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ison-Eating Healer RAW novel - Chapter (207)
207화
‘정말로 이렇게 됐구나.’
잉센은 복잡한 심정으로 대련장 위를 바라보았다.
그곳에는 도끼를 든 황덕수와 짝다리를 짚고 있는 천해선이 있었다.
그는 이곳을 오면서 천해선과 나누었던 대화를 떠올렸다.
-이 허가서를 어떻게 구했어?
-무지성…… 아니, 부지성이라는 헌터가 있는데 그 사람이 표혁규의 무죄를 입증했어. 그날부로 바로 발급해 줬지.
-놀랍네. 한국 협회의 일 처리는 원래 그렇게 빠른 건가?
-아니. 부지성이 부회장의 사촌이거든.
-……그렇구나.
-근데 이게 별로 쓸 일이 없을 거래.
-어째서?
-들어올 때는 마음대로지만 나갈 때는 아닌 곳이라더라고. 헌터 수용소라는 곳.
-무죄가 입증됐다며? 그럼 바로 나올 수 있는 거 아냐?
-그래도 못 나오나 봐. 소장의 허가 없이는.
-어메이징한 곳이네. 그럼 어떻게 할 생각이야?
-이 허가서는 형식일 뿐이야. 소장을 만나기 위한.
-그리고 나서는……?
-글세? 한 대 쥐어박으면 말 듣겠지?
잉센의 기억 속에 해맑게 웃고 있는 천해선의 얼굴이 보였다.
결국은 천해선이 예측한 대로 되고 말았다.
허가서는 종이 쪼가리에 불가했고, 천해선은 가장 확실한 방법으로 황덕수를 설득하려 하고 있었다.
‘무력’이라는 방법으로 말이다.
‘괜찮을까.’
잉센은 초월급 헌터다.
그리고 사일리아라는 걸출한 무력의 소유자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눈앞에 보이는 황덕수의 위세는 결코 그 둘에 밀리지 않았다.
만약 잉센이 ‘황덕수는 초월급을 ‘못’ 단 게 아니라 ‘안’ 단 것이다’라는 소문을 들었다면, 기꺼이 고개를 끄덕였을 것이다.
그만큼 황덕수의 주변에서 뿜어져 나오는 기세는 ‘초월급’을 방불케 했다.
일반인 범죄자도 다루기가 까다로운 마당에, 헌터 범죄자를 관리하려면 얼마나 골머리를 썩이겠는가.
미친놈을 상대하려면 같이 미쳐야 한다는 말이 있기는 하지만, 그걸 감안하고서라도 황덕수의 광기와 힘은 보통 수준이 아니었다.
“그거 일반 도끼예요?”
“그렇습니다.”
“와. 아저씨 첸보다 세구나.”
천해선은 진심으로 감탄했다.
A랭크 이상의 헌터들은 일반 무기로는 벨 수가 없다.
베기는커녕 무기가 박살이 나야 정상이다.
저런 평범한(?) 도끼로 죄수들의 몸을 무 썰듯 썰었다는 건 시전자의 에테르가 그만큼 강하다는 이야기가 된다.
벼락검을 사용하는 첸조차 원래 가지고 있던 헌터 디바이스가 산산조각이 나지 않았던가.
무기에 실은 에테르의 방벽이 워낙에 두꺼운 탓에, 저런 평범한 무기가 원형을 유지하고 있는 것이다.
“이제 와서 약한 소리를 하면 큰일인데.”
굶주린 야수의 모습을 한 채 황덕수가 도끼를 쳐들었다.
그는 머릿속으로 죄수가 아닌 손님을 죽여도 탈이 없을지에 대해 생각하던 참이었다.
하지만 이곳 헌터 수용소의 생사 여탈권은 오로지 황덕수에게만 허락된 일.
게다가 천해선 본인이 자초한 대련이니 문제 될 것은 없어 보였다.
