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ison-Eating Healer RAW novel - Chapter (16)
16화
“헌터가 되는 방법을 배운다더니, 그게 연애 헌터였…….”
“아, 글쎄 그게 아니라니까?”
나는 억울하다.
하지만 내가 누나라도 어처구니가 없을 것이다.
병이 낫기가 무섭게 매일같이 싸돌아다니며 헌터 수업을 받는다던 놈이, 갑자기 여자를 데리고 오다니.
그냥 놀러 온 것도 아니다.
헌터 자격 시험을 보기 전까지 이 소매치기범은 우리 집에서 머물 예정이다.
게다가 그 기간은 무려 두 달.
누나가 이렇게까지 당황하는 모습은 실로 오랜만에 본다.
그러나 이 착한 심성의 소유자는 심지어 나를 이해하려는(?) 노력을 하기 시작한다.
“그래……. 한창 혈기 왕성한 나이지. 게다가 넌 이제 막 건강해진 셈이니, 그 에너지가…….”
“그 에너지가 그런 에너지로는 안 갔으니까 안심하셔도 되고요.”
“혹시 저 아이를 책임져야 할 일이 생긴 건…….”
“아니라니까!”
나는 몸서리를 치며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고, 비수 이 요망한 것은 입을 가린 채 쿡쿡 웃을 뿐이었다.
당연히 합당한 이유는 있다.
돈도 돈이지만, 비수는 당분간 내게 굉장히 중요한 도움을 줄 것이다.
반대로 나 또한 그녀에게 제공할 것이 있고 말이다.
야차의 제안은 비수의 말대로 ‘칼’ 같았다.
이리저리 따져볼수록 무척이나 합리적인 거래다.
문제는, 그 모든 것을 누나에게 공유할 수가 없다는 점이다.
“배려심 많은 우리 해선이가 누나에게 이럴 줄은 몰랐는걸. 그러니까 비수 씨가 여기 머무는 것만으로도 훈련이 된다는 말이지?”
“어, 어? 어어 맞아! 누나도 알다시피 내 안에 나쁜 기운이 많았잖아. 그때 구해 준 헌터분의 말에 따르면 당분간 함께 지내야 한댔어.”
“그분도 꽤나 무례한 분이시네. 너에게 가족이 있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을 텐데.”
누나의 고운 미간에 가느다란 두 줄이 생긴다.
남에게 험한 말 한번 뱉어 보지 않은 사람이 저런 반응을 할 정도면 어지간히 뿔이 났다고 봐야 한다.
이렇게 된 이상 남은 방법은 하나.
‘금융 치료’뿐이다.
우리 누나가 속물적인 사람이 아니라 좀 걱정되긴 하지만…….
“아, 물론 사례는 지불했어. 숙식비를 넉넉하게 챙겨 주셨거든.”
“돈이면 다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인가 보구나? 사람의 마음을 돈으로 살 수는…….”
역시나 그런 건가.
하지만 나는 이왕 꺼낸 말을 매듭이었다.
“천만 원이야.”
“굉장히 훌륭하신 분이네. 따로 전화 안 드려도 괜찮을까? 책임지고 보살펴야겠어.”
“누나…….”
아무래도 난 누나를 잘 모르고 있었던 것 같다.
물론 거절하기엔 너무 큰 액수이긴 하다.
두 달 거주하는 대가로 천만 원이라니.
어느새 비수를 바라보는 누나의 눈매가 예전으로 돌아왔다.
자애로움이 가득 담긴 서글서글한 눈매.
하지만 어쩐지 전과 조금 다른 느낌(…….)이 든다.
“어머나! 너무 맛있어요.”
“손님이 올 줄 알았으면 고기라도 사 오는 건데. 많이 들어요. 비수 씨…….”
“씨라니요? 편하게 비수라고 부르세요 언니.”
“호호. 그럴까?”
언니 소리가 잘도 나오는군.
비수는 누나가 차린 밥상을 깨끗이 다 비워 냈다.
다른 집에 비하면 소박한 식단이었을 텐데, 억지로 먹는 모습 같지는 않았다.
자신이 평소 먹는 거에 비하면 진수성찬이라나 뭐라나.
거금이 들어왔으니 내일부터는 반찬이 조금더 풍성해질 수 있겠지.
뭐하면 내가 직접 만들어 줄 수도 있…….
