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ison-Eating Healer RAW novel - Chapter (162)
162화
“확실해? 네가 잘못 본 거 아냐?”
대한민국 헌터 협회 경영지원팀, 권익현 팀장의 목소리에 날이 바짝 서 있다.
그는 안 그래도 기분이 좋지 않은 상태다.
기본적으로 ‘글로리 길드’와 인연이 있어 ‘이레귤러’가 달갑지 않은 마당에, 그들과 관련된 ‘재응시’ 업무가 추가된 것이다.
헌터 자격 시험은 본래 표혁규 감독관의 몫이었지만, 그는 사유도 불분명한 해외 출장 중으로 자리를 비워 버렸다.
자연스레 헌터 자격 시험을 진행할 백업 직원이 필요했고, 이사순 회장은 권익현 팀장에게 그 업무를 맡겼다.
업무라는 게 대부분 그렇듯, 누군가의 백업을 봐준다고 해서 내 자신의 일이 줄어들지는 않는 법이다.
졸지에 자신이 맡고 있는 업무에 백업 업무까지 추가된 상황.
당연히 권익현의 마음은 평온할 리 없었다.
그가 날 선 목소리로 묻자, 부하 직원으로 보이는 남자가 몸을 움찔한다.
스스로도 이상하다 싶어 몇 번이나 확인했지만, 수차례 다시 봐도 신청 내용에는 그렇게 되어 있었다.
“확실합니다. 육철완의 응시 대상 항목은 ‘S’랭크 나이트. 그리고 ‘B’랭크 에스퍼입니다.”
“허…….”
박복하게 움푹 들어간 권익현의 양 볼이 작게 요동친다.
‘이게 무슨 밑도 끝도 없는 자신감이야?’
이전까지 확인한 육철완의 등급은 ‘B’랭크.
보통의 경우 재심사를 요청할 때는, 기껏해야 바로 위 단계로 응시를 하기 마련이다.
한데 지금 육철완의 경우는 어떠한가.
한 단계 위는커녕, 두 단계 상승도 모자라 에스퍼의 시험까지 함께 보겠다 신청을 했다.
‘S’랭크 나이트, 거기에 더해 ‘다중 능력자’까지 말이다.
‘이건 뭐 두 마리 토끼가 아니라, 토끼 떼를 잡는다는 표현이 어울릴 지경이군.’
“정신이 나가 버린 거 아냐? 이런 식의 성장이 가능할 리가 없잖아.”
“그게…… 저도 영문을 모르겠습니다. 접수를 한 직원 말로는 특별히 이상한 점을 찾아보지 못했다 하던데…….”
“평생 용을 써도 티어 한 단계를 올리지 못하는 헌터가 태반이거늘…… 기가 막혀서.”
이걸 뭐라고 해석해야 할까.
객기? 아니면 만용?
뭐가 됐든 분명한 건, 육철완이 이 시험을 통과할 리 없다는 점이었다.
그러다 문득, 권익현은 육철완과 연관된 기사를 하나 떠올렸다.
‘유일한 B랭크 헌터 육철완, 그는 과연 이레귤러의 자격이 있는가?’
제목만 봐도 알 수 있듯 육철완에 대한 저격성 기사였다.
‘이레귤러’는 그동안 전례가 없었던 엄청난 특권을 가진 집단이다.
헌터 협회가 천해선에게 진 빚과 은혜를 갚기 위해 만들어진 특별한 제도.
특히나 관할 구역에 목을 매는 길드들에 있어, 이레귤러의 특권은 부러움과 선망의 대상이었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시기의 대상이기도 했다.
백번 양보해 천해선을 비롯한 다른 ‘S’랭크 헌터들은 자격이 있다고 치자.
하지만 육철완은 아니었다.
그는 게이트와 던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B’랭크 나이트였고, 그 정도의 스펙은 대형 길드라면 발에 치일 만큼 많았다.
한데 그는 다른 ‘S’랭커들과 함께 ‘이레귤러’ 활동을 지속하고 있었다.
가지고 있는 막강한 권한에 비해 스펙은 상대적으로 초라하다 보니, 헌터들 사이에서도 그를 시기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권익현이 떠올린 기사도 그런 질투들이 한데 모여 만든 감정의 배설물 같은 것이었다.
“자네.”
갑자기 냉정을 찾은 권익현이 부하 직원을 불렀다.
“네. 팀장님.”
“자네 생각에는 육철완이 자격 시험에 통과할 확률이 몇 프로나 된다고 생각하나?”
“……?”
부서가 어디든 협회의 밥을 먹는 직원들이라면 헌터에 대한 지식은 빠삭한 편.
잠시 생각에 잠겼던 부하 직원이 조심스럽게 대답했다.
“1%도……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나보다는 높군.”
권익현은 그렇게 말하며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그래. 아무리 생각해도 육철완이 이 시험을 통과한다는 건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불가능한 걸 알면서도 재시험을 보는 이유는 뭘까?’
잠시 동안 생각에 빠졌던 권익현이 마침내 만족스러운 결론을 도출했다.
