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ison-Eating Healer RAW novel - Chapter (17)
17화
경비병을 뚫는 과정은 허무할 정도로 쉬웠다.
‘백몽’ 상태인 엑사의 칼날을 일부 긁어낸 뒤, 그것을 종이 포장지에 담는다.
이후 비수가 은신 상태로 경비병에게 접근한 뒤, 바닥에 백몽 가루를 뿌린다.
그리고 1~2분 뒤면,
“드르렁.”
이렇게 경비병은 본분을 망각한 채 벽에 기대고 걸터앉아 잠을 자게 된다.
이곳 던전을 지키는 경비병은 용역 직원이 아니라 레벨 ‘E’의 헌터였지만, 백몽에게 무력화되는 건 일반인과 헌터가 따로 없었다
“위험할 거 같으면 먼저 나가 있어. 나야 상관없지만 넌 독에 면역이 아니니까.”
“야. 자꾸 나 무시할 거야? 나도 던전 짬밥은 좀 되거든?”
“자만하다 훅 간다. 이곳에 뽀리 같은 녀석이 또 있을지 누가 알아?”
-꾸왕!
“윽…….”
비수가 탐탁지 않은 눈빛으로 뽀리를 응시한다.
뽀리는 언제나 그렇듯 포이즌 던전 입장을 앞두고 꽤 흥분해 있는 상태였다.
“빌어먹을 용 미니어처 같으니…….”
-꾸?
한차례 뽀리를 향해 투덜거린 비수가 품속을 뒤적거린다.
“자. 너도 하나 받아.”
“이게 뭐야?”
“우리 식구가 개발한 앰플이야. 여기 담긴 향이 몬스터들을 자극해 한곳으로 모으지. 특히나 포이즌 타입은 아주 환장하다시피 해.”
“유인책…… 같은 건가?”
“맞아. 눈치가 빠르네. 이걸 한적한 곳에 뿌린 뒤, 나머지 사람들은 멀찍이 떨어진 곳에서 작업을 시작해. 너도 보스 몬스터까지 가는 길이 순탄한 게 좋잖아?”
“오호…….”
확실히 좋은 아이템이긴 하다.
비수가 생각하는 것과는 조금 다른 방향이겠지만.
그보다 궁금한 게 있었다.
“이 앰플은 야차가 이야기해 준 적이 없는 것 같은데.”
“왜. 공짜로 주는 건데도 싫어?”
“그럴 리가. 다만…….”
나는 묘한 웃음을 지으며 비수의 앙칼진 눈매를 바라보았다.
“내가 다칠까 봐 특별히 신경 써 주는 것 같아서.”
“지랄도 풍년이네.”
비수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코웃음을 친다.
대답하기 전에 입술이 살짝 움찔했던 것 같은데.
기분 탓인가.
“네가 일을 빨리 해치워야 내 쪽도 편하거든? 해독제가 하루 종일 가는 게 아니라서 말이야.”
“예로부터 강한 부정은 긍정…….”
휙.
더 듣기 싫다는 듯 비수가 내게 앰플을 던진다.
그리고는 작은 환단 몇 개를 입 안에 털어 넣었다.
“으…… 써.”
포이즌 던전에 입장하기 전에 먹는 해독제다.
비수는 은신 상태로 던전에 입장하기 때문에 몬스터에게 당할 일은 없다.
다만 공기 중에 흐르는 독성에는 대비를 해야 한다.
내로라하는 헌터들이 몬스터를 만나기 전부터 어려워하는 것이 바로 이 부분이었다.
전투는커녕 호흡부터 쉽지 않으니 시작부터 고전을 하는 것이다.
“시간은?”
“세 시간. 근데 난 두 시간 반 지나면 돌아갈 거야.”
“두 시간 반이라……. 그 정도면 충분하지.”
“허. 자신만만하네. 몬스터들이 어디에 깔려 있을 줄 알고?”
“어디에 있든 상관없어.”
내가 기묘한 웃음을 짓자, 비수의 미간에 가느다란 두 줄이 생긴다.
“내가 다 불러낼 거니까.”
“그게 무슨…….”
나는 비수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그녀가 준 앰플을 내 전신에 뿌려 버렸다.
“어머! 야 이 미친놈아!”
비수가 제자리에서 펄쩍 뛰며 경악에 찬 눈으로 나를 바라본다.
