? 헬기 강탈할 때 보니까 S급도 모자라 ‘초월급’ 사기꾼으로 불러야 할 것 같던데.”
“아니지. 아니지. 난 정당한 거래를 했을 뿐이야.”
“보통은 사기꾼들도 그런 변명을 대곤 한다.”
“이 자식이…….”
신뢰 관계가 이래 가지고서야 어찌 이레귤러를 이끌 수 있단 말인가.
내가 고개를 가로저으며 한탄하고 있을 무렵, 강정현의 톡이 도착했다.
[저도 불참할게요.]그건 꽤나 의외의 대답이었다.
강정현은 별다른 일이 없어도 부르면 일단 나오고 보는 친구였다.
혼자서는 딱히 할 일이 없다며 입버릇처럼 말하곤 했는데.
“정현이도 당분간 쉬고 싶은가 보네.”
내 말에 첸이 무뚝뚝하게 대답했다.
“그건 아닐걸.”
“응? 그게 무슨 말이야.”
“저번에 그러던데. 더 강한 식물을 키워 보고 싶다고.”
“여기서 더 강한 걸? 지구라도 정복할 생각인가.”
“육철완의 성장에 자극을 받은 모양이야. 강정현은 일반적인 나이트 타입이 아니니 육철완처럼 버프를 활용하기는 힘들겠지. 아마 자신만의 방법으로 식물의 힘을 키울 생각인 것 같다.”
“하루 종일 쇼핑 돌아다니는 녀석도 있는데. 기특하네.”
비지땀을 흘리고 있을 강정현을 떠올리자 절로 입꼬리가 올라간다.
“헌데, 너 정현이랑 언제 그렇게 친해졌냐?”
“친해져?”
“어. 나한테도 말하지 않은 걸 네가 알고 있으니까 기분이 묘하네.”
“묘할 게 아니라 자책을 해야 할 일 같은데. 그만큼 리더로서 신임을 받지 못한다는 이야기 아닌가?”
“야. 내기 한 판에 헬기를 따오는 리더가 세상에 어디 있냐? 나만 한 리더 있으면 나와 보라 그래.”
“하지만 결국 연구소는 혼자서 가게 되겠군.”
“큭…….”
이 자식이 언제 이렇게 말발이 늘었지?
팩트 폭행에 쓰린 속을 달래고 있을 무렵, 마지막 회신이 도착했다.
[같이 가요, 헌터님.]톡을 보낸 멤버는 마리아였다.
* * *
스포츠카에 한 쌍의 남녀가 탄 채 도로를 질주한다.
서로의 차림새도 말끔하고, 하늘도 더없이 청명하다.
누가 봐도 연인끼리 데이트를 하는 것처럼 보일 테지만, 유감스럽게도 오늘의 일정은 데이트와 거리가 멀었다.
“프랑코가 약속을 지켰네요.”
“암흑 물질을 안 보내면 죽인다고 했거든요.”
“…….”
마리아가 한차례 곱게 눈을 흘기더니 작게 탄식을 뱉었다.
“해선 헌터님은 정말 알다가도 모르겠어요.”
“제가요?”
“네. 그동안 글로리 길드에 있으면서 정말 다양한 헌터들과 함께했지만, 천해선 헌터님 같은 사람은 처음이에요.”
“그거 욕입니까, 칭찬입니까?”
“글쎄요?”
청명한 하늘보다 더 맑은 미소가 그녀의 입가에 맺힌다.
오늘의 일정이 데이트가 아니라는 게 아쉽게 느껴질 만큼, 마리아의 미색은 정말 단 한 치의 흠도 보이지 않았다.
“계룡시에서 있었던 일도 돌이켜보면…… 진짜 ‘야누스’는 송우상 대표가 아니라 천해선 헌터님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그렇게 해맑은 얼굴로 무시무시한 내기를 할 생각을 하다니…… 암흑 물질이 도착하지 않았다면 헌터님은 정말로 프랑스로 날아갔을 테죠.”
“제가 설마하니 정말로 프랑코를 죽이겠어요?”
평소와 같이 너스레를 떨었지만, 마리아는 단호한 어조로 대답했다.
“최소한 절반 정도는 죽였겠죠. 손에 암흑 물질을 든 채로.”
음.
차마 그 말까지 부정할 수는 없었겠군.