“왜. 대련장에 올라오니까 다른 생각이 듭니까?”
하지만 이미 늦었다.
이곳에 올라온 이상 그 누구도 자신의 ‘계도’를 피할 수는 없다.
바지를 흥건하게 적시며 빌 때까지 손속에 사정을 봐주지 않을 생각이었다.
그러다 죽어도 어쩔 수 없고.
그러나, 천해선의 대답은 황덕수의 예상과는 백만 광년만큼 떨어진 것이었다.
“아뇨. 그럼 저도 헌터 디바이스는 사용하지 않을 게요. 그게 공평하니까.”
“……?”
이것으로 세 번째.
간부는 오늘 로또를 사지 않은 것을 후회했다.
황덕수의 저런 얼빠진 표정을 하루에 세 번씩이나 보는 건 평생에 다시 없을 일이기 때문이다.
“제가 이기면 표혁규 감독관을 풀어 주실 거죠?”
“아닙니다.”
“엥.”
휘릭.
황덕수가 어깨 위에 걸친 도끼 손잡이를 바로 잡았다.
“여기서 살아 나가기만 한다면, 곧바로 표혁규를 풀어 드리죠.”
그의 얼굴이 악귀처럼 변했다.
“난도가 내려갔네.”
그리고 천패선 또한 호기롭게 웃었다.
타닥.
황덕수가 몸을 사선으로 튼 채 천해선에게 접근했다.
상체를 틀면서도 하체는 천해선을 향해 올곧게 나아갔다.
실로 훌륭한 바디 밸런스라 할 수 있었다.
“흐아!”
꼬았던 몸을 반대로 틀며 장성규가 크게 한 바퀴 회전했다.
그가 손에 쥔 도끼날이 팔을 따라 커다란 원을 그었다.
‘그냥 봐서는 별거 없네.’
천해선이 몸을 숙여 도끼날을 피했다.
서걱.
그리고 그의 머리카락이 하늘로 흩뿌려졌다.
“?”
천해선이 크게 놀라며 몸을 곧추세웠다.
적어도 한 뼘 이상은 거리가 있었다고 생각했는데, 어쩐 일인지 그의 도끼날은 천해선의 머리 위를 아슬아슬하게 스쳐 지나갔다.
방심하지도 않았는데 하마터면 머리가 반으로 쪼개질 뻔한 것이다.
“흐아!!”
황덕수는 당황한 천해선 쪽으로 크게 팔을 뻗었다.
거리를 두려는 천해선의 움직임을 사전에 봉쇄하겠다는 듯, 그의 어깨 뒤로 도끼를 출수해 끌어당겼다.
과격한 한편 꽤나 느릿한 동작이었다.
천해선은 도끼를 피해 하늘 위로 도약하려 했다.
그러나 그의 의도와는 다르게, 천해선의 발은 여전히 땅 주변에 있었다.
지릿.
“!”
‘이건…… 인력(引力)????’
천해선은 그제야 왜 이 남자가 헌터 수용소의 폭군으로 불리는지 알 것 같았다.
마치 자석과 자석이 서로 만나는 것처럼, 중력에 이끌려 바닥으로 추락하는 것처럼 자신의 몸이 도끼 쪽으로 빨려 들어간 것이다.
우직.
도끼날에 걸린 천해선의 허리가 90도로 꺾였다.
“해선!!”
잉센이 기겁을 하며 그의 이름을 불렀다.
그의 눈에도 지금의 상태가 위급해 보인 것이다.
“큭…….”
천해선이 고통을 참지 못해 신음을 토하는 사이, 황규성이 도끼를 잡은 양손을 머리 위로 치켜들었다.
“흐하하!!”
기합인지 웃음소리인지 모를 고함과 함께, 인력을 동반한 도끼가 천해선의 정수리를 향해 쏟아졌다.
그리고,
화악.
천해선의 눈동자가 황금색으로 물들었다.
깡!!!!!!!
