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ison-Eating Healer RAW novel - Chapter (1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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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3화
“체, 첸?”
첸이 누구야.
콧대 높은 사일리아가 이레귤러의 팀원을 전부 기억할 리 없었다.
그녀가 기억하는 인물은 천해선과 마리아 정도였고, 나머지는 떨거지 취급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 떨거지 중 한 명이 천해선을 대신해 자신과 대련을 벌인단 말인가?
당연히 천해선과 대결할 것이라 생각했던 사일리아는 지금의 상황을 이해할 수 없었다.
“난 나간다고 한 적이 없는데.”
첸이 천해선을 향해 뚱한 얼굴로 물었다.
그러자 천해선은 턱짓으로 첸이 차고 있는 칼을 가리켰고, 첸은 그제야 한 걸음 앞으로 나아갔다.
“뭐…… 좋아. 나도 테스트해 보고 싶던 참이니까.”
이레귤러를 위해서만 사용하기로 약속한 칼.
약속도 약속이지만, 첸은 내심 ‘보검’의 위력을 빨리 실전에서 사용해 보고 싶었다.
“너네 지금 제정신이야?”
비수의 목소리에 당황한 기색이 잔뜩 담겨 있다.
“천해선 네가 나가는 것도 아니고, 첸한테 맡긴다고?”
“응.”
“첸이 이길 수 있을 것 같아?”
천해선이 빙그레 웃으며 대답했다.
“사일리아 정도야 첸 선에서 정리 가능하지.”
이른바, ‘사첸정’.
지구를 탈탈 털어 사람들을 솎아 낸다 한들, 사일리아를 상대로 이런 말을 하는 사람은 천해선 외에는 없을 것이다.
오죽하면 잉센조차 입을 떠억하니 벌리고 있지 않은가.
비수의 황당함은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야, 첸. 너도 지금 제정신이 아닌 것 같아. 사일리아를 상대로 뭐? 시험? 그러다 진짜 열 받으면 어쩌려고 그래?”
“…….”
첸은 가타부타 대답하지 않고 빤히 비수를 바라보았다.
잠깐의 시간이 지나서야, 비수는 깨달을 수 있었다.
고래고래 소리를 치며 야단법석을 떠는 자신이야말로, 사일리아를 가장 자극하고 있다는 걸.
“흡.”
비수는 양손으로 입을 막았지만, 늦어도 너무 늦었다.
‘사첸정’이니 ‘테스트’니, 비수가 하는 말이 적나라하게 들려왔던 것이다.
‘이 버러지들이 감히……!’
처음에 천해선이 첸을 호명했을 때, 잠시 잠깐 그런 생각을 했었다.
이레귤러는 어쩌면 천해선이 에이스가 아닐지도 모른다고.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천해선의 의도는 그게 아니었다.
사일리아와의 대련을 ‘굳이 자신이 나서지 않아도 되는 일’로 치부해 버린 것이다.
마치 애송이를 상대할 때 부하를 투입하는 최종 보스처럼 말이다.
고오오오.
사일리아가 돌연 히죽 웃었다.
분노가 극에 달에 도리어 웃음이 나온 것이다.
그녀는 더 이상 생각하는 것을 그만두기로 했다.
천해선이든 뭐든 간에, 그냥 뚜드려 패면 그만이라는 단순한 결론을 내렸다.
전형적인 서구형 미녀인 사일리아가 진한 미소를 짓는 모습은 퍽 아름다웠으나, 조금이라도 그녀를 알고 있는 사람들에겐 굉장히 공포스러운 장면이었다.
“총재님. 더는 막지 마세요. 어차피 두 팀 다 원하는 일이잖아요?”
그 살벌한 미소에 총재는 더는 무어라 말하지 못했다.
그녀가 정말로 열 받은 상태라는 걸 그간의 경험을 통해 알 수 있었던 것이다.
사일리아와 첸은 약속이라도 한 듯 강당 중앙 쪽으로 향했다.
WHPO 본사 건물인 만큼 내부 공간은 운동장만큼 넓었다.
