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ison-Eating Healer RAW novel - Chapter (186)
186화
“첸아.”
“네.”
“네가 내 자식이라 자랑스럽다.”
첸은 하마터면 먹고 있던 밥알을 뿜을 뻔했다.
한평생 들어 보지 못했던 다정한 음성이 아버지게에서 들려왔기 때문이다.
“사부님……?”
“당분간 자리를 비우게 될 게다. 물론 그럴 리는 없겠지만, 내가 없더라도 수련을 게을리하지 말거라.”
“어디 멀리 가십니까?”
첸은 무덤덤한 얼굴로 물었지만, 내심 적잖이 긴장하고 있었다.
평생을 같이 살면서 아버지가 자리를 비운 적은 비일비재했다.
짧게는 며칠부터 길게는 몇 달까지.
심지어 해가 넘도록 집으로 돌아오지 않은 적도 있었다.
그런데 어째서, 예전에는 하지 않던 고지를 하는 것일까.
그 대답은 허무하도록 간단한 것이었다.
“못 돌아올 수도 있다.”
“!”
밥을 먹는 인원.
식사를 하는 시간.
변변찮은 반찬까지.
모든 것이 평범한 자리에 전혀 평범하지 않은 이야기가 오가고 있었다.
“내 후회가 될까 봐 말해 본 것이다.”
나이에 어울리지 않게 첸의 아버지가 소년 같은 미소를 지었다.
훈련장에서 보였던 악마는 더 이상 이 자리에 존재하지 않았다.
그저 자식을 생각하는 아버지의 모습만이 남아 있을 뿐.
“사부님…….”
기절하기 직전인 상태에서도 무너지지 않았던 첸의 마음이 허물어지기 시작한다.
직감적으로 아버지를 다시 못 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감히 그를 말릴 수는 없었다.
“꼭, 무사히 돌아오셔야 합니다.”
“약속하마.”
어디를 가는지, 왜 가는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아버지가 하는 일엔 틀림이 없음을 어릴 때부터 경험해 왔기 때문이다.
“첸아.”
“네. 사부님.”
아직 진정되지 않은 첸의 목소리에 아버지는 마음 한켠이 아려 왔다.
“만약 상대에게 벼락검이 통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할 테냐.”
“네?”
첸은 자신이 잘못 들은 것이라고 생각했다.
벼락검은 누구도 막을 수 없는 비기 중의 비기라고 입버릇처럼 말하지 않았던가.
그런데 갑자기, 벼락검이 통하지 않는다고?
어쨌거나 사부가 물었으니 대답을 해야 할 일.
첸은 덤덤하게 자신의 의견을 밝혔다.
“그러면 그날이 제 제삿날이라고 생각하겠습니다.”
“……과연 너답구나.”
아버지가 쓴웃음을 짓더니, 돌연 진중한 얼굴로 돌변했다.
“네 아직 수련이 부족해 말하지 않았으나, 지금은 사정이 이러하니 작은 단서라도 주려 한다.”
“정녕 벼락검이 통하지 않은 상대가 있다는 말입니까?”
“있다.”
확정적으로 이야기하는 모습을 보자니, 어쩐지 그 상대가 누구인지도 알고 있는 것 같다.
첸은 그게 누구냐고 묻고 싶었지만, 그전에 먼저 해야 할 질문이 있었다.
“그럴 때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칼을 내려놓거라.”
“?”
잠시 동안 생각에 잠긴 첸이 다시 물었다.
“그냥 죽음을 받아들이라는 말과 다른 점이 있습니까?”
“칼은 단순한 도구일 뿐이니까.”
“!”
첸의 동공이 지진이 난 것처럼 흔들렸다.
검을 신체의 연장선이라 생각하라 했던 평소의 가르침과 정반대되는 말이 아니던가.
그동안 수련했던 아버지가 맞는지 의심스러울 지경이었다.
“모든 수련에는 단계가 있는 법이다. 때로는 검을 내 수족처럼 생각해야 할 때가 있고, 그 단계를 넘어서면 궁극의 단계로 접어들어야 하지.”
“궁극의 단계…….”
“아직 너에게는 이른 말일 것이다. 허나…….”
돌아오지 못할 수도 있으니 말해 주는 것이다.
아버지는 차마 뒷이야기를 반복할 자신이 없었다.
“칼은 벼락검을 불러일으키기 위한 도구일 뿐이다. 그러니 좋은 명검에 집착할 필요가 없다. 설령 칼이 반 토막이 나더라도 검기를 사용할 수 있으니 문제 될 것이 없다.”
“명심하겠습니다.”
“벼락검이 통하지 않을 때에는 칼을 내려놓거라. 벼락‘검’이 아니라 네 자체가 ‘벼락’이 되어야 한다.
“……?”
아버지, 아니 사부님의 수련 방식이 언제는 쉬웠냐만, 이번만큼은 정말 뜬구름 잡는 소리처럼 들렸다.
그러나 지금 대화의 무게감을 생각하면 절대 가벼이 여겨서는 안 될 터.
첸은 아버지가 한 말을 한 자도 놓치지 않고 머리에 새겨 넣었다.
