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ison-Eating Healer RAW novel - Chapter (212)
212화
“우리가 셉티뭄을 발견했을 때, 가장 중요한 게 뭐라고 생각해?”
천해선의 물음에 잉센이 안경을 고쳐 쓰며 대답했다.
“놈을 구속하는 거?”
“아니야.”
천해선이 고개를 가로젓자 야차가 대답했다.
“래더의 사지를 찢고 회를 뜨는 것?”
“……아니야.”
“그럼 뭐냐.”
“차원의 문을 찾는 거야.”
“……!”
그건 야차뿐 아니라 잉센도 생각해 보지 못한 개념이었다.
“마인들이 제집 드나들듯 영계와 인간계를 왔다 갔다 하는 건 차원의 문이 있기 때문이야. 그동안의 경험으로 봤을 때, 크고 작은 회오리가 차원의 문 역할을 했지.”
천해선이 처음 ‘두덱’이란 마인을 만났을 때도, 사일리아와 잉센이 ‘이더스’를 만났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그들은 회오리를 통해 다른 차원에 발을 디뎠고, 마찬가지 방식으로 자신들의 세계에 돌아갔다.
“우리가 해야 할 가장 첫 번째 미션은, 차원의 문을 확보해야 한다는 거야.”
그러자 잉센이 난색을 보였다.
“해선. 그 커다란 회오리를 무슨 수로 통제할 수 있겠어? 정작 우리도 그 회오리에 휩쓸려 날아갔잖아.”
“그 정도 크기가 아닐 거야.”
“응?”
“생각해 봐. 셉티뭄은 총재의 집과 마계를 수시로 왔다 갔다 했잖아?”
“그랬지.”
“총재 저택 주변에서 회오리가 발생했다는 말, 들어 본 적 있어?”
“……!!”
“어떻게 셉티뭄이 그 작은 차원의 문을 통과하는지는 잘 모르겠어. 하지만 확실한 건, 총재의 집에 숨길 수 있을 정도로 차원의 문이 작다는 거야. 따라서…….”
야차가 천해선의 말을 이어받았다.
“이쪽에서 컨트롤이 가능한 사이즈일 수도 있다는 거군.”
“맞아. 그거야. 그래서 우리는 차원의 문부터 확보해야 해. 그래야…….”
천해선의 안광이 태양보다 뜨겁게 번뜩였다.
“셉티뭄의 퇴로를 막을 수 있어.”
* * *
‘과연…….’
비행기에서 나누었던 대화를 떠올리며 잉센은 침을 꿀꺽 삼켰다.
천해선의 예측은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전부 들어맞았다.
저택 어딘가에 차원의 문이 숨겨져 있었고, 그 사이즈는 금고 안에 들어갈 만큼 작았다.
어떻게 그런 작은 사이즈로 차원을 넘나들 수 있었는지 하는 의문도 자연스럽게 풀렸다.
셉티뭄의 몸이 사실상 기체에 가까운 상태였기 때문이다.
엿가락처럼, 아니 그것보다도 더 자유롭게 몸을 늘릴 수 있는 놈이다 보니 작은 차원의 문을 통과하는 건 일도 아니었을 것이다.
-네놈이…….
야차의 소환수를 전부 제거한 뒤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온 셉티뭄.
그의 몸이 이전보다 더 크게 일렁였다.
그 일렁임이 표현하는 감정이 ‘분노’라는 것을 파악하는 건 그다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금고를 열고 희희낙락하는 천해선의 모습을 확인한 뒤 생긴 변화였다.
“야. 보안에 신경 좀 쓰지 그랬냐. 다이얼을 한 칸만 옮기니까 열리네.”
-……그럴 필요가 없으니까.
“호?”
-차원의 문을 컨트롤할 수 있는 건 우리 마인들뿐이다. 평범한 인간이 쥐락펴락할 수 있는 개념이 아니지.
“근데 왜 그렇게 몸을 불태우고 있어? 화난 사람처럼.”
천해선이 악동 같은 미소를 지으며 금고의 문을 활짝 열었다.
쉬이잉.
금고 안에는 사람의 머리만 한 소용돌이가 맹렬하게 회전하고 있었다.
부우웅…….
천해선의 손바닥에서 한 줌의 빛무리가 떠올랐다.
메루스로 이루어진 덩어리가 소용돌이의 표면을 감싸자, 마치 노이즈 영상처럼 소용돌이 표면이 크게 일렁였다.
그리고 처음으로, 셉티뭄의 표정에 당황한 표정이 떠올랐다.
파지직.
-……!!
맹렬히 회전하던 소용돌이가 언제 그랬냐는 듯 움직임을 멈추었다.
이제 금고 안에는 더 이상 아무것도 남지 않게 되었다.
셉티뭄의 유일한 퇴로라 할 수 있는 차원의 문을 천해선이 망가뜨린 것이다.
내심 마음 놓고 있던 셉티뭄의 얼굴에 짙은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저걸…… 부술 수 있는 인간이 또 있다니……?