요컨대, 두 헌터가 자신의 능력을 드러내기에 전혀 제약이 없다는 말이었다.
지잉.
사일리아의 양손에 이어져 있는 백색의 사슬.
카테나(Catena)가 또다시 눈부시게 빛나게 시작한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육철완이 낮게 침음했다.
그리고 동시에 걱정스러운 얼굴로 물었다.
“천해선 헌터님. 정말 괜찮겠습니까?”
“괜찮아요. 다 견적 내 보고 결정한 거니까.”
무슨 견적을 어떻게 낸 건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적어도 사일리아가 괴물 같은 헌터라는 건 분명한 사실이었다.
사일리아의 손에 달린 카테나(Catena)는 기본적으로 육철완의 비기, 아르겐툼 건틀릿(argentum gauntlet)과 같은 구조다.
몸 안의 에테르를 물건의 형태로 변화해 사용하는 스킬.
육철완이 아르겐툼 건틀릿(argentum gauntlet)을 통해 ‘다중 능력자’로 인정받은 것처럼, 사일리아 또한 헌터 협회에 다중 능력자로 등록이 되어 있었다.
‘하지만 급이 달라도 너무 달라.’
육철완은 아르겐툼 건틀릿을 사용한 뒤 심각한 탈진 상태에 이르게 된다.
처음 능력을 발화했을 때는, 단 몇 초를 사용했을 뿐임에도 현기증을 느껴야 했다.
하마터면 의식을 잃어버릴 정도로.
다중 능력을 사용한다는 건 그만큼 막대한 에테르가 필요한 일이다.
그래서 육철완은 정말 급한 일이 아니라면 최대한 아르겐툼 건틀릿(argentum gauntlet)을 꺼내 들지 않는다.
하지만 눈앞의 저 헌터는, 그런 기본적인 공식 따윈 전혀 신경 쓰지 않는 인물이었다.
현장에 와서 지금까지 계속.
아니,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잘 때도 그녀에 손에는 카테나가 이어져 있다고 한다.
육철완에게 대입해 보자면, 하루 종일 아르겐툼 건틀릿을 차고 다닌다는 의미다.
그건 경이적인 수준을 넘어 공포가 느껴질 만한 일이었다.
도대체 몸 안에 얼마나 많은 에테르가 있어야 그런 일이 가능하다는 말인가.
육철완은 또 다른 의미의 현기증을 느껴야만 했다.
그리고 바로 그것이, 그녀가 ‘초월급’이란 타이틀을 얻게 된 이유였다.
평범한 인간이, 아니 평범한 헌터로서는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무한한 양의 에테르.
그렇기 때문에 사일리아는 온종일 ‘카테나’를 사용할 수 있는 것이다.
“건물이 무너지지 않는 선에서 놀아 보자고.”
눈앞의 사냥감을 확인한 사일리아가 고혹적인 미소를 지어 보냈다.
반면 첸은 조금의 표정 변화 없이 자신의 포니테일을 바짝 묶었다.
첸이 준비를 하는 동안, 사일리아는 그의 모습을 유심히 살폈다.
그의 능력을 살펴보자 함은 아니다.
어차피 이번 대련은 일방적인 폭력이 될 것이니까.
단지…….
‘근데 이 자식은 뭐야?’
살펴볼수록 신비한 느낌을 주는 사내였다.
아니, 사내인지 뭔지도 잘 모르겠다.
부리부리한 눈매와 턱선을 보면 남자 같은데, 또 남자라고 하기에는 콧날과 손가락이 너무 가늘고 섬세했다.
가슴에 끓어오르는 분노는 여전했지만, 사일리아는 도저히 참을 수가 없어서 묻고야 말았다.
절대로 해선 안 되는 그 질문을 말이다.
“넌 뭐 남자냐, 여자냐?”
“!”
* * *
‘그럴 거 같더라니.’
사일리아의 질문을 들은 동료들이 사색이 되었고, 천해선은 악마 같은 미소를 지었다.