귀가 시린 소리와 함께 천해선의 어깨 위로 무언가가 튀어 올랐다.
잉센은 대경하여 안경 너머로 눈을 부릅떴다.
설마하니 정말로 천해선의 머리가 날아가기라도 한 것인가.
“이…… 게……!!”
대련장에서 잉센과 똑같은 얼굴을 한 사내가 있었다.
자신의 도끼가 부러져 허공을 가르는 모습을 본 황덕수.
그의 표정이 잉센과 똑 닮아 있었다.
“와, 하마터면 골로 갈 뻔했네.”
천해선이 진심으로 감탄한 듯 헛웃음을 삼켰다.
황덕수의 무력은 나무랄 데가 없었다.
그가 사용하는 ‘인력’ 앞에서 모든 회피 동작은 무의미한 것이었다.
도끼날을 피하려고 해도, 블랙홀처럼 빨아들이는 인력이 대상을 거침없이 베어 가르기 때문이다.
“메루스는 안 쓰려고 했는데.”
천해선이 영 아쉬운 듯 입맛을 다셨다.
그의 어깨에서 피가 주륵 흘러나오고 있었지만, 딱히 문제 될 것은 없었다.
메루스의 기운 덕분에 피부가 벗겨지는 부상에 그쳤고, 그 정도는 자가 치유로 금방 회복이 가능했다.
데구르르…….
그러나 천해선을 상대하는 황덕수의 대미지는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
대련장 위를 공허하게 굴러다니는 도끼를 보며 황덕수는 튀어나올 듯한 눈을 하고 있었다.
비록 머리가 아니라고는 하나, 자신이 휘두른 도끼날이 정통으로 사람의 몸에 꽂혔다.
당연히 몸이 두 조각으로 쪼개져야 정상인 일이었다.
그런데 어쩐 일인지, 천해선은 너무나 멀쩡한 모습으로 비척비척 걸어오고 있었다.
“어떻게……?”
굉장히 멍청한 질문이라는 걸 알면서도 묻지 않을 수가 없었다.
황덕수의 경험과 지식으로는 도저히 납득 불가능한 일이 벌어졌기 때문이다.
하기사, 황덕수가 메루스의 존재를 어떻게 알 수 있겠는가.
그에게는 눈앞의 일이 불가사의보다 더 받아들이기 어려운 일일 것이다.
“소장님. 힘 세시네요. 방금 일격은 사일리아보다 더 강한 거 같은데.”
천해선은 진심으로 한 말이었지만, 황덕수에게는 단순한 조롱으로 들릴 뿐이었다.
빠드득.
부서져라 이를 갈던 황덕수가 손잡이가 부서진 도끼날을 들었다.
퍽.
그리고는 주먹으로 도끼날 구석 부분에 구멍을 뚫었다.
“오우. 터프해.”
“그 입……!!”
구멍 난 부분을 팔목에 낀 상태로, 황덕수가 다시 한번 천해선을 향해 달려들었다.
‘됐어……!’
단숨에 천해선의 가슴팍까지 도달한 황덕수는 한 번 더 이를 악물었다.
일단 이 거리까지 도달한 이상 자신의 공격을 피할 수 있는 헌터는 없다.
원거리에서 졸렬하게 공격하는 것에는 취약하지만, 이렇게 ‘인력’이 작용하는 공간 내에서 그는 전투의 신으로 빙의하게 된다.
부웅.
“?”
그러나 황덕수의 확신이 무색하게, 그가 휘두른 도끼에는 아무것도 걸리지 않았다.
첫 번째 공격과는 180도 다른 결과가 발생한 것이다.
부웅.
붕.
두 번째 공격도, 세 번째도 마찬가지였다.
도끼 손잡이가 날아간 것 때문일까.
아니, 노도처럼 밀고 들어오는 황덕수의 공세는 첫 번째 공격보다 훨씬 빠르고 격렬했다.