뭔 개소리야? 내가 왜.
설거지를 하는 와중에 나는 고개를 다시 세차게 흔들어야만 했다.
“언니. 제가 어깨 주물러 드릴까요? 제가 뭉친 근육 푸는 걸 엄청 잘하거든요.”
“그…… 그래? 그럼 한번 부탁할까?”
경계를 할 때는 표독스럽기 그지없더니, 호의적일 때는 붙임성이 상당히 좋다.
저런 성격이었으니 암시장에서 야차와 함께 생활할 수 있었던 걸지도.
“어머나……. 정말 시원하다. 마사지사 해도 되겠어.”
“히히. 아버지에게 이쁨받고 싶어서 틈틈이 배웠어요.”
어쩐지 ‘아버지’가 그 ‘아버지’가 아닌 것 같은데.
뭐 상관없나.
영문을 모르는 누나는 그저 눈을 감은 채 비수의 손길에 몸을 맡기고 있었다.
“어쩜……. 라인이 이렇게 좋아요, 언니? 정말 비율이 예술이에요.”
“얘는. 언니한테 못하는 소리가 없어.”
누나가 입을 가리며 호호하고 웃는다.
말은 그렇게 해도 싫지는 않아 보인다.
나는 설거지를 마친 뒤 비수를 불렀다.
“마사지 끝나면 내 방으로 와.”
“너도 받게?”
“미쳤냐!”
정말이지 배우고 싶은 넉살이다.
꺄르륵 거리는 둘을 뒤로하고 나는 방으로 들어와 컴퓨터를 켰다.
‘어디 보자…….’
비수를 데려온 이유는 두 가지다.
첫 번째는 ‘기동성’.
언제까지 터미널 버스와 대중교통으로 던전을 오갈 수는 없다.
미성년자인 내가 비수가 가져온 차를 타고 이동하면 시간과 공간의 제약이 사라진다.
비수는 나와 동갑이지만, 차와 면허가 있다.
차는 야차가 내어 준 것이고, 면허는 구라다.
나는 무의식 중에 야차를 향해 ‘가짜 면허증은 위법 아닌가?’라고 했다가 모멸스러운 눈빛을 받아야만 했다.
암시장의 대부에게 위법을 운운하다니.
쥐구멍이 있다면 들어가고 싶었다.
어쨌거나 내 우려와 달리 비수의 운전 실력은 상당히 뛰어난 수준이었다.
과속을 즐긴다는 점만 빼고.
버스가 이동한 시간을 감안하면 정확히 절반의 시간 만에 대전에서 집에 도착해 버렸다.
두 번째는 ‘정보‘.
야차의 말이 사실이라면 서울과 대전에 위치한 포이즌 던전은 대부분 털렸다고 봐야 한다.
애초에 포이즌 던전 자체가 그렇게 많은 수준이 아니다.
야차는 비수를 통해 희귀초가 살아 있을 스팟을 알려 주겠다고 했다.
희귀초를 찾는 데 기회비용이 줄어든다는데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비수가 알려준 지역으로, 비수의 차를 타고 이동한다.
야차의 제안은 나로서 거부할 수가 없는 매력적인 것이었다.
하지만, 야차가 그랬듯 나로서도 ‘검증’은 필수.
우려와 달리 누나와 비수는 짧은 시간 안에 급도로 가까워졌으나, 야차의 말 중에서 틀린 점이 있다면 나는 단칼에 비수를 돌려보낼 것이다.
지금 이 시간에도 비수에게 내 침대를 내어 주고 있으니까……!
부스럭.
쿠션감이 없는 소파에서 자다 보니 없던 담이 오는 것 같다.
하지만 도리가 없다.
좁은 집 안에서 누군가는 밖에 나와 자야 했으니까.
그렇다고 같은 침대에서 누나나 비수와 함께 잘 수는 없지 않은가.
“더 자야지…….”
새벽에 잠이 깬 나는 눈을 비빈 뒤 다시 돌아누웠다.
막 다시 잠이 들려는 찰나, 이쪽으로 누군가 다가오는 기척이 느껴진다.
물을 마시려고 나온 걸까.
그런데 그 ‘누군가’가 좁디좁은 소파 위로 올라온다.
달빛에 비치는 붉은색 머리칼.
비수와 나는 완전히 밀착한 상태가 되었다.
“너 미쳤냐?”