“하지만 제 결벽증 때문에 헌터님이 가시는 길을 막을 생각은 없어요.”
결벽증이라니.
하마터면 핸들을 잘못 틀 뻔했다.
목소리는 여전히 고왔지만, 그녀가 하는 말은 평상시의 마리아와 느낌이 전혀 달랐다.
“저도 알고 있어요. 팀원들을 이끌고 세상을 구하기 위해서는 포장된 도로만 달릴 수 없다는 걸요. 때로는 피를 묻히고, 때로는 손가락질을 받아야 하는 일도 생기고, 때로는 사기도 치겠죠.”
“에헤이. 사기는 안 칩니다. 여러 번 말씀드리지만, 헬기는 정당하게…….”
“그래도 저는 구건이 대표처럼 자기 자신을 잃지는 않았으면 좋겠어요.”
“!”
이번에는 정말로 차량이 살짝 경로를 이탈했다.
감정이 핸들에 고스란히 전달되니 속마음을 숨길 수가 없군.
“더 강해지고 싶은 욕심 때문에, 스스로 파멸하는 걸 또다시 보고 싶지 않거든요.”
이제 보니 암흑 물질은 구실일 뿐.
마리아는 오늘 이 말을 하고 싶어서 나온 듯 보였다.
“제가 구건이처럼 암흑 물질을 사용할까 봐 걱정되시나 봐요?”
“저는 천해선 헌터님이 구건이 대표와는 다르다는 걸 알아요. 하지만 헌터라면 누구나 더 강해지기를 원하고, 상대방과의 격차가 커질수록 큰 상실감을 느끼게 되죠.”
내가 마인을 상대하고 난 뒤 느꼈던 여러 가지 더러운 감정들.
그건 어쩌면 구건이가 나에게 느꼈던 감정과 비슷할지도 모른다.
마리아는 바로 그 부분을 거론하고 있었다.
“구건이 대표가 사업적으로는 어땠는지 모르지만, 적어도 훈련에 있어서는 언제나 성실하고 정직했어요. 그런 사람이 암흑 물질을 몸 안에 집어넣었다는 건…… 정말 악마에게 영혼을 팔았다고밖에 생각이 들지 않아요.”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저는 구건이처럼은 안 됩니다.”
시선은 전방으로 향하고 있지만, 마리아의 은근한 시선이 느껴진다.
“진짜라니까요. 제가 한평생 몸 안에 든 독 때문에 그 고생을 했는데, 또 이상한 걸 집어넣을 리 있겠어요?”
“그건…… 그렇지만…….”
“마인을 상대하고 난 뒤 조급함을 느꼈던 건 사실입니다. 놈은 터무니없이 강했고, 내일 당장 쳐들어온다고 해도 이상한 일이 아니니까. 하지만 그렇다고 암흑 물질이 희망이 될 거라 생각한 적은 없어요. 그 물질을 사용한 뒤 결말이 어떻게 됐는지 똑똑히 목격했으니까요. 게다가…….”
“?”
“희망은 이미 다른 곳에서 찾았습니다. 최근에 이사순 회장에게서 특별한 물질을 얻었거든요.”
“특별한…… 물질이요?”
“네. 암흑 물질과 정반대에 있는 기운인데, 아직은 컨트롤이 미숙해서 보여 드릴 수가 없어요.”
“흐음.”
마리아가 다분히 미심쩍다는 반응을 보였다.
“……이제는 무슨 말만 하면 사기 치는 게 아닌가 의심하는 거 같은데. 맞죠?”
“호호. 아니에요.”
다른 희망을 발견했다는 말 때문일까.
마리아의 얼굴이 이전보다 조금 더 밝아진 느낌이었다.
“마인을 상대하기 위한 단서는 이미 얻었어요. 하지만 암흑 물질은 그 나름대로 연구할 가치가 있습니다. 암흑 물질에 흑화된 헌터에 대응하고, 어쩌면 그들을 원래 상태로 돌려놓을 가능성도 있겠죠.”
“그렇게 된다면 정말 좋겠어요.”
적을 알고 나를 알아야 패배가 없다고 했다.
암흑 물질이 어떻게 헌터의 몸을 지배하는지.
그리고 그 힘의 원천은 무엇인지.
키메라가 된 헌터들뿐만 아니라 마인들을 상대할 때에도 중요한 단서가 되어 줄 것이다.