그리고.
아버지는 영영 돌아오지 않았다.
* * *
“버프 줘.”
몸을 반쯤 굴리다시피 하며 첸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피가 멈추지 않고 계속 흐르고 있었지만 지금 이 자리에는 마리아는커녕 하위 티어의 힐러조차 없었다.
“너 그러다 죽어……!”
“아무것도 안 해도 죽지.”
“……!”
첸이 힘겹게 양팔을 올려 말총머리를 하고 있던 끈을 풀었다.
그리고는 끈으로 자신의 상처 부위를 동여매었다.
덕분에 첸의 머리는 산발이 되었지만, 일단 급한 대로 지혈에는 성공한 모습이었다.
“버프 줘.”
“이미 주고 있는데 뭘 더 달란 말이야?”
“더 줄 수 있잖아. 모를 것 같아?”
“!”
비수가 소스라치게 놀라며 말을 더듬었다.
“그걸 어떻게?”
“육철완이랑 훈련할 때 폭주 직전까지 가는 걸 봤거든.”
이 자식이 어디서 그걸 훔쳐봤지?
하지만 그걸 물어볼 상황은 아니었다.
첸의 말은 사실이었다.
육철완에게 버프를 욱여넣기 위해 훈련을 반복하던 중, 그의 눈이 완전히 돌아 버린 적이 있었다.
줄 수 있는 버프의 양이 늘어나다 보니, 일정치 이상을 전해 주면 버프를 받는 헌터가 감당을 못 하는 것이다.
어떤 명약이라도 과하면 독약이 되는 법.
비수는 그 이후로 자신만의 마지노선을 만들어 놓은 터였다.
“너. 근데 죽을 수도 있어.”
비수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같은 ‘S’티어라고는 하나 첸은 육철완보다 몇 수는 위다.
그만큼 폭주의 영향력도 어마어마할 터.
가뜩이나 지금 부상을 입은 상황이 아니던가.
하지만 첸은 담담하게 자신이 한 말을 반복할 뿐이었다.
“아무것도 안 해도 죽어.”
“……!”
“좋아. 나중에 원망하지 마라.”
망설임이 가득하던 비수의 눈빛에 돌연 독기가 차올랐다.
그녀도 첸만큼 각오를 한 것이다.
여기서 모두 죽을 수도 있다는, 결사의 각오를 말이다.
샤르륵.
언제나처럼 짜릿한 감각이 첸의 몸을 휘감는다.
몸을 가만히 두기 힘들 정도의 고양감.
하지만 첸은 몸을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되려 가만히 눈을 감았다.
그리고 들고 있던 보검을 바닥에 던졌다.
쨍.
귀가 시린 소리가 사방으로 울려 퍼졌다.
비수가 버프를 주다 말고 깜짝 놀라 소리쳤다.
“야! 너 미쳤어? 버프를 주랄 때는 언제고 칼을 버리면 어떡해?”
“소리 지르지 마. 버프 기운이 약해졌잖아.”
“……?”
포기한 것이 아니란 말인가?
비수는 의아했지만 첸이 시키는 대로 정신을 집중했다.
부웅.
파직.
비수가 휘둥그레진 눈으로 보검을 바라보았다.
첸의 칼에서 스파크가 나오는 건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하나 지금은 칼이 덩그러니 바닥에 떨어져 있는 상태가 아니던가.
‘그것뿐만이 아니야……!’
예전에는 ‘파직’ 하는 소리만 들렸다 뿐, 지금처럼 기묘한 공명 소리가 난 적은 없었다.
비수가 눈을 부릅뜨고 보검을 바라보기를 잠시, 믿기 힘든 일이 벌어졌다.
우웅…….
파직.
‘움직였어?!’
보검이 스스로 몸을 움직였다.
에스퍼가 다른 사물을 움직이는 그런 느낌이 아니었다.
마치 검이 스스로 생명을 얻은 것처럼 이리저리 흔들리고 있었다.
‘보인다.’
첸은 눈을 감고 있었지만, 보검의 움직임이 명확히 보였다.
칼을 손에서 내려놓고 벼락검을 불러 본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시도는커녕 그런 방법이 있다는걸 생각해 본 적도 없었다.
하나 막다른 골목에 다다른 지금, 첸은 사부이자 아버지의 유언과도 같은 조언을 이행해 보기로 했다.
눈을 감고 벼락검의 기운을 사용한다.
비수로부터 전해지는 끝없는 에테르의 폭풍을 등에 업고서.
파지지직.
[?]발버둥 치는 벌레를 보는 얼굴로 첸을 지켜보던 두덱의 얼굴이 아주 살짝 변했다.
무슨 서커스를 하나 싶었는데, 칼에게서 나오는 기운이 제법 심상치 않았기 때문이다.
우웅.
마치 사슬에 묶여 있는 야수처럼 이리저리 몸을 비틀던 보검이, 갑자기 전광석화처럼 두덱의 목을 향해 쏘아져 나갔다.
[!]꽈르르릉.
텅.
처음으로, 두덱의 손이 튕겨져 나갔다.