안 그래도 누나가 오해하고 있는 마당에, 여기가 어디라고(?) 올라와.
그러나 내가 낮게 으르렁거렸음에도 비수는 떨어지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양팔로 내 목을 그러안았다.
오 맙소사.
명치를 그냥 팔꿈치로…….
“부탁이야. 너무 무서운 꿈을 꿨어. 잠시만…….”
“……?”
목소리에 담긴 감정이 너무 무거워서 몸을 움직이려다 말았다.
등 뒤로부터 미세한 진동이 느껴진다.
떨고 있는 건가.
아니면 울고 있는 건가.
시간이 좀 더 흐르자 진동이 멎는다.
그녀의 숨도 평온해졌다.
잠이 완전히 들었나 싶더니, 이번에는 잠꼬대가 들렸다.
“아빠…….”
“……?”
아빠?
처음에는 야차를 말하는 줄 알았다.
하지만 그녀의 입에서 나온 단어는 ‘아버지’가 아니라 ‘아빠’였다.
게다가 그 호칭 안에 담긴 목소리가 ‘아버지’와는 근본적으로 달랐다.
사무치게 그립고 슬픈 목소리.
그 기운에 나는 그만, 할 말을 잃고 말았다.
“왜 나를 팔았어? ……나도 돈 많이 벌 수 있는데…….”
“…….”
잠꼬대라고 하기엔 너무 무거운 이야기로군.
나는 가만히 누워 오늘 비수의 표정을 떠올려 보았다.
넉살이 좋고 낯가림이 없는 녀석이다.
특히 셋이서 밥을 먹을 때는 정말이지 행복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뽀리에게 모습을 들켰을 때는 표독스럽기 그지없는 표정이었지.
무엇이 그녀의 본 모습일까.
지금 고개를 돌려 비수의 얼굴을 본다면, 그게 바로 그녀의 본모습일지도 모른다.
“무서워……. 도망치고 싶어…….”
그녀의 목소리에 물기가 조금씩 배어 나온다.
또 시간이 흐르고, 비수가 깊은 잠에 빠졌다.
나는 비수를 흔들어 깨우는 대신, 살짝 안아 들고 내 방으로 갔다.
‘가볍네.’
어렸을 때 고생한 거로 따지면 내 쪽도 상당한 권위자(?)라 할 수 있다.
근데 비수도 가냘픈 체구에 어울리지 않는 풍파를 겪어 온 듯하다.
입술부터 뺨까지 이어진 끔찍한 흉터는 분명 누군가가 일부러 찢어 버린 것이다.
그리고 그건 아마 야차의 짓일 거다.
야차에게 구라를 치다 걸리면 무사하지 못한다고 했을 때, 무의식적으로 뺨을 어루만졌으니까.
스윽.
나는 비수를 똑바로 눕힌 뒤 이불을 덮어 주었다.
내 침대와 내 이불을 다른 사람이 사용하는 건 처음이군.
그녀는 아직 아빠를 보고 있는지 눈물방울이 맺혀 있었다.
슬픈 눈매와 기괴한 웃음처럼 보이는 섬뜩한 흉터.
나는 말 없이 그녀의 얼굴을 바라본 뒤 조용히 방을 나왔다.
* * *
“꼭 찍어 먹어 봐야 똥인지 된장인지 아는 애들이 있다니까? 깔깔.”
“입 다물어라.”
부우우웅.
비수가 코를 한껏 높이며 액셀레이터를 밟는다.
BNW에서 나온 구형 세단이 쏜살같이 고속 도로를 질주한다.
비수에게 차량을 빌려준다길래 오래된 고물차를 내어 줄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차량의 상태가 훌륭하다.
“잘도 이런 차를 내어 줬단 말이지.”
“이거? 이건 아버지가 가지고 있는 것 중에 제일 구식이야. 애초에 고가의 자동차가 아니면 담보로 쳐주지도 않거든.”
“담보? 전당포도 부업으로 하는 줄은 몰랐는데.”
“암시장에는 별의별 인간들이 다 찾아오니까. 겁대가리 없이 아버지에게 사기를 치다 걸려서 사지가 뜯겨 나가고 차를 빼앗기는 경우도 있고, 독편(毒片)에 중독돼서 간이고 쓸개고 다 내주는 경우도 있어.”
“독편(毒片)? 그게 뭐야.”
