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ison-Eating Healer RAW novel - Chapter (168)
168화
열 마리가 넘는 마물에게서 코어를 흡수하는 건 생각보다 오랜 시간이 걸렸다.
포이즌 타입을 비롯한 던전의 몬스터들은 그냥 흡수하면 그만이었지만, 마물의 보랏빛 코어는 ‘변환’ 과정이 필요했다.
-비이.
‘이게 마지막이구나.’
마침내 모든 마물의 코어를 흡수하고 나자, 내가 느끼기도 전에 V1이 몸의 변화를 알려 주었다.
기준치 이상의 새로운 성분이 흡수되었습니다.>
포이즈너 레벨이 올랐습니다>
사용자 정보>
Poisner Class Level : 3 – Diviner>
보유 블랙 에테르 : 4,018BA>
신체 강화 능력 : ‘S’>
치유 능력 : ‘S’>
염동력 : ‘S’>
보유 스킬 :독보(毒步) – level 3 / 독무(毒霧) – level 1 / 교감(交感) – level 2 / 사자후(獅子吼) – Level 2 / 호신강기(護身罡氣) – level max>
‘점쟁이?’
‘Diviner’라는 단어는 본래 그런 뜻이다.
하지만 최근에 얻은 힘을 생각하면, 어원인 ‘Divine(신성력)’에서 따온 말인 것 같았다.
새롭게 얻은 ‘메루스’는 글자 그대로 신성하고 본질적인 성분이었으니까.
“어쨌거나 상당히 큰 변화네.”
포이즈너의 레벨이 오른다는 건 블랙 에테르 수치가 오르거나 스킬이 추가되는 것과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과거 내가 가진 능력에 염동력이 추가됐을 때야 비로소 포이즈너 레벨이 상승했었으니까.
몸이 느끼는 변화도 변화지만, 이렇게 V1이 내 성장을 확인시켜 주니까 꽤나 흡족한 기분이 들었다.
“안 가고 있었어?”
-캬오!
입구에 도착해 보니 설기가 주변을 어슬렁거리고 있었다.
나를 기다려 준 거…… 라기보다는 원래부터 여기 살던 녀석이지, 참.
“아, 돌아가기 전에…….”
테스트를 해 봐야겠다.
그동안은 억지로 메루스를 쥐어짜느라 힘겨루기를 하고 난 뒤에 헛구역질을 반복해야 했다.
하지만 포이즈너 레벨이 오른 지금이라면?
“설기야, 마지막으로 한 판만 더 붙자.”
-캬?
“처음부터 전력으로 와!”
격하게 뒹굴면서 힘자랑을 하는 맹수들처럼, 설기도 나와의 힘 싸움을 꽤나 즐기는 편이었다.
씩씩하며 콧김을 한차례 뿜은 거대한 백곰이 내 머리통보다 더 큰 주먹을 아래로 내려친다.
콰악.
-크오?
설기의 포효가 평상시와는 다르다.
처음 힘이 충돌하는 그 순간부터 느낀 것이다.
눈앞의 인간에게서 심상치 않은 변화가 일어났다는 것을 말이다.
“흡!”
황금색 빛무리가 손바닥에서부터 팔꿈치 부근까지 확장되었다.
이건 흡사 철완 아저씨가 만들어 낸 아르겐툼 건틀릿(argentum gauntlet) 정도의 길이다.
차이점이 있다면 이건 특별한 모양이 없다는 점?
그리고 철완 아저씨와 달리 ‘양손’에서 빛나고 있다는 점이었다.
부웅.
설기가 믿을 수 없다는 얼굴로 팔다리를 허우적거린다.
그전에는 패배하더라도 엉덩방아를 찧는 게 전부였다.
하지만 설기는 지금 팔은 물론 다리까지 허공에서 허우적거리고 있었다.
그렇다.
아래에서 솟구치는 내 힘에 의해 저 커다란 백곰이 저 멀리까지 떠오른(!) 것이다.
-캬오!
“하하. 놀이기구 탔다고 생각해라.”
태어나서 이렇게 높은 곳에 올라간 적이 없어서인지 설기가 크게 당황한 모습이다.
하지만 역시 영물은 영물.
녀석이 곧 민첩한 움직임으로 네 발로 착지를 했다.
텅.