당황한 표정도 잠시, 동공 없는 셉티뭄의 시선이 이곳저곳을 향한다.
-너.
셉티뭄의 흐릿한 손가락이 천해선을 가리켰다.
“나?”
-정체가 뭐냐.
아마도 셉티뭄은 천해선에게서 누군가의 그림자를 본 듯 보였다.
그것이 기분이 좋았던 것일까.
천해선이 다소 위험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저승사자다.”
천해선이 짧게 대답한 뒤 ‘독염’을 출수했다.
화악.
마인들에게 블랙 에테르가 통하지 않는다는 건 그간의 경험으로 알고 있었다.
그러나 어찌 되었건 셉티뭄의 몸은 기체에 가까웠고, 진득한 독을 담은 화염이 닿으면 의외의 타격을 줄 수도 있었다.
휘익.
셉티뭄이 검은 화염을 피해 재빨리 신형을 움직였다.
언뜻 보면 여유롭게 피한 것 같지만, 천해선은 되려 그 모습에서 강한 힌트를 얻었다.
‘역시. 가능하면 열에 닿지 않으려 하는구나.’
철컥 철컥.
천해선이 셉티뭄을 상대하는 사이, 잉센이 에테르 수갑으로 래더 총재를 구속했다.
“그것만으로는 부족하지.”
하지만 야차는 성에 안 찬다는 듯, 총재의 티셔츠를 찢어 재갈을 물렸다.
평소라면 잠을 잘 시간.
단출한 복장으로 잠을 자고 있던 총재는 졸지에 상체가 발가벗겨지고 말았다.
가진 지위와 권력을 생각하면 가히 모멸적인 처우라 할 수 있었지만, 총재는 감히 야차에게 무어라 대꾸할 수 없었다.
재갈을 물린 뒤라 할 수 있는 말도 없었을 테지만.
총재의 몸을 구속한 뒤, 잉센이 셉티뭄을 향해 외쳤다.
“셉티뭄! 이제 넌 마계로 도망갈 수 없다! 꼴 좋게 됐군.”
정말로 차원의 문을 부술 줄은 몰랐던 셉티뭄은 꽤나 심기가 복잡한 모습이었다.
좀 주변이 크게 일렁이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정처 없이 이리저리 움직이기도 했다.
하지만 잉센의 말을 듣고 난 뒤, 셉티뭄의 몸이 순식간에 안정을 찾았다.
-도망? 도망이라고……?
차원의 문에 대한 혼란을 단숨에 덮을 만큼, 한가지 명확한 목표가 생겼기 때문이다.
-내가 지금…… 도망을 갈 거라 생각한 거냐?
-스스스…….
셉티뭄의 몸을 이루고 있는 기체가 조금 더 짙은 색으로 변했다.
그와 동시에 폭발적인 마력이 사방으로 뻗어 나왔다.
그 흉흉한 기운에 야차마저 침을 꿀꺽 삼킬 정도였다.
천해선은 잉센을 바라보며 뚱한 표정을 지었다.
“거 쓸데없는 말을 해 가지고…….”
“……미안.”
물론 천해선의 말은 농담이었다.
차원의 문을 없애 버린 이상 셉티뭄과의 대결은 필연적인 것이었다.
총재의 집에 발을 들일 때부터, 천해선은 사생결단의 각오를 품은 상태였다.
“온다. 조심해.”
천해선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셉티뭄의 몸에서 여러 갈래의 꼬챙이가 발사되었다.
쐐애액.
쾅!!!!!
세 명이 서 있던 자리에 큼지막한 구멍이 생겼다.
좀 전까지 흐느적거리던 몸이라고는 도저히 믿겨지지 않는 파괴력이었다.
‘저 면적은…….’
움푹 팬 구멍의 직경을 확인한 천해선의 눈빛이 흉악하게 변했다.
구멍의 크기는 이사순 회장의 몸에 뚫린 것과 정확하게 일치했다.
팍팍팍.
천해선이 촉수를 피한 탄성으로 하늘을 내달렸다.
Level 3의 ‘독보’가 만들어 낸 파생 기술.
‘스카이 워크’를 시전한 천해선이 단숨에 셉티뭄의 머리 위로 도약했다.
어느새 팔목에 찬 프라셀에는 기다란 황금색의 칼날이 돋아나 있었다.
-!!
셉티뭄의 유령 같은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평소 같으면 칼날 같은 건 신경도 쓰지 않았을 것이다.
피하기는커녕 자신의 몸을 베도록 내버려 두면서 조롱하곤 했다.
하나 천해선의 기운을 확인한 셉티뭄은 기겁을 하며 몸을 뒤로 날렸다.
쉭.
서늘한 바람 소리와 함께 셉티뭄의 한쪽 어깨에 미세한 상처가 생겼다.
치이익.
-……!!
마치 염산을 부은 것처럼, 상처 부위가 미세한 거품을 내며 끓어올랐다.