“아. 저기 나와 계시네요.”
저 멀리 입구에 서 있는 진 박사의 모습이 보인다.
입 안에 바람을 집어넣은 듯, 빵빵한 볼살은 여전했지만 조금 달라진 면도 있었다.
‘살이 조금 찌셨네.’
본인 말로는 마음이 편하면 대책 없이 살이 찐다고 했는데, 이곳에서의 생활이 꽤나 만족스러운 듯하다.
무엇보다 가장 큰 변화는 진 박사가 아무런 불안감 없이 ‘외부’에 나와 있다는 점이다.
편집증으로 꽤나 고생했던 점을 생각하면 장족의 발전이라 할 수 있었다.
“어서 오거라. 이런 곳에서 보기에는 너무 안타까운 그림이구나.”
“네?”
“둘 사이가 보기 좋아서 하는 말이다.”
“에이. 무슨 말씀을.”
말도 안 되는 소리라며 한 팔을 휘젓고 있는데, 마리아의 귀가 천천히 달아오르기 시작한다.
……반응이 왜 이래?
“도착한 지 얼마 안 된 터라 정밀한 분석은 하지 못했다. 하지만 그냥 육안으로 보기에도 평범한 녀석은 아니더구나.”
실험실로 이동한 우리는 플라스크 안에 담긴 검은색 물질을 응시했다.
고체인지 액체인지 확실히 구분조차 되지 않는 불길한 물질.
심지어 녀석은 스스로 움직이기라도 하듯 이따금씩 몸을 부르르 떨었다.
“움직임만 보면 던전에서 보던 하급 슬라임 같네요.”
“그렇지? 물질이라기보다는 하나의 생명체 같은 느낌이 들더구나. 우선은 급한 대로 이놈을 실험용 쥐에 투입해 보았다.”
진 박사가 한쪽에 있는 투명한 정사각형 상자를 가리켰다.
“흡.”
숱하게 전장을 치른 마리아조차 급히 입을 틀어막아야 할 만큼, 투명 상자 안은 참담하기 그지없었다.
서로가 할퀴고 잡아먹어 형체를 알아볼 수 없는 것들이 상자 안에 널브러져 있었고, 본래는 하얀색이었을 피부에는 선혈이 낭자했다.
“극히 미량을 집어넣었는데도 이렇게 되더구나. 보다시피 성격이 굉장히 포악하게 변했고 힘도 본래의 것보다 몇 배는 증가했다.”
“키메라가 된 헌터와 굉장히 흡사하네요.”
보기 역겨웠지만 나는 상자 안의 이곳저곳을 확인해 보았다.
이 녀석들을 인간으로 대입해 보면 지옥도가 따로 없겠지.
그런데, 멀쩡한 것 하나 없어 보이는 이 상자 안에 유일하게 훼손되지 않은 것이 보였다.
“이건 뭐예요?”
“인공 피부를 집어넣어 보았다. 이 녀석들이 인간의 몸에 대해 어떻게 반응하는지 살펴봤지.”
“그런데…… 멀쩡하네요?”
“그래. 우리는 키메라가 된 헌터들이 사람을 먹는 것에 대해 어떤 메커니즘이 작용하는 건지 확인해 보려 했다. 하지만 우리가 했던 가정은 근본적으로 잘못된 것이더구나.”
“가정이…… 잘못됐다?”
진 박사가 차갑게 가라앉은 눈으로 말을 이었다.
“네가 본 대로 실험용 쥐들은 인간의 피부에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단순히 사람을 잡아먹도록 조종하는 게 아니었던 거지. 자신과 닮은 녀석들에 대한 끝없는 식욕. 그게 바로 본질인 것 같구나.”
“자신과 닮은 녀석들이라면…….”
“동족 포식.”
“!”
진 박사의 말에 얼굴이 절로 딱딱히 굳었다.
“아무래도 암흑 물질은 자신과 같은 종을 잡아먹도록 설계된 모양이다. 만약 이 물질이 인간은 물론이고 모든 동물에게 영향을 끼친다면…….”
모든 종족이 같은 종족을 잡아먹는 세상.
그 아비규환의 끝에 무엇이 있을지는 명약관화한 일이었다.
“땅에 있는 모든 생명이 멸종하겠군요.”
내 대답에 진 박사가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