다만, 얼이 빠진 듯한 표정은 여전히 그대로였다.
“나 간다!”
나는 설기에게 손을 들고 입구를 통과해 나왔다.
이런 성취감을 느껴 본 적이 얼마 만이던가.
히든 던전에 올 때마다 얻어 가는 게 있었지만, 오늘은 정말 차원이 다른 선물을 받았다.
메루스를 얻을 수 있는 방법을 무려 두 가지나 얻게 되다니.
언제나 던전에서 되돌아갈 때마다 녹초가 되었지만, 나는 그 어느 때보다 가벼운 발걸음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 * *
“시작해?”
비수의 물음에 천해선이 고개를 끄덕였다.
“스읍.”
한차례 깊이 숨을 들이마신 비수가 정신을 집중했고, 귀걸이에 찬 디바이스가 곧 영롱한 빛을 반짝이기 시작했다.
쉬이익.
무형의 기운이 그녀의 몸에서 발산되어 천해선에게로 향한다.
천해선은 그저 묵묵히 눈을 감은 채 꼼짝도 하지 않았다.
쉬이이익.
비수에게서 쏟아져 나오는 기세가 제법 거세다.
히든 던전에서의 트레이닝은 비수뿐만 아니라 모든 이레귤러의 능력을 향상시켰다.
단지 영계의 환경에 적응하는 것뿐만 아니라, 보유하고 있는 에테르를 좀 더 강하고 탄탄하게 성장시켜 주었다.
그녀의 성장은 주변에 휘몰아치는 기운만으로도 능히 짐작할 수 있었다.
이 정도면 이제 막 헌터가 된 D랭커도 A랭커 이상의 힘을 발휘할 수 있을 것만 같은, 그런 막대한 기운이었다.
쉬이익.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천해선이 기대했던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그만.”
천해선이 눈을 뜨고 손을 올리자 비수가 기운을 거두어들였다.
“어때?”
“역시 잘 안 되네.”
천해선이 아쉬운 듯 슬쩍 웃으며 입맛을 다셨다.
그는 일종의 실험을 한 것이다.
비수의 버프를 받았을 때, ‘메루스’의 능력이 향상될 수 있는지.
실제 그녀의 버프는 잠자고 있던 블랙 에테르를 꿈틀거리게 할 만큼 자극적이었지만, 정작 메루스의 힘을 증폭시켜 주지는 못했다.
혹시나 싶어 진행했던 실험이 무위로 돌아간 것이다.
“안 돼?”
비수가 의기소침한 얼굴로 물었고, 천해선은 그녀의 어깨를 두드려 주었다.
“아무래도 메루스의 힘은 스스로 키우는 수밖에 없나 봐.”
“까비.”
“그나저나 너 엄청 좋아졌다? 나나 마리아한테는 버프가 잘 안 먹혔었는데, 이번에는 에테르가 저절로 막 반응하려고 하더라.”
“당연하지. 그렇게 개고생을 했는데.”
비수가 안 그러면 억울한 일이라는 듯 대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버프의 힘은 대상자가 약하면 약할수록 약발(?)이 잘 듣는다.
반대로 원래부터 강한 헌터에게는 그 효과가 미미해진다.
보유하고 있는 블랙 에테르의 양이 늘어나면서, 비수의 버프는 천해선에게 큰 도움이 되지 못하는 실정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달랐다.
비록 메루스에는 별다른 변화가 없었지만, 속 안에 잠들어 있는 블랙 에테르를 깨울 정도라면 전투 시에 큰 도움이 될 것이다.
“근데 왜 굳이 이런 삭막한 곳에 와서 테스트를 하는 거야?”
비수가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천해선에게 묻는다.
한국에서는 좀처럼 보기 힘든 바위산 중턱에 모인 이레귤러 멤버들.
비단 비수뿐 아니라 대부분의 동료들이 천해선을 향해 의아한 시선을 돌렸다.
“영계에 가기 전에 확인하고 싶은 게 있거든.”
“확인?”
천해선은 묘한 미소를 지은 뒤, 차 안에서 기다란 물건을 꺼냈다.
그리고 모두가 보는 앞에서 겉을 둘러싸고 있던 천을 풀었다.
반짝.
“우와……!”
“오……!”
누가 먼저라고 할 것도 없이 동시에 탄성이 터져 나온다.