‘전황이 변했어.’
한 걸음 뒤에서 전투를 지켜보는 잉센에게는 그 변화가 너무나 눈에 잘 들어왔다.
그전에는 무언가에 홀린 듯 빨려 들어가던 천해선의 몸이, 이제는 그 무엇에도 영향을 받지 않은 채 자유롭게 움직이고 있었다.
‘아마도 저것 때문이겠지.’
천해선의 몸을 둘러싸고 있는 황금색의 기운.
황덕수의 ‘인력’이 통하지 않는 건 저 황금색의 ‘메루스’ 때문일 것이다.
파이브 사이더스의 일원인 잉센은 ‘메루스’가 얼마나 강력한 힘인지 잘 알고 있었다.
모든 힘의 근원이라 불리는 순수한 에너지.
황덕수의 ‘인력’이 진귀한 능력이기는 하나 어디까지나 에테르를 기반으로 한 것일 터.
그가 천해선과 같은 메루스를 가지지 않은 이상에야, 더 이상 그를 옭아맬 수 있는 방법은 없었다.
“흐아악!”
이전같이 자신감 넘치는 포효 대신 분노에 찬 음성이 대련장에 울려 퍼졌다.
그가 ‘인력’이라는 스킬을 배우고 난 뒤로, 대상을 베지 못해 허우적거리는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대충 휘둘러도 알아서 딸려 들어오던 상대가, 이번만큼은 아무리 애를 써도 손밖을 벗어나기 일쑤였다.
천해선은 일부러 놀리기라도 하듯, 사뿐사뿐한 움직임으로 황덕수의 도끼날을 피했다.
‘인력’을 사용하지 못하는 황덕수의 움직임은 한 손으로 전화를 하면서도 피할 만한 수준이었다.
대련을 지켜보는 모두가 심상치 않은 흐름을 감지했다.
‘이 대련을 비공개로 하길 잘했다.’
멀찍이 서서 지켜보던 간부가 돌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이곳 헌터 수용소는 장덕수가 곧 법이었고, 그 근거는 그의 압도적인 강함에서 기인한 것이었다.
때로는 범죄자들에게 경각심을 일깨우기 위해 일부러 대련 장면을 생중계하기도 했다.
다음번에는 자신의 목이 잘릴 수 있다는 생각에 수용된 헌터들은 고분고분 말을 잘 들어 왔다.
하지만 지금 이 영상을 죄수들에게 보여 준다면?
간부는 머지않아 헌터들이 딴마음을 품게 될 것이라 확신했다.
유일신이라 생각했던 황덕수가 낭패한 모습으로 두들겨 맞고 있었기 때문이다.
퍽 퍽 퍽 퍽.
수세에서 공세로 전환한 천해선이 주먹을 쾌속으로 놀렸다.
순식간에 몇 대를 맞았는지 파악이 불가능할 만큼, 황덕수의 전신에 주먹 자국이 패였다.
“크…… 크억…….”
“맞아 본 적이 별로 없으신가, 비명이 찰지시네.”
천해선은 그렇게 말하면서 속으로 고소를 머금었다.
단순한 주먹질이 아니라 메루스의 힘이 깃든 공격이다.
산전수전 다 겪은 황덕수라지만 지금의 손찌검을 참아 내기란 어려운 일이었다.
“그…… 그만…….”
결국 참지 못한 황덕수가 양손을 휘둘렀고, 천해선은 그 사이로 손을 집어넣어 그의 턱에 마지막 공격을 뻗었다.
빠각.
그가 돌렸던 도끼처럼 황덕수의 턱이 빠르게 돌아갔다.
춤을 추듯 회전하던 그의 몸이 허물어지듯 쓰러졌고,
쿵.
‘말도 안 돼…….’
‘저 남자는 신인가?’
이를 지켜보던 간부들은 하늘 위에 또 다른 하늘이 있음을 깨닫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