“아무래도 육철완이 눈이 먼 것 같아.”
“눈이…… 멀었다구요?”
“생각해 봐. 통과하지도 못할 시험을 기준만 잔뜩 올려쳐서 도전하는 이유가 뭐겠어? 녀석도 알고 있는 거지. 자기가 ‘이레귤러’에 한참 모자란 인물이라는 걸 말이야.”
“그럼…… 실패할 걸 알면서도 응시를 했단 말입니까?”
“당연하지. 어차피 시험에 떨어진다면 ‘A’랭크보다 ‘S’랭크가 더 가오가 살겠지. 거기에 번지르르한 ‘다중 능력자’ 시험까지 겹쳐서 본다면 말이야.”
권익현은 조각난 퍼즐을 조립하는 사람처럼 꽤 신이 난 모습이었다.
부하 직원은 그의 말을 들으며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한편으로는 뭔가 미심쩍은 기분이 들었다.
‘분명 팀장님 말씀이 맞아. 육철완이 그 시험을 통과하는 건 제로에 가까워. 하지만…….’
그는 머릿속으로 이레귤러 멤버들을 하나하나 그려 보았다.
각자 개성이 확실하기는 해도, 지금처럼 허세를 떤다나 무리수를 던지는 느낌은 아니었다.
특히나 행사 때 잠깐 지켜본 육철완이라는 남자는, 덩치와는 달리 굉장히 소탈해 보이는 인상이었다.
‘지속적으로 스트레스를 받으면 사람의 성격이 변하기도 한다지만…….’
뻔히 드러날 거짓말로 육철완이 시험을 친다?
그건 ‘S랭커 육철완’만큼이나 어울리지 않아 보였다.
“기자들 불러.”
권익현 팀장이 상념에 빠진 부하 직원의 정신을 일깨웠다.
“기자들이요? 원래 재응시 때에는 딱히 보도 자료를 안 내지 않습니까.”
“이런 기회를 그냥 두고만 볼 거야? 기자들을 잔뜩 불러서 개망신을 줘야 할 거 아냐.”
권익현이 답답하다는 듯 혀를 찬다.
도대체 육철완이 시험에 떨어지는 게 왜 ‘기회’가 된다는 것인가.
글로리 길드, 그리고 배정대와 특별한 인연이 없는 부하 직원에게는 도통 모를 일이었다.
하지만 그가 확실히 알고 있는 단 한 가지 진실은 있었다.
권익현이 시키는 일에 토를 달아서는 안 된다는 것.
그는 기자들에게 연락을 돌리겠다는 답을 하고 팀장실을 빠져나갔다.
“재미있는 볼거리는 나눠서 봐야지. 그렇지 않겠어?”
직원이 나가 텅 빈 사무실 안에서, 권익현이 악당 같은 미소를 지었다.
* * *
육철완이 집을 나서며 늘상 그렇듯 인사를 했다.
“다녀올게, 여보.”
“다치지 않게 조심하세요. 몸 함부로 막 쓰지 말고.”
그러자 육철완이 피식 웃으며 물었다.
“던전을 갈 때도 안 하던 당부를 하네?”
“어…… 그런가?”
육철완의 부인은 적당히 모르는 척 너스레를 떨었지만, 내심 마음이 불안한 상태였다.
전날 밤부터 남편의 행동이 심상치 않았기 때문.
겉으로는 멀쩡한 척했지만, 육철완은 시종일관 긴장된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자격 시험 재응시가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부인은 정확히 알지 못한다.
하지만 육철완의 인생에서 굉장히 중요한 날이라는 건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그래서, 평소에 하지 않은 말을 꺼낸 것이다.
“걱정 마. 큰 선물을 가져올 테니까.”
“어디 다친 데 없이 돌아오는 게 선물이에요.”
“알았어. 조심할게.”
출입문을 열고 밖으로 나온 육철완.
그는 집 앞에서 서성이고 있는 남자를 발견했다.
“정현아?”
“아, 철완 아저씨.”
강정현이 반가운 얼굴로 쪼르르 달려왔다.
“여긴 어떻게 왔어?”
“철완 아저씨랑 같이 가려고 왔어요. 중요한 시험인데, 혼자 가시면 좀 그럴 것 같아서…….”
“그러니까, 재시험 보는 걸 응원하러 왔다는 말이냐?”
“네. 헤헤.”
응원을 왔다는 말에 육철완은 복잡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설마하니 이레귤러의 동료가 시험장까지 동행해 줄 줄이야.
고마우면서도 한편으로는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일정도 없는데 집에서 쉬는 게 낫지 않겠니? 친구를 만나서 논다든가.”
육철완은 그렇게 말하고 나서 아차 싶었다.
한평생 아버지의 실험체로 살았던 그에게 동창이나 동네 친구가 있을 리 만무하지 않은가.
그러나 강정현은 육철완의 실수를 아무렇지 않게 넘겼다.
“어차피 집에 있어도 할 게 없어요. 저한텐 이게 쉬는 거예요.”