유인책으로 써야 할 앰플을 스스로 뒤집어썼으니, 녀석의 사고방식으로는 이해가 전혀 가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내가 포이즌 몬스터를 찾는 궁극적인 이유는 희귀초가 아니었다.
포이즌 몬스터로부터 코어를 흡수해, 블랙 에테르를 축적한다.
강해지고, 또 강해진다.
누군가에게 생명을 저울질당하지 않아도 될 만큼.
이것이 내가 헌터가 되기도 전부터 포이즌 던전을 찾는 이유다.
그런 의미에서 이 앰플은 내게 너무나도 훌륭한 아이템이라 할 수 있었다.
온라인 게임에서 사냥을 하듯, 몹들을 한데 모아 놓고 경험치 이벤트를 벌이면 되는 것이다.
“하하. 서두르는 게 좋을걸? 나한테 붙어 있어 봐야 좋을 게 없을 테니까.”
“이 사이코 같은 놈! 또라이! 정신병자!”
그녀는 그렇게 훈훈한 인사말들을 내게 남긴 채 후다닥 자리를 떴다.
몬스터를 마주치는 건 내 쪽에서 바라마지 않는 일이다.
지나가는 길에 걸리적거리느니, 한 번에 소탕하는 편이 편하지. 암.
우우웅.
백몽 상태였던 엑사의 칼날이 본연의 흑색으로 되돌아왔다.
이제 이 단검에 베이는 놈들은 수면보다도 더 깊은 영면에 들어설 것이다.
“우와…….”
앰플의 성능은 확실했다.
던전 숲 초입에 들어선 지 얼마 되지 않아, 대규모 고블린 총회(!)가 열린 것이다.
-게루루룩.
역시 암시장이야.
성능 확실하구만.
나는 블랙 에테르를 활성화시키며 엑사를 힘주어 잡았다.
* * *
감염된 고블린 / type – Poison, Warrior / 처치 난이도 1성(★) / 물리 레벨 ‘E’ / 기타 레벨 ‘D’>
V1에 표기된 녀석들의 정보다.
독성이 반영된 ‘기타 레벨’은 말할 것도 없고, 물리 레벨 또한 나보다 한 단계 아래다.
이 정도면 굳이 ‘독보’를 사용할 필요도 없다.
워리어(Warrior)라는 타입이 민망할 정도로 나는 녀석들을 추풍낙엽처럼 떨어트렸다.
서걱.
-게륵!!
100마리?
아니 200마리는 넘은 것 같다.
스치기만 해도 절명하고 마는 독 중의 왕.
블랙 에테르는 내 몸의 에너지원인 동시에 세상에서 존재하는 가장 강력한 극독이다.
그 위험성은 한평생 내 몸을 괴롭힌 ‘몬스터 포이즌’을 압도하는 수준이었다.
서걱.
털썩-
눈앞에 보이는 마지막 고블린의 목을 베었다.
칼날이 스쳐 지나갈 때만 해도 이게 뭔가 싶어 하던 녀석들은 이내 눈동자가 돌아가 쓰러져 버렸다.
제압하는 시간보다 녀석들의 블랙 코어를 추출하는 시간이 더 오래 걸릴 정도.
나중에는 시간관계상 약해 보이는 놈들은 그냥 패스해야 했다.
사용자 정보>
Poisner Class Level : 1>
보유 블랙 에테르 : 2332BA>
신체 강화 능력 : ‘D’>
자가 치유 능력 : ‘S’>
보유 스킬 :독보(毒步)-level 2>
고블린 학살극을 마친 뒤 V1이 알려 준 정보다.
이제는 키릴이 넘겨준 블랙 에테르보다 스스로 만들고 흡수한 블랙 에테르의 양이 더 많아졌다.
다른 레벨들이 답보 상태인 건 아쉬웠지만, 나날이 늘어가는 블랙 에테르를 확인하니 흡족한 기분이다.
“킁킁.”
익숙한 향이 난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익숙해지려 노력한 향이다.
블랙 에테르를 전신에 뿌리내리면 근육 조직의 강화는 물론이요, 온 신경이 예민해진다.
아직 은신 스킬을 감지할 정도는 아니지만, 특별한 향 정도는 멀리서도 알아챌 수 있을 정도다.
발달한 코끝의 감각이 내게 방향을 일러 주고 있었다.
희귀초.
동영화와 비슷한 향이 저 너머에서 내게 손짓을 하고 있었다.