‘내 반응이랑 어쩜 저리 똑같냐.’
천해선은 껌뻑 죽는 얼굴들을 보며 속으로 그런 생각을 했다.
왜 아니겠는가.
관자놀이 옆에 달린 두 개의 기관이 정상적으로 작동하고 있다면, 절로 감탄사가 나와야 정상인 물건이다.
“……!”
특히나 이 물건을 바라보는 첸의 동공은 마치 시계추처럼 흔들리고 있었다.
칼을 쓰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바라마지 않는, ‘명검’이 눈앞에 있었다.
“야, 천해선. 이거 칼이잖아?”
“칼이지.”
“네가 칼을 차서 뭐 하게. 요새는 몸에 황금빛을 두르고 다 뚜드려 패던데.”
“표현하고는…… 뭐, 네 말대로 나한테는 필요 없는 물건이야. 하지만 누구한테는 정말 좋은 무기가 될 수도 있지.”
천해선의 말이 끝나자 모두의 시선이 약속이라도 한 듯, 한곳에 몰렸다.
하지만 그 당사자는 다른 이의 시선은 전혀 인지하지 못한 채 눈앞의 명검만 바라보고 있었다.
‘검날은 중요하지 않네 어쩌네 하더니…… 홀라당 빠졌네.’
천해선은 속으로 그렇게 생각했지만, 한편으로는 이해가 가기도 했다.
진 박사가 제작한 이 소드 디바이스는 첸의 가치관마저 흔들어 버릴 만큼 압도적인 아우라를 풍기고 있었다.
손잡이 부분에는 벼락을 상징하는 멋들어진 음각이 패여 있었고, 곳곳의 마감 또한 흠잡을 곳이 없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검날을 둘러싸고 있는 오색찬란한 코팅이 보는 이의 마음을 뒤흔들고 있었다.
“…….”
흡사 사랑에 빠진 사람처럼 오랜 기간 검을 바라보던 첸이, 마침내 입을 열었다.
“이 검의 표면…… 프라니움인가?”
“맞아.”
“이걸 어떻게 만들었지?”
“진 박사님이 만들어 주셨어. 내가 가지고 있던 프라니움으로.”
도저히 상식적으로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듯, 첸이 혀를 내둘렀다.
“너희들이 각자 차고 있는 디바이스도 대부분 프라니움 소재 아닌가? 이만큼의 프라니움이 더 있었다고?”
“우리 집에 훨씬 더 많이 있는데?”
“허…….”
첸이 말문이 막히는지 헛웃음을 삼킨다.
그러는 와중에도 여전히 그의 시선은 천해선이 들고 있는 칼에 고정되어 있었다.
“절반이 날아간 칼로도 그 정도의 위력인데, 프라니움 가공된 칼을 쓰면 정말 끝내줄 거야. 그지?”
첸은 굳이 대답하지 않았다.
천해선의 질문은 하나 마나 한 것이기 때문이다.
“진 박사님은 처음부터 너를 위해 이 칼을 만들어 주셨어. 내가 프라니움을 제공한 것도 나와 동료들을 위해서니 아까울 것도 없지. 하지만 그전에 확실히 해 두고 싶은 게 있다.”
“그게 뭐지?”
“이 검은 우리를 위해서만 써라.”
“!”
장난기 가득하던 천해선의 얼굴이 제법 진중하게 바뀌어 있었다.
“우린 네 성장 과정을 모르지만, 소속이 여러 개라는 건 알아. 넌 우리와 같은 헌터지만 국적은 대만이고, WHPO에 가입되어 있지만 ‘파이브 사이더스’ 소속이지.”
앞으로 영계 탐사에 나서게 되면 또 어떤 지령이 내려올지 모른다.
그리고 협회에서는 협회 나름대로 수행해야 할 역할이 있겠지.
천해선은 지금까지 겪어 온 사건들보다 훨씬 큰 폭풍들이 몰아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렇기에 더욱더 확실히 하고 싶은 것이다.
첸의 검이 어디를 겨냥하고 있는지.
“네가 어느 소속으로서 활동을 하건 간에, 이 검은 무조건 우리를 위해 써라.”
첸은 잠시 동안 침묵한 뒤 천해선에게 물었다.