사실 강정현도 모르는 바는 아니었다.
함께 가서 응원을 한다고 없던 능력이 생기지는 않는다는 걸.
헌터 자격 시험은 다른 누구의 도움 없이, 응시자가 혼자서 묵묵히 진행해야 하는 과정이었다.
하지만 강정현은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다.
자신이 사채업자 사무실에서 궁지에 처했을 때, 슈퍼맨처럼 나타나 사채업자들을 복날 개 패듯 후드려 패던 육철완을 말이다.
‘설마하니…… 그날을 아직 마음에 담아 두고 있는 건가.’
체구가 둔해 보인다고 눈치까지 둔하지는 않은 법.
육철완은 강정현의 생각을 어림짐작하고 있었고, 그래서 더 이상은 만류하지 않았다.
사실 혼자서 시험을 보러 간다는건 꽤나 적적하고, 긴장되는 일이다.
강정현과 함께 간다면 적어도 마음은 편해질 것 같았다.
“고맙다. 비수 말고도 버프를 주는 사람이 여기 있구나.”
육철완이 커다란 손으로 강정현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들은 육철완의 차에 함께 올랐고, 얼마 지나지 않아 헌터 협회 본사에 도달했다.
“어?”
차에서 내린 두 남자의 눈이 휘둥그레진다.
협회 정문 앞에 적지 않은 수의 기자들이 모여 있었던 것.
“정현아. 오늘이 신규 헌터 시험도 같이하는 날이던가?”
“아니요……. 그런 일정은 없었는데?”
시험이 있다고 해서 취재진이 항상 몰려드는 건 아니다.
새로운 스타가 탄생하고, 길드의 저명한 인사들이 참관하는 신규 헌터 자격 시험은 늘 기자들과 방송관계자들이 북적이곤 한다.
하지만 승급을 위한 재시험의 경우에는 응시하는 헌터가 극소수에 불과하기 때문에 딱히 관심을 두지 않는 편이다.
그런데 오늘은 어쩐 일인지, 족히 열 명이 넘는 기자들이 몰려 있었다.
육철완은 그들이 기다리고 있는 헌터가 자신임을 직감할 수 있었다.
자신의 얼굴을 확인한 기자들이 앞다투어 달려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육철완 헌터님! 잠시 인터뷰 좀 하시죠!”
“5분만 시간을 내주십시오!”
“오늘 두 개의 시험을 한꺼번에 본다는 게 사실입니까?”
순식간에 기자들이 육철완과 강정현의 주변을 감쌌다.
그들의 목소리가 얼마나 큰지 강정현은 혼이 나갈 것 같은 기분이었다.
“아저씨……!”
이들은 차라리 기자들이라기보다 승냥이 떼들 같았다.
질문의 수준이 하나같이 저열하기 그지없었던 것.
‘두 단계 승급이 과연 가능하다고 보느냐’, ‘뜬금없이 다중 능력자 시험까지 보는 의도가 뭐냐’, ‘이레귤러로서 본인이 자격이 있다고 생각하냐’ 따위의 질문이 육철완을 향해 융단 폭격처럼 떨어졌다.
천성이 순한 강정현조차 눈매가 사납게 변할 정도로 언짢은 상황.
그러나 육철완은 모욕에 가까운 질문을 뒤집어쓰고도 침착함을 유지했다.
그동안 천해선과 함께한 시간이 많아서일까.
육철완은 그동안 처세술에 있어 잼병이었으나, 이제는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정답을 찾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모든 질문들이 다 한가지로 귀결되는 것 같습니다.”
“?”
“제가 자격 시험에 통과하면, 늦게나마 이레귤러에 어울리는 헌터가 되는 것이겠죠. 오늘 신청한 응시 분야도 전혀 무리한 게 아닌 게 되고 말입니다.”
“호오…….”
“시험도 보기 전에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고 싶지 않습니다. 가능하면 인터뷰는 시험을 보고 난 뒤에 했으면 합니다.”
육철완은 그렇게 말한 뒤 강정현의 손을 잡고 길을 터 나아갔다.
등 뒤로 들려오는 수군거림을 애써 무시한 채, 강정현이 물었다.
“철완 아저씨. 저 사람들, 시험이 끝날 때까지 기다릴 것 같은데요?”
“아무래도 그렇겠지.”
육철완이 쓴웃음을 머금고 대답했다.
만약 시험을 통과하지 못한다면, 육철완은 방금 전보다 더 혹독한 질문 공세를 받게 될 것이다.
그러나 신심으로 육철완이 두려워하는 건 기자들의 인터뷰가 아니었다.
이레귤러가 자신의 성장을 위해 도와준 일들을 생각하면, 기자들보다 동료의 실망한 얼굴을 보는 것이 천 배는 두렵게 느껴졌다.
그래서, 육철완은 절대로 떨어질 생각이 없었다.
“다녀오마.”
잔뜩 긴장한 강정현을 향해 인사한 육철완이, 등을 돌려 헌터 협회 문을 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