“사막?”
울창한 숲이 바로 뒤에 있는데, 이제는 사막이라니.
굉장히 이질적인 모습이다.
던전 안에서는 그 어떤 환경도 존재한다더니 틀린 말이 아니었군.
사막 한가운데에 있는 희귀초라.
자생력이 얼마나 강하면 이런 휑한 지역에서 자라날 수 있는 걸까.
사박사박.
향이 나는 곳을 따라 사막 이곳저곳을 걷는다.
사방에 시야가 트이지 않은 곳이 없다.
반대로 이야기하면, 있어야 할 놈이 보이지 않는다는 뜻이기도 하다.
‘어디 있는 거지?’
희귀초는 보스 몬스터의 주변에서만 자란다.
희귀초의 향이 진하게 나는 걸 보면, 이 근방에 분명 보스 몹이 있다는 이야기.
하지만 어디를 둘러보아도 보스몹은커녕 고블린 한 마리조차 보이지 않는다.
벌써 누군가가 해치운 걸까.
아니, 보스 몬스터가 잡혔다면 던전은 이미 소멸되었을 것이다.
희귀초를 찾기 위해 이곳저곳을 스캔하던 찰나.
갑자기 온몸에 소름이 돋는다.
파박.
푸학!!
무의식적으로 ‘독보’를 사용해야 할 만큼 빠른 기습이었다.
공격이 나온 방향은 바로 아래.
사막의 모래 밑이었다.
‘뒤질 뻔했네.’
가슴이 서늘해질 만큼 위협적인 공격이었다.
무수히 많은 다리와 어지간한 무기는 다 튕겨 낼 것 같은 딱딱한 껍데기를 가진 놈이다.
몸의 반을 빼꼼 내밀고 고개를 갸웃거리는 대형종.
나는 녀석을 노려보며 V1을 불렀다.
맹독 지네 / type – Poison / 처치 난이도 4성(★★★★) / 물리 레벨 ‘B’ / 기타 레벨 ‘A’>
“시발…….”
던전의 난이도가 4성(★★★★)이라 각오를 하기는 했지만, 생각보다 더 어려운 녀석이 나왔다.
땅 밑에서 갑자기 습격하는 패턴도 처음이고, 무엇보다 상성이 좋지 않았다.
사막의 모래밭은, ‘독보’를 사용하기 어려운 무대였기 때문이다.
푸확!
“큭!”
재차 땅으로 들어간 맹독 지네가 얼마 안 가 다시 발밑에서 흉악한 뿔을 들이민다.
젠장.
모래 밑이라 몬스터의 기운이 잘 느껴지지 않는다.
희귀초를 찾기는커녕 녀석의 공격을 피하기 급급한 상황이다.
‘독보’는 이런 물렁물렁한 사막 속에서 절반의 성능도 내지 못한다.
게다가 녀석의 물리 레벨은 ‘B’.
이제 막 ‘D’등급 반열에 올라선 내가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어떻게 한다…….’
이런저런 궁리를 하던 와중, 녀석이 다시 땅속에서 솟구쳐 온다.
파박!
이번에는 완벽하게 피하지 못했다.
녀석의 뿔이 내 허벅지를 긁고 지나갔다.
주륵.
핏물이 바지에 엉겨 붙지만 그런 걸 신경 쓸 새가 없다.
어떻게 하지?
‘죽일 수는 있다. 하지만…….’
녀석의 공격을 한번 받아 내며 엑사로 긁어 버리면 일은 쉽게 끝난다.
하지만 그렇게 되면 근처에 있는 희귀초 역시 생명을 잃고 말 것이다.
4성(★★★★) 몬스터를 죽이지 않고 무력화만 시켜야 한다는 것.
어지간한 A급 헌터도 어려운 일이리라.
“웬일로 가만히 있지?”
공격이 실패하기가 무섭게 모래 아래로 숨어들던 녀석이 이번에는 징그러운 상체를 빼꼼 내밀고 있다.
마치.
무언가를 기다리는 사람처럼.
그러고 보니, 녀석의 전신을 본 적이 있던가?
몸길이가 얼마나 되는 거…….
퍼억!
생각이 끝나기 무섭게 등 뒤로부터 아찔한 타격이 느껴진다.
“크윽.”
나는 그대로 수 미터를 날아가 모래밭에 얼굴부터 처박혔다.
이게 물리 레벨 ‘B’의 공격인가.