그와 동시에 그의 얼굴이 조금 더 험상궂게 변했다.
[제대로 서 있지도 못하는 놈이 이런 힘을 사용할 줄이야……. 테르티가 탐을 낼만 하군.]두덱의 시선은 첸이 아닌 비수를 향하고 있었다.
벼락검을 사용하는 힘의 원천이 그녀임을 정확히 알아본 것이다.
휘릭.
그런데, 떨어져 나간 줄 알았던 보검이 다시 한번 오색의 빛을 반짝이며 방향을 틀었다.
[연격이라.]무표정하게 지켜보던 두덱이 돌연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재미있군.]휘오오오오.
두덱의 전신에서 보랏빛 바람이 휘몰아친다.
그리고 그 바람이 이내 천천히 한 점으로 모여들더니, 이내 하나의 모양을 형성하기 시작했다.
“저건……!”
지켜보던 비수의 안색이 파랗게 질려 버렸다.
그녀는 저 바람을 예전에도 본 적이 있었다.
쐐기 모양을 형성하는 보랏빛의 회오리.
천해선의 두 팔을 날려 버렸던 공격이었다.
꽈르르릉.
쾅!
검의 끝과 쐐기의 끝이 부딪쳤고, 귀가 떨어져 나갈 것 같은 충격파가 울려 퍼졌다.
“아……!”
비수의 입에서 탄식이 흘러나왔다.
첸의 검이, 프라니움 부분을 제외하고 전부 박살이 났기 때문이다.
이제는 더 이상 검이 아니라, 단순한 프라니움 막대기에 지나지 않았다.
파지직.
[?]하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번개의 기운은 여전히 유효했다.
첸의 아버지가 말했던 것처럼, 벼락검의 주체는 칼이 아니라 칼의 주인이기 때문이다.
꽈르르릉.
쾅.
칼(이었던 것)과 쐐기가 수차례 정면으로 격돌했다.
어찌나 그 소리가 큰지 비수는 귀에서 피가 나올 것 같았다.
울컥.
그리고 그 충격파 사이에, 누군가가 피를 토하는 소리가 들렸다.
“첸!!!”
첸은 여전히 눈을 감은 채였다.
그러나 입에서는 피가 폭포처럼 쏟아져 나왔고, 혈색도 실시간으로 어두워지고 있었다.
헌터에게 과한 에테르를 주입했을 때 나타나는 부작용.
‘폭주’가 시작된 것이다.
“안 돼!”
비수가 황급하게 자신의 버프를 거두어들이려 했다.
“멈추지…… 마라.”
“!”
다 죽어 가는 목소리를 하면서도, 첸은 비수의 버프를 계속해서 받아들였다.
“이래 죽으나…… 저래 죽으나 마찬가지니까.”
폭주가 시작되면 돌이킬 수가 없다.
제아무리 뛰어난 힐러가 와도 마찬가지.
첸의 폭주에 공명이라도 하듯, 벼락검이 더 빠르고 종잡을 수 없이 날뛰고 있었다.
[……귀찮네.]잠시 재롱에 장단을 맞춰 주던 두덱이 손아귀에 힘을 주었다.
그러자 눈앞의 쐐기의 크기가 조금 더 커졌다.
검의 형상을 하고 있는 프라니움을 완전히 날려 버릴 심산인 것이다.
꽈르르릉.
쐐액.
마지막 벼락검이 발동된 직후, 첸은 바닥에 얼굴을 박고 쓰러져 버렸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폭주 전에 기력이 소진돼 기절을 해 버린 것이다.
주인이 사라진 벼락검은 이내 방향을 잃고 천방지축으로 날뛰었다.
[흐흐. 꼴사납군.]두덱이 조소를 흘리며 직접 벼락검을 향해 쐐기를 조준했다.
그 순간,
-비이.
미약한 날갯소리가 두덱의 귀에 똑똑히 날아와 꽂혔다.
아주 작은 소리임에도 두덱의 심장을 격동시키게 만들기에는 충분했다.
날갯짓의 주체에게서, 이루 말할 수 없는 불길함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비이.
동공 없이 부릅뜬 눈이 마침내 소리의 근원지를 찾았다.
동시에 비수도 그 존재를 확인했다.
“저건…… 해선이의……?”
천해선이 날려 보냈다는 정찰병.
메루스의 기운으로 만들어진 황금색의 벌.
‘비’가 첸의 벼락검을 향해 몸을 날렸다.
꽈르르르릉!
그러자 미친 사람이 갑자기 정신을 차린 것처럼, 폭주하던 벼락검이 정확하게 두덱을 겨냥했다.
[어딜!]두덱의 쐐기가 벼락검의 앞을 막았다.
이전처럼 두 개의 기운이 정면으로 맞부딪쳤고, 이번에는 다른 결과가 나왔다.
퍼석.
두덱이 부른 쐐기가 박살이 나 버린 것이다.
[!]눈이 부신 오색과 더불어 아주 살짝 가미된 황금색의 벼락이, 두덱의 전신을 덮쳤다.
꽈르르르르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