“던전에서만 자라는 이종 식물이야. 그걸 어떤 식으로든 가공해서 몸 안으로 집어넣으면, 환각에 빠지지.”
“……마약이군.”
“맞아. 일종의 마약이지. 독편에 빠지면 애미 애비도 못 알아보는 게 다반사야. 이 물질의 가장 큰 문제가 뭔지 알아?”
“뭔데?”
“인체에 무해하다는 거야. 중독성만 빼고.”
“인체에 무해한 게 단점이야? 오히려 장점 아닌가?”
“아니. 단점이지. 저주받은 단점.”
비수의 시선은 전방을 향하고 있지만, 그녀의 눈에는 서슬 퍼런 독기가 서려 있었다.
“마약의 끝은 언제나 파멸뿐이야.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그 끝이 항상 정해져 있지. 하면 할수록 몸이 망가지니까, 언젠가는 엔딩이 있어. 물론 새드 엔딩뿐이지만.“
죽음이나 폐인이 되는 것.
언제냐가 문제일 뿐, 비수의 말대로 그 끝은 항상 정해져 있다.
“하지만 이 독편(毒片)은 그런 게 없어. 해도 해도 몸에 무리가 따르지 않아. 중독된 사람들은 몸이 멀쩡한 상태로 영원히 독편에 심취하게 돼.”
“……네가 저주받은 단점이라고 할 만하군.”
“그래. 까 놓고 말해서 본인만 뒤지면 주변 사람도 편한데, 독편은 그런 것도 없거든.”
끝이 보이지 않는 지옥.
독편(毒片)의 후유증은 생각보다 훨씬 악랄한 것 같았다.
“아, 보인다.”
비수와 함께할 첫 번째 던전이 창밖 너머로 모습을 보이기 시작한다.
아니지.
정확히 말하면 네 번째 던전이다.
나는 야차가 한 말이 사실인지 나름대로 검증을 해야 했고, 서울·경기에 위치한 세 개의 포이즌 던전을 트라이 했다.
그리고 깨달아야 했다.
야차의 말에는 한 치의 거짓도 없다는 걸.
세 군데 중 두 곳은 희귀초가 발견되지 않았고, 나머지 한 곳은 어쩐 일인지 경비가 삼엄해 입장조차 하지 못했다.
일이 이렇게 되고 나니 비수가 내게 얼마나 필요한 존재인지 알 수 있었다.
발도 되어 주고, 눈도 되어 주는 존재가 아닌가.
‘똥인지 된장인지…….’ 이딴 말만 하지 않는다면 완벽할 텐데.
“오 예! 경비 서는 사람도 보여! 실력 발휘 좀 해 볼까?!”
“……놀러 왔냐.”
“암시장에 비하면 여긴 놀이터나 다름없거든?”
비수는 희희낙락한 얼굴로 차 안에서 하얀 가루를 종이 포장지에 담기 시작했다.
무력으로 경비를 진압할 수도 있지만, 정체가 발각된다면 헌터 시험에 응시할 수 없게 된다.
하지만 여기 있는 소매치기범이라면 이야기가 다르지.
이제는 경비가 있어도 자연스럽게 던전에 들어갈 수 있다.
“다녀올게.”
인사말을 끝으로 비수의 모습이 사라졌다.
그리고 몇 분 지나지 않아, 경비를 서고 있던 말단 헌터가 바닥에 털썩 주저앉아 코를 골기 시작한다.
‘졸라 쉽네.’
경비 하나를 뚝딱 해치우는 모습을 보니 은신 스킬을 배우고 싶은 욕구가 치솟는다.
하지만 지금 당장은, 저 던전 안으로 입장하는 게 먼저다.
휙휙.
던전 입구 안쪽에서 비수가 손을 흔든다.
나는 차에서 내려 근처까지 걸어간 뒤, 발 쪽에 모인 블랙 에테르를 전력으로 활성화시켰다.
파바박.
일부러 CCTV를 슬로우로 돌리지 않고서야 통과했다는 사실조차 모를 것이다.
“후아……. 너 순간이동 할 줄 알아?”
순식간에 코앞까지 다가온 날 보며 비수가 휘파람을 분다.
나는 그녀의 말을 무시한 채 준비물을 확인했다.
“해독제. 잘 챙겼지?”
“오케잉.”
“좋아, 들어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