등뼈가 다 으스러진 것만 같다.
고통을 달랠 새도 없이, 머리 밑으로 번뜩이는 무언가가 솟구쳐 오른다.
푸확!
나는 몸을 데굴데굴 굴려 간신히 녀석의 공격을 막을 수 있었다.
앞에서는 뿔로 들이받고, 뒤로는 꼬리로 급습하는 이지선다의 공격.
일단 이를 악물고 일어난 뒤, 품 안에서 작은 구체들을 꺼냈다.
지르르르…….
공격이 먹힌 몬스터들은 대체로 저런 반응이다.
어떻게 살아 있는 거지?
하는 반응들.
놈들은 미처 알지 못한다.
그 찰나의 순간이 자신들에게 주어진 얼마 안 되는 기회란 걸 말이다.
“퉤!”
나는 핏물을 뱉은 뒤 검은 구체를 블랙 에테르로 녹이기 시작했다.
직전에 고블린에게서 추출한 블랙 코어들 중 남은 것들이다.
흡수하려면 얼마든지 흡수할 수 있었지만, 만일을 위해 남겨 놓은 게 신의 한 수가 되었다.
블랙 에테르를 흡수하게 되면 기력 회복뿐 아니라 몸에 난 상처도 순식간에 치유가 되기 때문이다.
나는 포션을 마시듯 블랙 에테르를 체내에 흡입했다.
스르르…….
허벅지에 난 상처와 등의 고통이 점차 멎어 든다.
내 회복을 보고 화가 난 걸까.
녀석은 신경질적인 동작으로 모래 밑을 파고들었다.
시발.
화는 내가 더 나거든?
급속히 회복을 했다고는 하나, 전황은 여전히 그대로다.
효율이 떨어지는 독보로는 녀석의 공격을 피하는 데 급급하다.
‘백몽’ 상태의 엑사는 휘두를 기회를 찾지 못한 채 내 손에 붙들려 있다.
“이래서는 쓸모가 없잖아.”
꿈틀.
“?”
내가 잘못 느낀 건가.
쓸모없다는 말에 엑사가 자신의 ‘몸’을 움찔한 것 같다.
우우우웅-
착각이 아니었다.
엑사가 스스로 자신의 몸을 떨더니, 이내 내 손아귀에서 빠져나왔다.
푸확!
미처 다시 잡을 틈도 없이 나는 지네를 피해 몸을 한 번 더 굴렸다.
그러는 동안 엑사는 ‘무려 공중에서’ 자신의 몸을 변화시키기 시작했다.
키링 키링.
오.
예전에 영화에서 저런 모습을 본 적이 있다.
기계가 스스로 모습을 변형하는 장면들 말이다.
정육면체로 돌아온 큐브 형태의 엑사가 반으로 갈라지더니, 기다란 타원형 모양으로 변한다.
모양을 굳이 표현하자면……
발자국.
그래, 발자국을 닮았다.
철컹.
주인을 찾아온 엑사가 모래를 파고들어 내 운동화 밑창에 달라붙었다.
얘가 도대체 왜 이러는 거야?
그 대답은 V1이 대신 들려주었다.
사용자 정보>
엑사(Exa) 시프트 진화 : 이제 살상형(Dagger) 외 이동형(Booster) 기능을 사용할 수 있습니다.>
부스터?
부스터라고?
“오…….”
확실히 발밑의 감각이 다르다.
평지에 서 있는 것처럼, 아니 평지보다 더 빡빡한 느낌이 바닥에서부터 전해진다.
어떻게 된 일인지 슬쩍 들어 보니, 운동화 바닥에 부착된 엑사가 바닥을 향해 블랙 에테르를 방출시키고 있었다.
사막의 물렁하고 울퉁불퉁한 바닥을 엑사가 해결해 준 것이다.
“좋아. 이 정도라면…….”
부스터 형태로 변경된 엑사의 효능은 곧바로 입증이 가능했다.
파바박!!
이전과 같이 ‘독보’를 사용했을 뿐인데, 맹독 지네는 공격을 헛친 뒤 내 그림자조차 파악하지 못했다.
평상시의 ‘독보’보다도 훨씬 빠른 속도가 가능해진 것이다……!
‘이 정도라면 키릴의 독보와도 해 볼 만하겠어.’
어리둥절해하는 맹독지네의 뒤에서, 나는 만족스러운 웃음을 띠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