그 모습을 보며 천해선은 입맛을 다셨다.
“아쉽네. 목을 날려 버리려 했는데.”
-네놈…… 역시 그년을 닮았구나.
셉티뭄은 확신했다.
눈앞의 남자는, 10년 전 자신들의 계획을 송두리째 망쳐 버린 인간과 같은 타입이라는 것을.
고작 조금 베였을 뿐인데 회복은커녕 상처가 조금씩 벌어져 갔다.
일반적인 무기나 에테르라면 상상도 못 할 일이었다.
‘아직 그년만큼 강한 건 아니지만…….’
셉티뭄은 지금 이 자리에서 위험한 싹을 도려내야 한다고 결심했다.
스스스스…….
“앗…….”
잉센이 자기도 모르게 고개를 들었다.
셉티뭄의 몸이 기존보다 서너 배 가까이 불어났기 때문이다.
당연히, 그의 몸에서 돋아난 꼬챙이의 위력도 더 크고 강하게 변했다.
쾅!!!쾅!!!!쾅!!!!
수십 기의 꼬챙이가 오로지 천해선만을 향해 날아들었다.
천해선은 공중에서 방향을 이리저리 틀고, 때로는 몸을 활처럼 휘기도 하며 기예에 가까운 움직임으로 꼬챙이들을 피했다.
‘대단하다…….’
잉센이 마음속으로 크게 감탄하며 허공에 양손을 휘저었다.
곧, 셉티뭄의 등 쪽을 향해서 커다란 에테르 미사일 수십 기가 땅에 박혔다.
콰과과과과광!!!!
사전에 멀찌감치 옮겨 놓은 터라 래더 총재의 몸은 안전했다.
하나, 그의 정신적 타격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였다.
‘지…… 집이…….’
자신의 저택이 반으로 부서진 것도 모자라, 아예 쑥대밭이 되었기 때문이다.
래더에게는 셉티뭄이 아니라 되려 잉센이 악마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잉센은 아랑곳하지 않고 연거푸 에테르 미사일을 날렸다.
운석이 떨어진 것처럼 큰 구덩이가 팼고, 흙먼지가 사방을 자욱하게 뒤덮었다.
“……성공인가?”
잉센이 안경을 곧추세우며 셉티뭄이 있던 자리를 응시했다.
그리고 곧, 그 방향에서 여러 갈래의 꼬챙이가 잉센을 향해 날아들었다.
“!”
자욱한 연기 사이에서 출수 된 공격인지라 잉센은 미처 반응하지 못했다.
이대로 가다간 이사순처럼 몸에 구멍이 뚫리게 될지도 모르는 일.
하나 잉센과 이사순이 다른 점이 있다면, 그에게는 든든한 아군이 하나 있다는 것이었다.
쾅!!!!!!!!
귀가 멀어 버릴 것 같은 충격과 함께 잉센의 눈앞에서 불꽃이 튀었다.
부스스…….
거대한 와이번이 온몸에 구멍이 뚫린 채 쓰러져 있었다.
잉센을 대신해 스스로 몸을 바쳐 막아 낸 것이다.
“얼빠져 있지 마.”
“!”
와이번을 불러낸 자가 잉센에게 핀잔을 주고는 고개를 옆으로 꺾었다.
목과 마주 잡은 손에서 동시에 ‘우득’ 하는 소리가 들렸다.
“이쪽은 안중에도 없다 이거냐?”
야차는 꽤 화가 난 듯 보였다.
잉센이 집중하지 못해서가 아니다.
셉티뭄의 모든 공격이 천해선을 향해서만 집중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와라. 나의 자식들아.”
야차의 목소리라고는 믿겨지지 않는 달콤한 음성이 새어 나왔다.
스스스스…….
그러고 곧, 땅속에서 다시 몬스터들이 소환되기 시작했다.
잉센은 무심코 ‘방금 전에 격퇴당했던 녀석들이 아니냐’고 물으려 했다.
하지만 완성된 몬스터를 확인한 잉센은 다리에 힘이 풀리고 말았다.
야차가 소환한 몬스터는 단순한 이계의 몬스터도 아니었고, 10년 전 전쟁에서 씹어 먹은 마물들도 아니었다.
그들은 인간의 모습을 닮았으면서, 한편으로는 인간이라 부를 수 없는 것들이었다.
-캬아아아아악.
“우욱……!!”
잉센은 역겨움을 이기지 못하고 바닥에 헛구역질을 해 댔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야차가 마력이 깃든 몬스터를 어떻게 ‘흡수’하는지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어째서…… 그렇게까지…….”
잉센은 차마 말을 잇지 못했다.
마물에 대한 증오가 얼마나 심하면 그런 선택을 할 수 있는 건지, 그로서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마물이 되다 만 인간들.
야차가 소환해 낸 건 암흑 물질에 본 모습을 잃어버린 상위급 헌터.
키메라들이었다.