“내가 약속을 깨고 이 칼로 너희들을 노린다면?”
“저, 저 죽일 놈이……!”
등 뒤에서 들리는 비수의 말을 한 귀로 흘린 뒤, 천해선이 씨익 웃었다.
“넌 거짓말 못 하잖아.”
“!”
좀처럼 표정 변화가 없던 첸의 표정이 경직되더니, 아주 조금 입꼬리가 올라갔다.
“일단 한번 써 봐도 될까?”
“물론이지.”
천해선은 아무 거리낌 없이 검을 넘겼고, 첸의 손이 손잡이에 닿았다.
‘딱 맞네.’
첸의 손은 검을 다루는 헌터치고는 꽤 작은 사이즈였기 때문에, 일반적인 칼은 그에게 맞지 않았다.
그런데 천해선이 넘겨준 칼은 그의 체형에 딱 들어맞았다.
마치 맞춤 제작을 한 것처럼 말이다.
손잡이뿐만 아니라 전체적인 무게와 균형이 이전에 사용했던 칼과 별다른 차이가 없었다.
“…….”
한평생 검을 잡은 첸이기에 더 잘 알 수 있었다.
이 칼을 만드는 데 어떤 정성과 배려가 들어갔는지.
첸은 말없이 이곳에서 가장 큰 바위 앞으로 걸어갔다.
그리고는 벼락검을 불러내기 위해 에테르를 활성화시켰다.
파지직.
휘오오.
그의 주변으로 일어나는 바람에 마리아의 머리칼이 뒤로 날렸고, 몸을 움찔거리게 만드는 전격 소리가 귀를 파고들었다.
‘저게 사람이야, 토르야?’
분위기에 압도당한 강정현이 차마 입 밖으로 내지 못하고 속으로만 그런 생각을 품었다.
첸이 펼치는 벼락검은 언제 봐도 놀랍고 신기한 능력이었다.
그전에 봐 왔던 것보다 더 강한 참격을 날리는 게 가능하다는 말인가?
눈을 깜빡이는 것조차 방해가 된다는 듯, 강정현의 똘망똘망한 눈은 미동도 하지 않은 채 첸의 칼을 주시하고 있었다.
스윽.
발도술 자세를 취한 뒤, 첸이 눈을 감았다.
그는 거짓을 말하지 못하는 천성을 가졌고, 그 진실함이야말로 힘의 원천이었다.
훈련에 있어서 한 점의 타협과 합리화가 없었고, 자신이 한 말은 죽는 한이 있더라도 반드시 지켜야 했다.
정신적으로 순결한 자만이 자연의 힘을 끌어낼 수 있다.
벼락검은 오히려 정신적인 재능이 더 중요한 스킬이었고, 그런 면에서 첸은 천부적인 재능을 갖춘 인물이었다.
꽈르르릉.
천둥소리가 들린다.
하늘이 아닌 첸이 들고 있는 검에서.
오색 찬란한 빛을 사정없이 뿜어 대던 검날이, 마침내 포효하듯 다섯 가지의 전격을 방출해 냈다.
콰아아아아아아앙!!!!!
멀찍이 지켜보는 사람들조차 저릿한 감각을 느낄 만큼 압도적인 스케일.
첸이 검을 휘두르자 지진이라도 일어난 듯 땅이 흔들렸다.
“꺄악!”
결국 비수가 참지 못하고 비명 소리를 터트렸다.
가까운 곳에서 천둥 번개가 쳤을 때 느끼는 공포.
비수는 어처구니없게도 첸의 참격에 대자연의 두려움을 느껴야만 했다.
“시바……. 끝내주네.”
앞으로 무릎을 꿇은 채 주저앉아 버린 비수가 질려 버렸다는 듯 고개를 좌우로 젓는다.
바위를 두부 자르듯 썰어 버리는, 오색찬란한 전격이라니.
정말이지 눈으로 보고도 믿을 수 없는 광경이었다.
뚜벅뚜벅.
참격이 낳은 미세한 먼지 사이로 첸의 모습이 보인다.
어렴풋이 실루엣만 보일 뿐이지만, 여전히 그가 차고 있는 칼은 영롱하게 빛나고 있었다.
그의 수려한 이목구비가 완전히 보이게 되었을 때, 첸은 마침내 천해선에게 대답했다.
“약속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