세계 최고 헌터 중 하나인 사일리아를 상대해야 함에도, 첸의 얼굴에는 일말의 긴장이나 동요가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누군가가 첸의 열정을 좀 불러일으켜 줬으면 했다.
고맙게도, 사일리아의 질문에 첸은 더없이 열정적인 상태가 되고 말았다.
촤앙!
‘호…….’
번개 같은 발도술.
사일리아의 질문이 끝나기가 무섭게 첸이 칼집에서 검을 꺼내 사일리아를 공격했다.
쾌속하면서도 물 흐르듯 자연스러운 발검.
그러나 사일리아는 한 손에 달린 카테나로 첸의 검을 막아 내었다.
휘릭휘릭.
검과 충돌한 카테나가 그녀의 몸 뒤에서 화려하게 회전하더니, 곧 첸의 얼굴을 향해 송곳처럼 뻗어 나갔다.
“!”
휙.
첸이 빠르게 고개를 꺾었지만, 워낙 카테나가 빨랐기에 뺨에 한줄기 자상이 생겼다.
한줄기 빨간 선혈이 첸의 백옥 같은 뺨을 타고 흘렀다.
‘살벌하네.’
잉센이 조금 난처한 느낌의 미소를 지었다.
가슴팍을 향한 첸의 공격도 살벌했고, 그 무시무시한 카테나를 얼굴에다 꽂아 버리는 사일리아도 정상은 아닌 것 같았다.
이게 어딜 봐서 평범한 ‘대련’이란 말인가.
잉센은 유사시를 대비해 몸 안의 에테르를 조금 활성화시키기로 했다.
‘그나저나 저 소재는…….’
초월급 헌터이면서 동시에 과학자이기도 한 잉센.
그의 시야에 오색 찬란히 빛나는 첸의 검이 들어왔다.
자신이 알기로 저건 분명 프라니움인데.
단단하기로 칭송이 자자하고, 비싸기로 악명 높은 프라니움을 저렇게 잔뜩 발라 놨단 말인가?
‘돈도 돈이지만…… 보통의 기술력으로는 불가능할 텐데.’
프라니움은 입수방법도 까다롭지만, 그 후처리 또한 골치가 아프기로 유명하다.
통상적으로 ‘자이언트 트레저’의 코어를 고슴도치처럼 감싸는 형태로 발견이 되는데, 코어의 독성과 프라니움의 강성 때문에 발견을 하고도 애만 태우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당연히 얻기가 힘든 물질이니만큼, 같은 중량일 때 다이아몬드보다 훨씬 비싼 값으로 팔린다.
쉽게 말해 첸이 들고 있는 칼은, 다이아몬드로 코팅한 소드 디바이스보다 수십 배는 비싼 물건이었다.
“와…….”
첫 번째 합이 끝나고 첸의 보검을 발견한 헌터들이 홀린 듯한 탄성을 터트렸다.
칼의 아름다움은 물론이요, 얼마나 많은 돈과 과학력이 동원되었는지 짐작조차 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보기보다 이레귤러의 인프라가 탄탄한 모양이군.’
스틸 실드의 한 헌터는 그렇게 결론을 내렸다.
단 여섯 명이 활동하는 팀이라는 걸 감안하면 호사에 가까운 무기였다.
헌터의 숫자가 수천 명에 달하는 스틸 실드조차 프라니움 소재의 무기를 사용하는 헌터는 다섯 손가락도 되지 않는다.
엄청난 부자의 자식이거나, 스틸 실드 서열 탑 5 안에 들거나.
하지만 그들조차 첸과 같은 급의 무기를 들고 있는 건 아니었다.
디바이스의 핵심 부위에 극소량을 박아 넣었을 뿐.
그러나 첸이 들고 있는 칼은 달랐다.
마치 프라니움의 강에 칼을 넣었다 뺀 것처럼, 지나치나 싶을 정도의 많은 양이 검날의 한쪽을 가득 덮고 있었다.
촤앙! 촹!
사일리아가 첸의 연이은 공격을 카테나로 받아 낸다.
받아 내는 것뿐만 아니라, 검격이 마치 자양분이라도 되는 것처럼 카테나가 충돌할 때마다 화려하게 춤을 추고 있었다.
휘릭휘릭.
쾅!
‘대단하네.’
타고난 에테르의 양만 천재적인 것이 아니다.
천해선은 그런 생각을 품고 있었다.
물 흐르는 듯, 춤을 추는 듯 이어지는 연격.
첸은 이미 ‘검무’를 발동시킨 상태였다.
천해선은 첸의 검무를 처음 상대했을 때 빈틈을 노출하고 말았다.
하나 지금의 사일리아는 한 치의 흐트러짐 없이 검무를 받아 내고, 반격을 하고 있었다.
더욱이 충격적인 사실은, 그녀가 지금까지 한 손으로만 상대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다른 걸 떠나 격투의 감각에 있어서는 천해선보다 한 수 위라고 볼 수 있는 것이다.
“누가 테스트를 하고 있는지 모르겠네?”
공방이 지속되는 도중에 사일리아가 턱을 들어 첸을 내려다보았다.
지금의 이 동작만으로도 어느 쪽이 여유가 있는지 확실히 파악할 수가 있었다.
‘생각보다 시시하네. 이제 그만 놀아야겠어.’
사일리아가 막 그런 생각을 품고 있을 무렵,
화악.
“?!”
갑자기 그녀의 눈이 경악으로 물들었다.
첸이 춤추는 화려한 검무의 끝에, 그의 칼이 사라져 버렸기 때문이다.
캉!!
귀가 시려 오는 청명한 충격음과 함께, 첸의 칼이 정지했다.
유감스럽게도 첸의 검은 다시 한번 사일리아의 카테나에게 막혔다.
그러나 막힌 자의 표정은 덤덤하기 그지없었고, 오히려 막아 낸 자의 얼굴에 수치심이 가득 차올라 있었다.
그동안 한 번도 출수하지 않았던 왼손.
한 손으로만 상대하려 했던 계획이 무색하게, 황급하게 반대편 카테나를 쓸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이럴 수가…….”
스틸 실드의 헌터들은 그게 어떤 의미인지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천여 명에 달하는 스틸 실드의 나이트 중에서 사일리아의 양손을 끌어낼 수 있는 헌터는 많이 잡아야 서너 명이었다.
그런데 겨우 몇 합 만에, 첸이 그 어려운 일을 해낸 것이다.
“이…… 놈인이 년인지도 모를 새끼가…….”
고고한 여왕님의 얼굴이 한순간 악귀처럼 보였다.
그녀의 양손에 있던 카테나가 빠르게 좌우로 교차했고, 금방이라도 첸의 목이 사슬에 뜯겨 나갈 것처럼 보였다.
“꺅!”
조마조마하게 지켜보던 비수가 참지 못하고 비명을 터트렸다.
하나, 첸의 마지막 검처럼 그의 신형이 신기루처럼 사라져 버렸다.
신체의 능력과 염동력을 결합해 환영처럼 움직이는 격투술.
환격.
“뭐지? 뭐가 어떻게 된 거야?”
“저 말총머리 헌터는 귀신인가?”
내로라하는 헌터들조차 어리둥절할 만큼 신비한 기술.
하지만, 오직 천해선만은 전황을 제대로 파악할 수 있었다.
“허허허.”
천해선은 마치 무림의 장로라도 된 양 너털웃음을 터트렸다.
심지어 있지도 않은 수염을 쓸어내리기라도 하듯 허공에다 손을 흔들었다.
한국에 있는 동안 자나 깨나 연습하더니, 결국에는 자유자재로 사용하는 단계에 이른 것이다.
‘환격’을.
“이…… 놈이…….”
연거푸 농락을 당한 사일리아의 귀가 새빨갛게 달아올랐다.
첸은 여전히, 무표정한 얼굴로 사일리아에게 보검을 겨누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